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67화 (67/188)

# 67

067화 마이애미 말린스의 선발투수 5

“이야, 드디어 그 유명한 뉴욕 메츠랑 붙어보는구나. 채드 너 오늘도 백업이니?”

“에이… 씨… Fuc…….”

채드 왈라치가 욕을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성낙기는 그저 채드 왈라치와 투 포수 짝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물어본 건데 괜히 지 혼자 난리다.

하지만 성낙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타격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겠다 싶다.

“괜찮아. 곧 타격도 좋아질 거야.”

“너 마운드에 안 가고 뭐하냐. 다들 기다리잖아.”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의 말을 듣고 허겁지겁 마운드로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야수들도 마이애미 복장이 아니고 투수는 어디서 많이 보던 앤데 역시 복장이 다르다.

마운드에선 스티븐 마츠가 1회 초를 위해 연습 구를 던지고 있었다. 성낙기가 마운드로 향하자 주심이 급히 제지했다.

“hey!!”

성낙기가 돌아보자 주심이 마이애미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제야 채드 왈라치에게 속은 것을 안 성낙기가 주심에게 손을 흔들며 알았다는 모션을 취했다.

주심은 성낙기의 그 행동을 반항으로 파악하고 경고를 날렸다. 불펜으로 돌아오자 채드 왈라치가 화가 완전히 풀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성낙기는 웃고 있는 채드 왈라치를 한 손은 사타구니에 넣고 한 손은 어깨를 잡은 다음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채드 왈라치는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공중에 떠버린 자신을 보고 놀랐다.

191cm에 105kg의 채드 왈라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역도하듯 들어 올리는 성낙기의 괴력을 보고 주변에 있던 불펜 투수와 투수 코치도 입을 쩍 벌렸다.

팔과 어깨 근육이 7단계까지 오르면서 불어난 엄청난 상체의 힘이 100kg 정도는 종잇장처럼 들어 올려 버린 것이다.

“Help!!”

채드 왈라치가 애원하듯 소리쳤고 성낙기는 그를 내려놓은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등을 툭툭 두드렸다. 얼이 살짝 빠진 채드 왈라치가 공손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가서 공 받을 준비를 했다.

***

포심패스트볼 최고구속 97마일(156km)를 던진 적이 있다는 좌완의 스티븐 마츠는 역시 대단했다.

한창 때보다는 구속이 약간 줄었다지만 그는 여전히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강속구의 좌완 투수였고 92(148km)마일의 스피드로 던지는 싱커와 투심패스트볼에 마이애미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1회 초에 타석에 나간 타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조리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성낙기가 올라갔지만, 시티필드의 관중들은 먼 닭을 보듯 한국에서 온 투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때 부상에 시달렸다가 완벽하게 돌아온 스티븐 마츠와 상대나 되겠는가 하는 표정들이었고 그들의 머릿속에서 성낙기의 패배는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안됐어. 코리아에서 온 투수라는데 오늘은 쓴맛을 보겠군.”

“그러게 말야. 스티븐 마츠를 만나게 될 줄이야.”

“훗, 저런 강속구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을 거야.”

“너무 깔봐선 안 돼. 피라델피아와 경기에선 7이닝 1실점으로 던진 투수래.”

“그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뉴욕 메츠는 다르지. 타선 자체의 레벨이 달라.”

“맞아. 필라델피아는 리빌딩 중이지. 햇병아리들이고.”

관중들은 성낙기의 연습 구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관점에서만 경기를 예측하면서 동양의 한 투수를 불쌍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뉴욕 메츠에는 스티븐 마츠 말고도 노아 신더가드, 맷 하비와 제이크 디그롬이라는 강속구 3총사가 버티고 있었다. 한때 부상에 시달렸던 디그롬은 낮은 액수의 FA로 메츠에 눌러앉았고 지난 시즌에 완벽한 반등에 성공했다.

