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077화 교류경기 1
오늘은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1위를 달리고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2연전의 교류 경기 중 첫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보스턴의 홈인 펜웨이파크에서 던질 마이애미의 선발은 성낙기였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발은 크리스 세일로 스리쿼터 형 좌투수다.
평균 95마일의 공을 던지는데 워낙 싱커 성 포심패스트볼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한 데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또한 수준급이어서 과연 마이애미의 타선으로 공략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만한 투수.
198cm의 키에 깡마른 체형이고 투구 폼이 역동적이고 힘이 있어서 롱런을 할 수 있는가가 한때 논란이 되었는데 지난 시즌부터는 몸이 불고 강한 투구만을 고집하지 않는 투수로 거듭났다.
몸이 불고난 후에 꾸준히 떨어지던 구속은 전성기 시절로 다시 올라왔고 5월 10일인 현재, 4승 1패에 ERA 2.65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맞서는 성낙기는 3승 2패에 ERA 2.88로 모든 면에서 크리스 세일보다 못하다. 5월 초에 있었던 등판에서도 6이닝을 책임지며 역투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만 쌓은 상황.
게다가 메이저리그에 오고부터는, 전력투구를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다. 같은 60구를 던져도 KBO에서와 mlb에서의 체력 소모가 다를 수밖에 없고 타자로도 나서야 하는 내셔널리그의 규정 때문에 더 그렇다.
이를테면, 안타를 치고 주루를 하거나 볼 카운트를 길게 끌고 가도 체력은 닳는다. KBO에서 완투를 심심찮게 했던 것에 비하면 6, 7이닝이 고작인 이유다. 공격력이 하위권인 마이애미에서 성낙기의 어려움은 더 심해졌다.
타선의 지원이 시원찮을 뿐 아니라 요즘은 보이지 않는 에러로 투수를 괴롭히는 내야진 때문에 마인 허지스 수비코치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크리스 세일은 마이애미의 1, 2, 3번 타자를 가볍게 삼자범퇴로 잡아냈다. 펜웨이파크에서 열리는 경기인 만큼 아메리칸 리그의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러므로, 지명타자가 따로 있는 리그의 특성상 성낙기는 타격에 나설 수 없다.
4번 정도 타석에 나와서 팀에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오늘은 온전히 공 던지는 걸로만 승을 거둬야 하는 조건이다. 마이애미의 지명타자는 노장인 스캇 반 슬라이크가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1회 말에 마운드에 오르자 포수가 득달같이 뛰어온다.
“야, 네가 잘 던져야 내가 산다. 알지?”
별소리를 다하고 그런다. 이 말을 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간 포수는 채드 왈라치였는데 리얼무토의 체력 안배 문제로 보스턴 2연전에 투입되었다.
성낙기는 저 말을 하고 내려간 채드 왈라치가 심히 이해가 갔다. 2021년인 올해 서른에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백업이나 하고 있으니 애가 탈 것이다. 리얼뮤토의 공격력과 수비가 워낙 괜찮아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이럴 땐, 팀의 에이스급 투수와 한 조를 이뤄 전담 포수라도 되는 게 나은데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만약 자신이 홈플레이트에 있을 때 투수의 방어율이 좋고 팀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지금보다는 입지가 훨씬 넓어질 테니까.
‘초구부터 슬라이더 사인이야?’
초구부터 변화구를 던지는 패턴을 선호하지 않는 성낙기였지만 이번만은 채드 왈라치의 사인을 믿고 따르기도 했다.
“있잖아, 성낙기야. 내가 어제 거의 날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보스턴 타자들을 분석했거든. 사인은 나에게 믿고 맡겨 봐. 내 말만 잘 들으면 완봉하도록 도와줄게.”
경기 전에 채드 왈라치가 성낙기에게 했던 말이었다. 눈이 부스스한 게 정말 잠을 못 잔 모양이었고 생존에 대한 절실함도 함께 느껴져서 거기다 대놓고, 다 필요 없어. 내가 던지는 거니까 내가 사인 낸다, 이럴 수는 없었다.
처음 마이애미에 왔을 때 유독 성낙기를 챙겨주면서 살갑게 굴었던 정도 있었고.
