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090화 워싱턴 내셔널스 2
“팀의 목표는 디비전 시리즈입니다. 트레이드 역시 단단한 팀 구성을 위한 것이죠. 우리는 젊음과 조직력이 최대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선수들에게만 맡겨두는 방식으로는 스타가 즐비한 팀을 이기지 못하죠. 여러분 모두 작전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뛰는 야구, 허슬 플레이, 그리고 다양한 작전이 후반기 팀의 모토가 될 겁니다. 강한 정신력으로…….”
올스타 기간 동안 오스틴 단장은 마이애미 선수들에게 후반기의 팀의 방향을 말하면서 선수들의 각성을 원했다.
카메론 메이빈은 예상대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불펜투수 둘도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거기에 2루수 야디엘 리베라도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올스타전은 아메리칸리그 팀의 승리였고 홈런 더비에서는 예상대로 스탠튼이 우승했다.
성낙기는 마이애미 공항에서 김아경을 배웅했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리고 후반기의 시작이었다.
***
성낙기의 전반기 성적은 7승 5패에 ERA 2.81로 방어율에 비해 패가 많았다.
수비가 탄탄하지 못해 보이지 않는 실수가 많았고 방어율에도 영향을 끼쳤다.
마이애미의 팀 성적은 참담했는데
37승 52패 승률 0.415로 3위 애틀랜타와는 4.5게임 차이였고 오스틴 단장의 목표인 2위 뉴욕 메츠의 47승 42패 승률 0.528과는 무려 10경기의 차이였다.
성낙기의 후반기 첫 등판은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3연전 중, 두 번째 경기였다.
어느덧 성낙기는 호세 우레나에 이은 2선발로 팀의 에이스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호세 우레나는 4회까지 6실점으로 난타를 당해 후반기 첫 경기부터 팀 사기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추격조를 낸 마이애미 불펜은 차례로 무너졌다.
결국 1:11로 경기를 내줬다.
브라이스 하퍼는 연타석 홈런으로 주가를 올렸고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는 9이닝 1실점으로 완투했다.
트레이드되자마자 카메론 메이빈 대신 좌익수로 기용된 디카엘로의 7회 솔로 홈런이 없었다면 완봉패를 당했을 것이다.
마이애미 말린스는 8안타를 때려내고도 1점을 내는 데 그쳤는데,
안타를 친 타자가 셋이나 2루 도루를 감행하다가 두 명이 객사했고 나머지 한 명은 후속 안타에 홈에서 또 객사했다.
4회에 볼넷으로 나간 브라이언 앤더슨은,
자기가 언제부터 준족이었다고 리얼무토의 깊은 우익수 플라이에 2루로 뛰다가 브라이스 하퍼의 미사일 송구에 비명횡사했다.
오스틴 단장과 알렉스 비투 감독이 강조한 뛰는 야구에 충실한 결과였지만
그런 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하는 게 아니라 의욕만 앞세우다가 번번이 경기의 맥을 끊었다.
“좋아, 비록 점수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시도는 모두 좋았다. 앞으로도 두려움 없는 플레이를 해주도록.”
경기 후, 알렉스 비토 감독은 그렇게 아쉬움을 달랬다. 어차피 선수들에게 낯선 경기 방식은 실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차차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함께 품었다.
“선나키, 충분히 쉬었지? 부담 없이 맞춰 잡아도 괜찮을 거야.”
마운드에 나가기 전에 알렉스 비토 감독이 한 말이었다.
좌익수 자리엔 디카엘로가, 2루엔 샤일록이 선발 출전했다.
감독은 두 선수의 교체로 수비가 한층 탄탄해졌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전엔 맞춰 잡아도 괜찮을 거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
타석에 트레아 터너가 들어섰다.
전반기 0.307에 13도루 9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 까다로운 타자다.
[후반기 첫 경기 기념으로 스탯이 오릅니다.]