맷 하비 역시 2018을 끝으로 FA를 신청한 뒤, 메츠에 눌러앉았다. 더 큰 금액을 제시한 구단도 있었지만 눌러앉은 이유는 월드시리즈 우승 확률이 높다는 이유가 컸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고 2021년이 된 지금도 100마일을 던지는 강속구 삼총사의 구위는 여전했다. 샌디 앨더슨 단장은 올해야말로 뉴욕 메츠의 우승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투수력이 막강했고 리빌딩의 막바지인 타선도 작년 후반기부터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약점이 있다면 불펜인데 마무리 쥬리스 피밀리아가 건재한 반면, 나머지 불펜 투수들의 강력함은 리그의 다른 강팀에 비해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팀은 어디에도 없다. 그 약점을 타격이나 선발 투수들이 이닝을 먹어주면서 지워 나가면 되는 것이다.

1번 타자 아메드 로사리오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난 시즌 타율 0.288에 22도루의 전형적인 1번 타자이면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젊은 선수다. 나이로 보나 mlb 경력으로 보나 작년보다 올해의 성적이 더 기대되는 타자였다.

“잘 치게 생겼네. 얼굴에 털도 되게 많아.”

성낙기는 뉴욕 메츠라는 강팀을 맞아 약간 긴장되는 감정을 그런 식으로 풀고 있었다. 말을 해놓고 보니 정말 잘 치게 생겼다.

타격 자세도 활이 튕겨지긴 전의 탄력적인 모습에다가, mlb 타자들은 배트를 짧게 잡는 법이 없는 풀스윙 스타일이어서 상대 투수에게 늘 위압감을 준다.

하위 타선이라도 맞으면 바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KBO와 다른 점이었다. 포수 리얼무토가 초구로 바깥쪽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성낙기는 고개를 저었다. 리얼무토는 바깥쪽을 포기하지 않은 채, 커브,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 사인을 냈다.

‘아니, 무슨 포수가 겁이 많아. 초구엔 무조건 직구지.’

성낙기가 사인을 다시 냈고 초구는 포심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가 꽂혔다. 그러자, 리얼무토가 갑자기 마운드로 달려왔다.

“야, 너 왜 사인대로 안 던져. 네가 저 타자 성향을 알아?”

“아니, 몰라.”

“그럼 내 사인대로 던져. 이건 다 너를 위한 일이야.”

“포심패스트볼 위주로 던지고 싶다. 도망 다니는 볼 배합은 싫어.”

“변화구를 던진다고 해서 아무도 널 도망자라고 하지 않아. 굳이 타자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필요는 없어. 휘어지는 건 지는 게 아니야.”

J.T 리얼무토는 또 철학자 같은 소리를 하고 내려갔다. 말을 하도 그럴싸하게 해대는 바람에 성낙기의 똥고집이 잘 통하지 않는다. 성낙기는 언제고 한 번 속사포 같은 한국 욕으로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짐하면서 사인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몸 쪽 투심패스트볼.

따악.

몸 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공을 아메드는 팔꿈치를 몸통에 붙이면서 쳐냈고 유격수 윌머 프로레스의 키를 넘어가 버렸다.

배트의 손잡이 부분에 맞은 먹힌 타구였지만 힘도 좋은 데다 팔로스로우가 물 흐르듯 이어져서 예상보다 공이 뻗었다.

성낙기는 1회 말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KBO에서 이런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빗맞은 타구였는데도 안타가 됐어. 역시 운동 능력이 다르군.’

리얼무토의 볼 배합은 나쁘지 않았다. 타자가 워낙 잘 쳤을 뿐이다. 성낙기는 2번 타자를 맞아 포심패스트볼과 커브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후에, 몸 쪽 라이징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아냈다.

“투수의 재능은 주자를 내보낸 뒤에 나타나게 마련이지. 1회 초 선두타자에게 빗맞은 안타를 허용한 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빠른 승부로 다음 타자를 잡아냈어.”

“셋 포지션인데도 제구에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피터감독과 셜리번 코치는 안타를 허용한 후의, 성낙기의 제구와 스피드, 멘탈 등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같은 팀인 그들에게도 성낙기는 낯선 투수였다.

위기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알아야 교체 타이밍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에 안타를 맞은 성낙기는 전혀 변함이 없다.

