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058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
1번-조창래(모연비퍼스)
2번-서일화(세화스쿼럴스)
3번-여태호(세화스쿼럴스)
4번-천강조(모연비퍼스)
5번-이중호(삼호슈퍼스타즈)
6번-오장룡(안강피그스)
7번-이강환(은성캣츠)
8번-마성남(모연비퍼스)
9번-김광우(중외울프스)
허봉호 감독은 일찌감치 비공개 베스트를 추렸고 그 외의 삼호슈퍼스타즈 타자로는 0.282에 21홈런을 기록한 김석문과 백업포수로 이두열을 골랐다. 주축 투수로는,
공성진과 성낙기, 구문철(삼호슈퍼스타즈)에 연준후와 김오중(세화스쿼럴스), 허덕수(안강피그스), 이강천, 김재선, 안유민(모연비퍼스) 한동주(화산래빗스) 등이었다. 그 외의 타자와 투수는 마이너리그에 뛰고 있는 선수들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12월 중순에 1차 소집이 있었고 고척 돔구장에서 일주일간 손발을 맞춰본 뒤, 선수들 각자에게 몸 관리를 당부하고는 소집을 해제했다.
***
2020년이 저물었고 해가 바뀐 2021년 2월 초에 2차 소집,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경기에서 만나 서로 으르렁거리던 선수들도 함께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성남과 이두열, 성낙기와 천강조 등은 약간의 앙금이 남았는지 티격태격했다.
“야아, 이두열.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허봉호 감독님 백이 좋긴 좋아. 강속구 투수들 공이나 제대로 받아 내겠어?”
“아이, 왜 그러십니까. 절 미워하십니까?”
“내가 널 왜 미워하겠냐. 선배한테 엥기는 니 주둥이가 밉지.”
“우승도 하셨잖아요. 그게 다 포수 리드가 좋아서 투수가 잘 던진 거고요.”
“하, 애 주둥이 놀리는 거 봐라. 갈굴 땐 언제고 이제 아부냐?”
“아닙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우승만 안 했어도 가만 안 있었을 텐데, 너그럽게 봐줬다. 앞으로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 봐. 국가 대표만 다섯 번째다.”
“넵,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상은 뭐 씹어 먹게 생겼는데 가만 보니 너 참 착하다. 잘 지내보자.”
이두열은 이런 식으로 끝났고.
“햐, 널 여기서 보네? 한국 시리즈 땐 실실 쪼개면서 열 받게 만들더만.”
“하하하, 그게 다 작전입니다.”
“그런 작전도 있냐? 내가 볼 땐 꼭 비웃는 것 같던데?”
“제가 어딜 봐서 그렇게 보이십니까. 1차전에서 홈런도 때리셨잖아요.”
“그거야… 내가 운이 좋았고 너에게 많이 당했지.”
“그래봐야 투수는 날마다 못 나옵니다.”
“너 정말 잘 던지더라.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공이었어. 이제 같은 팀이니 걱정은 없겠다.”
“청백전 할 때 또 보여드리겠습니다.”
성낙기도 껄끄러웠던 천강조와 오히려 친해져 버렸다.
이번 WBC는 메이저리거 대거 차출로 디펜딩 챔피언 자리를 지키려는 미국과, 덩달아 최강 멤버로 대회에 임하는 일본, 합숙 훈련까지 하면서 2009 준우승의 한을 풀어보려는 한국과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와 다수의 메이저리거가 포진한 네덜란드 등이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2017년 본선에 진출한 12개 팀이 우승을 다투는데 4년 전 예선 성적이 좋지 않은 국가는 이번 WBC에서는 지역 예선을 거쳐야만 했다. 선수들이 겨울 날씨에도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가운데 날은 빠르게 갔고 어느덧 3월이었다.
한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2017년 본선 진출권을 따내지 못한 대만이 지역 예선을 거쳐서 본선에 합류했고 이렇게 4개의 국가가 B조에 편성되었다. 3월 5일 첫 경기가 일본전이었다.
야구의 역사나 인프라 면에서 한국보다 월등한 일본과의 대결은 언제나 껄끄러운 대신에 맹렬한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투수로 누가 좋겠어?”
