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092화 재미없게 만드는 거야 1
“야를린 가르시아가 첫 타자를 가볍게 아웃시킵니다. 스코어 3:1에서 19세이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구위를 보이는 마무리가 있고 1, 2선발의 활약도 좋은데 팀 승률은 4할에 머물러 있는 마이애미. 무엇이 부족한 걸까요.”
“짜임새죠. 전반기 마감 직전, 트레이드를 단행한 이유일 겁니다. 3선발부터 5선발까지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야를린 가르시아까지 마운드를 넘기는 과정이 순조롭지 못합니다. 역전을 당한 후에 마무리를 투입할 수는 없으니까요.”
“2번 타자 앤서니 렌던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 선수가 야를린 가르시아에게는 강했습니다. 상대 전적이 3타수 2안타였습니다. 만만치 않은 워싱턴의 타선을 맞아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야를린 가르시아 와인드업 합니다. 초구는 바깥쪽 볼로 시작합니다.”
“7회 말, 1:1에서 성낙기가 친 타구가 2루수 글러브를 맞고 굴절되면서 안타가 되어버렸죠. 브라이스 하퍼가 그 공을 처리했습니다만,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고 1루 주자는 3루까지 진출했고요. 그런 다음, 1번 타자 가렛 쿠퍼의 좌익수 희생플라이에 1점을 추가, 7회 말에만 3점을 뽑아내면서 경기를 역전시켜 버렸습니다. 오늘은 마이애미 하위 타선에서 3점이 나왔고 이제 야를린 가르시아가 세이브 기회를 가졌네요.”
따악.
캐스터와 해설자가 말하는 순간,
앤서니 렌던이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터뜨렸고, 뒤이어 나온 브라이스 하퍼 역시 우익수 앞 안타를 쳐냈다.
원 아웃 1, 2루의 마지막 찬스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4번 타자 라파엘 바티스타가 친 공이 3루 정면으로 가면서 가렛 쿠퍼가 3루 베이스를 밟고 1루로 던져 병살이 이루어졌다.
경기 스코어 3:1로 마이매이 말린스의 승리.
성낙기는 91구를 던지며 8회까지 7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다.
***
93이닝에 29실점,
ERA 2.81이었던 성낙기의 ERA는 101이닝 30실점으로 ERA 2.67로 떨어졌다.
현재의 페이스대로라면 200이닝 가깝게 던지게 되고 방어율을 2점대로 유지한다면 mlb를 통틀어도 10위권 내외의 특급투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난 시즌에 2점대 방어율을 찍은 선수는 고작 13명에 불과했다.
다음 날의 경기에 선발로 나선 샌디 알칸타라는 워싱턴의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2실점으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고
마이애미 타선은 워싱턴의 3선발 엔니 로메로를 두들겨 5점을 뽑아내며 5회에 강판시켰다.
-워, 이제 경기 볼 맛이 나네. 엔니 로메로를 강판시킬 줄이야.
-새로 가세한 얼굴들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디트로이트는 왜 저런 선수들을 쓰지 않고 있었던 거지?
-거긴 단장이 베테랑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야. 애들은 무척 굶주렸다가 여기서 터뜨리는 거고.
마이애미 팬들이 경기 중계 포털에 올린 글들은 트레이드 된 선수들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디카엘로와 샤일록은 오늘이 아니면 야구를 못 할 것처럼 허슬 플레이로 팀의 사기를 올렸고 기존의 선수들도 질세라 적극적으로 경기에 집중했다.
경기 스코어는 5:3으로 마이애미가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7회부터 디트로이트에서 트레이드로 온 불펜투수 해리슨이 마운드에 섰다.
24살의 루키로 싱싱한 어깨를 가지고 있고 97(156km)마일의 포심패스트볼로 타자를 상대하는데 단점은,
포심패스트볼 외에는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구종이 없다는 것이었다.
슬라이더는 밋밋해서 통타당하기 일쑤였고 커브는 원바운드가 많았다.
오늘도 포수는 채드 왈라치였다.
“어설픈 변화구는 위험해. 가장 자신 있는 공으로만 승부하자.”
“알았어요.”
채드 왈라치는 포심패스트볼만을 원했고 해리슨이 동의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8번 타자 맷 레이놀드가 타석에 들어왔고 해리슨은 무브먼트가 있는 포심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아나갔다.
스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해리슨은 변함없이 포심패스트볼을 던졌고 약간 높은 바깥쪽 공에 맷 레이몰드는 헛스윙 했다.
