# 94
094화 뉴욕 메츠 3연전 1
느린 변화구가 0.5, 빠른 변화구 및 포심패스트볼 전력투구 1.0,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 1.5, 전광석화(電光石火) 3의 체력 소모였는데,
포심패스트볼 30구, 빠른 변화구 23구, 느린 변화구 30구, 그리고 라이징과 퀘스트볼 9구에 트라웃에게 던진 전광석화 하나까지,
계산적으론 80의 체력을 썼고
체력 스탯이 91인 현재 남은 체력은 11이어야 맞지만,
17이 남은 이유는 포심패스트볼이나 변화구를 모두 전력투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낙기는 최소한 1이닝을 더 던질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셜리번 투수코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야, 알렉스 비토가 너 그만 던지래.”
라고 말했다.
성낙기는 저 감독이 있는 한 9회에 마운드를 밟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경기 스코어 2:0에서 9회는 야를린 가르시아가 맡았고 하위 타선에 볼넷을 하나 내주더니,
투아웃에 느닷없이 홈런을 맞아버렸다.
성낙기는 더그아웃에 앉아 머리가 빙빙 도는 걸 느꼈다.
딴엔 작전까지 짜가면서 얻어낸 무실점인데 그게 뭐 별거냐는 듯 한 방에 2점을 해치우는 가르시아다.
그러고는 지도 어이가 없는지 웃기까지 한다.
“아, 오늘 중요한 경긴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에 발리고 있거든.”
“그래? 우리가 이겨야 동률이 되는 거네?”
“근데, 홈런을 맞아서 분위기가 에인절스로 넘어갔어.”
샤일록과 디카엘로의 대화.
전반기에 같이 트레이드로 와서 주전으로 투입된 2루수 샤일록과 좌익수 디카엘로는 어느덧 동부지구 공동 3위를 넘보게 된 것이 자신들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적하자마자 수비는 물론이고 타격도 3할을 눈앞에 둘 만큼 물이 올라 있는 건 사실이다.
가르시아는 이닝을 마쳤고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연장 10회 초 투아웃에,
요즘 감이 떨어져 7번까지 내려간 JT리들의 대타로 야디엘 리베라가 타석에 들어섰다.
샤일록에게 2루를 빼앗기고 내야 유틸리티로 내야수로 전락한 야디엘 리베라였다.
그동안의 설움이 폭발했는지 나오자마자 에인절스의 불펜투수 베드로시안의 초구를 후려쳐 담장을 넘겨 버렸다.
“……!”
“어어어……!!”
“아!!!”
캐스터와 해설자도 이럴 줄은 몰랐는지 중계를 잊고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마이애미 더그아웃에서 흥분한 선수들이 몰려나와 야디엘 리베라의 헬멧을 두드렸다.
리베라의 뒤를 이어 타석에 선 리얼무토는 외야 플라이볼로 아웃,
경기는 10회 말로 넘어갔다.
야를린 가르시아는 9회에 뜻밖의 홈런을 맞고 정신을 차렸는지 에인절스의 세 타자를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경기 스토어 3:2, 마이애미 말린스의 승리였다.
***
마이애미 말린스는 알렉스 비토 감독이 바뀌고 패를 거듭하다가 슬슬 상승세를 타더니,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짜임새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감독의 시프트에도 적응했고 뛰는 야구와 작전 야구가 어우러지면서 8월 중순, 애틀랜타와 동률을 이루었다.
워싱턴 내셔널스와 뉴욕 메츠의 2강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매미 말린스의 2중,
그리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1약으로 동부지구가 재편되었다.
시즌 전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꼴찌를 다툴 것으로 예상되었던 마이애미였다.
