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078화 교류경기 2
성낙기는 4회 1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채드 왈라치와 합을 맞춘 시즌 첫 경기였는데 4이닝 1실점이면 그리 나쁜 수치는 아니다.
뭐, 다음 이닝에 실점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4회까지 66구의 공을 던졌고 투심패스트볼과 라이징패스트볼, 그리고 퀘이크볼과 전광석화까지 아끼지 않고 던진 덕분에 체력이 28밖에 남지 않은 것이랄까.
물론 이 수치면 2이닝은 더 던질 수 있지만 6회까지만 던져서는 경기의 결과를 제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일단 더 이상의 실점 없이 던지고 나서 불펜에게 공을 넘기는 것이 최선이긴 한데 보스턴 레드삭스에 비하면 불안한 불펜이다.
마무리로 뛰고 있는 야를린 가르시아는 믿을 만하지만 7,8회를 막는 필승조 투수들의 ERA가 4.22이니 강팀의 추격조 수준이다. 208cm에 98(158km)마일을 던지는 팬 파일러의 제구만 좀 잡히면 좋으련만, 요즘은 나갔다 하면 볼넷 남발이다.
“크리스 세일, 오늘 역투입니다. 7회까지 3안타 무실점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음, 성낙기 투수는 6회까지 1실점인데 아주 잘 던졌죠? 다만, 크리스 세일이 워낙 잘 던지는 바람에 승리투수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멉니다.”
“6회까지 93구면 빠른 승부를 하는 성낙기 투수에게 상당한 투구 수입니다. 역시 보스턴 레드삭스 타자들이 끈질기다는 반증이겠네요.”
“7회말, 예상대로 팬 파일러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아주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투수인데요, 포심, 슬라이더의 투 피치 투수임에도 제구만 되면 공략이 거의 안 되는 투수입니다.”
“좀 안타까운 게 이 투수는 랜디 존슨과 모든 면이 흡사한데 제구는 전혀 닮지 않았어요. 스프링 캠프에서 투구 폼을 간결하게 하고 제구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는데, 아직까지는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중이죠.”
팡.
볼.
초구부터 볼 질을 하는 팬 파일러. 포심패스트볼도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지 않는데, 채드 왈라치는 슬라이더를 요구했나보다. 순식간에 스리 볼로 볼카운트가 몰렸다.
따악.
그리고 볼 카운트를 잡으려고 한가운데 던진 공을 타자가 기다리지 않고 휘둘렀다. 나오자마자 중월 솔로 홈런을 허용한 팬 파일러다. 성낙기의 불안감을 그대로 실천하는 중.
팬 파일러는 다음 타자와의 승부에서도 볼넷을 허용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팬 파일러… 마이너로 보내야겠어. 거기서 제구력을 다시 다듬어 오는 게 나아.’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팬 파일러에게 격려성으로 어깨를 툭, 쳐준 후에 피터 감독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딜런 피터스가 올라간 뒤로, 에러와 2루타 2개를 허용한 마이애미는 추가 2실점으로 스코어 0:3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99마일 광속구 투수인 조 켈리와 갈매기 투구 준비 동작으로 유명한 크레이그 킴브렐의 계수진에 셧아웃 당했다. 0:3의 경기 스코어로 성낙기는 패전투수가 되었고 마이애미 선수들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함에 혀를 내둘렀다.
***
2연전의 마지막 날, 오늘의 마이애미 선발은 샌디 알칸타라.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이제 26세에 접어든 투수로 97~98마일의 공을 꾸준히 던지며, 85마일 정도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는데, 문제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제구력이 잘 잡히지 않는 투수라는 점이다.
하지만, 움직임을 가진 포심패스트볼이어서 마이애미의 3선발로는 손색이 없다. 브라이스 하퍼와의 난투극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 그 후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공이 더 빨라졌다.
“샌디, 빠른 공만 던지겠다는 생각은 버려. 네 무브먼트라면 쉽게 공략 못할 거야. 대신 제구에 신경을 써 봐.”
셜리번 코치의 말에 밝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오늘은 한 건 할 것 같기도 했다. 성낙기는 어제의 패배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우선은 래인 피터 감독이 5번 지명타자로 자신을 명단에 넣어 주었고 여자 따라 갔다던 헤이드 존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야, 잘 있었니?
“네, 덕분에 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지요.”
