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074화 동부지구 4위 2
따악.
파울.
다음은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스피드가 빠르지 않다고 하여 자신의 직구를 던지지 못하면 다른 브레이킹 볼도 위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일단은 포심패스트볼이 먹혀야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역시 희망 사항일 뿐이다.
“역시 도미닉 스미스입니다.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포심패스트볼을 밀어서 1루와 2루 사이를 뚫어냅니다. 처음부터 포심패스트볼 일변도의 투구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성낙기 투수, 변화구가 많은 투수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음, 제가 보기엔 의도한 것 같네요. 과연 자신이 가진 포심패스트볼이 뉴욕 메츠 타자들에게 얼마나 먹히느냐도 궁금했을 테니까요. 1, 2번 타자에겐 잘 통했지만 도미닉 스미스처럼 컨디션이 최고조에 다다른 타자에게는 맞아 나가네요.”
“의도된 볼 배합으로 보시는군요. 하긴, 그렇게 던지는 투수들이 꽤 있죠. 3회 정도까지는 강속구 위주로 가다가 4회부터는 브레이킹 볼을 적극적으로 던진다든가.”
“맞습니다.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인데 성낙기처럼 변화구가 많은 투수가 굳이 그런 전략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4번 타자 팀 티보 타자에게도 포심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를 하는지 두고 볼 필요가 있겠어요. 저 투수가 위기가 오거나 경기 후반이 되면 95마일(153km)까지 던지는 투수인데 투아웃 1루에 뉴욕 메츠의 4번 타자를 상대로 어떤 공을 던질지 무척 흥미롭습니다. 팀 티보 선수 0.267의 타율이지만 8홈런에 18타점을 기록 중입니다. 쉽게 승부하다가는 큰 걸 허용할 수 있죠.”
팡.
라이징패스트볼(7cm/10cm).
스트라이크!
“아, 바깥쪽으로 낮게 깔려오다가 솟아오르는 90(144km)마일의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졌네요.”
“저 공은 제구만 잘 되면 쳐내기 힘든 공입니다. 워낙 회전수가 많아서 공의 무브먼트가 크레이지 모드입니다.”
팡.
휘잉.
스트라이크!
성낙기는 이어 몸 쪽에서 내려앉는 체인지업을 던졌고 팀 티보는 배트를 헛돌렸다. 그런 뒤, 몸 쪽으로 포심패스트볼을 뿌렸다. 홈런 타자인 팀 티보가 좋아할 만한 하이패스트볼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1회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리얼무토는 성낙기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걸 기다렸다가 어깨를 토닥거리며 격려하는 동작을 했다. 겨우 1회가 끝났을 뿐인데 그런 동작을 취한 이유는 경기 전의 자신의 충고를 성낙기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성낙기는 주자가 1루에 나갔고 4번 타자가 타석에 섰으므로 전력투구를 한 것뿐인데 리얼무토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 일단은 경기 전에 자신이 말했던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졌고 90마일의 공도 뿌렸다.
‘자식, 그렇게 던질 거면서 뻗대긴.’
리얼무토는 성낙기를 보고 씨익, 웃으며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안타를 하나 맞긴 했지만 1회를 3삼진으로 끝낸 성낙기의 투구는 더그아웃의 사기를 조금이나마 올려놓았다.
“좋아, 성낙기 아주 잘 던졌어. 오늘 완봉 가자.”
셜리번 투수 코치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조금 성급한 면이 있다. 눈앞의 결과만 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낙관해 버리는 아마추어적인 면도 있다.
저러니 피터 감독에게 한 박자 이상 빠른 투수 교체를 권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 자기가 감독이면 퀵 후크를 가장 많이 하는 메이저리그 감독이 되지 않을까. 잦은 투수 교체로 팬들의 원성도 무지 들을 타입이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딱.
투수 땅볼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신더가드는 8구 만에 1회를 정리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뉴욕 메츠 관중들이 박수를 쳤지만 이 정도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무표정이다.
성낙기가 봐도 좀 멋있긴 한 놈이다. 긴 금발을 휘말리면서 1회부터 98마일(157.7km)을 꽂아 넣고 있다. 아마 몸이 더 풀리면 100(161km)마일은 그냥 나오겠지. 성낙기는 마운드로 올라가며 하늘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씨, 나는 왜 스피드가 안 오르는 거야. 너무 심한 거 아냐?”