[체력이 91로 오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86으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91로 오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85로 오릅니다]
[악력이 (8단계/10단계)로 오릅니다]
마운드에서 리얼무토의 사인을 보고 있을 때 글귀가 나타나면서 스탯 증가를 알렸다.
mlb에 진출한 뒤로 인색하기만 했던 스탯 증가가 후반기 시작과 함께 오르자,
성낙기는 리얼무토의 사인을 보다 말고 활짝 웃었다.
‘뭐야, 저 자식이 지금 나보고 웃는 건가? 기분 나쁜 놈.’
트레아 터너는 그 웃음을 오해한 나머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타율에 훨씬 못 미치는 0.189의 상대 성적 때문에 그렇잖아도 신경 쓰이는데 웃어?
트레아 터너는 배트를 바닥에 두어 번 내리찍고는 성낙기를 노려봤다.
어떻게든 히트를 만들어내야 저 웃음을 없앨 수 있다.
그는 평소보다 배트를 짧게 잡고 단타 위주의 타격으로 1루에 나가는 것을 생각했다.
1루만 나가면 내야진을 휘저어 버릴 것이다.
팡.
93(149.6km)마일.
“스트라이크.”
“아, 성낙기 투수 초구부터 93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던집니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89(143km)마일 내외의 평균 구속을 던져왔는데요. 오늘은 다릅니다. 초구부터 강속구를 뿌립니다.”
“정말 알 수 없는 투수죠? 갈수록 공이 빨라지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공의 무브먼트 역시 한 단계 더 진화한 모습이군요. 분 당 2,600회가 넘는 회전수를 기록하던 투수여서 그동안 포심패스트볼 피안타율이 0.204에 불과했거든요. 그런데 방금처럼 강력한 공을 던지면 피안타율이 더 떨어진다는 결론이죠.”
슉!
따악.
파울.
이번에는 바깥쪽 89(143km)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이었다.
같은 포심패스트볼인데도 150km에 이은 143km의 7km가 차이나는 공에 트레아 터너는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몸의 균형이 무너졌고 1루 측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파울볼을 때려냈다.
말린스 파크는 마치 휴양을 온 듯 상체를 벌거벗은 남자들과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도 많았다. 그들은 ‘perfect sung!’ 라고 적힌 종이를 흔들거나
성낙기가 KBO시절 삼호 슈퍼스타즈의 모자를 쓰고 성낙기가 던지는 1구, 1구에 즐거워했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트 아웃!”
성낙기는 트레아 터너에게 3구로 몸 쪽 커브를 던져 헛스윙을 잡아냈다.
더그아웃에서 그 모습을 보던 워싱턴 내셔널스의 데이브 마르티네즈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운드의 저 투수와 무언가 천적관계가 형성되는 느낌이다.
팀원 중, 컨택 능력이 가장 우수한 트레아 터너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내 버린다는 것은 오늘의 경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예측을 가능케 했다.
‘가면 갈수록 잘 던지는 비결이 뭐야. 전반기와는 또 다르다.’
데이브 감독은 초구로 던진 공의 스피드도 스피드지만 공 자체의 무브먼트와, 마지막에 던진 커브의 각도에 주목했다.
트레아 터너를 삼진으로 잡아낸 커브는 84(135km)마일을 기록했는데
빠르기도 중요하지만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은 마치 돌고래가 튀어 올랐다가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만큼 궤적과 마지막에 꺾여 들어오는 힘이 탁월해 보였다.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데이브 감독의 의문과는 달리 성낙기는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김아경과 휴식을 취했을 뿐이었다.
전반기와 다른 점은 스탯의 증가와 함께 손의 악력이 7단계에서 8단계로 올랐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마운드 위의 성낙기도 전반기와 다르게 손끝으로 공을 채는 느낌이 좋아졌다는 걸 알았다.
성낙기는 2번 타자를 2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1루와 2루 사이를 가르는 타구였는데 바뀐 2루수 샤일록은 한 박자 빠른 스타트로 바운드 볼을 여유 있게 잡아 송구했다.
