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52화 (52/188)

# 52

052화 한국시리즈 2

쉽게, 쉽게 맞혀 잡는 투구로 65구를 던졌다. 성낙기가 6회를 투아웃까지 잡아냈을 때, 천강조가 타석에 들어섰다.

[체력이 28 남았습니다.]

4회에 내야안타를 포함, 투아웃 1, 2루의 위기에서 맞았던 천강조를 성낙기는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냈었다.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몸 쪽으로 잘 붙인 투심을 때려내었고 하마터면 적시타를 내줄 뻔했다.

라이징패스트볼(6cm/10)

따악.

천강조가 건드린 초구는 1루 관중석으로 가는 파울이었다. 성낙기는 다시 한번 전력투구로 좀 더 높은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졌고,

휘잉.

이번엔 스윙을 뺏어냈다. 성낙기는 숨을 한 차례 몰아쉬었다. 한국 시리즈 전년 챔피언다운, 그중에서도 최강의 타자 중 한 명이 지금 자신의 다음 공을 매의 눈처럼 노리고 있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성낙기는 140km 초반이거나 그보다 못한 스피드의 변화구에 익숙해진 천강조에게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파앙.

볼 끝이 살아 있는 150km의 몸 쪽 포심패스트볼.

“우웃!”

천강조는 느린 공만 봐오다가 맞이한 상상 이상의 빠른 공에 넋을 잃고 포수 미트를 바라보았다. 원정 팀에 까다로운 주심도 어쩌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천강조가 느끼는 공의 체감 속도는 160km나 다름없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주심이 아웃을 선언했고 천강조는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전광판에 찍힌 150km라는 숫자를 보고 관중석이 들썩였고, 캐스터와 해설자는 입을 쩍 벌리며 말을 더듬었다. mlb에서 온 스카우트들도 갑자기 이게 무슨 볼인가 싶어 자기들끼리 서로 되물었다.

전광판의 오류로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스피드건에 찍힌 스피드를 보고서야 방금 공이 진짜인 걸 알았을 정도였다.

***

에이빌드런은 6회 말에 삼호슈퍼스타즈의 하위 타선을 맞아 공 13개만을 던지고 들어갔다.

총 90구로 1회를 15개 내외라고 봤을 때 한계 투구 수로 설정하는 120구까지 30개가 남았다. 8회까지는 충분히 던진다는 계산이 선다.

삼호슈퍼스타즈로서는 최대한 공을 오래 보고 커트를 이어갔는데도 이 정도인 걸 보면 에이빌드런은 역시 에이스 중의 에이스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변화구가 좋다고는 해도 140km 초반의 공인데 전혀 공략이 안 되잖아.”

“포심패스트볼을 빼더라도 변화구만 말 그대로 팔색조입니다. 슬라이더, 커브는 물론이고 체인지업에 투심과 포크까지 던집니다. 거기에 더해서 라이징패스트볼과 타자 앞에서 흔들리는 이상한 공까지 있어서 아주 어려운 유형의 투숩니다.”

“그럼, 그런 볼을 친 천강조는 뭐야. 홈런도 쳤고 안타성 타구도 생산해 냈잖아.”

“천강조야 워낙 천재적인 선수라서… 휴…….”

“그렇게 어려우면 한 가지만 노리고 들어가. 초구는 포심패스트볼의 빈도가 높아. 지금까지 패턴을 버리고 초구부터 과감하게 들어가 봐.”

“예, 알겠습니다.”

성낙기의 공을 공략하지 못해 애가 달은 김정환 감독과 타격 코치 임차성의 대화였다. 김정환 감독은 7회가 되었는데도 아직 1:0의 살얼음판 리드였기에 불안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인내하면서 공 개수가 많아지는 후반에 승부를 볼 생각이었는데 6회 초 천강조에게 던진 150km의 공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볼 끝이 죽기는커녕 회가 거듭될수록 스피드가 더 빨라지는 기이한 투수, 그게 성낙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포심패스트볼 위주로 던지는 초구 공략이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정환 감독의 판단은 성낙기의 투구 수 조절에 큰 도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따악.

아웃.

따악.

아웃.

