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79화 (79/188)

# 79

079화 교류경기 3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군요. 2천 년대 초에 벌어졌던 월드시리즈에서 아이다호데블스와 인디아나닥스가 맞붙었었죠. 그때 양 팀 투수가 헤이드 존과 드랙실바였는데 참 볼만했었습니다.”

“생각납니다. 그날, 두 투수 모두 페넌트레이스와 달리 부진한 투구를 했었죠. 두 투수가 약속이나 한 듯 이틀 쉬고 마운드에 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양 팀 수비수들이 미친 듯이 활약을 했었죠. 월드시리즈 사상 빅 플레이가 그렇게 많았던 경기도 드물다고들 했으니까요.”

“레전드들이죠.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데 어떻게 한날한시에 죽음을 맞이했는지… 두 투수는 아마 하늘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캐스터와 해설자가 헤이드 존과 드랙실바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듣는 성낙기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어났고 드래실바와 헤이드 존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 그나저나 참으로 경이로운 캐스터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두 사람이 역사를 왜곡하는 바로 그때를 맞춰 저렇게 바로 잡는단 말인가.

“수비가 미친 듯이 활약했었다는 데요? ㅋㅋㅋ”

-허허,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지. 아니, 근데 저것들이 방송에 대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망자를 욕보이는 겨?

-…실바, 네 말대로 이건 너무 심하다고 봐.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건가?

“충격이 컸던 것일까요? 그날의 사고 이후로 아이다호 데블스와 인디아나 닥스 모두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멋진 경기를 보여준 두 사람이 나란히 생을 접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죠. 아이다호 데블스는 현재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그리고 인디아나 닥스는 역시 마찬가지로 중부지구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월드시리즈 이후 성적이 늘 바닥권이었지요. 혹자는 헤이드 존과 드랙실바의 저주라고들 합니다만, 글쎄요. 아예 근거 없는 말도 아닙니다. 두 팀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다음 해부터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거든요.”

-하, 제임스 저 염병할 시키가 이제는 하다하다 저주까지 걸었다고 지랄하네. 내 진짜 더러워서 귀신 짓 못해먹겠다. 존아, 우리가 저런 소리 들으면서까지 경기장에 있어야 하는 거냐?

-쟤 우리한테 밥 먹듯이 삼진 당한 놈이잖아. 그때의 한이 안 풀려서 저러겠지.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다만, 뒤끝이 아주 더러운 놈이네.

-너도 화나지? 가만있어 봐, 내가 나중에 기회 봐서 머리통을 뽑아 버릴 겨.

경기는 어느덧 4회 말 보스턴 레드삭스의 공격이었다. 3회에 2안타를 맞고도 실점 없이 넘긴 알칸타라는 2번 타자 앤드류와의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 노아웃 1루에서 3번 타자 라파엘 디버스를 상대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 3할에 가까운 타격과 25홈런을 기록한 그는 이번 시즌 5월 중순인 현재, 7홈런을 기록하며 작년의 페이스를 능가하고 있다.

따악.

1회에 잘 막았던 라파엘에게 중견수 앞 안타를 허용한 뒤 맞은 타자는 또다시 미치 모어랜드였다. 2회의 호수비가 아니었으면 2루타를 내줬을 것이다. 그 타구는 제대로 잘 맞은 타구였고 그만큼 미치 모어랜드의 컨디션이 좋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젠장할, 하필 여기서 저 뚱땡이가 걸리냐.’

알칸타라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노아웃 1,2루의 최대 위기에서 타석에 선 미치 모어랜드는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득점권 타율도 좋은 데다 걸리면 넘어가는 선수다 보니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회에 워닝트랙까지 날아갔던 공이 97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공략한 것이다 보니 강속구로 승부하기도 꺼려진다.

팡.

볼.

초구는 거의 던지지 않던 커브였는데 바깥쪽 높은 곳으로 제구가 됐다. 2구로 던진 슬라이더 역시 가운데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미치 모어랜드는 움직이지 않았고, 알칸타라가 던지는 변화구의 제구가 전혀 듣지 않는다고 판단한 리얼무토는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요구했다.

