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61화 (61/188)

# 61

061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

따악.

기다리지 않고 바로 스윙하는 디 고든, 잘 맞은 공은 1루수 강습 타구였는데 다행히 여태호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성낙기는 바깥쪽 공을 망설임 없이 때려내는 걸 보고는 간담이 서늘했다.

이건 그냥 기다렸다는 듯 때려내지 않는가. 코스만 좋았으면 깨끗한 안타였을 것이다. 다음 타자는 크리스 테일러로 알아주는 중장거리 타자다. 성낙기는 변함없이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파앙.

스트라이크.

디 고든이 적극적으로 때렸다가 죽는 걸 보고는 초구는 참아보리라 생각했던 크리스 테일러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흘렀다. 가만 보니 140km대 초반의 공이다.

mlb에서 150km대의 공만을 주구장창 봐왔던 것에 비하면 충분히 공략이 된다. 하지만, 상황은 크리스 테일러의 생각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팡.

라이징패스트볼(6cm/10cm).

웃!

다음 공은 몸 쪽으로 오는 평범한 포심패스트볼이었는데 타자 앞에서 솟아올랐다. 크리스는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보다 한참 아래였다. 그는 곧 생각을 수정했다.

이런 공을 뿌린다면 결코 만만한 투수가 아니다. 역시 선발로 나온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공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크리스는 나가려던 배트를 겨우 거둬들였다. 유인구가 그럴 듯하다. 다음 공은 또다시 바깥쪽으로 날아왔다. 초구의 궤적과 같은 포심패스트볼이 분명했다. 크리스는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휘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 이런. 체인지업이라니.’

성낙기의 4구는 포심패스트볼의 궤적으로 오다가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타자 앞에서 느려지며 떨어지는 커맨드가 일품이다.

“이봐, 조심해야겠는 걸?”

크리스 테일러는 타석으로 걸어오는 버스터포지에게 가볍게 대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버스터 포지도 보았다. 포심패스트볼이 위력적이지 않지만 변화구가 좋아 보였다.

[세기의 강속구가 79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78로 오릅니다]

버스터포지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상태창이 떴다. 무척 오랜만의 일이다.

저건 그러니까 이제 144km의 최고 구속을 던질 수 있다는 말이고 6분할까지 구사했던 드랙 실바의 제구력도 저 수치라면 이미 4분할로 들어서고 있다. 성낙기는 다시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144km).

타석에 선 버스터포지는 바깥쪽 낮은 코스의 공에 움찔하다가 말았다.

제대로 치기엔 좀 멀다. 더그아웃에서 볼 때보다 스피드도 수준급이고 볼 끝도 살아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버스터포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트를 곧추세운 뒤 타석에 다시 섰다. 그리고 제 2구.

딱.

파울.

투심패스트볼(67/100)-140km.

버스터포지가 때린 몸 쪽 공은 홈 플레이드를 맞고 크게 바운드가 된 뒤, 3루 쪽 라인을 벗어났다. 가운데로 오다가 몸 쪽으로 꺾였고 예상보다 더 가라앉았다.

일반적인 타자라면 거의 헛스윙을 할 만한 공인데 용케 맞추어내는 버스터포지. 마운드의 성낙기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KBO에서는 헛스윙으로 곧잘 타자를 솎아내던 공인데 버스터포지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제 스윙을 하면서도 공을 강하게 때려낸다.

마성남은 피니쉬 공으로 커브를 요구했다. 바깥쪽 커브라면 타이밍을 못 맞춘 타자를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이다. 성낙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 저시키 말 안 듣네.’

마성남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성낙기의 사인을 받았다. 성낙기가 와인드업을 하고 힘껏 타자의 몸 쪽으로 공을 뿌렸다.

라이징패스트볼(6cm/10).

팡.

휘잉.

“스트라이크 아웃!”

버스터포지는 스윙을 한 뒤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공이 들어온 글러브 위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예상보다 적어도 10cm는 위다.

본래 라이징패스트볼이란, 공의 회전으로 중력의 힘을 거의 받지 않는 공이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던지는 포심패스트볼과 큰 차이가 날 수는 없다.

그게 바로 사람이 한계이고 회전의 한계이다.

