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050화 에이전트가 되어 주세요 4
[요즘 바쁘십니까?]
[어쩐 일이세요? 한국 시리즈 나갈 선수가 문자를 다 하시고.]
[저랑 한 약속은 잊지 않으셨겠죠?]
[뭘… 요?]
[방출요.]
[헐! 거기 어디예요?]
성낙기는 김아경에게 문자를 보냈고 김아경은 큰일이다 싶었는지 곧장 차를 몰고 왔다.
김아경은 성낙기 선수가 워낙 유명해져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한적한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친절하게도 모자와 마스크까지 준비해 왔다. 둘은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나이 든 부부 한 쌍만이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문자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남기신 거 아닌가요?”
“그거 그냥 통상적인 거예요. 전 어디까지나 구단 스카우트니까요.”
“제가 연락드린 이유도 그 업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땐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그런 희망이 있구나, 하는 정도? 커피 식겠어요.”
“지나가는 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했고 한국 시리즈까지 왔어요.”
“그건… 정말 놀라워요. 그 정도로 잘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다들 잘했죠. 그리고 이제 제가 3승을 거둘 겁니다.”
“또 그 말씀. 전례가 없는 일이에요. 저 혼자의 힘으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팬들이 가만있을 거 같으세요? 구단은 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 팬들이 허락하면요?”
“생각은 해보겠지만… 그럴 리 없어요. 성낙기 선수가 독특한 캐릭터라서 내년에도 보고 싶어 할 거예요.”
몇 마디 더 나누었지만, 성낙기가 원하는 것과 김아경이 원하는 바는 접점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 김아경으로서는 내심 오늘 같은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물론 팀이 한국 시리즈에 오르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을 하고 나서 성낙기가 mlb에 가겠다면 그땐 정말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삼호슈퍼스타즈가 배출한 메이저리거를 보고도 싶지만, 겨우 1년 뛴 에이스를 방출한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앞일을 알 수 없다.
“좋아요.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들과 팬들이 찬성한다면 저도 굳이 막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는 않을 걸요? 이게 전례가 되어서 잘하는 선수들이 너도 나도 방출해 달라고 하면 그것도 참 난감하지 않겠어요? 쟤는 보내주고 난 왜 안 보내주냐, 할 수도 있는 거고.”
“좋습니다. 제가 메이저에서도 확실히 통할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면 심하게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신 거 아니에요?”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mlb를 꿈꾸죠.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단, 길지는 않을 겁니다.”
“길지 않을 거라고요?”
“제 에이전트가 되어 주세요.”
“아하하하… 에이전트라고 하셨어요? 후후, 제 본업은 스카우트가 아니랍니다. 워낙 삼호슈퍼스타즈가 난감해서 잠시 몸담은 것뿐이에요. 그리고 에이전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그것도 자격이 필요해요.”
“압니다. 같이 다니시는 정진수 전력분석관님이 에이전트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7년이면 충분합니다. 기록을 남길 생각 같은 건 없어요. 꿈을 펄치고 싶을 뿐.”
“그 말씀은 7년 후엔 한국으로 돌아오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정확히는 삼호슈퍼스타즈입니다.”
“그런 생각이라면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기는 하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여론이 어떨지 지금은 감이 잡히질 않네요.”
김아경은 성낙기의 말을 듣고 머리가 복잡한지 바닷가로 나가자고 했고 둘은 10월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거닐었다.
김아경은 아버지의 야구광다운 모습이며 자신 역시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시집가기는 글렀다는 둥, 회장 딸답지 않게 잡다한 이야기들을 했고 그런 모습을 본 성낙기는 김아경 같은 여자 친구가 있으면 늘 심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 이틀 후 드디어 잠실구장에서 한국 시리즈가 열렸다.
***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성낙기의 선발. 경기 전부터 관중은 만원이었고 치어리더는 어느 때보다 활기차 보였다. 최근 전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마녀시대 한지요가 시구자로 나서 분위기를 띄웠다.
카메라가 한곳을 비추자 삼호슈퍼스타즈 팬들이 환호했다. 카메라가 비추는 인물은 바로 김현중 회장이었고 그 곁에는 김아경이 앉아 있었다.
“삼호슈퍼스타즈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니까 회장님까지 나서셨네요. 야구 사랑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얼마 전엔 형편이 어려운 초등학교 야구부에 야구용품과 승합차를 선물하기도 했었죠. 그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삼호슈퍼스타즈는 늘 바닥을 헤맸었는데 이번 시즌 기적처럼 한국 시리즈에 올랐습니다.”
“바로 옆에 앉은 분이 따님인데요. 현재 삼호슈퍼스타즈의 스카우트 팀장을 맡고 있어요. 김아경 씨가 직책을 맡은 뒤로 메이저급 투수 둘과 엔서니페킨스라는 아주 좋은 타자를 데려왔죠. 그뿐인가요. 구문철은 일본에 날아가서 직접 데려왔고 이중호와 안민기 선수도 2군에서 스카우트 한 선수들입니다. 대단하죠? 그 선수들이 지금 팀의 주축이니까요.”
“그렇군요. 선수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평이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도 탁월합니다. 성낙기 투수와도 2군부터 함께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의기소침할 때면 회식도 쏘는 등, 야구단에 아주 적극적입니다.”
“그런 열정들이 모여 오늘의 삼호슈퍼스타즈가 만들어졌군요.”
“그렇죠. 경기가 없는 날에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야구단을 만들기 위해 토론도 벌인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김아경 씨도 옵저버로 참여해서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나간다는 말도 있고요.”