사인을 받는 순간, 알칸타라는 망설였다.

고개를 젓고 다시 한 번 변화구 승부를 할 수도 있다. 미치 모어랜드의 타이밍은 강속구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타이밍을 뺏을 체인지업이 있었다.

‘좋아, 그럼 체인지업으로 가자… 아니… 혹시 체인지업을 노리는 것이라면……?’

-워… 쟤 망설이는 것 봐라. 저렇게 쓸데없이 생각이 많으니 제구가 잡히겠어?

실바의 말대로 알칸타라가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공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미치 모어랜드와의 기 싸움에서 이미 지고 있다.

따악.

그런 상태의 알칸타라가 던진 포심패스트볼은 어정쩡한 바깥쪽에 들어가면서 미치 모어랜드의 배트에 걸렸다.

“미치 모어랜드의 타격, 1회와 마찬가지로 우익수 쪽으로 쭉쭉 뻗습니다. 루이스 브린슨 1회에 그랬던 것처럼 맹렬히 따라갑니다만. 아, 이번엔 역부족입니다.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 코스! 주자들 모두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립니다.”

“오오오! 펜스 플레이 엄청나네요. 펜스 맞고 나온 공을 기다렸다가 바로 잡아 2루에 뿌립니다. 2루 주자, 앤드류 홈으로 들어옵니다. 1루 주자는 루이스의 좋은 수비에 막혀 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핫, 저런 타구를 날리고도 미치 모어랜드 1루에 묶이고 맙니다. 루이스 선수 오늘 뭐죠? 실점을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오늘 보여주는 루이스의 저 모습은 수비 요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겠네요.”

루이스 브린슨이 1회에 이어 다시 한번 알칸타라를 도왔으나, 노아웃 1, 3루로 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웃 카운트가 하나도 없는 게 가장 문제다.

셜리번 투수 코치는 타임을 걸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리얼무토가 뛰어 올라왔고 3루수 가렛 쿠퍼와 1루수 브라이언 앤더슨도 마운드로 왔다. 둘은 발로 마운드 주위를 쓸어주는 척하며 셜리번 코치의 말을 들었다.

“수비를 믿고 가장 자신 있는 공을 강하게 던져. 구위는 충분히 좋아.”

결국 포심패스트볼 위주의 승부를 하라는 얘기였다. 변화구의 제구가 안 되니 어차피 당연한 거였는데,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마운드에 코치가 올라와 확신을 심어주는 건 달랐다. 궁지에 몰린 알칸타라에게는 큰 힘이 되는 말이었다.

따악.

셜리번 코치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스턴의 5번 타자 샘 트레비스의 2루수 직선타가 나왔다. 미치 모어랜드는 2루수 키를 넘어가는 줄 알고 2루로 뛰려다가 역모션에 걸려 1루에서 횡사하고 말았다.

대개의 홈런 타자들이 그렇듯 100kg이 훌쩍 넘는 몸이니 발도 빠르지 않고, 순발력도 없으니 사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투아웃에 주자가 3루에 묶인 상황에서 알칸타라는 3구 연속 강속구를 뿌려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멋졌어.”

“좋아, 알칸타라.”

동료들이 알칸타라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격려했고 더그아웃에 들어온 알칸타라는 평소 친하지 않은 루이스 브린슨 곁에 엉덩이를 걸쳤다.

***

경기는 6회에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5회까지 87구를 던진 데이빗 프라이스의 공 끝이 무뎌지기 시작했고 마이애미 타자들은 찬스를 놓치지 않고 안타를 뽑아냈다.

데이빗 프라이스는 6회에 2점을 허용한 뒤, 원아웃 2, 3루 위기에서 마운드를 불펜에 넘겼다.

추격조 조차 마이애미의 필승조보다 강한 보스턴의 불펜에 막혀 마이애미는 추가 득점에는 실패했다.

그렇게 넘어간 6회 말에 마이애미의 선발 알칸타라는 보스턴의 데이빗과 마찬가지로 연속 안타를 허용했다.

경기 분위기가 바뀌었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적시타로 2:1이었던 스코어는 순식간에 2:2으로 변해 버렸다.

