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057화 한국시리즈 7
-공성진이 모연비퍼스 타선을 막을 수 있나?
-3차전에서 7이닝 3실점이었으니 잘 던지긴 했지.
-ㅋㅋㅋ 에이빌드런은 완봉이다.
-아무래도 6차전에서 끝나겠어. 삼호 타선으로는 필 브라이드에게 점수 못 낸다.
-그러다 지면 안 아프지.
-난 삼호의 저력을 믿어. 분명히 7차전 갈 거야. 물론 7차전엔 성낙기가 나오는 거지.
-저력 좋아하네. 어쩌다 한국 시리즈 올라온 주제에.
-니들이 심판 매수한 거 모를 줄 아나? 정규 리그에서 우승한 이유도 그거고.
포털 사이트에서 야구팬들이 설왕설래하는 동안, 하루가 지났고 6차전이 잠실에서 열렸다.
6차전에서 끝내야 천적 성낙기를 피할 수 있는 모연비퍼스는 그야말로 총력전을 예고했고 삼호슈퍼스타즈 또한 오늘 지면 끝이기에 6차전에 사활을 걸었다.
한국 시리즈의 승부를 가르는 6차전이기에 각 구단주는 물론, 알만한 스타들까지 관람석에 자리했다. 표는 일찌감치 매진이었고 치어리더들은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 질세라 분위기를 띄웠다.
“필 브라이드와 공성진 투수의 대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네, 두 투수 모두 에이스급 기량과 실력을 겸비한 투수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퀄리티스타트 정도의 기본은 해주는 선수들이죠. 오늘 경기의 승패는 투수력이 아니라 타선에서 판가름 날겁니다. 특히, 삼호슈퍼스타즈 타선이 필 브라이드의 공을 얼마나 공략할 수 있느냐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필 브라이드 투수가 2차전에서 6과 2/3이닝 무실점을 거두었었죠? 공성진 투수는 7이닝 3실점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필 브라이드의 뚝 떨어지는 커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었거든요. 오늘 경기도 바로 그 커브에 승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공성진 투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공성진은 각오를 단단히 한 듯 굳은 표정으로 포수와 공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조창래가 타석에 들어섰다.
2차전에서 공성진으로부터 3타수 2안타를 때려낸 만큼 공성진은 1구, 1구에 신중했다. 하지만, 신중이 지나쳤을까.
오늘따라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은 좁았고 선구안 좋은 조창래는 7구만에 볼넷을 얻어냈다. 뒤이은 2번 타자의 드랙번트(drag bunt)에 3루수 이한영의 송구가 빗나가면서 1루수 이중호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졌다. 주자 올 세이프.
이어진 공격에서 3번 민경호가 친 타구가 1,2루 사이를 뚫는 안타로 연결되어 무사에 주자 만루를 만들어 놓고 홈런 타자 천강조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악-
“아, 큽니다. 천강조 선수가 때린 공이 쭉쭉 뻗어 나갑니다. 홈-런!”
“야아, 거기서 만루 홈런을 때려내네요. 역시 홈런왕다운 위용입니다.”
‘공이 가운데로 몰렸어.’
공성진이 고개를 숙이며 후회했지만 이미 4실점을 한 뒤였다. 마음을 다잡은 공성진은 나머지 타자를 삼자범퇴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렇게 시작된 경기는 6회에 공성진이 원아웃 1,2루 찬스를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불펜 투수 모창모가 적시타를 맞고 추가 1실점, 0:5로 끌려갔다. 8회에 이중호와 지명타자로 나온 성낙기가 백투백 홈런을 때려내며 따라갔지만, 경기는 그대로 끝나 버렸다.
한국 시리즈 전적 4:2로 모연비퍼스의 우승.
삼호슈퍼스타즈는 기적에 가까운 저력으로 한국 시리즈에 올랐고 한때 2:2의 호각을 이뤘지만, 거기까지였다. 2020년의 한국 시리즈는 전통의 강호, 모연비퍼스에게 돌아갔다.
***
이제 스토브 리그였다. 각 팀들이 연습 외에도 전력 강화를 위해 치열한 눈치 싸움과 적절한 배팅을 해야 하는 시기다.
올해는 초대형 급 FA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대어급으로 분류되는 선수는 투수로는 허덕수가 있었고 타자로는 세화스쿼럴스의 김수권과 모연비퍼스의 지명타자 추진규 정도였다.
