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076화 동부지구 4위 4
파앙.
스트라이크.
볼.
파울, 파울.
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연속으로 파울볼을 치는 아메드 로사리오. 1번 타자답게 끈질긴 면이 있다. 7회까지 오면서 성낙기의 공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느낌이 있었고 집중력이 갑자기 상승했다.
이대로는 물러날 수 없다는 프로 정신인지는 몰라도 성낙기에게 약간의 고민을 안겨주는 건 사실이다.
“에라, 모르겠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성낙기는 입 밖으로 전광석화를 발음하며 공을 던졌다. 혼신의 힘을 다한 포심패스트볼이 리얼무토의 글러브가 위치한 타자의 몸 쪽으로 날아갔다.
파앙!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헉! 96마일이다. 6회에 96마일이야.”
“저건… 사람이 아니야. 어떻게 6회에 자기 최고 구속을 던져?”
“우리 투수지만 참 이상한 투수인 건 사실이야. 전에도 그러더니 저런 공이 있으면서 안 던졌어.”
“그런 거 생각하면 거의 공포야, 아니, 괴기라고 봐야지.”
“우리의 두뇌로는 쟤를 못 따라가. 왜냐하면 저 투수는 외계에서 온 게 분명해 보이거든.”
성낙기는 2번 타자를 내야 땅볼로 잡고 3번 타자 도미닉 스미스에게 바깥쪽 전광석화(電光石火)를 연달아 던져 투 스트라이크를 만든 후에, 몸 쪽 라이징패스트볼로 이닝을 끝냈다.
“fuck you!”
도미닉 스미스는 욕을 하더니 배트를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부러뜨려 버렸다. 그러고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서 헬멧을 벗어 의자에 내동댕이쳤다. 성낙기는 마운드를 내려와 더그아웃에서 셜리번 투수 코치에게 더 이상 던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겨우 77구에……?’
셜리번 코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OK했다. 완투도 좋지만 7회는 불펜 투수가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팀워크에는 더 낫다는 생각이다.
7회는 팬 파일러가 원아웃 1, 2루의 위기를 병살로 막아냈고, 8회엔 좌완 투수인 딜런 피터스가 나와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마무리인 야를린 가르시아도 볼넷을 하나 내줬지만 9회를 깔끔하게 지웠다.
그리고 경기는 1:0 마이애미의 승리로 끝났다.
성낙기는 당연히 경기의 mvp였다.
mlb 첫 무실점 경기를 축하합니다.
[체력이 87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88로 오릅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76로 오릅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77로 오릅니다]
[팔 근육 강화가 (8단계/10단계)으로 오릅니다]
[어깨 근육 강화가 (8단계/10단계)으로 오릅니다]
[짐 캇의 수비력이 (4단계/5단계)로 오릅니다]
-으구… 배 아퍼 디지것네. 무실점 한 번 했다고 별걸 다 주고 있어. 도대체 짐 캇의 수비력은 왜 오르는 거야. 투수 땅볼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
“아이, 참. 1루 커버를 몇 번 들어갔는데요.”
-그깟 1루 좀 커버 했다고 짐 캇의 수비력이 고스란히 흡수되어 버리다니. 메이저리그에 이제 막 발 디딘 햇병아리에게 너무 심한 거 아냐? 휴, 말을 말자. 내가 졌다.
‘드랙 실바는 아무래도 인기가 없나보다. 그러니 내 곁에서 저렇게 쓸데없는 잔소리나 하지. 하긴, 내가 여자 귀신이래도 드랙실바보다는 헤이드 존이지. 키 크지, 인물 괜찮지, 딱 보기에 돈도 더 많아 보이지.’
성낙기는 불쌍한 눈으로 드랙 실바를 쳐다보았다. 조금 깔끔해졌다고는 하지만 얼굴의 저 털을 다 밀지 않는 이상은 결코 여자 귀신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
성낙기가 노아 신더가드를 상대로 안타를 치고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소식은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는 팬들에게 하루 종일 화제가 될 만큼 빅 뉴스였다.
사우스 코리아에서 온 투수가 뉴욕 메츠라는 강팀을 6이닝 무실점으로 잠재운 것도 놀랍지만 신더가드의 강속구에 반응해, 안타를 때린 사실도 투수로서는 드문 경우라고들 말했다.
