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82화 (82/188)

# 82

082화 감독이 바뀌다니 3

“아마, 성낙기라는 선수가 없었다면 우린 동부지구 꼴찌를 하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겁니다.”

윌슨 스카우트는 성낙기라는 보물을 추천한 자신의 공을 은근히 부각시키는 동시에, 팩트에 기반한 생각을 말하는 중이다. 오스틴 단장도 윌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5선발이 팀에 합류했을 경우를 가정하면, 성낙기는 그보다 5승 이상을 팀에 챙겨주고 있다는 공통된 생각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모래알 같은 팀의 단점만 두드러졌다. 바로 지금처럼,

따악.

성낙기의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걷어 올린 라이언 맥마혼의 타구는 또다시 1루수의 키를 넘기는 약간 빗맞은 타구였는데 성낙기의 눈에 우익수인 루이스 브린슨이 들어왔다.

언젠가 알칸타라가 마운드 위에 있을 때 진기명기급 수비를 여러 차례 선보여 해설자에게 수비 요정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루이스 브린슨. 그러나 오늘은 아닌 모양이다.

“약간 먹힌 타구가 1루수 키를 넘깁니다. 아… 루이스 선수 전력질주로 뛰어 들어 옵니다. 공을 향해 슬라이딩을 시도합니다.”

“워어… 공이 빠졌네요. 저런 공까지 받으려는 건 욕심이죠. 과했네요.”

루이스 브린슨은 전력 질주 끝에 슬라이딩을 하며 공을 받아내려 했지만, 글러브 앞 30cm 지점에 맞고 루이스의 등을 타넘은 뒤 계속 굴러갔다.

우측으로 스핀이 걸린 타구였기에 바운드 되고 나서 파울라인을 넘어갔기 때문에 중견수인 시에라가 백업을 해주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마이애미의 팬들은 루이스의 수비를 보고 멘붕에 빠졌고 1루 주자 놀란 아레나도는 3루를 거쳐 홈까지 쇄도했다.

그리고 4번 타자 라이언 맥마혼은 3루까지 뛰어가다가 2루로 다시 귀루했다. 그만큼 여유 있는 2루타였고 아레나도는 흔한 슬라이딩도 없이 홈 플레이트를 밟고 지나갔다.

‘내가 미쳐. 그걸 잡으려고 뛰어 들어오냐.’

-아무래도 이상한데? 패턴이 읽힌 거 같아. 내가 볼 땐 너무 빠른 볼 위주의 투구야. 그중에 투심패스트볼과 포심패스트볼만 집중적으로 노리는 느낌이야.

실바가 마운드 옆에 서서 성낙기의 공 던지는 모습을 재현하며 말했다.

-맞아, 내가 보기에도 그래. 지금까지 다른 팀에게 던져왔던 패턴을 바꿔야 해. 빗맞은 타구라도 재수 없으면 계속 안타가 나오는 게 야구야. 그래서 무적이라는 게 없는 거지.

존도 실바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둘의 의견 통일은 드문 일이지만, 그 의견이 맞을 땐 그게 바로 정답이라는 뜻도 된다.

“휴우, 그래요? 나도 모르게 일정한 볼 배합 습관이 생긴 모양이네요.”

성낙기는 두 사람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어떻게든 상대 타자들이 공을 때려내는 걸 보면 무언가 로케이션에 문제가 생긴 건 분명한 사실이다. 성낙기는 리얼무토에게 마운드로 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리얼무토가 마운드로 뛰어왔다.

“뭔가 이상해. 내가 내는 사인이 조금씩 읽히고 있는 거 같아.”

“네 말이 맞아. 패턴을 좀 바꿔보자.”

“강약을 잘 조절해야 타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거야. 오늘 사인은 리얼무토에게 맞길 게.”

“좋아. 무슨 뜻인 줄 알았다. 지금까지 성낙기 네가 사인을 거의 내왔으니 볼 배합 습성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거야. 그런 상태에서 내가 사인을 내면 헷갈릴 거다.”

리얼무토가 홈플레이트로 돌아가고 타석엔 노엘 쿠에바스가 들어섰다.

이 선수도 장타력과 공을 맞추는 능력이 우수하다. 리얼무토는 초구로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성낙기라면 투심패스트볼이나 포심패스트볼로 바깥쪽을 공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선호하는 구종이 다르다.

팡.

휘잉.

“스트라이크.”