-실바한테 대강 들었는데 팀이 약해서 고생이 많다고… 늘 우승권 팀만 골라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지. 하다 보면 때가 올 거다.
“저도 대충 이야기 들었는데 하던 일은 잘되셨어요?”
-엄… 무슨 일 말이냐. 네가 또 실바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나보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도록 해.
-뻔하지, 키만 멀대 같이 크고 무드도 없는데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냐. 차였다고 봐야지.
헤이드 존과 실바의 말을 듣는 동안, 마이애미의 타선은 보스턴의 선발투수 데이빗 프라이스에게 삼진 하나를 헌납하며 1회 초 공격을 마쳤다.
-하아, 투수들 괜찮네. 95마일의 싱킹패스트볼을 포심패스트볼처럼 사용하네. 낙기야, 너희 팀 오늘 또 졌다.
“뭘 진다고 그러세요. 경기 시작부터 김새게 만드시네.”
실바의 말을 받아주는 동안 4번 타자 브라이언 앤더슨이 타석에 들어섰다. 지난 시즌 0.288의 타율에 27홈런을 친, 마이애미에서 가장 믿을 만한 타자였다. 데이빗 프라이스도 초구로 커터를 던지며 브라이언을 유인했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가운데로 오다가 급하게 각을 틀며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구질로 높이와 코스만 잘 맞으면 숱한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공이다. 데이빗은 다음 공으로 싱킹패스트볼을 던졌고 브라이언은 몸 쪽으로 꺾여 들어오는 공을 받아쳤다.
따악.
“브라이언의 타구가 아, 유격수 키를 넘기는 텍사스 성 안타입니다. 먹힌 타구였는데 그걸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저러니 4번 타자 아니겠어요? 빗맞은 공도 내야를 벗어나게 만드는 힘이 각 팀의 4번 타자에게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겁니다.”
“다음 타자로는 오늘 지명타자죠. 어제 잘 던지고도 패배를 기록한 성낙기 선수의 첫 지명타자 기용입니다. 하아, 성낙기 투수가 지명타자로 나왔는데 이 선수의 타율이 꽤 좋습니다.”
“오타니에 이어 투타 겸업에 가까운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죠. 다만, 오타니가 체력적인 부담으로 성적이 나지 않는 반면에 성낙기 투수는 활약을 보이는 중입니다. 타자로서도 재능이 아주 특별한 선수라고 판단합니다.”
“아, 그 정도인가요? 제임스 해설자께서 그렇게 판단하신다면 뭔가 있는 타자라고 봐야겠습니다. 타격 레전드의 판단이니 말이죠.”
성낙기는 타석에 서서 배트를 두어 번 휘둘렀다. 포수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는 성낙기의 타격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사인을 낼 구종을 생각 중이었다.
“친구, 80마일짜리 포심패스트볼 어때. 그걸로 사인 내줄까?”
“으응……? 알아서 해. 뭘 던지든 다 때려낼 거야.”
“그래? 그렇게 말하고 나서 삼진 당하면 창피하지 않을까?”
“시끄러. 아무거나 던져. 걸리면 투런 홈런이야. 무섭지?”
“후우우, 어이가 없네. 어디서 왔는데 이렇게 건방진 거야? 여기도 엄연히 선후배 문화가 있고 어린 사람들은 나 같은 베테랑을 존중해야 하는 거야.”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의 주댕이가 제법이다. 저러다가 정말 투런 홈런이라도 맞으면 뒤지게 약이 오를 텐데. 어쨌든 아주 좋은 찬스가 만들어졌다.
선두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는 그림은 데이빗 프라이스 같은 투수를 상대로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타자가 브라이언이었으니 가능했을 테지.
팡.
“스트라이크.”
크리스티안의 말은 정말이었다. 포심패스트볼은 아니었지만 80마일 대의 체인지업이 바깥쪽에 들어왔다. 성낙기는 데이빗의 싱킹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었다. 주무기이고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인데 그걸 안 던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팡.
볼.
아니다. 이번엔 커브였는데 하마터면 땅을 파고 들어가는 공에 헛스윙을 할 뻔했다. 다음엔 커터일까, 싱킹일까. 아니, 슬라이더의 무브먼트도 꽤 좋은 투수로 알려져 있다.
“이번엔 포심패스트볼이겠지?”
“응, 맞아. 너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구나.”