연이어 바깥쪽 초구를 건드린 모연비퍼스의 타자들은 1루와 2루 땅볼로 물러났고 성낙기는 7회 초를 단, 5구만에 끝내 버렸다. 남은 체력, 21.

에이빌드런도 7회 말에 더 힘을 냈다.

경기 초반 150km대를 넘기던 구속은 140km대 중후반 정도로 떨어졌지만, 한국의 스프링캠프에서 코치들의 지도 아래 가다듬은 제구력은 여전히 수준급이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본래의 자기 것과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는 능력이 탁월한 에이빌드런은 성낙기와 마찬가지로 7회를 10구만에 끝냈다.

무리를 한다면 완봉까지도 노려볼 만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삼호슈퍼스타즈의 팬들은 넘사벽 같은 에이빌드런의 투구에 쓴 입맛을 다셨다.

‘휴, 힘든 한 회였어.’

하지만, 7회를 간단하게 마친 에이빌드런은 더그아웃에 앉아 7회를 복기하고 있었다.

1번 이정우부터 시작된 공격에서 이정우는 유격수가 몸을 날려 잡아낼 만큼 좋은 라이너성 타구를 날렸고, 2번 타자 이한영은 우익수 플라이, 엔서니페킨스는 큼지막한 타구가 워닝트랙에서 잡혔다. 중견수로 뛰고 있는 미카엘 오르티스의 메이저급 수비가 아니었다면 2루타였을 타구였다.

6회까지 빈타에 허덕이던 삼호슈퍼스타즈 타자들이 7회엔 거침없이 자신의 공을 때려냈다. 8회엔 조금 더 집중해야겠다고 에이빌드런은 생각했다.

8회 초가 되었고 성낙기는 전력투구로 모연비퍼스 타자들과 맞섰다. 어차피 9회엔 던지지 못한다. 깨끗이 막고 구문철에게 마운드를 물려주면 자신의 임무는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봉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성낙기가 투아웃을 잡았을 때 타임을 불렀고 좌익수 김화성과 지명타자 하진수를 맞바꿨다. 3루 쪽 삼호슈퍼스타즈 팬들이 술렁였다.

“어? 저, 저거… 전에 봤던 풍경인데?”

“왜 갑자기 좌익수를 바꾸지? 경기 막판에 무슨 의미야.”

“와하하하, 나는 안다. 왜 저러는지… 큭큭.”

“……?”

“8회에 성낙기를 타자로 투입하겠다는 거잖아.”

그랬다. 8회부터 시작되는 공격은 4번 타자 이중호부터.

그 다음이 1루수 구종욱이었고 6번 이었던 지명타자 하진수 대신 성낙기를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모연비퍼스의 김정환 감독도 허봉호 감독의 의중을 알아차렸고, 성낙기가 8회 초를 마무리하고 에이빌드런이 마운드에 오를 때 말했다.

“에이빌드런, 8회 6번 타자가 성낙기야.”

“선… 낙기?”

에이빌드런의 머릿속에 두 달 전의 경기가 떠올랐다.

그 경기 역시 모연비퍼스는 성낙기로부터 1점밖에 뽑지 못했고 에이빌드런도 8회까지 1실점으로 삼호의 타선을 틀어막았다. 성낙기의 홈런이 없었더라면 적어도 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연비퍼스의 불펜이 더 세니까.

그날의 홈런은 9회였고 지금은 8회인 것만 다르지 지명타자 자리를 비워두고 성낙기의 자리를 만든 것도 같다.

“에이, 신경 쓰이네.”

에이빌드런은 3구째 이중호에게 우익수 라인을 살짝 벗어나는 날카로운 파울 타구를 허용했다. 역시 만만치 않은 타자다.

다른 타자들은 거의 삼진을 잡았으나, 이중호만은 오늘 삼진이 없다. 자신이 생각하기로도 잘 맞은 타구가 두어 번 있었다.

에이빌드런의 등에 오늘 처음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풀 카운트가 되었을 때, 에이빌드런은 자신의 주 무기인 슬라이더를 던졌다. 가운데로 가다가 바깥쪽으로 휘면서 떨어지는 궤적에 수많은 타자들을 돌려세웠던 그 공이었다.

볼.

