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72화 (72/188)

# 72

072화 투수냐 타자냐 5

“와하하! 홈런을 때렸어. 역전 스리런 홈런이야.”

사무실에서 김아경이 소리칠 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사장님,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밖에서 김아경이 기뻐하는 웃음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아, 아녀요. 이 서류가 지하 매장 입찰 계약 건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중재해 주신 덕분에 깔끔하게 끝났습니다.”

“천만에요. 김 부장님이 고생 많으셨어요. 저 낙하산인데 괜찮으실지 모르겠어요. 갑질 없이 성의껏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구구, 사장님 평판이야 세상이 다 아는데 그런 말씀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앞으로 배울 게 많을 겁니다. 잘 가르쳐 주세요.”

김아경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김 부장을 보낸 후에 다시 인터넷 중계방송에 빠져들었다. 세상에 성낙기가 역전 스리런 홈런을 쳤다. 4:3으로 마이애미가 앞서는 순간이었다. 더그아웃에서 축하를 받는 성낙기의 웃음 띤 얼굴이 그렇게 귀엽고 멋있을 수가 없다.

“푸훗! 저렇게 실력으로 보여주는데 욕먹을 일은 없겠어. 아이, 신나.”

성낙기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네티즌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던 참이었다. 한데, 성낙기가 2승을 거두고 홈런과 안타를 친 후엔 많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오늘, 성낙기의 워싱턴을 상대로 한 역전 스리런 홈런은 성낙기의 mlb 편법 진출에 대한 비판을 완전히 잠재울 만한 활약이다.

김아경은 창문 커튼을 걷고 밖을 바라보았다.

20층에서 바라본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데 저 아래 있는 사람들도 자신처럼 성낙기의 활약에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새삼 스포츠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김아경은 김현중 회장의 그룹 승계의 일환으로 삼호백화점 체인망의 사장으로 취임했고 기존에 갖고 있던 주식에 흩어진 주식을 사들여 대주주의 위치에도 올랐다.

야구단을 운영하면서 김아경이 보여준 능력과 결단력 등의 장점을 높이 산 결과였다. 그리하여 김아경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젊은 나이에 삼호그룹의 한 축을 움켜쥔 재벌로 신분이 바뀌었다.

-와하하, 성낙기 홈런 쳤다.

-저 정도면 mlb 진출하는 게 맞지. 앞으로 욕하지 마라.

-니 말이 맞아. 인재는 넓은 곳으로 나가야지.

-까방권 획득이다.

-와 미친 놈, 저기서 스리런을 치냐. 정말 도라이는 도라이다.

-오타니 이후로 투타 겸업 나왔네.

-오타니는 첫 해가 가장 좋았지. 투타 겸업이 체력적으로 힘들어.

김아경도 한국의 네티즌들도 성낙기의 홈런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가자마자 2승을 올리더니 결정적인 홈런까지 때려내고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워싱턴 내셔널스의 관중이 많은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는 무거운 공기가 깔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벤치클리어링에서 자존심이 상한 데다 역전 홈런까지 맞았다. 이런 경기를 지면 후유증이 크다.

마이애미는 좌완의 딜런 피터스를 8회 말에 내보내 잠그기에 들어갔고 계획대로 실점 없이 8회를 넘겼다.

그리고 9회 초 마이애미의 공격을 실점 없이 막은 9회 말, 워싱턴의 마지막 공격에서 투아웃에 나온 라파엘 바티스타는 191cm에 97kg의 마이애미 마무리 야를린 가르시아와 투 볼 투 스트라이크의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더 이상 서로가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걸 느낀 투수와 타자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타자는 투수가 승부구를 던지리라는 걸 알았고 투수 역시 타자가 공격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적으로 싸우는 투수와 타자는 마치 텔레파시가 통하기라도 하듯 던지고 쳤다. 그리고.

따악.

바티스타가 친 공이 중견수 쪽으로 날아갔고 중견수 마그뉴리스 시에라는 뒤로 물러나다가 워닝 트랙 앞에서 타구를 잡아냈다. 이로서 4:3으로 마이애미의 역전 승. 워싱턴 내셔널스로서는 치욕의 날이기도 했다.