나머지는 준척 급 몇뿐이었다. 그마저도 안 되는 선수들은 납작 엎드려 소속 팀에 눌러앉을 것이다.
쓸데없이 FA를 신청했다가 어떤 구단도 나서지 않으면 FA 미아가 되고 그러고 나서 소속 팀으로 다시 돌아오면 무자비하게 깎이는 연봉 협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 내년 초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고 4년 전 예선 탈락의 아픔이 있는 터라, 이번만큼은 최강의 멤버와 감독으로 가자는 여론이 대세였다.
mlb 역시 4년 전의 우승에 한껏 고무되었는지 각 구단 스타들의 예외 없는 참가를 목표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한국은 FA보다 WBC 감독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설과 댓글들이 스토브리그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야구팬들은 몇 달만 기다리면 또다시 야구를 본다는 기쁨과 선수 선발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결코 심심하지 않을 겨울을 준비 중이었다.
-WBC 감독은 당연히 우승 팀 감독이 맡아야겠져. 두말할 필요조차 없음.
-헹… 김정환 감독은 선수 빨이야. 솔직히 제대로 된 작전이 뭐가 있냐.
-능력으로만 치면 안강피그스 박재신 감독이지. 올해는 운이 없어서 4위로 내려앉았지만 적임자라고 봅니다.
-그럼, 난 꼴찌 팀 KW 치타스 오동만 감독을 밀겠소.
-난, 내가 그냥 감독을 맡을까 한다.
-댓글들 참, 언제부터 쓰레기들이 넘쳐 났지?
-허봉호 감독이 맡아야 함. 카리스마 있고 이 사람 선수들 뭉치게 하는데 뭐 있음.
-쓰레기는 네가 쓰레기여.
“실은, WBC 감독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팀을 추슬러야 할 시기에 대표 팀을 이끌고 경기에 나가야 하거든요. 성적이 좋으면 보람이라도 있는데 성적이 좋지 않으면 팬들의 비판을 그대로 받게 되지요.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팀은 돌보지를 못하니까 페넌트레이스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고요. 전임 감독제를 해봤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전임 감독은 야인으로 물러나신 분들 중에서 맡게 되는데요. 현장에서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감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감독 선임을 늦출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누가 좋을까요?”
“아무래도 단기전의 특성상 승부사 기질을 갖춘 감독이 대표 팀을 이끌어야 합니다. 모연비퍼스의 김정환 감독, 그리고 한국 시리즈에서 최강 팀과 맞불을 놓으면서 한때 2:2 팽팽한 승부를 가져갔던 허봉호 감독도 적임자라고 봅니다.”
여러 말들이 스토브리그를 달구는 가운데, 프로야구 협회는 김정환 감독에게 WBC 대표 팀 감독을 권유했다. 돌아온 대답은 건강상의 문제로 고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협회는 허봉호 감독의 의사를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당연히 안 하겠다고 했지. 내가 그거 맡으면 팀은 어떡하고.”
“음… 선배님,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삼호슈퍼스타즈 단장실에서 김아경과 허봉호, 마영진 단장과 이계현 코치가 대화 중이었다. 야구 협회에서 제의해 온 WBC 대표팀 감독의 선임에 관해서였다.
허봉호 감독은 협회 부회장의 전화에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협회는 설득을 거듭했다.
‘사람 귀찮게 만들지 말고 단장 선에서 잘라 줘.’
그예, 마영진 단장이 여럿의 의견을 취합하려는 것이다. 허봉호 감독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냉랭한 표정이었고 이계현 코치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얼굴이다.
“뭐가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거요. 그럼 나보고 대표 팀 감독으로 가라는 말이오?”
“사실, 협회가 저렇게 사정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해서 좋을 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요? 그럼 마 단장님이 매몰차지 않게, 부드럽게 거절을 하면 되는 거 아니겠소.”
“허 감독이 뜻이 그러시면 전 의견을 내지 않겠어요.”
늘 적극적이던 김아경이 웬일로 순순히 물러선다. 허봉호 감독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말들이 오갔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헤어졌다. 김아경과 이계현 코치가 돌아가고 마영진 단장이 허봉호 감독에게 술자리를 제안했다.
“뉴스에 날 일이네. 마 단장이 나에게 술을 마시다고 하다니. 혹시, 무슨 꿍심이 있는 거 아니야?”