“아, 그런가요? 아무튼 삼호슈퍼스타즈, 정말 대단합니다. 전년도 챔피언 모연비퍼스와 데스매치를 치르게 되었네요.”
캐스터와 해설자도 들뜬 표정이다. 그들의 관심은 과연 삼호슈퍼스타즈가 막강한 모연비퍼스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투수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준이라 해도 불펜과 타격에서는 격차가 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다. 그나마 불펜은 안민기 같은 선발 투수를 활용한다지만 타격만큼은 일단 하위 타선에서 차이가 있었다.
클린업트리오 정도만 조심하면 나머지 타자들에게서 점수가 날 확률은 떨어졌고 상대 투수가 쉬어가는 휴게실 같은 역할밖에 못한다는 판단, 시리즈 내내 거기서 승부가 갈릴 거라 보았다.
또 하나는 수비인데 전체적인 수비력이 모연비퍼스에 비해 떨어지고 큰 경기 경험이 없어서 에러가 잦을 거라는 예상을 내놓은 전문가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예상을 뒤엎는 것이 삼호슈퍼스타즈에 주어진 숙제였다. 성낙기의 몸은 가벼웠다.
체력은 이제 79까지 올라왔고 세기의 강속구도 78까지 올라와서 최고 구속이 143km에 다다랐다.
현재 성낙기의 전체적인 스탯은,
[체력(79/100)]
[세기의 강속구(78/100)]
[포심의 제구력(77/100)]
[커브의 제구력(77/100)]
[슬라이더의 위력(75/100)]
[체인지업의 위력(77/100)]
[투심의 제구력(67/100)]
[포크의 제구력(67/100)]
[퀘이크볼(3cm/5cm)]
[라이징패스트볼(6cm/10cm)]
[팔 근육 강화(6/10)단계]
[어깨 근육 강화(6/10)단계]
[악력(7/10)단계]
[전광석화(電光石火) +7km. 9이닝 5구]
[행크아론의 타격 (3/5)단계]
[짐 캇의 수비력 (2/5)단계]
[리키 헨더슨의 도주(3/5)단계]
였다. 시즌 내내 조금씩 올라서 공의 스피드는 물론이고 제구력과 변화구의 꺾임 등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팔근육과 어깨 근육, 악력을 기본으로 전광석화와 행크아론의 타격에 짐 캇의 수비력에 리키 헨더슨의 도루 능력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의 제구도 날이 갈수록 좋아져서 이제 KBO 내에선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공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시작을 외치는 주심의 목소리가 들렸고 성낙기는 천천히 마운드로 올라갔다.
***
0.335의 타율에 10홈런을 때려내고 32도루를 기록한 조창래부터 시작되는 타순이 만만치 않다. 조창래는 커트를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배팅 타이밍이 반박자 느려서 일단 140km 중반만 넘어서는 공이면 으레 파울을 만들어낸다.
치다보면 상대 투수는 질리게 되어 볼넷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출루율이 4할이 넘는다. 어떻게든 1루로 나가 상대 투수를 흔들면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스타일이다.
성낙기는 초구로 140km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바깥쪽 약간 높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딱.
파울.
초구부터 과감하게 들어오는 조창래, 기선을 제압해 보겠다는 건가? 늘 초구는 기다리고 보던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패턴이 다르다. 성낙기는 제 2구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역시 바깥쪽 낮은 곳에 걸치는 공이다.
티익.
파울.
오, 적극적이다. 어떤 공이든 쳐낼 기세로 덤벼든다. 3구로 던진 포심패스트볼도 파울로 쳐내는 조창래. 성낙기는 가운데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를 던져 배트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따라 나오지 않는다.
다음 공으로 던진 포크볼에도 배트를 돌리다가 거둬들였다.
이러니 사람 미치지.
조창래는 철저하게 스트라이크만 공략하고 있다. 선구안으로 따지면 KBO 톱급이다.
라이징패스트볼(6cm/10cm).
휘잉.
스트라이크 아웃.
조창래는 예상보다 훨씬 솟아오르는 라이징패스트볼에 스윙을 하고 나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성낙기를 바라보았다.
시즌을 치를 때보다 훨씬 위력적이면서 낮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오다가 확 솟구치는 느낌의 공을 어떻게 던지느냐는 말이 눈동자에 쓰여 있다.
‘저거는 갈수록 잘 던지네. 약을 처먹었나.’
조창래가 툴툴거리며 물러가고 2번 김오준 역시 3구 삼진, 3번 시즌 23홈런의 민경호에게는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연속 던져서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잡아냈다.
상큼한 출발이었다.
“성낙기! 성낙기!”
관중들은 때 이르게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성낙기를 연호했고 성낙기는 손을 높이 들어 회오리처럼 돌리면서 환호에 답했다.
그러자, 모연비퍼스 관중석에서도 ‘에이빌드런! 에이빌드런!’을 외쳤다.
야구도 야구지만 응원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팬들의 기세 싸움이었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에이빌드런이 마운드에 올랐다.
18승 7패 ERA 2.34로 다승왕에 방어율 2위를 기록한 모연비퍼스의 에이스가 그였다. 물론, 14승을 거둔 이강천이나 13승의 필 브라이드 같은 좋은 투수도 있으나, 에이빌드런이 투수진의 중심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방어율 2.12의 성낙기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에이빌드런과 성낙기는 두 팀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다.
‘좋아, 오늘은 절대 지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