크리스티안이 농담으로 받는다. 볼 카운트 원 앤 원에서 데이빗 프라이스가 공을 던졌고 성낙기는 배트를 휘둘렀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주 예리한 커터가 가운데로 들어오다가 바깥쪽으로 꺾였다. 마리아노 리베라만큼은 아니지만 잘 긁히기만 하면 속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성낙기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한 뒤, 머리에서 구질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역시 난, 게스히팅 스타일이 아니야. 이렇게 되뇌면서.
데이빗의 4구가 성낙기의 몸 쪽으로 들어왔다.
‘싱킹?’
따악.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치솟으며 외야로 뻗었다. 1루 측에 있던 마이애미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넘어가!”
“간닷!
“제대로 잡아 당겼어. 근데 아웃이네.”
“2루타를 칠 뻔했어. 그것도 데이빗 프라이스를 상대로 말야.”
관중들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성낙기 선수 데이빗의 싱킹패스트볼을 노렸지만 중견수 플라이 볼입니다.”
“좀 아깝죠? 중견수가 낙하지점을 잘 포착했습니다.”
마운드 위의 데이빗 프라이스는 내심 뜨끔했다. 중견수를 넘어가는 줄 알았다. 방금 던진 싱킹패스트볼은 전혀 실투가 아니었기에 더 그랬다.
내셔널리그에 투타 겸업을 하는 투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 성낙기의 타격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데이빗은 허리를 굽혀 로진백을 만졌다. 6, 7, 8로 이어지는 마이애미의 타선을 더 이상 실점 없이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따악.
유격수 땅볼 아웃.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팡.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은 6번으로 나선 리얼무토를 유격수 땅볼로 잡고 나서 데이빗 프라이스는 연속 삼진을 솎아냈다. 마지막 타자인 스탈린 카스트로는 바깥쪽에 걸치는 커브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데이빗 프라이스는 기분 나쁜 안타를 맞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공을 던지는 커맨드엔 전혀 이상이 없다.
“알칸타라, 기회는 다시 올 거야. 그때까지 버텨 봐.”
워마린 타격 코치가 2회 말, 마운드로 걸어 올라가는 알칸타라를 보면서 말했다.
-좋아, 우리도 치면 돼. 마이애미쯤은 플로리다 해변으로 날려 버리자고.
-걱정 마. 우리에겐 미치 모어랜드도 있고 샘 트레비스도 있어.
-아마, 볼넷으로 내보낼 걸?
-벌써 투 볼이다. 쫄은 게 틀림없어.
-여기서 볼넷 나가고 트레비스가 하나 날리면 2회 초 마이애미의 데자뷰가 되는 거지.
-앗, 쳤다. 날아간닷!
-ㅠㅠ
-뭐야.
-아아아… 저걸 잡네. 완전히 넘어가는 공인데.
-루이스 브린슨이 마이애미 살리네.
그랬다. 미치 모어렌드가 4구째 받아진 공은 우익수를 넘어 담장에 맞는 공이었는데 루이스는 악착같이 따라가서 그 공을 잡아내 버렸다. 담장에 부딪혀 넘어진 루이스가 한참 만에 일어났고 알칸타라는 외야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따악.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날아가는 공, 루이스 브린슨이 달려옵니다. 와우, 잡아냈습니다. 루이스의 Good Defense! 완전히 빠지는 공인데 그걸 낚아챘습니다.”
“벌써 두 개의 장타를 막아낸 셈이네요. 최소한 2루타였던 타구들을 연속으로 잡아냈어요. 보스턴 타자들 맥이 풀리겠는데요. 일반적이라면 최소한 1점을 내고 노아웃에 주자 2루에 있어야 할 상황인데 루이스 브린슨 선수의 빅 플레이로 허망해졌네요.”
월드시리즈도 아닌데 미친 선수가 나왔다. 캐스터와 해설자 그리고 마이애미의 팬들조차 믿기 힘든 수비를 한 루이스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알칸타라는 힘이 났는지 다음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워 버렸다.
-쟤는 참 운도 좋네. 저게 수비야, 묘기야?
-그러게 말여. 우리가 던질 때 저랬으면 퍼펙트 열 번은 했것다.
헤이드 존과 드랙 실바가 웬일로 죽이 맞는다. 현역 때 그만큼 수비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중이다. 돌려 생각하면 순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그런 성적을 올렸다는 말인데, 보지 않았으니 믿을 수가 있나. 성낙기는 무언가 미심쩍으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