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71화 (71/188)

# 71

071화 투수냐 타자냐 4

알칸타라는 스리런 홈런을 충격을 받은 뒤로 오히려 배짱이 생겼는지 거짓말같이 제구가 잡혔고 원아웃에 안타 하나를 더 맞고는 다음 타자를 병살로 돌려세웠다.

경기는 1회부터 0:3으로 좋지 않은 흐름을 타고 있다.

마이애미의 타선은 3회까지 로메로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고 안타 한 개로 묶이고 있었다.

1회 말 브라이스 하퍼의 홈런 때 열이 받은 마이애미의 타자들은 어딘지 모르게 조급함이 엿보이며 큰 스윙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3회 말 워싱턴 내셔널스의 공격 차례가 왔고 원아웃 1루에서 브라이스 하퍼가 타석에 들어섰다.

리얼무토는 사인을 낸 뒤, 좌타자인 브라이스 하퍼의 몸 쪽 높은 곳에 글러브를 대고 있었다. 알칸타라가 96마일(154~155km)의 공을 브라이스 하퍼의 몸 쪽으로 뿌렸다.

퍽!

“악!”

퍽, 하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브라이스 하퍼가 비명을 질렀고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알칸타라가 던진 공은 브라이스 하퍼의 몸통을 정확하게 맞췄고 하퍼는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면서 알칸타라를 노려보았다.

“뭐? 뭐, 새끼야.”

알칸타라가 마운드에서 조금 걸어 내려오며 맞불을 놨고 브라이스 하퍼는 배트를 내동댕이치면서 마운드로 뛰어갔다. 알칸타라도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마주 뛰어왔다.

마이애미의 더그아웃은 빠르게 움직였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칸타라가 보복구를 던지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성낙기는 누구보다 먼저 움직였다.

브라이스 하퍼가 공을 맞는 순간, 더그아웃 앞에 나와 뛰어 들어갈 준비를 했고 브라이스 하퍼가 마운드로 향하자 성낙기도 같이 뛰어갔다.

“뛰어!”

성낙기가 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본 가렛 쿠퍼가 선수들에게 소리치며 성낙기의 뒤를 따랐고 양쪽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알칸타라는 브라이스 하퍼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오른손 주먹을 날렸고 브라이스 하퍼는 주먹을 피하고 나서 바로 반격했다. 서로 주먹질이 여러 차례 오갔지만 흥분한데다가 상대의 움직임 탓에 정확하게 맞은 건 하나도 없었다.

‘아, 시발. 왜 이렇게 안 맞아.’

알칸타라가 주먹을 휘두르며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브라이스 하퍼의 움직임이 한순간 딱 멎었다.

알칸타라는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냅다 주먹을 휘둘렀고 몸무게가 실린 주먹은 브라이스 하퍼의 턱에 정통으로 꽂혔다.

덜컥!

브라이스 하퍼는 알칸타라의 주먹을 맞고 아찔해짐과 동시에 다리의 힘이 풀려 무릎을 구부렸다.

하지만 브라이스 하퍼의 몸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제압당하고 있었다. 뒤에서 양쪽 겨드랑이에 넣고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팔은 브라이스 하퍼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브라이스 하퍼의 얼굴에 알칸타라의 연타가 꽂혔고 브라이스 하퍼는 mlb 벤치클리어링에서 아주 드문,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그때, 양쪽 벤치에서 나온 선수들이 마운드에 다다랐고 그제야 성낙기는 브라이스 하퍼를 놔줬다.

풀썩.

브라이스 하퍼는 다리의 힘이 풀리고 정신이 몽롱한 채, 바닥에 쓰러졌고 알칸타라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브라이스 하퍼의 몸에 올라탔다.

그 순간, 워싱턴 내셔널스 선수들이 알칸타라를 잡아 쓰러뜨렸고 알칸타라는 바로 일어나 뒤로 물러서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양쪽 더그아웃에서 나온 선수들이 엉키며 서로 몸싸움을 하고 말리기도 하면서 마운드는 피아를 가리기 힘든 난장판이 되었다.

성낙기는 어느새 가렛 쿠퍼와 브라이언 앤더슨 뒤로 물러나 숨은 것 같지 않게 몸을 숨겼고 주심과 심판, 그리고 양쪽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을 뜯어말릴 때까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브라이스 하퍼가 일어나 뒤늦게 억울한 말들을 토해냈지만 상황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주심은 알칸타라와 브라이스 하퍼에게 동시 퇴장 명령을 내렸고 벤치클리어링은 그걸로 일단락이 되었다.

-알칸타라 펀치 좋네. 브라이스 하퍼가 일방적으로 맞았어.

