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091화 워싱턴 내셔널스 3
워싱턴 내셔널스의 투수는 맥스 슈어저로 전반기 성적은 8승 4패에 3.38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 중이었다.
37세의 노장 투수로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양대 리그에서 사이영 상을 수상한 레전드다.
성낙기보다 방어율은 다소 높지만 그럼에도 놀라운 경기운용능력으로 위기에 강한 투수이기도 했다.
한때 99(159km)마일을 찍었을 정도로 강력한 구위를 자랑했던 슈어저는 94~95(151~152km)마일로 최고 구속이 떨어지면서 변화구 비중을 높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선발의 한 축을 맡고 있었다.
슈육!
따악.
중견수 플라이 아웃.
따악.
유격수 땅볼 아웃.
투아웃을 쉽게 잡아낸 슈어저는 마이애미의 3번 타자 루이스 브린슨에게 1루 강습 안타를 허용했으나,
4번 타자 브라이언 앤더슨을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은 후, 몸 쪽으로 꽉 찬 포심패스트볼을 던져 허를 찔렀다.
브라이언 앤더슨의 허망한 삼구 삼진이었다.
그리고 경기는 5회까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오늘 후반기 첫 경기부터 양 팀 투수들이 호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5회까지 타자들이 점수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맞습니다. 양 팀 투수들이 호투를 이어가고 있네요. 5회까지 워싱턴과 마이매미 모두 4안타만을 때려내고 있습니다. 올스타브레이크로 타격감이 가라앉은 듯 한데요. 5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펼치고 있는 슈어저와 성낙기, 두 투수 중 누가 승리투수가 될지 무척 흥미롭군요.”
“브라이언 앤더슨과 브라이스 하퍼, 양 팀 4번 타자들이 나란히 삼진 두 개씩을 기록 중입니다. 브라이언 앤더슨은 전반기에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습니다만, 브라이스 하퍼는 유독 성낙기 투수에게 약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4월에 있었던 벤치클리어링의 여파일까요?”
“그런 점도 있을 겁니다. 브라이스 하퍼에게는 불행한 날이었을 테니까요. 성낙기 투수가 그 사건으로 벌금을 받은 바 있었죠. 말하자면, 첫 만남부터 천적관계가 만들어진 겁니다. 지금까지는 여전히 브라이스 하퍼가 당하고 있죠.”
***
성낙기는 5회까지 맞춰 잡는 투구로 57개의 투구 수와 삼진 5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완투가 가능할 정도의 페이스였는데,
6회 첫 타자로 나선 워싱턴의 2번 타자 앤서니 렌던에게 2루타를 허용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좌측으로 외야 수비를 당긴 결과 우익수 쪽이 비었고 1루수 키를 넘긴 타구가 파울라인을 따라 흐르면서 타자는 여유 있게 2루로 들어갔다.
당겨치기에 능한 타자였기에 수비 시프트를 걸었으나 몸 쪽 투심패스트볼을 타자가 의도적으로 밀어 쳐 안타를 만들어냈다.
노아웃 2루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브라이스 하퍼였다.
‘후, 이건 꼭 컨베이어벨트 작업하는 것 같네. 쟤는 두 번이나 삼진을 당해도 계속 나오냐.’
성낙기는 공을 만지작거리며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삼진을 아무리 많이 잡아도 브라이스 하퍼는 시즌 내내 좀비처럼 살아나 타석에 설 것이다. 브라이스 하퍼는 모처럼 온 찬스 앞에 긴장한 모습이었다.
어느새 성낙기의 상대 타율이 1할대로 떨어져 있다.
브라이스 하퍼는 마운드의 성낙기를 노려보는 대신,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또 당하게 된다. 만만찮은 투수라고 생각해야만 해.’
그때, 성낙기가 타임을 걸고 마운드에 쪼그리고 앉아 스파이크 끈을 풀었다가 조여 맸다.
조여 매면서 앉은 채로 브라이스 하퍼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잠시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고 성낙기가 씨익, 브라이스 하퍼를 보며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지만 브라이스 하퍼의 가슴속엔 그동안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스멀스멀 억울한 감정이 생겨났다.
‘motherfucker(x 같은 놈).’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가슴속에 묻어둔 감정을 다스리기 어렵고, 성낙기의 웃음은 그 감정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하지만, 브라이스 하퍼의 오해와 달리 성낙기에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2루타를 맞은 뒤, 마운드를 고르다 보니 스파이크 끈이 헐거운 것이 보였고 타임을 요청했다.