ESPN은 경기 다음 날, 전문가들이 모여 야구에 관한 대담을 나누는 프로그램에서 전날 있었던 뉴욕 메츠와 마이애미의 경기를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나누는 대화의 거의 전부가 성낙기와 노아 신더가드에 대한 것이었다.
“오늘 제임스와 마틴, 두 분을 모시고 말씀 나눕니다. 노아 신더가드 투수가 어제 17K를 잡아냈죠? 정말 대단한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승리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죠. 바로 이 선수, 마이애미의 성낙기 때문이었습니다. 경기 보셨죠? 어떻게 느끼셨는지.”
“어제의 경기는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3회까지 신더가드의 7K도 아주 인상적이었지만, 성낙기의 타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실책을 유발했고 가렛 쿠퍼의 텍사스 안타 때 결승점을 얻어냈죠.”
“맞습니다. 투수가 강속구를 때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노아 신더가드가 누굽니까. 천둥의 신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엄청난 강속구에 무브먼트가 뛰어난 투수입니다. 바로 이런 투수에게 뽑아낸 내야 안타라서 값어치가 있는 거죠. 게다가 그 공은 전혀 실투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에 이어 또 다른 투타겸업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보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충분합니다. 비록 4월까지의 데이터가 쌓여 있을 뿐이지만, 3할이 넘은 타율에 5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기록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상대한 투수들의 면면을 보는 게 빠를 겁니다. 노아 신더가드를 필두로 스티븐 마츠, 코다 글로버 등의 투수를 상대로도 좋은 타격을 선 보였죠. 성낙기가 상대한 이 투수들이 신더가드를 빼더라도 결코 만만한 투수들이 아닙니다.”
“저도 비슷합니다. 투타겸업의 능력이 있는 선수로 보입니다. 다만, 체력적인 부담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가 유일한 문제겠죠. 그런데 저는 타격보다 이 선수의 투구 능력이 훨씬 우월하다고 평가하고 싶군요. 신더가드 못지않은 투구로 뉴욕 메츠의 강타선을 제압한 건 정말 사건입니다. 뉴욕 메츠는 성낙기로부터 단, 3안타만을 빼앗아냈을 뿐입니다.”
“음… 타격보다 투수로서의 능력을 더 높게 보시는군요. 그럼, 이쯤에서 영상을 돌려볼까요? 저희가 준비한 영상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이 장면인데요. 도미닉 스미스를 상대로 6회에 96마일의 공을 뿌리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쇼킹한 장면일 수도 있어요. 묻고 싶습니다. 저게 가능합니까?”
“사회자 말씀이 재밌네요. 당연히 가능하니까 던졌겠죠. 그런데 저 공을 6회 이전엔 전혀 던지지 않았다는 게 문젭니다. 바꿔 말하면 던질 필요를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전, 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싶네요. 저 투수의 강점은 사실 강속구가 아니라 변화구입니다. 그것도 도미닉 스미스에게 던진 마지막 공 말이죠.”
“잠깐요, 아, 됐습니다. 이 라이징패스트볼을 말씀 하시려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 라이징패스트볼의 속도는 그전에 던진 96마일에 못 미치는 92(148km)마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볼 끝은 거의 타자가 예측 불가능할 만큼 위로 치솟습니다. 보통 라이징패스트볼은 공의 회전수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성낙기 투수의 이 공은 다릅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스르고 있다는 겁니다. 겨우 92마일의 공으로 저런 궤적을 만들어 내는 일은 거의 불가사의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죠. 투타겸업도 그렇지만, 혜성처럼 나타나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회자와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일 만큼 성낙기는 노아 신더가드와의 대결로 인해 삽시간에 유명해졌다. 그리고 ESPN 뿐만 아니라 CBS나 각 지역의 스포츠 방송사들도 성낙기의 활약을 다뤘다.
“아, 이렇게 갑자기 유명해져서 좋을 일이 없는데.”
-좋은 일이 왜 없냐. 유명해지면 몸값이 가장 먼저 오르는 곳이 메이저리그야. 물론, 여자 만나기도 아주 좋지.
“돈도 돈이지만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든요.”
-덱, 프로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너를 위해 내가 정신교육 프로그램을 짜야겠다. 아무래도 선수로 오랫동안 뛰려면 멘탈부터 갖춰야 해.