허봉호 감독은 3일 후에 있을 일본전 선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구대승, 봉준구, 이종엄, 장종운 등의 코치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타순은 대충 감이 오는데 투수만큼은 현재의 컨디션과 상대팀 타자들의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
“연준후가 어떻겠습니까.”
“이유는?”
구대승의 추천에 허봉호 감독이 되물었다.
“우선은 현재 150km대가 나오고 있고 횡으로 변하는 슬라이더와 주 무기인 포크볼이면 충분히 제 몫을 할 거라고 봅니다. 일본 타자들이 포크볼에 익숙하다지만 국제 대회는 역시 포크볼이 잘 통합니다.”
“흠, 다음 추천할 투수는 없나?”
“뭐니 해도 공성진 아니겠습니까. 일본 타자들의 피지컬로 볼 때 155km를 던지는 공성진이야말로 최적의 투수입니다. 요즘 서클체인지업도 물이 오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성진… 연준후라… 둘 모두 좋은 투수지. 퀄리티스타트 정도는 충분히 기대할 만한 투수들이기도 하고. 그런데 말이야, 4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둘은 WBC를 나간 경험이 있어. 그리고 평균적인 투구를 했지. 그 말은 퍼펙트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해.”
“…그럼,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겁니까.”
“성낙기 요즘 어때?”
“성낙기 말입니까?”
봉준구가 되물었고 좌중은 조용해졌다. 성낙기… 물론 좋은 투수다. 한국 시리즈에서도 예상외의 활약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통할까? 세계적인 타자들에게? 그들의 의문은 어쩌면 당연했다. 국제 대회는 또 다른 차원의 타자들과 상대하는 대회다.
“하지만,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는데… 괜찮겠습니까?”
타격 코치인 이종엄도 성낙기의 선발에는 난색을 표했다. 타격 코치인 그가 나선 것은 성낙기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자기표현이었다. 150km, 아니, 160km도 쳐내는 타자들인데 평균 구속이 140대 초반인 공으로 되겠냐는 것.
“구속은 그래도 변화구는 아주 좋지 않아?”
“제구도 좋고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위주로 던지는데 각이 아주 생소하고 좋습니다. 다만.”
“다만……?”
“일본전 같은 큰 경기에서 연습 때처럼 던지느냐는 것이 의문입니다. 일단 초반에 경기가 어렵게 풀리면 역전이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번엔 봉준구가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이쯤 되면 감독이라도 자기주장만 내세우기 힘들다. 어차피 WBC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질 코치들이다. 봉준구의 말끝에 나온 허봉호 감독의 말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좋아, 그럼 성낙기로 가지. 엔트리 그렇게 짜서 통보하도록 해.”
***
그렇게 성낙기는 허봉호 감독의 강력한 믿음 속에 일본전 선발을 준비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일본 선발은 mlb의 LA 에인절스에서 뛰는 지난 시즌 14승 투수 쇼헤이였다.
직구가 밋밋해서 파워 타자들이 즐비한 mlb에서는 다소 고전했지만 160km에 가까운 강속구라면 아시아 타자들에게 잘 먹힐 거라는 사토 감독의 계산이었다.
양국 국가가 연주되고 쇼헤이가 마운드에 섰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1번 타자 조창래는 공이 날아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고 마치 벼락처럼 글러브에 꽂히는 속도에 전율했다. 관중들이 와아, 하는 함성을 내질렀고 전광판엔 157km가 찍혀 있었다.
‘미친… 초구부터 이 정도야?’
조창래는 2구와 3구에 연속으로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가 한참이나 늦다. 삼구 삼진을 당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며 조창래는 자기 헬멧을 연속해서 때렸다.
3구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지는 슬라이더여서 속았다는 건데, 그 공이 스트라이크에 꽂혔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휘두른 배트의 궤적과 공은 10cm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으므로.
2번과 3번도 5구만에 아웃이었다. 둘은 그래도 공을 건드려 내야 땅볼을 만든 것에 만족해야 할 만큼 쇼헤이의 구위는 언터처블이었다. 그리고 1회말, 성낙기가 불펜에서 나타났다.
“쟤 어디 산책 나가냐?”