몸 쪽 체인지업에 노엘 쿠에바스의 배트가 헛돌았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80/100)이니 전성기의 헤이드 존만큼은 아니지만 mlb 투수들의 평균 구종은 되는 공이다. 리얼무토는 2구로 다시 몸 쪽 라이징패스트볼을 요구했고 성낙기는 낮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이번엔 낮은 볼로 판단한 노엘 쿠에바스의 배트가 나오지 않았고 성낙기가 던진 공은 마지막에 솟아오르며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갔다. 그런 다음, 3구로 던진 커브는 볼, 4구 슬라이더도 바깥쪽에 걸쳤다고 봤으나 볼이 선언되었다.

‘와, 정말 못해 먹겠다. 자기 혼자 스트라이크 존을 새로 창조라도 하겠다는 건가?’

지금까지 드러난 윌프레드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은 일반적인 심판들에 비해, 바깥쪽은 공 한두 개 안쪽으로 들어와야 하고 몸 쪽도 마찬가지다.

좌우 폭이 지나치게 좁아서 타자들에게 유리한 스트라이크 존인 데다가 경기장은 쿠어스필드이니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게다가 외야로 바람마저 불고 있어서 수비를 하기에 좋은 환경도 아니다.

아직 시험해 보지 않은 코스는 낮은 코스와 높은 코스인데 좌우 폭에 대한 주심의 성향은 알았으니, 높낮이에 대한 성향도 파악해야 했다. 높낮이까지 스트라이크 존이 좁으면 오늘 경기엔 상당한 실점을 하게 될 터였다.

리얼무토는 몸 쪽 체인지업 사인을 다시 냈다. 아까 헛스윙을 했기에 한 번 더 낸 것이었고 성낙기는 타자의 배꼽 부분으로 오다가 타자 무릎 쪽으로 떨어지는 궤적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뭐냐? 그런 공은 또 잡아주네?’

성낙기는 낮은 공은 또 잡아주는 주심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고, 노엘 쿠에바스는 낮았다고 판단했는지 주심을 슬쩍 보고는 한참 동안 타석에 있다가 몸을 돌렸다. 아무나 퇴장시키는 주심이니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경기 스코어 0:2,

투아웃 2루의 상황에서 다니엘 카스트로가 타석에 섰고 성낙기는 커브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으며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그러고는 바깥쪽에 다소 높은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홈플레이트의 스트라이크 존으로 정확히 들어갔지만, 다소 높지 않나 싶은 공이었고 당연히 카스트로는 공을 흘려보냈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아니,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라는 겁니까. 높았잖아요.”

“내가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건데 불만 있어? 네가 나보다 공을 더 잘 봐? 엉?”

“스트라이크 존이 들쭉날쭉해서 혼란스럽단 말입니다.”

“퇴장!”

윌프레드 주심이 다시 퇴장을 명했다. mlb에서만 33년을 버틴 주심이었고 워낙 원로급이다 보니 위세가 막강했지만, 오늘은 아무리 봐도 심하다. 버드블랙 감독이 나와 항의했고 관중석의 콜로라도 팬들은 우우우, 야유를 보냈다.

“윌프레드 주심, 심한데요. 1회에 무려 3명을 퇴장시켜 버리는, 저런 잔혹한 야구를 오늘 보게 되는군요. 이렇게 되면 두 팀 모두 최상의 팀워크로 경기에 임하지 못합니다. 주심은 어디까지나 경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지 방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이례적으로 해설자가 직설적으로 윌프레드 주심에게 불만을 나타냈고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고함을 질러댔다. 주심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관중들도 여럿이었다.

보다 못한 1, 2, 3루심들이 모두 모였고 윌프레드와 언쟁을 벌이는 버드블랙 감독을 말렸다. 윌프레드 주심은 주변 상황은 아랑곳 않고 버드블랙 감독에게 맞고함을 질러댔다.

하지만, 콜로라도 로키스의 안방에서 감독마저 퇴장시키기엔 부담이었는지 조금은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

“마이애미의 현재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겨우 4할에 머무르는 승률에다 성낙기를 제외하면 장래가 유망한 선수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아. 선수들의 열정도 다른 팀에 비해서 강하지 않고 글쎄… 뭐랄까. 군데군데 톱니바퀴의 톱니가 빠진 느낌이 든단 말이야.”

윌프레드 감독과 버드블랙 감독이 설왕설래할 때 관중석 한쪽에서 오스틴 단장은 윌슨 스카우트에게 팀의 문제점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선수들의 자질은 괜찮은 편입니다. 아직 포텐을 터뜨리는 선수가 없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죠. 즉, 잠재력이 없지는 않은데 동기부여 측면에서는 조금 떨어집니다. 어딘가 좀 풀어져 보이는 팀 분위기이죠. 승부욕도 덜한 편이고요.”