“안녕하십니까. 9월의 첫날 야구팬 여러분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말린스파크에서 마이애미 마린스와 뉴욕 메츠의 경기를 보내 드립니다. 두 팀의 이번 3연전이 매우 중요하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마이매미 말린스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제치고 올라오면서 동부지구 2위, 뉴욕 메츠까지 따라잡으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팀 간의 게임차가 6경기로 좁혀졌는데요. 뉴욕 메츠의 4선발 스티븐이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었다가 최근에야 돌아왔고 불펜 투수 게셀만도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고요. 뉴욕 메츠의 악재 속에 마이애미가 힘을 내고 있는 형국입니다.”
ESPN의 에일 라몬 캐스터와 듀크 카바니 해설자였다.
두 사람 모두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는데 거기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6경기 차이다.
한 달이 남은 경기 일정을 생각하면 역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통 한 달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게임차는 3, 4게임이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데이터를 무시한 결과도 많았기에 뉴욕 메츠 역시 안심할 수 없다.
반대로 마이애미는 지구 2위로 올라서서 와일드카드의 희망을 이번 3연전에서 이어가야만 했다.
“마이애미의 성낙기 투수가 몸을 풉니다. 아직 경기 전인데도 거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늘 경기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큽니다. 곧 매진이 될 것 같습니다.”
“매진되겠죠. 노아 신더가드와 성낙기의 선발이거든요. 신더가드는 아시다시피 시속 100(161km)마일을 던지는 투수이고 성낙기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퀘이크볼과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입니다. 게다가 두 투수는 맞대결을 한 적도 있었죠. 그 경기에서 1:0으로 마이애미가 승리했고 성낙기는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 경기에서 노아 신더가드는 9이닝 1실점의 완투를 하고도 패배를 한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
시즌을 한 달 남겨둔 9월 1일, 성낙기와 노아 신더가드의 리턴 매치가 열렸다.
성낙기는 12승 7패 ERA 2.71로 신인으로는 경이적인 방어율을 기록 중이었고 노아 신더가드 역시 14승 6패 ERA 2.59로
에이스 오브 에이스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강속구만 펑펑 던지던 루키 때와 달리 공의 속도 조절과 변화구의 제구도 좋아져서 더욱 까다로운 투수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1회 초 마이애미 타선은 삼진 하나와 두 개의 범타로 물러났다.
1회 말 마운드에 성낙기가 올라갔다.
오늘 포수는 리얼무토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나온 채드 왈라치였다.
타석에 뉴욕 메츠의 리드오브히터 아메드가 들어섰다.
“왈라치, 오랜만이야. 나 알지?”
“잘 알지, 마이너에서 같은 팀이었잖아.”
“주전 포수가 된 걸 축하해.”
“주전 아니야. 리얼무토가 지쳐서 병원 갈 거래.”
“친구가 주전 포수라면 그렇다고 해둬. 네가 어디가 모자라서 백업이야, 안 그래?”
“…….”
덩치는 크지만 순박하고 착한 채드 왈라치는 기분이 묘했다.
축하한다고 했다가 어디가 모자란다고 했다가…
가만 생각하니 열이 올랐다.
‘방금 아메드가 날 놀린 거 맞지?’
채드 왈라치는 바깥쪽 포심패스트볼 사인을 내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체력 소모가 많다면서 성낙기가 많이 던지지 않으려는 구종이다.
‘초구부터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지라고?’
성낙기가 고개를 흔들자, 채드 왈라치는 연속으로 사인을 냈다.
그 공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성낙기는 왜 저러지? 하면서도 사인대로 공을 던졌다.
슈우욱!
팡.
“스트라이크.”
타자 몸 쪽 높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꽂히는 라이징패스트볼이었다.
아메드는 초구부터 몸을 맞힐 듯한 공이 들어오자 뒤로 물러섰다.
채드 왈라치는 계속해서 같은 코스의 같은 구질을 요구했고 성낙기는 의아해하면서도 공을 던졌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성낙기가 연달아 세 개의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진 적은 거의 없었다.