한 베테랑 선수가 성낙기를 보면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성낙기는 글러브를 낀 채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마운드에 올라서는 관중석 한쪽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멕시코 주심이 지금 뭐 하는 거냐며 성낙기를 보고 소리쳤다.
“Dear me!”
말은 곱게 했지만, ‘야, 이 새끼야 지금 뭔 지랄을 하고 있어!’ 얼굴 표정은 대략 이런 뜻이었다.
성낙기가 손을 흔든 곳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성서희와 친구 장하연이 응원하고 있었다.
“꺄악! 오빠가 손을 흔들었어.”
성서희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성낙기는 장하연를 보고 손을 흔든 거였다. 잠시의 해프닝이 끝나고 일본의 1번 타자이면서 리딩히터 후지마사키가 타석에 들어섰다.
팡.
스트라이크.
‘응? 공이 이렇게 평범하단 말인가?’
후지마사키는 놀라고 있었다. 140km 초반 정도의 공이 몸 쪽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충분히 공략이 가능해 보이는 스피드.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제 2구도 몸 쪽으로 들어왔는데 제대로 걸렸다 싶은 공은 포수 위로 높이 치솟았고 후지마사키는 포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는 공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돌아섰다.
쇼헤이와 마찬가지로 성낙기는 2, 3번 타자를 내야 땅볼로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확실히 수비가 안정감이 있어.’
성낙기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면서 방금 전의 상황을 되돌렸다.
빗맞은 공이 3루로 느린 바운드를 튀기며 굴렀고 3루수 서일화는 뛰어 들어오며 오른손으로 공을 잡자마자 뿌렸고 타자는 간발의 차이로 아웃이었다.
국가 대표급 수비가 아니었다면 1루에서 살아도 이상할 게 없는 까다로운 타구였다.
그렇게 시작된 투수전.
쇼헤이는 명성답게 5회까지 단 3안타의 피칭으로 한국 타선을 잠재웠고 성낙기 역시 4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쇼헤이는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왔다.
6회까지 53구의 엄청나게 경제적인 투구였으니 체력도 문제없다. 1라운드에 마운드에 서는 투수는 65구 이상을 던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쇼헤이는 초구부터 다짜고짜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었고 한국 타자들은 스트라이크인 줄 알면서도 정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만큼 쇼헤이의 공은 위력적이었고 변화구 또한 NPB에 있을 때보다 한 단계 위의 제구를 선보였다.
포심패스트볼은 회를 거듭할수록 빨라져서 5회엔 최고 구속 162km를 찍었다.
이대로라면 7회 역시 무실점일 게 분명해 보였다. 더구나 7회는 한국의 하위 타순이니 크게 기대할만한 회라고 볼 수 없다. 7, 8, 9번으로 이어지는 공격이었고 그전까지 세 타자 모두 쇼헤이의 공을 전혀 때려내지 못했다.
타임!
7번 이강환이 배트를 휘두르며 타석으로 가려할 때 허봉호 감독이 타임을 불렀다. 그리고 이정우를 대타로 기용했다. 엔트리엔 있었지만 주전으로 나서지 못했던 이정우는 숨을 몰아쉬며 긴장을 풀었다. 쇼헤이는 첫 타자부터 대타가 나오며 시간을 끌자, 이마를 찡그렸다.
‘빠가야로, 니들이 그래봤자지.’
대타를 우습게 본 쇼헤이는 원볼 투 스트라이크 이후 연속 두 번의 커트가 이어지자 고개를 갸우뚱했고 6구로 던진 슬라이더에 속지 않자 강속구를 연속으로 뿌렸다.
파울, 파울.
‘얘 뭐야? 내 볼을 계속 건드린다.’
9구까지 끌고 간 이정우를 보고 쇼헤이는 잘 안 풀린다는 듯 로진백을 자꾸 만졌다.
그리고 던진 제 9구.
따악.
1, 2루 간을 빠지는 공을 2루수가 가까스로 잡으며 몸을 한 바퀴 돌린 뒤 송구, 이정우를 잡아냈다. 그리고 허봉호 감독은 다시 한 번 대타를 내세웠다. 5회부터 더그아웃 옆에서 쇼헤이의 투구 타이밍에 맞춰 끊임없이 배트를 돌리던 김석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