끈을 조이다가 브라이스 하퍼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서로 잘 아는 사이에 슬쩍 웃어줬을 뿐이다.
승부처인데 서로 잘해보자는 격려가 담긴 웃음이었는데 브라이스 하퍼는 자기를 놀리는 걸로 받아들였고 성낙기는 눈을 찡그리는 브라이스 하퍼를 보고는,
‘햇빛이 따가운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셋 포지션으로 초구를 던졌다.
브라이스 하퍼는 몸 쪽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날아오자 배트를 돌렸다.
무릎께를 파고드는 낮은 코스의 공을 어퍼스윙으로 걷어 올렸다.
따악.
라이징패스트볼(7cm/10cm).
낮게 제구가 되어 날아가던 공은 배팅 포인트에서 떠올랐고 브라이스 하퍼는 뒤늦게 배트를 컨트롤했지만, 타구는 높이 치솟았다.
유격수 JT 리들이 손을 들어 자신이 처리한다는 걸 알렸고,
“유격수!”
리얼무토는 마스트를 벗고 JT 리들을 가리켰다.
브라이스 하퍼는 1루로 달리다 말고 허리를 뒤로 꺾으며 신음을 토해냈다.
원아웃을 잘 잡은 성낙기는 그러나,
4번 타자 라피엘 바티스타에게 투수 키를 넘겨 2루 베이스 위를 지나는 적시타를 허용했고 2루 주자는 홈을 밟았다.
성낙기는 다음 타자 굿 윈을 유격수 병살로 잡아 이닝을 끝냈다.
경기 스코어 0:1, 0의 균형이 6회 초에 깨졌다.
***
경기는 7회 말, 마이애미의 6번 타자 마그뉴리스 시에라부터였다.
그 다음 7번 타자는 백업 포수 채드 왈라치, 8번 타자 샤일록이었고 성낙기는 시즌 초반처럼 9번이었다.
한때 레인 피터 감독의 중용으로 5번 타자를 맡은 적도 있었지만 타격에서의 활약이 투수의 체력까지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고는 9번을 요청했다.
그리고 특별한 찬스가 오지 않는 한,
안타를 치고 나가 주자로 뛰는 일도 되도록 삼가기로 했다.
KBO리그에서 뛸 때와 달리, mlb는 타자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전력투구를 해야만 홈런을 맞을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타자들 또한 끈질긴 구석이 있어서 투구 수 조절도 쉽지 않다. 성낙기가 공을 던지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 이유다.
맥스 슈어저의 투구 수는 83개로 7회에도 등판했다.
데이브 감독은 노장인 슈어저의 투구 수를 100구 내외로 정해두고 있었다.
어차피 강한 불펜이 버티고 있으니 한계 투구 수로 알려져 있는 120구를 던져서 완투를 노릴 필요가 없다.
따악.
마그뉴리스 시에라는 타석에 서자마자 초구를 타격해 좌익수 앞 안타를 만들어냈다.
다소 힘이 떨어진 슈어저의 슬라이더가 밋밋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에라는 1루에 살아 나갔다.
“마이애미의 반격입니다. 마그뉴리스 시에라 선수, 경기 후반에 강한 선수답게 선두타자로 나와 안타를 치고 나갑니다. 맥스 슈어저 투수의 공이 제대로 맞아 나갔는데요.”
“하위타선이지만, 언제든 홈런을 쳐낼 수 있는 게 메이저리그죠. 맥스 슈어저 투수 90구를 향해가면서 구속이 줄어들고 있네요. 방금 던진 슬라이더도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았는데, 체력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타자는 채드 왈라치였다.
6회 초 워싱턴의 공격 때, 성낙기의 공을 건드린 타구가 리얼무토의 왼쪽 어깨를 직격했고 배터리 코치의 빠른 판단으로 포수 교체가 이루어졌다.
타석에도 오랜만에 서 보는 채드 왈라치는 나오자마자 연달아 헛스윙을 했다.
그런 다음, 맥스 슈어저가 유인구를 던졌지만 말려들지 않았고 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타격했다.
따악.
채드 왈라치가 친 공은 1, 2간 사이를 깨끗이 갈라 안타로 연결됐다.
1루로 나간 채드 왈라치는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더그아웃을 향해 웃음을 보냈다.
채드 왈라치가 안타를 치고 나갈 때
1루 주자인 시에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루까지 내달렸고 간발의 차이로 살았다.