“오늘은 변화구만 던지기로 작정한 건가? 포심패스트볼이 거의 없네.”
셜리번 투수 코치의 생각처럼 채드 와라치는 투심패스트볼을 직구처럼 사용하길 원했고 거기에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을 골고루 사용하면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다가 여의치 않을 땐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는 전개를 선호했다.
그리고 그런 커맨드는 3회까지는 잘 통했다. 투구 수는 좀 많았지만 안타 하나만을 허용하고 삼진 3개를 잡는 성과를 올렸으니까.
“투심은 스트라이크와 볼의 비율이 절반 정도니까 과감하게 패스하는 게 좋겠어. 맞아도 먹힌 타구 확률이 많다. 대신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노려.”
보스턴 타격 코치는 4회 초에 타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2번 좌타자 앤드류 베닌텐디가 타석에 들어서자 채드 왈라치는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투심패스트볼을 원했다.
그런데 이 투심패스트볼이 (77/100)의 제구력에 머물고 있는 이상, 스트라이크가 된다는 보장이 없고 잘못하면 실투로 연결될 수도 있다.
따악.
보스턴 레드삭스의 2번 타자 앤드류는 타격 코치의 말과 달리, 초구로 들어오는 투심패스트볼을 적극 공략했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는 공이었는데 앤드류의 배트에 맞은 타구는 유격수 키를 넘겨 안타가 되었다.
다음 타자 라파엘 디버스 역시 좌타자였는데 25세의 젊은 나이로 클린업 트리오를 꿰찬 신성이다. 178cm의 야구 선수로는 단신인 앤드류는 1루에 나가자마자 리드를 넓히고 있었다.
팡.
성낙기는 견제구를 하나 던졌고 앤드류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베이스에 들어갔다.
채드 왈라치의 사인대로 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이 볼이 제구만 잘 되면 좌타자에겐 아주 유용한 게 우타자가 슬라이더를 상대할 때처럼 시야에서 멀어지는 공이기 때문이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는 좌타자 바깥쪽으로 제구가 잘 되어서 라파엘 디버스가 반응하지 못했다. 2구는 몸 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 사인, 성낙기는 1루 주자를 최대한 견제하면서 셋 포지션으로 공을 던졌다.
팡.
볼.
가운데로 오다가 몸 쪽으로 뚝 떨어지는 공이었는데 라파엘이 잘 참아낸다. 오늘 경기에 보스턴 레드삭스 타자들이 대체로 신중한 편이다. 스트라이크라고 무조건 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공이 올 때까지 커트를 하려고 든다.
아니면 기다리거나.
3회까지 44구를 던졌는데 평소 공격적인 투구를 하는 성낙기에겐 좀 많은 투구 수였다.
따악. 파울.
따악. 파울.
연속으로 공을 걷어내는 라파엘. 유인구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던졌지만 속지 않는다. 그리고 체인지업을 던지는 순간, 1루 주자 앤드류가 2루로 뛰었다.
낮게 가라앉은 공을 채드 왈라치가 일어서서 던질 때, 앤드류는 거의 아웃 타이밍이었는데 체인지업이라는 느린 구종에도 불구하고 성낙기의 셋 포지션이 워낙 간결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팡.
세이프!
2루심은 세이프을 선언했고 다소 공을 높게 던진 채드 왈라치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노아웃 2루의 위기 상황에서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를 마운드로 불렀다.
“왜?”
“이제부터 내가 사인 낼게.”
“지금까지는 좋았어. 안타 하나 맞은 것 때문에 그래? 선두 타자 안타는 누구나 맞는 거고 도루는 저 선수가 워낙 빠르기도 했어. 1점 정도는 준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가자.”
“지금 이 상황은 1점 각이 아닌데? 패턴이 어느 정도 읽혔어.”
“그럼, 뭘 던질 건데.”
“이 상황에 맞는 걸 던질 거야.”
“쩝… 아무리 그래도 투수가 사인을 내면 내 자존심은 뭐가 되는데.”
채드 왈라치가 입이 좀 나와서 홈플레이트로 갔다. 결과가 중요하지 사인을 포수가 꼭 내라는 법이 어디 있나. 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성낙기가 던진 공은 타자 바깥쪽으로 파고드는 퀘이그볼이었다.