“맞아. 우리에겐 덕장대신 카리스마로 팀을 뭉치게 하는 그런 감독이 필요해.”

“…피터 레인 감독 말입니까?”

“이대로는 가을 야구는 고사하고 동부지구 하위권에서 맴돌다가 시즌을 마치게 될 거야. 지난 시즌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올해까지 이런다는 건 문제가 있어.”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분이라도 있으신지.”

“알렉스 비토가 마침 쉬고 있어.”

“알렉스라면 디트로이트 로건 단장과 싸우고 그만둔 사람 아닙니까. 그분은 워낙 강성으로 알려져 있어서 구단주들도 영입을 꺼린다던데요.”

“그 대신 선수들은 잘 따르지. 바람막이 역할도 잘하는데다가 투수 교체나 작전 야구 등에서 발군이야. 솔직히 피터 레인감독은 작전 없이 선수들에게 맡기는 타입이지. 스타가 즐비한 강팀이야 가만둬도 선수들이 알아서 잘하지만, 어디 약팀도 그런가? 마이애미는 강한 결속력과 작전 야구가 없으면 모래알일 뿐이야.”

“흠… 다 맞는 말씀만 하시니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실 지금의 마이애미는 팀워크가 극대화 되어 있는 팀이라고 보기 어렵죠. 선수 개개인의 야구에 대한 의욕도 강한 편은 아니고요.”

“좋아, 아쉽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때야.”

“휴… 그건 그렇고 윌프레드 주심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1회에 퇴장이 벌써 몇 명입니까. 엄연히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이 있는 건데, 저건 숫제 자기만의 존을 따로 만들려는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의 볼 판정도 마이애미에 불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래서는 성낙기도 몇 회 버티지 못하겠습니다.”

“놔 둬. 어차피 몇 년 안에 그만둘 사람이야. 심판진 중에서 나이도 제일 많고 현역 때 날리던 선수다 보니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거지. 모든 팀들의 기피 인물인데 그렇다고 편파 판정이 두드러지는 건 아니라서 그냥 넘어가는 거지. 하여튼 꼴통은 꼴통이야.”

***

오스틴 단장과 윌슨 스카우트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성낙기는 1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행히 2실점 후, 추가 실점은 없지만, 스코어는 0:2로 마이애미가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콜로라도 로키스의 부룩스는 2회에 이미 지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로 던진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에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주심 윌프레드를 보고 부룩스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1회만 해도 전혀 잡아주지 않던, 홈 플레이트에 간신히 걸치는 공이었는데 주저 없이 손을 든다.

팡.

“스트라이크.”

2구로 던진 슬라이더도 포수 미트를 기준으로 비슷한 코스였는데 또 주저 없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이쯤 되니 이젠 타자가 멘붕이 온 표정이 되었다. 7번 타자로 나온 시에라는 주심을 힐끗 보면서 이거 뭐지? 하는 표정이다.

-또 시작이다. 놀랄 것 없어. 윌프레드는 늘 그래왔거든. 1회 스트라이크 존과 2회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지. 아마 3회엔 다시 꼬장꼬장해질 걸?

-저런 심판은 이제 집에서 손주나 보고 놀아야지.

-시력이 안 좋아서 그럴지도 몰라.

-사무국은 뭐 하는 거야? 이래가지고 야구 하겠어?

-괜찮아, 편파 판정은 안 하잖아. 야구를 게임으로 아는 심판이야.

시에라는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바깥쪽 높은 공에 배트를 휘둘렀고 1루수 파울플라이로 아웃되었다. 다음 타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 마이애미 관중들의 짜증 섞인 반응과 콜로라도 관중들의 엇갈린 반응 속에 2회는 삼자범퇴로 끝났다.

성낙기가 공을 던질 때도 갑자기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이 적용되어 2회 말 수비는 아주 수월했다. 1삼진에 두 개의 내야 땅볼.

경기는 그렇게 윌프레드 주심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가운데 양 팀은 6회까지 점수를 뽑지 못했다.

성낙기는 6과 3/1이닝을 소화하고 마운드를 내려갔고 승부는 불펜으로 넘어갔다.

8회 말 딜런 피터스가 라이언 맥마혼에게 투런홈런을 맞았고 0:4, 그걸로 경기는 끝이 났다. 마이애미의 영봉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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