***
팀의 경기가 잡히지 않은 날, 성낙기는 셜리번 투수 코치의 집으로 선수들과 함께 쳐들어갔다. 전에 셜리번 코치가 삼겹살에 한국 술을 사준다는 약속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마이애미의 시내 주택가에 위치한 집은 역시 메이저리거의 집답게 훌륭했다. 잔디가 깔린 마당과 정원, 그리고 햇볕을 즐길 수 있는 야외 테라스. 왼쪽엔 작은 수영장도 딸려 있다.
리얼무토가 앞장섰고 그 뒤로 성낙기와 가렛 쿠퍼, 브라이언 앤더슨과 채드 왈라치, 2선발로 뛰고 있는 아담 콘리도 합세했다.
밖에서 소리치자 셜리번이 아기를 안고 나오는 게 보였다. 가만 보니 리얼무토를 많이 닮았다. 뒤에 따라 나오는 사모님 얼굴은 예쁜데 애가 누굴 닮은 거지? 혹시… 주워온 자식……? 그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셜리번이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상상력은 날아갔다.
“야, 니들 이렇게 많이 오면 어떡하냐. 집에 먹을 거 없다.”
“후훗, 코치님도 참. 본래 무라는 건 없습니다. 사람은 늘 무에서 유를 창조하게 되어 있죠. 걱정 마세요.”
리얼무토가 말을 받았다. 같은 야구 선수에게만 철학자 같은 말을 쓰는 줄 알았는데, 코치에게도 말투가 같다.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까. 야구 접고 인도나 가서 수행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내가 성낙기랑 약속한 게 있지. 한인 식당 예약해 놨다. 우리 애들, 엠마와 리암도 함께 갈 거야. 참, 소개하지. 여긴 내 아내 소피아야. 여긴 우리 팀원들, 요즘 야구를 말아먹고 있지.”
엠마는 다섯 살쯤 되어 보였고 품에 안겨 있는 리암은 이제 막 돌이나 지났겠다. 엠마는 큰 눈과 금발의 머리칼로 아주 인형 같았고 리암은 역시 다시 보아도 리얼무토를 닮았다. 포수답게 한 등치 하는데다가 언뜻 보면 주먹깨나 쓰게 생긴 타입 말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성낙기 일행은 KOREAN BBQ라고 쓰인 한인식당에 들어갔다. 밑반찬이 마련된 식탁에 앉자 삼겹살이 나왔고 소주와 맥주가 나왔다.
“오늘 마음껏 먹어. 이 삼겹살은 성낙기 때문에 먹는 거야. 잘 던지면 산다고 약속했거든.”
모두들 성낙기를 따라 삼겹살을 상추에 싸고 소주를 목에 넘긴 후, 상추쌈을 입에 넣었다. 가렛 쿠퍼는 몇 차례 입을 우물거리더니 엄지를 치켜들었고 채드 왈라치는 쌈을 너무 크게 싸서 입에 넣어서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있었다. 휴, 저런 머리로 포수를 하려면 꽤나 힘들 텐데.
“성낙기, 오늘처럼 선수들과 따로 보는 건 처음이지? 마이애미에 온 걸 축하한다. 요즘 성적도 아주 좋아서 야구가 재미있을 거다.”
셜리번 코치가 성낙기에게 괜찮은 말을 해준다.
“애는 별생각이 없을 걸요? 경기 중에 보면 정말 생각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아요. 감정 기복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전혀 긴장도 안 하는 거겠죠.”
리얼무토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해준다. 리암은 엄마 소피아가 입에 넣어주는 고기를 우물거리며 잘 먹었다. 엠마도 처음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성낙기가 시범적으로 상추쌈을 싸주자 맛있게 받아먹었다. 아내 소피아와 엠마와 리암을 바라보는 셜리번 코치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성낙기는 잘은 모르지만 나중에 자기도 저렇게 살면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인식당에서 두어 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 사이 채드 왈라치는 취해 버렸고 가렛 쿠퍼도 등치에 어울리지 않게 술이 올라온 모습이다.
“굿바이.”
한인식당 앞에서 셜리번 코치와 헤어졌고 성낙기는 아이들과 헤어지며 10불씩을 손에 쥐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