“OK, 내가 원하는 야구가 바로 저거야.”
워싱턴 내셔널스의 우익수 수비가 강견인 브라이스 하퍼임을 감안하면 누구나 3루는 무리라고 생각했고 브라이스 하퍼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타구를 조금 느슨하게 처리한 이유였는데,
시에라가 과감하게 3루로 뛰는 것을 보고 공을 던졌을 때는 반 박자를 놓친 뒤였다.
시에라는 스타트도 좋았고 3루 코치가 계속 뛰라는 사인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3루를 노린 것이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그런 판단을 높이 평가했다.
노아웃에 1, 3루의 찬스가 되었고, 워싱턴 내셔널스의 투수 코치 잭 나이프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포수인 페드로 세베리노도 급히 마운드로 갔다.
“타자들이 타이밍 잡고 들어오는데 공 어때?”
“아직 구위는 괜찮습니다.”
“그래? 볼 배합 패턴을 좀 바꿔 봐.”
나이프 코치는 포수인 세베리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맥스 슈어저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만큼 슈어저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마이애미의 8번 타자는 야디엘 리베라 대신 2루를 보고 있는 샤일록이었다.
트레이드로 팀에 오자마자 주전을 꿰찼다.
따악.
샤일록이 3구째 친 공은 3루 강습 타구였고 워싱턴의 3루수 맷 레이몰드는 공을 뒤로 빠뜨렸다. 그사이에 3루 주자가 홈인했고 노아웃 1,2루의 찬스가 계속 이어졌다.
“아, 맥스 슈어저 투수 연속으로 3안타를 허용합니다. 아무래도 체력의 문제일까요? 마이애미의 하위타선이 3안타를 몰아치고 있습니다.”
“방금 던진 공도 슬라이더였는데요. 7회 들어 갑자기 제구가 흐트러지네요. 37세의 노장인 만큼 체력이 떨어졌다고 봐야겠네요. 지금 100구를 향해 가고 있거든요. 역시, 데이브 감독이 올라오죠?”
“네, 그렇습니다. 6회까지 호투를 펼쳤던 맥스 슈어저 투수가 물러가고 AJ콜이 올라옵니다. 98(158km)마일이 넘는 강력한 패스트볼을 뿌리는 투수입니다. 패스트볼과 함께 던지는 스플리터에 타자들이 까다로워 하는 투수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AJ콜을 투입하는군요.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죠. 마이애미의 다음 타자는 투수 성낙기죠? 이 선수가 무척 재미있는 선수입니다. 최근엔 주춤하지만 타자로서의 성적도 좋거든요. 3할 1푼의 타율에 7홈런 27타점을 기록 중인 아주 신기한 선수예요. 레인 피터 감독이 있을 땐, 투타 겸업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 알렉스 비토 감독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투수에 집중하겠다고 했다는군요.”
“말씀처럼 이 선수 위험합니다. 데이터가 많지 않지만 득점권 타율이 3할 7푼 입니다.”
AJ콜은 타석의 성낙기를 바라보았다.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이 미소마저 띤 얼굴을 보고 무언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렀다.
세베리노는 초구부터 스플리터를 요구했다.
AJ콜은 혼신의 힘을 다해 포심패스트볼처럼 날아가다가 뚝 떨어지는 바깥쪽 스플리터를 던졌다.
슈우욱!
***
경기는 9회 초였다. 마이애미의 마무리 투수 야를린 가르시아가 마운드에서 워싱턴 내셔널스의 트레아 터너를 타자로 맞고 있었다.
야를린 가르시아의 주 무기는 97(156km)마일의 투심 성 패스트볼과 커터였다.
두 구질의 변화구가 정반대의 궤적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데다 스피드도 대단해서 마무리 투수로는 제격이었다.
전반기에 1승 3패 18세이브 ERA 2.55로, 강팀의 마무리에 전혀 밀리지 않는 구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 저런 투수 하나만 있어도 불펜 걱정은 없을 텐데.’
뉴욕 메츠의 미키 캘러웨이 감독이 셜리번 투수 코치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을 만큼, 야를린 가르시아는 전반기 내내 좋은 투구를 보였다.
그리고 워싱턴 내셔널스와 맞붙은 9회 초, 강력한 구위로 트레아 터너를 몰아붙였다.
볼 카운트 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바깥쪽 커터를 던졌고
트레아 터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배트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