공 세 개로 아웃을 당한 아메드가 신경질적으로 돌아섰고 채드 왈라치는,
‘미안해 아메드’라고 말한 후에 난데없이 1루에 공을 던졌다.
말하자면, 채드 왈라치만의 세리모니였다.
***
마이애미의 최근 성적이 좋은 이유는 성낙기라는 루키가 선발의 한 축을 맡으면서 다른 선발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잠시 마이너에 내려가 있던 팬 파일러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제구력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트레이드로 마이애미에 온 해리슨이 셜리번 투수 코치의 레슨을 받은 뒤 눈에 뜨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해리슨은 투구 시, 축이 되는 왼발이 1루 쪽을 향하던 것을 홈플레이트와 직각이 되도록 당겨 넣으면서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처음 마이애미에 올 때 투심패스트볼만으로 타자와 승부하던 해리슨이 아니었다.
96(154.5km)마일이던 투심패스트볼의 평균스피드는 94(151km)마일까지 떨어졌지만, 반대로 변화구의 스피드는 빨라지면서 각이 살아났다.
불펜 투수의 안정과 야를린 가르시아의 변함없는 마무리 능력이 더해지자 타선도 덩달아 살아났다.
“성나끼야, 내 말 들어 봐. 난 있잖아, 리얼무토 형과 패턴이 다른 사인을 낼 거야.”
“그럼, 어떤 패턴?”
“내가 1회에 중요한 걸 발견했어.”
“중요한 걸 발견해? 왈라치 너 경기장에서 보물찾기 하냐?”
“그게 아니야. 저 주심 이름이 마인트인데 주심을 맡은 경기가 다섯 손가락으로 셀 정도야. 그동안 저 주심이 나온 경기를 유심히 관찰했지. 바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말이야.”
“점점 모를 소리만 하네.”
신더가드가 2회에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동안, 채드 왈라치는 의욕에 넘치는 얼굴로 성낙기에게 말하고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리얼무토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지정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고 누적된 피로라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뉴욕 메츠와의 3연전엔 출장 불가였다.
내내 백업으로 있으면서
가뭄에 콩 나듯 땜빵을 해왔던 왈라치에게 3경기 연속 출장은 신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오마르 배터리 코치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늘 호흡 잘 맞출 수 있지? 왈라치도 경험이 쌓였으니까 잘해봐.”
“아, 하하. 그럼요, 걱정 마십시오. 성나끼와 함께라면 양키스도 상관없습니다.”
오마르 배터리 코치가 흐뭇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갔고,
“오마르에겐 말하지 마. 저 마인트 주심이 몸 쪽에 무척 후한 편이야. 경기 초반엔 그렇지 않은데 조금씩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 나가면 공 한 개 반이 넓어지는 주심이야. 난 오늘 그걸 최대한 이용할 생각인데 네 생각은 어때?”
“그래? 몸 쪽이라… 팀 티보 같은 타자에겐 통하지 않을 텐데? 극단적으로 당겨 치는 타자잖아.”
“걱정 마, 어퍼스윙에 특화된 선수니까 떨어지는 변화구만 조심하면 돼. 내가 타자에 맞게 사인을 낼게.”
“근데… 사인을 왜 니가 내? KBO에선 내가 내고 내가 던졌어.”
“…여긴 메이저고 왈라치가 포수니까 그건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이런 말들을 하는 동안, 신더가드는 삼진 둘과 파울플라이로 이닝을 마쳤다.
시즌 초보다 더 공이 좋아진 것 같다.
상승세의 마이애미 타선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시티필드의 뉴욕 메츠 팬들은 신더가드가 2회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면서 100(161km)마일을 기록하자 모두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쳤다.
타자였던 시에라는 파울플라이로 아웃되면서 배트로 제 헬멧을 때리는 퍼포먼스로 안 그래도 신이 난 관중들을 더 즐겁게 만들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나고 배터박스에서 돌아서는 순간 시에라가 살짝 비틀거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