“참, 선배님도. 제가 어디 그런 놈입니까. 시즌도 잘 마쳤는데 단둘이 시간을 가진 적도 없잖습니까.”
“음… 사람이 돼 가나?”
마영진 단장이 앞장서서 고깃집으로 허봉호 감독을 데려갔다. 들어가자마자 마 단장이 소고기를 시켰고 둘은 마주 앉아 불판에 고기를 구우면서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마 단장하고 술 마신 지가 꽤 오랜만이구만. 선수 시절 때도 워낙 술을 멀리해서 내가 쫌팽이라고 놀렸었지. 내가 마 단장에게 술을 얻어먹게 될 줄이야.”
“허허, 선배님. 얼마 전에도 같이 한잔 하셨잖습니까.”
“그건 여럿이 모였을 때지. 그나저나 단둘이 마주 앉아 있으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 자네가 공은 그런대로 던졌는데 이상하게 나만 만나면 죽을 쒔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때 마영진 투수 상대로 내 타율이 아마…….”
“에이, 선배님 옛날 얘기해 봐야 뭐하겠습니까.”
“4할 2푼이던가… 그랬지, 흐흐.”
마영진 단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에게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아픈 기억이다. 그도 꽤나 던지는 투수였는데 유독 맥을 못 췄고 허봉호 타자는 리그에서 그에게 가장 강한 타자였다.
심심하면 적시타를 두들겨 맞았고 위기에서 허봉호 타자가 나올 때면, 그는 감독에 의해 가차 없이 강판 당했다.
“하 참, 내가 그런 말이나 들으려고 소고기를 사드리는 게 아닙니다.”
“술 마시면 추억이 생각나고 그러는 거지. 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래.”
“휴… 좋습니다. 그만하죠.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화내지 마시고 들어보십시오.”
“뭔데?”
“이번에 WBC 감독 맡으셔야 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또 그 얘기야? 자꾸 그러면 나, 간다.”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내년에 협회장 임기 끝나는 거 모르십니까? 회장님이 그거 생각 중이십니다.”
“협회장? 그거야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지.”
“아무런 공헌도 없으면 좀 그렇잖습니까. 모두들 꺼리는 WBC 감독을 제가 권하는 이유도 그겁니다. 어차피 저희 구단주 아닙니까.”
“오, 그래서 나에게 감독 맡으라고 협박하는 거지? 어째 김아경이 아무 말도 없더라니.”
“어차피 재계약 들어가는 마당에 좋은 일 한 번 하시죠. 물론, WBC 감독 건으로 협회장이 되니 마니 하는 건 난센스겠지만 일단 보기도 좋고 어디 가서 말하기도 좋잖습니까. 거기다 성적이 난다면 금상첨화고요.”
“…그러니까 나보고 희생하라?”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정 그러면 생각은 해볼게. 현역 때 나에게 열나게 처 맞은 투수가 사정하는데 생각은 해 봐야지.”
‘…아, 진짜 대학 선배만 아니면.’
마영진 단장은 허봉호 감독의 승낙을 받고도 기분이 별로인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허봉호 감독은 소고기를 명이나물에 싸서 입에 한껏 밀어 넣으며 자기 잔에 술을 따랐다.
***
“한국과 일본과 미국에서 교차로 열리는 WBC에서 미국 팀은 역대 최고의 선수를 동원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 협회가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현지에 있는 이슬비 기자?”
“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4년 전 우승을 차지했던 미국이 이번에도 역시 주최국의 강한 실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겠다며 발 벗고 나선 모양새입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WBC 감독으로 루이스 콘리 감독을 내정하고… 중략… 이상 이슬비였습니다.”
미국이 분위기를 띄우자, 일본은 물론 도미니카와 푸에르토리고 등의 야구 강국도 일찌감치 WBC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대회 우승에 고무된 mlb가 우승 팀의 상금을 대폭 올렸고 축구에 버금가는 야구 월드컵의 중흥을 위해 중계권까지 헐값에 송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허봉호 감독을 수장으로 삼고 은퇴한 스타 출신 해설자 등을 코치로 영입했다.
그 여느 때보다 대회의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한국 시리즈를 끝으로 식었던 팬들의 야구 열기는 다시 달아올랐다.
벌써부터 두 달이나 남은 경기의 표 예매를 알아보는 팬들도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