-그러게. 브라이스 하퍼도 한가락 하는 싸움꾼인데 알칸타라는 격투기라도 배운 거야?

-아냐, 아까 한국에서 온 성낙기가 브라이스 하퍼를 잡았어. 그 뒤로 알칸타라의 주먹이 꽂히기 시작했지.

-잘 봤어. 이번 벤치클리어링의 숨은 공로자는 성낙기야.

-브라이스 하퍼는 뒤를 잡혀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속이 시원해. 오늘 경기에 져도 뭐라 하지 않겠어.

-맞아, 브라이스 하퍼 놈은 평소에 건방이 하늘을 찔렀지. 제대로 응징해준 거야.

-성낙기는 레슬링을 배운 게 분명해. 브라이스가 꼼짝도 못했어.

-나이스! 성낙기. 앞으로 좋아하게 될 거야. 우리가 제대로 된 싸움꾼을 얻은 것 같아.

마이애미 말린스의 홈 페이지는 홈런 세레모니를 시원하게 복수한 알칸타라와 성낙기에 대한 칭찬으로 도배되었고,

-뭐야, 브라이스가 맞은 거야?

-맞았어. 그것도 좆나게 맞았어. 결국엔 다리가 풀려 버렸지.

-브라이스가 저렇게 당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알칸타라가 본래 그런 놈이었어?

-아니야. 브라이스는 행동을 방해 받았어.

-리플레이를 자세히 보면 성낙기라는 투수가 브라이스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지. 그런 뒤에 두들겨 맞았고.

-아, 시발. 워싱턴 팬인 게 쪽팔리네.

-자존심 상해 미치겠어. 브라이스는 마지막에 쓰러져 버렸지

-저 동양인 놈을 거세 시켜야 해. 여긴 아메리카라고.

-알칸타라와 성낙기는 서로 약속한 듯이 각자 할 일을 했어. 성낙기는 잡고 알칸타라는 패고. 복수를 해야만 해.

워싱턴 내셔널스 팬들은 열폭이었다. 야구도 야구지만 상대 팀 투수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브라이스가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까 누구였지? 처음 보는 아시아 놈이었어.’

워싱턴 더그아웃에 풀 죽은 모습의 브라이스 하퍼는 마이애미에 새로 온 투수라는 걸 알아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뒤에서 몸통이 잡히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이 떠올랐다. 발버둥을 쳐봐도 상체가 완전히 묶이는 바람에 알칸타라에게 꼼짝없이 얻어맞았다.

그는 얻어맞던 장면을 떠올리고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반면에, 마이애미 더그아웃은 이 벤치클리어링으로 사기가 오를 대로 올랐고 알칸타라에게 엄지를 치켜드는가 하면 성낙기에게는 ‘Super great!’을 연발했다.

벌써부터 성낙기에게 경외의 눈길을 보내는 선수도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성낙기가 아니었으면 알칸타라가 브라이스 하퍼를 복날 개 패듯이 패는 그림은 나올 수가 없다는 걸.

***

마이애미 타선은 5회에 엔니 로메로로부터 5번 타자 리얼무토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6번 타자 시에라는 3루수 땅볼로 아웃, 원아웃에 2루의 득점권 찬스가 만들어졌다.

7번 타자 스탈린 카스트로가 적시타로 2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경기 스코어 1:3으로 따라갔다.

이어, 8번 타자 카메론 메이빈이 포수 파울플라이로 아웃되었고 투아웃에 바뀐 투수 닉 위트그랜이 타석에 들어섰지만 삼구 만에 삼진 아웃이었다.

닉 위트그랜은 5회 말을 실점 없이 막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알칸타라는, 퇴장으로 승리투수가 되기는 글렀고 4이닝 3실점으로 성적도 다소 아쉬웠지만 브라이스 하퍼를 때려눕힌 것으로 보상 받았다.

그리고 워싱턴의 로메로는 6회까지 던졌고 마이애미는 7회엔 불펜을 가동했다.

208cm의 키를 자랑하는 팬 파일러였다.

98(158km)마일까지 포심패스트볼의 스피드가 나오고 슬라이더 또한 90(144km)마일에 육박하는 투 피치 파이어볼러인데, 아쉬운 건 제구가 들쭉날쭉하다는 거다.

하지만, 잘 긁히는 날엔 어떤 타자도 쉽게 공략이 안 되는 무적의 포스를 풍기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은 긁히는 날인가보다.

파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더니 유격수 땅볼과 중견수 플라이로 6회를 깔끔하게 막아내고 성큼성큼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7회엔 워싱턴도 불펜투수가 나왔고 마이애미 타선이 최선의 집중력을 발휘했지만 볼넷 하나를 얻어내는 데 그쳤다.