***

“성낙기, 난 놈 아닙니까? 거기서 스리런을 치냐.”

우천으로 경기가 연기된 날, 마영진 단장과 허봉호 감독, 그리고 이계현 투수 코치와 박종태 타격 코치는 오랜만에 삼겹살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박종태 타격 코치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성낙기의 역전 스리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왜 아니겠어. 오타니도 여기저기 잔부상에 체력 소모로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마당에 또다시 신인류가 등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마영진 단장도 성낙기의 활약에 잔뜩 고무된 모습이었다. 이계현 투수 코치는 도봉산 막걸리와 닭도리탕을 좋아하던 성낙기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사실, 성낙기가 떠나고 나서도 투수진은 나쁘지 않지만 성낙기처럼 강렬한 모습은 없다. 위기 때마다 올라가서 해결하고도 히죽거리는 그런 강심장은 메이저리그에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잘 갔어. 그런 놈은 큰물에서 놀아야 해. 약간 맛은 갔지만 재미있는 선수였지. 첫 승을 하고 전화가 왔더군. 감독님 때문에 기회를 얻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이지. 그래도 그놈이 위아래는 아는 놈이야.”

“그래요? 저한테도 전화해서는 한국 시리즈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감독님이 술도 안 사줬다고 툴툴대던데요?”

“언제 전화 왔는데?”

“어제요.”

마영진 단장의 말에 허봉호 감독은 말없이 술을 마시고 술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얼굴이 바짝 달아올라서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영진 단장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는지 눈만 껌벅거렸다.

‘아니 근데 이 자식은 거기까지 가서도 나를 모함해?’

“내가 말했잖아, 약간 맛이 간 놈이라고.”

허봉호 감독은 부글거리는 화를 억누르면서 애써 태연한 척 했다. 2021년 KBO리그 3위를 달리는 감독의 위상이 있지, 제자의 한 마디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

mlb 사무국은 징계 위원회를 열어 어제 있었던 벤치클리어링의 잘잘못을 가리고자 했다. 위원들이 있는 사무실에서는 여러 차례 벤치클리어링 장면이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알칸타라의 몸 쪽 공은 고의성이 짙습니다. 변화구도 아니고 포심패스트볼인데 저 정도로 제구가 없는 투수가 아니죠.”

“고의성이 있다지만 브라이스 하퍼의 1회 세레모니가 너무 과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화가 나지 않는 선수는 없을 거예요.”

“주먹다짐까지 갔는데 브라이스 하퍼가 일방적으로 맞아서 워싱턴 팬들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게 1:1이었으면 그 정도는 아닐 텐데 Sung이 거들었어요.”

“리플레이를 보면 알칸타라의 편을 들어 같이 공격했다기보다는 브라이스를 말리는 동작들이 대부분이죠.”

“사실은 그것 때문에 브라이스가 맞은 겁니다. 말리는 척 하면서 저렇게 브라이스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죠. 아주 교묘하게 말이죠.”

“벤치클리어링에서 말리는 선수에게 강한 징계를 내린 바가 없습니다. 브라이스와 알칸타라는 명백한데 Sung은 애매해요.”

수없이 리플레이를 돌려봐도 성낙기가 브라이스 하퍼를 공격하는 동작은 없었고 말리는 동작만 있다. 하지만 그 동작 때문에 브라이스 하퍼는 일방적으로 맞았고, 그에 책임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브라이스 하퍼 - 3경기 출장 정지 및 벌금 1만 달러.

샌디 알칸타라 - 10경기 출장 정지 및 벌금 1만 달러.

성낙기 - 경고 및 벌금 5천 달러.

마이애미 팬들은 성낙기의 징계는 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말리기만 했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말이다. 그러나 징계 위원회는 성낙기 때문에 일이 더 커졌다고 봤고 벤치클리어링 후에 브라이스 하퍼가 병원에 가서 mri 및 x레이를 찍고 뇌진탕 검사까지 받는 등의 피해를 참작했다.

성낙기는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많이 반성했다. 전에 드랙 실바가 가르쳐 준, 전혀 증거가 남지 않는 교묘한 움직임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다음엔 리플레이로도 잡아낼 수 없는 선의의 가해자가 되어야지.