타자는 거의 가라앉지 않는 공만으로도 떠오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고 포심패스트볼에 맞춰져 있는 배팅 포인트로는 라이징패스트볼 공략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일류의 타자라면 정타는 아니라도 배트 컨트롤로 맞출 수는 있다. 공의 밑동을 때리게 되어 플라이 볼이 나기 쉬운 구종이다.

‘이건 대체 뭐지?’

그런데 방금 던진 성낙기의 라이징패스트볼은 그런 궤적이 아니었다. 거의 가라앉지 않는 종도가 아니라 타자 앞에서 솟아오르는 공이다.

겨우 140km대 초중반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솟아오르는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진다는 건 그가 가지고 있던 야구 상식에 어긋난다. 버스터포지는 마운드 위의 성낙기를 스윽, 곁눈질로 보고는 타석에서 물러났다.

“오우! 대단합니다. 무명의 한국 투수가 유명한 메이저리거 1, 2, 3번 타자를 모조리 돌려세웁니다. 고전할 것이라던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가는군요.”

“아직, 낯선 투수라서 히팅 포인트를 찾지 못해서일 겁니다. 볼 끝도 예사롭지 않고 특히 라이징패스트볼이 아주 좋군요. 하지만, 스피드는 느린 편입니다. 이 투수, 좀 아까운 유형의 투수입니다. 스피드만 따라준다면 훗날 메이저리그에서 만날 수도 있는 재목인데요.”

오, 그 정도입니까?

“변화구가 다양하고 제구력도 좋습니다. 그런데 변화구도 공의 스피드가 살아날 때 배가되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음… KBO리그에서는 상당한 실력자일 겁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스트라스버그가 나오는군요. 세월이 가도 스피드가 전혀 줄지 않는 특이한 투수입니다. 지난 시즌 17승 5패에 ERA 2.55에 빛나는 투수죠. 오늘은 역시 강속구에 약한 아시아 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나왔을 겁니다. 아무래도 동양인의 체형 상 배트 스피드가 느리다는 게 상식에 가깝거든요.”

조창래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운드엔 스트라스버그가 올랐다. 관중들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지난 시즌 최고 구속 100마일(161km)을 여러 번 찍었고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6마일(154.5km)에 달하는 괴물이다.

팡.

스트라이크.(156km)

바깥쪽 높은 곳에 꽂히는 강속구에 조창래는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더 바깥쪽에서 바깥쪽 홈 플레이트로 파고드는 공, 이제껏 조창래가 알던 평범한 포심패스트볼이 아니었다.

밖으로 휘어졌다가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스트라스버그의 투심패스트볼은 무브먼트가 엄청나서 배트가 닿지 않을 것 같은 느낌까지 주었다.

조창래는 공 두 개를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먹었고 피니쉬로 던진 커브에 배트를 놓다시피 하며 스윙을 하고는 맥없이 물러났다.

“뭐야, 일직선으로 오는 공이 하나도 없어.”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다 내뱉는 조창래의 말처럼 스트라스버그가 던지는 공은 무브먼트가 없는 공이 없었다. 2번 타자 서일화 역시 삼구 삼진으로 물러났고 3번 여태호는 4구째 투심패스트볼을 때려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 1회가 간단하게 끝났다.

‘내 공을 쳤어? 우습게 볼 타자들은 아니야.’

스트라스버그는 여태호에게 맞은 공을 생각하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바깥쪽에 제대로 걸친 스트라이크였는데 그걸 당겨서 중견수 플라이로 만든 여태호의 힘이 느껴졌다. 코스만 좋았더라면 2루타를 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 타자들이 스트라스버그의 빠른 공에 타이밍을 잡고 들어오기 때문에 가능한 타격, 그중에서도 여태호는 엄청난 손목 힘을 가진 타자였기에 강속구에 적응이 빨랐다.

1회의 탐색전을 마치고 나서도 양 팀은 쉽사리 점수를 뽑지 못했다. 한국이야 mlb 에이스를 상대하니 그렇다 쳐도 성낙기의 공을 공략 못하는 미국은 회가 거듭될수록 조급함과 충격이 쌓여갔다.