마이애미에게 찬스가 온 것은 8회였다.

5번 타자 리얼무토가 또다시 안타를 쳤고 6번 타자 시에라가 중견수 플라이 아웃으로 기회를 날리나 싶었는데 7번 타자 카스트로의 내야안타로 원아웃 1,2루의 찬스가 만들어졌다.

8번 타자는 오늘 3타수 무안타의 메이빈이었고 시즌 성적 1할 8푼 7리로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특히 요즘 폼이 커졌는지 나쁜 볼에 배트가 나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수비가 좋아서 계속 기용했지만, 이 상태라면 마지막 찬스마저 날릴 확률이 높다. 워싱턴 내셔널스는 투수를 교체했는데 그는 멕시코 출신의 세자르 바르가스였다.

공은 95(153km)마일 정도로 빠르지 않지만 완급조절과 마운드 운영능력이 좋고 커브와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는 투수였다.

“감독님, 스캇 반 슬라이크가 어떨까요?”

워마린 타격 코치가 피터 감독에게 대타를 권했다. 스캇 반 슬라이크는 노장이지만 한때 서로 데려가려고 할 만큼 이름값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36세였는데 좀처럼 기량을 회복하지 못해 백업으로 1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스캇? 스캇은 세라르 바르가스랑 상성이 안 맞아.”

“그럼……?”

“쟤를 내보내 보자.”

워마린 코치는 피터 감독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가 뭐라고 불펜 앞에서 배트를 들고 붕붕거리는 성낙기가 보였다.

“Sung, 말입니까?”

“맞아, 준비 시켜.”

“아니, 아직 검증도 안 된… 그는 투수입니다.”

“알아. 내가 책임진다.”

피터 감독의 단호한 말에 워마린 코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성낙기를 불러 대타를 통보했다. 성낙기는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헬멧을 쓰고 배트를 한 차례 더 돌린 뒤 타석으로 향했다.

“어우… 마이애미의 피터 감독이 성낙기 투수를 대타로 냅니다. 의외의 용병술입니다.”

“흥미롭군요. 스캇이나 오스틴 노라 같은 선수들이 있는데 투수로 뛰는 선수를 대타로 내는 경우는 거의 처음 봅니다.”

“음… 가만 보니 저 선수가 타율은 상당한데요. 홈런도 친 적이 있고 찬스에 강한 스타일 같긴 하네요.”

“오타니 쇼헤이에 이어서 투타겸업이 또 등장하나요? 오타니 선수는 지난 시즌 후반기에 체력저하로 고전했었는데요. 경기는 아주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성낙기는 타석에 서서 주심에게 살짝 인사를 하고는 투수를 바라보며 배트를 돌렸다. 세자르 바르가스가 성낙기의 눈빛을 마주 받으며 투지를 불태웠다.

아까 벤치클리어링 때 가장 먼저 튀어나와서 브라이스 하퍼를 붙들었던 놈 아닌가. 그 바람에 브라이스는 치욕을 당했고 선수단의 분위기도 잡쳤다. 오늘 경기에서 행여 진다면 두고두고 속이 쓰릴 것이다.

“쥐똥만 한 새끼가 날 쳐다 봐?”

세자르 바르가스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성낙기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래봐야 세자르의 키는 188cm이고 성낙기는 예전보다 키가 자라서 182cm였다. 세자르의 눈빛을 받은 성낙기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팡.

스트라이크.

세자르는 바깥쪽 포심패스트볼로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갔다. 이어 던진 슬라이더는 가운데로 낮게 떨어지며 볼. 3구째에 성낙기의 몸 쪽 높은 볼로 스윙을 유도했다.

하나, 성낙기는 요지부동, 움직임이 없었다.

어쭈, 제법인데? 하는 표정의 세자르가 바깥쪽 커브로 볼 카운트를 잡으러 왔다. 솟구쳐 오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세자르의 주 무기였다.

따악.

성낙기가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고 밀어 친 공이 우익수 쪽으로 날아갔다. 바뀐 우익수 테일러가 공을 보면서 펜스를 향해 달렸고 성낙기는 배트를 던지고 1루를 향해 뛰어나갔다.

“어어……?”

“제대로 맞았어.”

“넘어간다.”

더그아웃에서 바라보던 선수들이 입을 벌리고 타구를 쫓을 때 테일러는 담장 앞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고개를 떨궜다.

성낙기는 1루 베이스를 돌며 주먹을 들어보였고 마이애미의 더그아웃은 난리가 났다. 타석에 섰을 때 아, 좋은 찬스 날리는구나 싶었는데 스리런 홈런을 때려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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