다음 타자는 불펜으로 던지고 있는 세자르 바르가스였는데 삼구 만에 삼진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1번 타자 트레아 터너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 2번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고 3번 타자 브라이스 하퍼에게 적시타를 맞았다.
3:2로 워싱턴 내셔널스가 따라붙었고 해리슨은 4번 타자 라파엘 바티스타를 우익수 플라이 볼로 잡아내 이닝을 마쳤다.
“공도 묵직하고 구위는 참 좋은데 포심패스트볼도 제구에 문제가 있어. 집중 훈련이 필요하겠는 걸?”
“투구 동작이 불안정한데… 제가 해보겠습니다.”
7회가 끝나고 알렉스 비토 감독은 해리슨의 구위를 아까워했다.
셜리번 투수 코치는 말을 마치자마자 해리슨에게 다가가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마이애미 말린스는 8회에 인디아나닥스에서 온 스튜크를 내세웠으나,
투아웃까지 잘 잡은 뒤, 연속 안타를 맞았다.
이제 1점을 더 내주면 3:3 동점이 되어 연장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더 이상은 안 돼. 야를린 가르시아로 가.”
셜리번 코치가 스튜크의 공을 빼앗아 들었고 마무리 투수 야를린 가르시아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되도록 마무리를 9회에만 올리자는 주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알렉스 비토 감독이었다.
“what the fuck(젠장 이게 뭐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 타이트한 순간에 쟤들이 나가지?”
“내 말이 그 말이야, 팬 파일러. 항의라도 해야겠어.”
“아서, 딜런. 저 영감 성질머리가 보통 아니야. 너 그러다가 시즌 아웃 당하는 수가 있어.”
“쳇, 올라갔으면 잘 던져야지, 우리랑 다른 게 없잖아. 안 그래?”
더그아웃에서는 팬 파일러와 딜런 피터스가 툴툴거리고 있었다.
트레이드 해온 투수들을 경기에 투입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오자마자 필승조 역할을 맡기는 감독이 못마땅하다.
스튜큰가 뭔가 하는 노장은 베이스에 주자만 잔뜩 쌓아두고 내려갔다.
잘 던지기라도 하면 그나마 참겠는데
저런 모습은 팬 파일러나 닉 위트그랜, 타이런 게레로가 불펜으로 나가서 보여준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장 실망한 사람은 셜리번 투수 코치였다.
35세이지만 96(154.5km)마일의 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다.
워싱턴 내셔널스 타자들은 투 피치 투수라는 걸 느끼고는 슬라이더를 버리고 포심패스트볼만을 공략해 연속 안타를 만들어낸 것.
“결국 야를린 가르시아가 나오는군. 윌머 디포 대기 시켜.”
데이브 감독은 9번 타자 자리에 불펜 투수 세자르 바르가스를 빼고 대타로 윌머 디포를 올렸다.
대타 전문 타자였다.
야를린 가르시아는 1루수 파울 플라이로 이닝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9회에도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20세이브째를 수확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3연전 중에 첫 경기를 내준 후, 2연승. 성낙기와 알칸타라의 호투, 그리고 강한 마무리가 버틴 결과였다.
불펜 투수들은 점수를 내주기는 했지만, 역전까지는 허락하지 않으며 버텼고 타자들은 필요한 때에 점수를 내줬다.
특히, 타선에서는 새로운 얼굴들의 가세가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당분간은 샤일록과 디카엘로를 계속 써야겠어. 하지만… 스튜크는 오늘 모습으로 보면 댄 스트레일리와 다를 바 없어. 불펜은 해리슨은 더 써보기로 하고 스튜크는 마이너로 보내도록 하지.”
경기 후, 알렉스 비토 감독은 셜리번 투수 코치와 워마린 타격 코치에게 새로운 선수 기용에 대해 알렸다.
시간을 두고 스튜크를 레슨 시켜 보려던 셜리번 투수 코치는 내심 당황했지만 알렉스 비토 감독의 단호한 표정 앞에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노장이면서도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하는 스튜크의 망설이는 모습에 실망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긴 해도 당황스러울 만큼 빠른 결정이다.
알렉스 비토 감독과 레인 피터 감독이 다른 점이 이런 거였다.
***
날은 빠르게 갔고 8월 중순의 무더위에 마이애미 말린스는 에인절스타디움에서 LA에이절스와 2연전을 앞두고 있었다.
성낙기의 선발이었는데 LA에인절스의 투수는 좌완 투수로 12승 6패 ERA 3.23을 기록하고 있는 타일러 스캑스였다.