[세기의 강속구가 84로 오릅니다(최고 구속 149km)]
“뭐야, 변화구는 안 올라? 무엇이든 공평해야 균형이 맞지.”
[포크의 제구력이 71로 오릅니다.]
“아이 참, 포크볼 꼴랑 1이 올랐어.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100에 도달해? 늙어 죽을 때까지는 가능할까?”
[…포심의 제구력이… 86으로 오릅… 니다]
“이제는 상태 창까지 말을 더듬는 거 보니 주기 싫은 거 억지로 주는 거네. 햐, 치사해서 메이저리그고 지랄이고 때려치워 버릴까. 그냥 어디 시골에 가서 자연인으로 사는 게 속 편하지 말이야.”
그때였다. 성낙기는 뒤가 서늘함을 느끼고 되돌아보았다. 누군가 서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아저씨인데 성낙기를 보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어어어……?”
-야, 너 아직도 그러고 사냐? 자식이 만족을 몰라요. 오죽하면 상태창이 저러겠어. 응? 아니 지가 노력을 해서 얻을 생각은 안 하고 경기 중에 생떼를 쓰면 어쩌자는 겨.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봐주겠네.
“아, 아니… 당신은 드랙 실바……?”
-다, 당신? 햐, 애 봐라. 메이저리거 되었다 이거냐? 요즘 애들은 통 은혜를 몰라서 탈이야. 뭐 하냐, 퍼뜩 절 안 하나!
“hurry up!”
그때 주심이 마운드 쪽으로 올라오면서 신경질을 낸다. 눈을 치뜨면서 손가락질 하는 걸 보니 조금 더 개기면 경고 내지, 퇴장이라도 줄 기세다.
리얼무토는 멍하니 서서, 아니, 저놈이 지금 왜 혼자 허공에 대고 말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성낙기는 일단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볼.
드랙실바가 나타나는 통에 포심패스트볼은 포수 리얼무토가 간신히 잡을 만큼 바깥쪽으로 크게 벗어났다. 성낙기가 드랙실바를 바로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한국에 나타났을 때보다 훨씬 세련됐고 머리도 길게 길러서 치렁치렁했기 때문이다. 성낙기는 크게 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뭘, 떨고 그려. 사나이가 간이 그리 작아서 어디다 쓰겠냐.
따악.
중견수 플라이 아웃.
따악.
유격수 앞 내야안타.
따악.
5, 4, 3의 병살타로 2회도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이닝을 지우고 내려왔다. 마운드에서 내려오자마자 타격 연습을 하는 척 선수들이 없는 곳에서 배트를 휘둘렀다. 드랙 실바가 둥실 떠서 성낙기에게 날아왔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전에 다시는 못 볼 것처럼 하고 가시더니 말이죠.”
-그래서. 꼽다 이거냐? 그런 거야?
“누가… 그렇다고 했어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지. 갑자기 떠나서는 사람 마음 뒤숭숭하게 만들더니 느닷없이 나타나서 이 자식, 저 자식하면서 갈구기나 하고. 진정한 스승은 말 한마디도 모범이 되는 법이지요.”
-여전하구나. 하여튼 깝죽거리는 데 뭐있어. 그동안 잘 살았냐?
“제자를 내팽개치고 스승님이라는 분들이 떠났는데 잘 살 턱이 있나요? 아, 그러고 보니 왜 혼자죠? 헤이드 존은요?”
-걔? 말도 마라. 언년하고 바람이 나가지고 나도 얼굴 못 본 지 꽤 됐다.
“바… 람? 귀신도 바람 펴요?”
-바람만 피겠냐? 연애도 하지. 아닌, 근데 이 자식은 우리를 뭘로 보는 거야. 뭐 공중에 떠다니는 공기 정도로 본 거냐? 우리도 인마, 할 거 다 해.
참, 내. 두 사람이 떠날 때 눈물도 날 뻔했는데… 솔직히 마운드 위에서 헤어졌기 때문에 억지로 참았었지. 뭐, 실바가 ‘나중에 메이저리그에 오면 볼지도 모르지’ 그런 식으로 말하고 가긴 했지만 그게 진짜였을 줄이야.