오늘은 성낙기의 선발이다. 상대는 어제 우여곡절 끝에 잡아낸 워싱턴 내셔널스, 아마 오늘은 칼을 갈고 나올 것이다.

“어제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침착하게 던져. 아마, 신경질적으로 나올 텐데 거기에 휘말려서는 안 돼.”

셜리번 투수 코치는 불펜에서 몸을 푸는 성낙기에게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성낙기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제의 일은 아예 기억조차도 못하는 것 같이 보였다. 셜리번 코치는 한 차례 갸우뚱하고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1회 초가 득점 없이 끝났고, 1회 말 수비에 성낙기가 마운드에 올랐다.

파앙.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몸 쪽 포심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은 성낙기에게 어제의 후유증은 찾아볼 수가 없다. 1번 타자 트레아 터너는 어제 벤치클리어링 후에 성낙기를 찾아다녔다. 싸움을 말리는 척 했지만, 자신이 볼 때는 브라이스 하퍼가 힘을 못 쓴 이유는 코리아에서 온 투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끓는 속을 달래면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었다. 오늘 이렇게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시건방진 놈, 맘껏 두들겨 주겠다.’

트레아 터너는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리며 성낙기의 2구 슬라이더를 골라냈다. 원 볼 원 스트라이크. 3구는 몸 쪽으로 오는 포심패스트볼이었다. 트레아 터너가 판단하기론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오는 공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휘잉.

스트라이크!

“뭐야, 포심패스트볼이 아니었어?”

트레아 터너는 포수 미트에 박힌 공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의 발사각이나 투구 폼이 초구와 똑같아서 타자 앞으로 올 때까지는 포심패스트볼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배팅 포인트에서 가라앉았다. 그것도 초구보다 10마일(16km)가까이 느려서 배트를 휘두른 후에야 공이 들어온다.

‘하, 좆나 얍삽하게 던지네. 저거 지금 나 보고 웃는 건가?’

트레아 터너가 보기에 마운드의 성낙기는 싱글벙글이다. 그 모습에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트레아 터너였다. 포수 리얼무토는 바깥쪽 커브로 유인구 사인을 보냈다. 타자가 체인지업에 속는 걸 보니 스트라이크 존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라면 또 딸려올 것 같다.

하지만, 성낙기의 생각은 달랐다. 여기서 유인구를 던져 배트가 딸려 나오지 않으면 투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어서 그 다음 공은 더 어려워진다.

워싱턴 내셔널스 타자들이 어제의 앙금을 가지고 있을 게 틀림없는 만큼 빠른 승부로 당황스럽게 만드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성낙기는 고개를 내젓고 다시 사인을 냈다. 그리고 전력투구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바깥쪽 91(146.5km)마일의 속구가 홈플레이트에 걸치며 낮게 파고들었다. 타자에게는 가장 멀게 느껴지는 코스였고 트레아 터너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불만 섞인 몸짓을 대신하다가 타석에서 물러났다.

다음 두 타자 역시 내야 땅볼과 2루수 플라이로 아웃, 1회부터 산뜻한 출발이다.

2회 초가 시작되었고 워싱턴의 선발 코다글로버는 1회와 다름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엔 마이애미의 간판타자 브라이언 앤더슨이 올라왔다.

2020년 성적 0.288에 27홈런 94타점으로 팀의 중심타자이자, 리얼무토가 팀의 정신적 지주라면 브라이언 앤더슨은 팀을 이끌어가는 성적으로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는 타자였다.

브라이언 앤더슨이 타석에 섰고 코다 글로버는 포수와 사인을 나눴다. 그리곤 곧바로 와인드업, 강력한 포심패스트볼이 홈플레이트로 날아들었다.

“악!”

공이 날아듦과 동시에 엉덩이를 맞은 브라이언 앤더슨이 비명을 질렀고 투수인 코다글로버는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할 일을 했다는 표정으로 타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할 테면 해보라는 도전적인 눈빛과 자세였는데, 브라이언 앤더슨은 투수 쪽을 힐끗 보더니 배트를 놓고 순순히 1루로 뛰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