“4회까지 2안타,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세일러 감독이 루이스 타격 코치에게 말하는 중이다. 4회 2사에 골드슈미트의 타석이었는데 나오자마자 파울만 두 개로 볼 카운트마저 끌려가고 있다.

140km 초중반의 공에 힘을 못 쓰는 타자들이 답답할 뿐이다. 관중들 역시 마운드에 선 성낙기의 구위를 인정하기보다는 쳐내지 못하는 타자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스피드는 느리지만, 의외로 변화구도 까다롭고 볼 끝도 아주 좋은 투수입니다. 저런 라이징패스트볼은 본 적이 없어요. 체인지업과 포심패스트볼도 전혀 구분이 안갑니다.”

루이스의 말처럼 성낙기의 공은 너무나 다채로워서 도저히 게스히팅을 할 수가 없었고 예상조차 불가능했다.

커브나 슬라이더의 각도 매우 예리했고 제구력까지 된다. 더구나 4회 투아웃까지 올 동안 40구를 던졌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체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80/100)이었으니 포심패스트볼이 1, 느린 변화구가 0.5의 체력소모인 걸 감안하면 경기당 100구 정도까지는 무난하게 던질 수 있다.

물론, 퀘이크볼과 라이징패스트볼, 그리고 전광석화는 1.5와 2.5였으므로 너무 자주 쓰지는 않는 게 좋지만.

‘좋아, 폭포수 커브로 간단하게 끝내자.’

연이은 골드수미트의 파울에 자신감을 얻은 마성남은 성낙기에게 몸 쪽 커브 사인을 보냈다. 성낙기가 사인을 받고는 고개를 저었다.

바깥쪽 유인구로도 충분히 따라올 것 같은데 굳이 몸 쪽으로 스트라이크 사인을 낼 필요가 있나? 하는 게 성낙기의 생각이었고,

‘나만 믿고 던져. 빠른 공 두 개를 봤으니 절대 타이밍 못 잡는다.’

마성남은 성낙기의 반응을 무시하고 또다시 몸 쪽 커브를 강하게 요구했다.

지금까지 성낙기의 의중대로 볼 배합을 해오던 마성남은 이제 자신이 볼 배합을 주도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2회와 3회에 산발로 맞은 안타도 자신의 볼 배합이었으면 맞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도 있다.

마성남이 글러브에 힘을 주며 성낙기의 투구를 재촉했다. 그리고 마성남의 사인대로 커브를 던졌다.

따악.

“어어……?”

타자 앞에서 잘 떨어진 커브였고 어깨를 향해 날아가다가 타자 골드슈미트의 무릎으로 파고드는, 제대로 제구된 공이었다.

하지만, 191cm에 100kg이 넘는 거구는 뚝 떨어지는 커브에 맞춰 무릎을 구부리더니 타격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채로 배트를 휘둘렀다.

mlb의 타격에 대한 하이라이트 때 간혹 방송에서 보여주던 그 타격이었다. 골드슈미트가 친 공은 좌익수 방면으로 날아갔고 천강조가 열심히 따라갔지만 담장을 살짝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솔로 홈런.

-홈런!

-어우, 드디어 하나 쳤네.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그렇지, 저런 투수에게 삼진 5개가 뭐야.

-역시 골드슈미트야.

-이제 본 실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심하긴 일러, 여기서 완전히 넉아웃 시켜야 해.

골드슈미트의 홈런에 대한 미국 팬들의 반응이었고,

-아, 맞았네.

-갔다.

-어떻게 저 자세에서 홈런이 나오지?

-화, 정말 괴력이다.

-웅… 성낙기가 잘 던졌는데.

-괜찮아, 우리도 하나 치면 돼.

-ㅋㅋㅋ

-157km 나오는 공을 칠 타자는 KBO에 없어.

-지치면 가능해.

-다음 투수는 아마 신더가드 아닐까?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삼진을 6개나 당하며 스트라스버그에 끌려가는 한국 타선의 분발을 원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성낙기는 불의의 홈런을 맞고 나서 마성남을 바라보았다. 마성남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다음 타자 놀란 아레나도가 들어섰는데도 사인을 낼 생각을 안 한다. 성낙기가 사인을 냈고 마성남은 순순히 성낙기의 사인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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