따악.
라파엘의 배트에 맞은 공은 홈플레이트 앞 그라운드에 맞으며 튀어 올랐다. 3루수 가렛 쿠퍼가 뛰어 들어오며 공을 잡아 1루로 뿌렸고 그 틈에 2루 주자는 3루에 들어갔다.
“아웃!”
타자 주자는 잡았지만 원아웃 3루로 위기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다음 타자들은 4번 타자 미치 모어랜드와 샘 트레비스였다. 미치 모어랜드는 현재 8홈런을 기록 중인 거포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삼진 비율이 많아서 유인구가 많은 투수는 쉬울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1, 2번 타자들이 안타나 2루타 정도를 최대치로 삼는 데 반해 이런 선수는 최대치라는 게 없다.
걸리면 무조건 넘어가는데 꼭 정타가 아니라도 담장을 넘겨 버리는 괴력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미치 모어랜드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0.277의 타율에 8홈런 22점의 타점 머신이라고 할 수 있죠. 득점권 타율이 무려 0.322인데 이것만 봐도 이 선수가 얼마나 찬스에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3번 타자 라파엘에게 마지막에 던진 일명 퀘이크볼로 미치 모어랜드도 잡아낼지 무척 기대됩니다. 이 공의 궤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을 만큼 수수께끼에 쌓인 구종입니다. 성낙기 투수의 그립대로 던져도 저런 움직임이 나오기 힘들다는 분석을 CBS에서 내놓기도 했죠.”
“아, 그런가요? 저 공에 모두들 관심이 많군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성낙기 투수의 라이징패스트볼이 더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건… 아마 비상식적인 회전이 공에 전달된다면 불가능한 구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초창기 메이저리그엔 오늘날처럼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줄은 몰랐겠죠. 모든 역사는 진보하는 겁니다.”
“그 말씀은 성낙기에게 영향을 받은 다른 투수들이 퀘이크볼이나 위로 솟구치는 라이징패스트볼을 익힐 거라는 말로 들리는군요. 두고 보겠습니다. 미치 모어랜드, 과연 성낙기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팡.
라이징패스트볼(7cm/10cm).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솟는 라이징패스트볼에 헛스윙 하는 미치 모어랜드 선수, 방금 공은 스트라이크 존보다 살짝 높아 보였는데요. 배팅 포인트에서 공을 맞이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로 보일 겁니다. 좋은 공이에요.”
원 스트라이크를 잡은 성낙기는 유인구를 던져 어렵게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수비 시간이 길어질 뿐더러 투구 수 소모도 장난이 아닌 오늘 경기이므로.
2구로 채드왈라치가 커브 사인을 냈지만 성낙기는 고개를 저었다. 3회까지 여러 차례 구사한 구종이어서 타이밍을 익혔을 수 있고 만약, 타자가 그걸 기다리고 있다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팡.
“스트라이크.”
이번엔 그냥 평범한 92(148km)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이 미치 모어랜드의 몸 쪽으로 들어가 박혔다. 이로서 노 볼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성낙기는 마지막 공으로 전광석화를 사용했다.
전광석화(電光石火)-155km.
딱.
어어, 전광석화가 맞았다. 성낙기는 전광석화를 던지고 나서 귀를 의심했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분명 배트에 공이 맞아나가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미치 모어랜드, 쳤습니다. 바운드를 일으키며 내야를 구르는 타구, 2루수 야디엘 리베라가 잡아 1루로 던집니다. 그러는 동안 3루 주자는 홈인! 드디어 0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미치 모어랜드 선수 어떻게든 타점을 올리네요.”
“아, 투수와 타자 모두 대단합니다. 방금 성낙기 투수가 던진 공은 96마일을 기록한 공이었는데 미치 모어랜드가 잘 따라갔습니다. 갑자기 빠른 공이 오면 배트가 늦게 마련인데 미치 모어랜드 선수 탁월한 배트 스피드로 타점을 만들었습니다.”
“위기에서 성낙기 투수의 승부구가 통하지 않았네요. 아마도 삼진을 잡으려 했을 겁니다. 어쨌든 투아웃에 주자 없이 성낙기 투수의 투구는 계속 이어집니다.”
“투구 수가 좀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