오히려 2번 타자를 상대할 때는 더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성낙기는 감독과 코치가 유심히 살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양, 좌타자인 3번 타자 도미닉 스미스에게는 바깥쪽으로 낮게 깔리는 투심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더니 3구째 몸 쪽 포크볼로 헛스윙을 유도해 냈다.

‘체인지업 사인을 냈는데 포크볼을 던져? 정직하지 못한 놈이야.’

리얼무토는 교타자 도미닉 스미스를 잡은 것에 안도하면서도 사인과 다르게 던진 성낙기를 노려보았다. 그가 아는 한, 루키가 자신에게 개기는 경우는 없었다.

자신은 마이애미를 이끌어가는 안방마님인 동시에 감독이나 코치 다음의 위상으로 선수들에게 대접 받고 있다.

그런데 이제 막 알을 터뜨리고 나온 햇병아리가 사인을 무시한다? 아무리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모인 자유분방한 메이저리그라 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로 입은 상처보다 깊다고 했어, 하물며 사인을 무시한 포크볼은 나에게 커터 칼이나 다름없다.’

리얼무토는 도미닉 스미스가 배트를 땅에 내리치고 들어가자, 칼로 베이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을 쥐어뜯었다. 성낙기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며 공을 되돌려주는 리얼무토의 반응을 보고 열 받은 것을 알았다.

‘하, mlb에 또라이가 많다더니 정말이네. 포크 좀 던졌다고 저러는 거야? 포크로 찍어버릴라.’

하지만, 이런 약간이 신경전은 4번 타자 팀 티보가 타석에 나타나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190cm가 훌쩍 넘는 키는 그렇다 쳐도 알려지기론 115kg이 넘는다는 그가 들어서자 타석이 꽉 찼다.

한 깡 한다는 리얼무토조차 살짝 기가 죽는 거구에다 미식축구의 쿼터백 출신으로 힘이 장사다. 2, 3년 전부터 mlb에서 슬슬 분위기를 타더니 급기야 지난 시즌엔 32홈런으로 잠재력이 만개했다.

더구나 후반기에만 20홈런을 터뜨린 괴물이니 올해 부상만 없다면 대단한 성적을 남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단점이라면 평소 말이 없는 대신에 모든 상황을 너무 진지하게만 생각하는 바람에 농담도 진담으로 받고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입 꼬리를 올리면 비웃는 걸로 착각한 나머지 벤치클리어링을 하려고 드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성격이다.

팡.

“스트라이크.”

몸 쪽으로 던진 포심패스트볼이 무릎을 파고들었다.

“약간 낮지 않았나?”

“아니야, 높았어.”

“높았다고요?”

“그래.”

“하아, 그럼 방금 그 볼이 제 허리 위로 통과했다는 말입니까?”

“아니, 낮지 않았다고.”

“분명 높다고 하셨는데 이젠 낮지 않았다고 하시다니요. 말씀이 이상…….”

“너 경고다. 한 번만 더 말꼬리 물고 늘어지면 퇴장이야.”

‘자기가 방금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어.’

말하자면 팀 티보는 이런 성격이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도 그 체중을 유지하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다. 성낙기는 다시 같은 코스로 리얼무토보다 먼저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이미 몸 쪽 낮은 볼에 신경이 쏠려 있으니 그걸 이용하자는 생각. 리얼무토는 마지못해 미트를 몸 쪽에 갖다 댔고 성낙기는 헤이드 존의 (80/100)까지 스탯이 오른 체인지업을 던졌다.

슈욱!

딱.

팀 티보가 마지막에 가라앉는 공을 따라가면서 배트에 맞췄지만, 공의 윗부분에 맞는 바람에 투 바운드로 유격수에게 잡혔다. 1루에서 여유 있게 아웃, 안타를 내주고도 깔끔하게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성낙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강한 땅볼 타구였어. 초구에 신경전을 벌이고도 잘 가라앉은 체인지업을 때려냈다.’

성낙기의 생각대로 145km의 포심패스트볼 다음에 던진 체인지업이 130km에 불과했음에도 타이밍을 잃지 않고 맞춰냈다는 것은 성낙기를 놀라게 했다. 성낙기의 공에 적응이 되면 방금보다 더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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