그렇게 흘러간 9회 초, 마이애미의 마지막 공격에 공교롭게도 2회와 똑같이 브라이언 앤더슨이 안타를 치고 출루했다. 2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투아웃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성낙기가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알렉스 코라 감독은 팀의 마무리인 크레이그 킴브렐 대신, 강속구 투수 조 켈리를 마운드에 올렸고 브라이언에게 안타를 맞기 전까지는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9회, 2:2 동점 상황에서 팀의 마무리를 올리는 것도 이상하니까.

-야, 기가 막힌 찬스다. 여기서 지르면 넌 영웅으로 등극한다.

실바의 말을 뒤로 하고 타석에 선 성낙기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 켈리를 쳐다보았다. 컨디션이 좋을 땐 99마일(159km)까지 던진다는 강속구의 위력이 장난 아닌 투수다.

팡.

“스트라이크!”

몸 쪽으로 엄청난 공이 꽂혔고 성낙기는 다소 놀란 얼굴로 포수 미트를 보았다.

“본다고 칠 수 있는 공이 아니야. 공을 받는 나도 늘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저 볼 잘못 맞으면 바로 응급실행이다. 조심 해.”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겁을 준다.

“그래? 조심할게. 너도 내 배트 조심하는 게 좋아. 잘못 맞으면 지옥행이야.”

“풋, 웃기지 마. 그나저나 너 그렇게 설치다가 여름이 오기 전에 퍼질 거다. 몸 부서지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하는 게 좋아.”

하, 어째 포수라는 애들은 하나 같이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성낙기는 졌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관중석의 마이애미 팬들이 손을 들고 박수를 치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기장이 시끄러워졌고 조 켈리는 이를 악물며 전력투구했다.

따악.

성낙기가 배트를 돌렸고 5만 관중이 모두 타구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자그마치 10만개의 눈동자가 145g의 작은 공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쏠렸다.

***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로 가는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각 항공사는 증편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서대일 기자, 요즘 마이애미로 가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요? 어찌된 일인지 설명을 부탁합니다.”

“네, 서대일입니다. 말 그대로 마이애미행 관광객이 아우성입니다. 비행기 표가 모두 동이 나서인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올해 마이애미에 입단한 성낙기 선수 때문입니다. 가히 신드롬이라 표현할 만큼 대단한 활약으로 한국의 야구를 미국 메이저리그에 알리고 있는데요.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민 한 분 만나보겠습니다.”

“저… 혹시 성낙기 선수 아세요?”

“들어보기는 했는데 왜 그러는데? 응?”

“…방금 보셨다시피 길가는 할머니에게 여쭤 봐도 성낙기 선수를 알고 계십니다.”

“지금 테레비 찍는 겨? 당신 누구여.”

“이상, 시민의 인터뷰를 들어 보았습니다. 데스크 나와 주세요.”

“컷! 아이 참, 대일이 저거 뭐 하는 거야? 누가 지보고 할매 인터뷰 하라고 했어. 처음부터 다시 갑시다.”

한국은 이미 성낙기 몸살을 앓는 중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mlb의 문을 두드렸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지만, 성낙기와 같은, 아니, 비슷한 사례조차 찾기 힘들 만큼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었다.

투타 겸업으로 5월 말 현재, 5승 2패 ERA 2.75에 0.288의 타율과 5홈런 20타점이니 이대로 시즌을 마치면 15승이 넘는 승수에 두 자리 수 홈런, 50타점을 기록하리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뒤따랐다.

투수로서도 에이스와 다름없는 활약인데, 타자로서의 성적도 웬만한 팀의 주전 타자에 버금갈 정도니 반응이 폭발적인 건 당연했다.

“성낙기 투수, 아니, 타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시즌 타율도 타율이지만 득점권 타율은 무려 3할 2푼 7리로 어마어마합니다. 많지 않은 기회에도 20타점이나 올린 이유죠.”

나인 스포츠에 나온 장종운 해설자의 말처럼 성낙기의 무서운 점은 찬스에 강하다는 것이었다. 방송사마다 KBO는 뒷전으로 놓고 성낙기에 대한 토론으로 특집을 편성할 만큼 한국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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