성낙기도 그동안 승을 추가해서 11승 6패 ERA 2.69를 기록 중이었다.
타격 성적은 0.302 9홈런 28타점으로 투수로는 엄청난 성적이었지만 투수에 전념하기로 하면서 타율은 처졌다.
가령, 주자 없는 상황에 나와 굳이 안타를 치고 나가서 체력 소모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체력이 100으로 꽉 찬다면 모르지만 현재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러다가 타점 찬스가 나면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걸로 마음먹었다.
그런 덕분에 성낙기는 나가기만 하면 7, 8이닝을 던져주는 이닝 이터로 자리매김했고 그게 팀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오늘은 아메리칸리그 팀과 맞붙으면서 타석에는 설 필요조차 없어졌다.
‘아메리칸리그 팀과 경기할 때가 더 마음이 편한 것 같아. 왜? 공만 던지면 되니까.’
성낙기는 불펜에서 채드왈라치와 몸을 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이애미의 1회 초 공격은 타일러 스캑스의 투심패스트볼과 각이 큰 커브의 조합에 삼자범퇴를 당했다.
오늘, 에인절스타디움에 선 리얼무토는 무릎 부상에서 다시 돌아왔고 오늘도 마운드에서 어김없이 철학자 같은 말을 성낙기에게 해줬다.
“성낙기, 그동안 잘 던졌어. 오늘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 LA에인절스와 붙는 날이야. 팀워크가 좋고 공격과 수비도 탄탄한 팀이지. 남들이 한 발 뛸 때 두 발 뛰는 노동력을 가지고 있어. 너의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을 거야. 영상도 돌려봤겠지. 노동력이 강한 팀은 일하기 싫게 만들어야 해. 자극적이지 않은 평범한 구질로 맞춰 잡아나가면 경기에 흥을 못 느낄 거다. 팬들도 시들하겠지. 명심해, 재미없게 만드는 거야.”
***
리얼무토는 그렇게 말하고 홈플레이트로 돌아갔다.
잘하자,
라고 말하는 포수는 여럿 봤지만 경기를 재미없게 만들자는 포수는 또 처음 봤다.
에인절스의 1번 타자 마이클이 타석에 들어섰다.
리얼무토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사인으로 보냈다.
따악.
파울.
리얼무토의 말대로 노동력이 남아도는지 초구부터 적극적이다.
1루 측 관중석으로 공이 날아갔다.
다음 공 역시 똑같은 슬라이더.
이게 바로 재미없게 만드는 사인인가?
성낙기는 고개를 갸웃 하며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오, 정말 재미가 없는지 같은 공인데도 배트가 움직이지 않았다.
리얼무토는 이번에도 바깥쪽 커브 사인을 냈다.
변화구만 던지는 게 재미없는 경기는 아닐 텐데, 생각하며 성낙기는 커브를 던졌다.
바깥쪽 높은 코스로 가다가 뚝 떨어지는 공.
딱.
마이클이 친 공은 1루수 앞으로 힘없이 굴러갔고 마이애미의 1루수 브라이언 앤더슨은 달려오는 주자를 그대로 터치했다.
성낙기는 1번 타자, 단 한 명을 상대하고도 경기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수가 자신의 주 무기를 팡팡 던지고,
몸 쪽으로 깊은 공을 쑤셔 넣고 이래야 타자들도 의욕이 생기는 법인데
바깥쪽으로 도망갈 듯 도망가지는 않는 타이밍 피칭만 하고 있으니
성낙기 자신부터 무언가 무력한 느낌이다.
2번 타자도 바깥쪽 승부로 스트라이크 존에서 넣었다 뺐다 하며 체인지업으로 범타를 유도했고
3번 타자는 포크볼을 툭 건드려 투수 앞 땅볼로 잡아냈다.
1회에 성낙기가 던진 피칭은 모두 스피드를 조금 줄인 느린 구종이 대부분이었는데,
포심패스트볼을 바깥쪽에 강하게 뿌리던 평소와 달라서
에인절스 타자들도 머리에 입력된 데이터의 오류가 난 듯싶었다.
“영상으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데……? 공도 느리고 변화구 각도 못 쳐낼 정도는 아니야.”
“언제나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설 수는 없지.”
“좋아, 저런 정도의 공이면 대량 득점도 가능해. 2회에 내가 길을 터 줄게.”
선수들끼리 더그아웃에서 대화하던 중,
4번 타자 마이크 트라웃은 선수들 앞에서 다음 이닝을 기약했다. 그가 본 성낙기의 구위는 평범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