‘오, 수비가 상당한데……?’
유망주이긴 하지만 트리플A에 머물던 선수치고는 수비가 좋은 샤일록이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그동안 주전을 맡아왔던 야디엘 리베라와 포지션 경쟁을 시킬 속셈이었다.
오늘 주전으로 나선 디카엘로도 마찬가지였다.
마이너로 보낸 카메론 메이빈의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콜업 할 생각이었다.
***
워싱턴 팬들이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보고 박수를 쳤고 마이애미 말린스의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그는 바로 전반기 성적 0.311에 21홈런 59타점에 빛나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얼굴이자 성낙기와의 벤치클리어링을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브라이스 하퍼였다.
1회 초, 투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은 팀 배팅을 할 필요도 없이 마음껏 풀스윙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브라이스 하퍼는 배트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성낙기를 노려봤다.
‘하여튼 덩치는 큰 놈들이 속은 좁쌀이야.’
성낙기는 리얼무토의 사인을 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리얼무토는 잔뜩 벼르고 있는 브라이스 하퍼를 힐끗 곁눈질한 뒤, 체인지업 사인을 보냈다.
성낙기가 초구로 자주 던지는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계산대로라면 절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심패스트볼과 똑같이…….’
성낙기는 헤이드 존이 언젠가 해줬던 말을 되새기며 체인지업을 던졌다.
브라이스 하퍼의 배트는 망설임이 없었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주심의 손이 올라갔고 브라이스 하퍼가 휘두른 배트가 공이 오기도 전에 헛돌았다.
포심패스트볼에 타이밍을 잡고 있다가 어이없이 당한 브라이스 하퍼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브라이스 하퍼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군.”
“아무래도 기분 나쁜 투수다 보니 더 그럴 겁니다. 경기 초반에 기세를 꺾어놓아야 경기가 편해질 테니까요.”
워싱턴 내셔널스의 데이브 감독과 윌리엄 타격 코치의 말대로 브라이스 하퍼는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그간,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줬던 투수에게 가장 좋은 복수는 홈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홈런을 칠 경우,
이례적으로 배트를 집어 던지는 KBO식의 홈런 세리모니까지 준비해 두고 있었다.
따악.
파울.
이번엔 몸 쪽으로 들어오는 커브를 잡아당겼는데 역시 포심패스트볼에 타이밍을 잡고 있었기에 배트가 빨랐다.
공은 좌타자인 브라이스 하퍼의 오른쪽인 1루 쪽으로 바운드되며 굴러갔다.
성낙기가 공을 던질 때의 궤적을 보고 나서 뒤늦게 배트 타이밍을 최대한 늦췄지만, 페어 지역으로 공을 보내지 못했다.
팡.
“볼.”
3구는 타자의 몸 쪽으로 오는 듯하다가 외곽으로 흐르는 투심이었고 브라이스 하퍼는 나가려는 배트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1구와 2구 모두 너무 서둘렀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브라이스 하퍼였다.
‘2구는 놔뒀으면 볼이었어.’
브라이스 하퍼는 타석에서 발을 뺀 뒤, 배트를 서너 번 돌렸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눈에서 활활 타올랐다.
그리곤 내심 라이징패스트볼이 승부구일 거라는 예측을 했다.
자신이 가장 많이 당한 공도 라이징패스트볼이었기 때문이다.
성낙기가 와인드업을 한 뒤 공을 던졌다.
손에서 떠난 공이 홈플레이트에 도달했고 스트라이크임을 확신한 브라이스 하퍼가 배트를 휘둘렀다.
팡.
휘잉.
“스트라이크 아웃!”
주심이 큰 소리로 아웃을 외쳤고 워싱턴 내셔널스의 관중들은 탄식을, 브라이스 하퍼는 욕을 내뱉으며 뒤돌아섰다.
“shit!(젠장!)… damn it!(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