하지만 이중호는 미리 알기라도 한 양, 공을 기다려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에이빌드런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타자 구종욱이 타석에 들어섰고 에이빌드런은 몸 쪽 깊은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소리는 경쾌했으나 구종욱이 친 공은 유격수 정면이었고 유격수는 곧바로 2루에 던져 포스아웃, 2루수가 병살을 노리며 1루로 공을 던졌다.

구종욱은 유격수 땅볼을 치고 사력을 다해 1루로 달렸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 원아웃 1루에서 성낙기가 등장했다.

“하, 또 만났네요.”

성낙기가 타석에 서면서 중얼거렸다.

“너희 감독 참 답이 안 나오는 분이다. 전에 뽀록으로 하나 친 걸 못 잊어서 투수를 타석에 내 보내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좀 쉬려고 했더니 또 홈런 치라네요.”

“홈런? 여러 가지 한다. 대충 휘두르고 가서 푹 쉬도록 해.”

포수 마성남이 딴엔 훼방을 놓겠다고 말을 내지른다. 내지르고 나서 마운드로 올라간다.

“어이, 에이빌드런. 저거 한 방이 있으니까 조심해. 제구가 잘 안 되면 걸러도 상관없어. 쟤 뒤는 하위 타선이야.”

“알았어. 걱정을 하지 마.”

마성남을 보내고 에이빌드런은 조금 기분이 상했다. 메이저리그 출신인 자기더러 거르라고? 대타로 나온 투수한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내가 시파, KBO리그에서 볼넷이나 줄려고 비행기 타고 태평양을 넘어온 줄 아나.’

에이빌드런은 초구로 바깥쪽 커브를 요구한 마성남의 사인에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빌드런은 전에 홈런을 맞았던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원했고 마성남은 에이빌드런의 뜻대로 바깥쪽 포심패스트볼 사인을 다시 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애이빌드런이 전력을 다해 포심패스트볼을 뿌렸다.

따악.

155km로 찍힌 포심패스트볼을 성낙기가 걷어 올렸고 공은 중견수 미카엘오르티스의 키를 넘어 쭉쭉 뻗어갔다.

“……!”

“으아아!!”

“우어어어어어!!!”

삼호슈퍼스타즈의 팬들은 말 대신 벙어리처럼 어버버거렸다. 에이빌드런은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글러브를 땅에 패대기치며 욕을 내뱉었다.

“shit!! 시팍놈아!!”

극적인 투런 홈런이 터지고 삼호슈퍼스타즈의 더그아웃은 그야말로 축제의 도가니로 변했다. 다승왕인 상대 에이스를 상대로 투수인 성낙기의 투런 홈런이라니!

역전도 역전이지만 에이빌드런을 상대로 성낙기의 연속 홈런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8회까지 109구를 던지면서도 스피드가 별로 줄지 않는 에이빌드런의 투구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스카우트들도 황당한 얼굴들이었다.

타격에 재능 있는 지명타자를 빼고 투수를 타자로 넣는 것도 이채로웠는데 타석에 들어선 그 투수가 홈런까지 쳐 버리니 과연 KBO는 요지경 같은 곳이 아닐 수 없다.

스피드건에 찍힌 155km의 전력투구를 비거리 135m로 넘겨 버리는 저 괴력의 투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결정적인 홈런으로 행크아론의 타격이 (4/5)로 올랐습니다]

3루 베이스를 밟고 홈으로 들어올 때 성낙기 앞에 글귀가 떴다.

아, 이러다가 투수가 아니라 타자가 되는 거 아니야? 이런 걱정이 얼핏 들 만큼 타격의 스탯 증가가 가파르다.

성낙기는 더그아웃에 들어온 뒤에도 다시 밖으로 나가 팬들의 부름에 응했다.

성낙기를 향해 휘파람과 괴성을 질러대는 팬들을 본 성낙기는 투수보다 타자가 훨씬 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에이빌드런은 성낙기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내려갔고, 모연비퍼스의 불펜이 추가 실점 없이 8회를 끝냈다.

그리고 9회 초에 나온 언더스로 투수 구문철의 투구에 모연비퍼스 타자들은 적응하지 못했고, 세 타자 모두 범타로 불러났다. 삼호슈퍼스타즈의 2:1 승, 자그마치 상대 에이스를 무너뜨리고 얻은 한국 시리즈 1차전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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