-근데, 너 벤치클리어링을 어떻게 했길래 벌금을 다 맞았냐? 나한테 배운 거 까먹었어?
“최선을 다했는데 카메라까지 속이긴 힘들었어요. 요즘 기계들이 얼마나 성능이 좋은데요.”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아무래도 너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헐, 어엿한 메이저리거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으시네.”
-그래서. 완봉을 해봤냐, 노히트노런을 해봤냐, 아니면 퍼펙트를 해봤냐. 간신히 퀄리티스타트나 하는 주제에 말이 많아.
“못 본 사이에 말씀이 무지 많아지셨네. 어? 말하는 사이에 벌써 공수 교대다.”
노아 신더가드는 2회 말, 마이애미 타선을 상대로 무려 99마일(159km)의 공을 던지며 세 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5회까지 5삼진의 역투다. 날이 좀 풀리자 공은 더 빨라졌고 컨디션도 최고조인 듯 변화구의 각도 예리하다. 성낙기는 7, 8, 9번 타자로 이어진 뉴욕 메츠의 타자들을 삼자범퇴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shit! 저놈은 어디서 튀어나와가지고 저렇게 잘 던지는 거야. 쉴 틈을 안 주네.”
성낙기가 삼자범퇴를 시키는 동안, 15분 여 밖에 흐르지 않았고 타자들은 3구 이내에 타격했다. 치기 좋아 보이는 포심패스트볼의 속도였지만 정타를 맞히기는 쉽지 않았고 볼 카운트가 투 스트라이크가 되면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 커브 등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었다.
신더가드는 뉴욕 메츠 타자들이 안타 하나로 허덕이며 점수를 내지 못하자 열 받은 얼굴로 마운드에 오르더니 급기야 100(161km)마일을 찍으며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또 돌려세웠다. 3회 투아웃까지 무려 7타자 삼진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오, 노아가 드디어 100마일을 던집니다. 타자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볼이 아닐까 싶은데요. 천둥의 신이라는 별명답게 엄청난 공을 뿌리며 하위 타선을 농락하고 있습니다.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요.”
“그렇죠? 3회에 100마일을 던질 줄은 몰랐네요. 굳이 하위 타선을 상대로 저런 공을 던져댈 필요가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전에도 오죽하면 팀에서 공의 스피드를 줄여가며 던지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강하게만 던지면 분명 어깨에 무리가 오게 마련인 거고요. 오늘은 무슨 마음인지 완급 조절 없이 강하게 던지네요. 3회 투아웃까지 7삼진, 혹시 삼진 기록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말씀드리는 순간, 오늘 3회까지 호투 중인 성낙기 투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 선수 보통이 넘죠?”
“드디어 나왔네요. 별종입니다. 투타 겸업에 가까운 활약을 하고 있죠. 투수로서 타석에 서는 것 말고도 대타로도 자주 투입이 되었었거든요. 특히 득점권에서는 엄청나게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제까지 37타석에 들어서서 볼넷 5개를 얻었고 32타수 10안타로 0.312의 타율에 15타점을 기록 중입니다. 그뿐이면 말을 안 하죠. 적은 기회에도 5홈런이나 날렸어요.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마이애미 4번 타자 브라이언 앤더슨의 7개에 이어 리얼무토와 공동 2위의 홈런 개수거든요. 4월 중반까지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브레이킹 볼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는데 요즘은 아주 선구안이 좋아져서 쉽게 물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맞아요. 마이애미에게는 아주 가성비 뛰어난 특별한 선수입니다. 과연 100마일의 공을 상대로 어떤 모습일지 무척 흥분되는 순간입니다.”
성낙기는 신더가드를 힐끗 본 뒤에 배트로 슬쩍 외야를 가리킨 후에 타격 자세를 잡았다.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인지 아니면, 홈런이나 안타를 치겠다는 도발인지 노아 신더가드와 포수 케빈 플라웨키는 헷갈려 했다.
하지만, 어딘지 신경을 긁는 듯한 행동임엔 틀림이 없어서 신더가드는 마운드에서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