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48화 (48/188)

# 48

048화 에이전트가 되어 주세요 2

따악.

성낙기는 마치 슬라이더가 들어올 줄 알았다는 듯이 배트를 휘둘렀고 공이 맞아 나가는 순간, 허덕수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서 투런 홈런이냐?”

“와우 성낙기 이제는 무서워서 말이 안 나온다.”

“성낙기! 성낙기!”

“허덕수 허접하네.”

삼호슈퍼스타즈 팬들은 성낙기의 홈런으로 1회에 쌓였던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냈다.

행그아론 (3/5단계)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성낙기가 투수를 하면서 받았던 스탯 중, 팔과 어깨 근육의 강화와 악력과 리키헨더슨의 도루 능력을 부여받으면서 강화된 다리 근육 등의 발달은 생전의 행크아론이 가졌던 힘을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3단계의 레벨만으로도 허덕수의 투구를 공략할 수 있는 이유였다. 게임 스코어 2:3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자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 열기는 높아져 갔다.

“오늘 경기에 이겨야 스윕이 가능해.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3위도 탈환할 수 있고 2위도 꿈은 아니다.”

“허봉호 감독님이 명장이에요. 시즌 전엔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어느새 3위를 넘보고 있으니까요.”

“네가 좋은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했잖니. 셋 모두 활약이 좋아. 어느 팀이건 선발이 무너지지 않아야 비빌 언덕이라도 생기는 거거든.”

“외국인 선수들이 잘해주는 것도 있지만 전 성낙기 선수가 팀을 이끌어 왔다고 생각해요. 투수로도 발군의 활약을 보이더니 지명타자로 나오고부터 팀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어요.”

“그야… 두말하면 입 아프지. 실은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선수가 성낙기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막걸리를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다음에 술 한잔 사줘야겠어.”

“하하, 재미있겠네요. 저도 껴 주세요.”

삼호 그룹 김현중과 김아경은 성낙기의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삼호슈퍼스타즈의 더그아웃도 마찬가지였다. 허덕수라는 A급 투수를 맞아 고전하나 했는데 성낙기가 시원하게 물꼬를 터줬다.

“야, 기왕 이렇게 된 거 마큰가 지랄인가 쟤 끌어내리자. 모두 집중 해. 이겨야만 하는 경기야.”

안강피그스의 주장 오장룡은 경기의 중요성을 선수들에게 주입시켰다.

마크트웰를 초반에 끌어내리면 삼호슈퍼스타즈의 필승조 불펜은 가동될 기회조자 없을 것이다. 내일도 경기가 있는데 한 경기 잡겠다고 지고 있는 경기에 쓸 만한 투수력을 무작정 소모하기엔 부담이 따른다.

오장룡이 선수단에 강조한 이유는 1회에 난조를 보였고 컨디션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서였다. 3회나, 4회에 끌어내리면 성낙기를 스윙맨으로 내기도 힘들 것이다.

따악.

그리고 오장룡의 생각대로 마크트웰이 부진했고 안강피그스 타자들은 상대적으로 끈질겼다. 마치 포스트 시즌을 치르는 선수들처럼.

마크트웰은 3회에 추가 1실점했다. 한 점 차로 따라붙자마자 달아나는 안강피그스의 저력이 돋보이는 경기다.

마크트웰은 5이닝 동안 4실점을 하고는 6회엔 모창모에게 마운드를 넘겼고 허덕수는 2실점으로 나름 삼호슈퍼스타즈 타선을 잘 막아낸 뒤, 6회 말 선두 타자 이정우에게 안타를 맞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치열한 경기입니다. 두 팀 선발이 모두 6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내려갔습니다. 이번 3연전이 순위 다툼의 향방을 가르는 만큼, 두 팀 모두 투수 교체가 빠릅니다. 아, 총력전이네요.”

“그렇죠? 제가 감독이라도 3연전에 승부를 걸겠습니다. 이제 포스트 시즌이 겨우 보름 남짓 하거든요. 지금 이 순위대로라면 3위 팀이 은성캣츠나 화산 레빗스의 승자와 맞붙어야 하는데 그 두 팀이 쉬운 팀은 분명 아닙니다. 단기전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설령, 두 팀 중 한 팀에게 이긴다 해도 2위까지 이긴 다음, 쉴 틈도 없이 최강자 모연비퍼스와 붙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투수력 소모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페넌트레이스 3위 팀이 전년도 우승 팀을 꺾기란 어렵죠. 2위를 차지하고 나면 그나마 투수력 소모가 덜합니다. 오늘 두 팀이 전력을 다하는 이유랄 수 있겠네요.”

변수가 많은 경기여서 흥미진진한 듯 캐스터와 해설자의 목소리도 다소 들떠 있었다. 경기 스코어 2:4인 상황에서 2번 이한영의 타석에 좌완 김익관이 올라왔다.

투 피치 투수로 평균 구속 140km 후반의 공으로 윽박지르는 유형이다. 허봉호 감독은 번트 지시를 내렸다.

‘번트인가?’

김익관 투수는 의외라는 듯 번트 자세를 취하는 이한영을 바라보았다.

관중석이 조금 술렁였다. 2:4로 지고 있는 마당에 강공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사람들과 일단 1점이라도 따라붙은 후에 다음 찬스를 노리는 게 맞다는 사람들로 나눠졌다.

“허봉호 감독, 생각보다 담이 약하구만. 저기선 바로 강공이지, 찬스만 연결되면 역전인데 쯧쯧.”

“병살 위험도 생각한 게 아닐까요? 이한영 선수가 작전 능력은 좋지만 타율이 2할 7푼인데요.”

“너도 나중에 알게 될 거다만 사업체를 키우려면 때로 모험도 필요한 법이야. 기회가 왔을 때는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그룹이 성장하는 거다. 남처럼 하다가는 언제나 현상 유지뿐인 거야.”

“아빠도 참, 야구는 스포츠인데 그걸 또 사업에 연결시키시네요. 하여튼 못 말려요.”

삼호 그룹 회장 부녀도 의견이 갈리는 동안, 이한영은 원 앤 원에서 착실하게 번트를 댔고 이정우는 2루에 안착했다.

원아웃 2루에 엔서니페킨스와 이중호로 연결되는 강타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강피그스 박재신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좌투수 김익관을 빼고 하태문을 올렸다. 작전보다는 강공을 좋아하는 허봉호 감독의 성향을 고려해 좌타자 이한영의 강공을 염두에 둔 투수 기용이었는데 번트로 빛이 바랬다.

팡.

스트라이크.

팡.

볼.

엔서니페킨스가 여느 때와 달리 몸 쪽의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냥 보내고 있다. 타격에 재능도 있고 수비력도 발군인데 다만, 타석에서 성급하다는 단점이 있다.

타율이야 0.312로 좋지만 초구부터 건드리는 경우가 많아서 아군이 작전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 데다가, 상대 투수를 괴롭히지도 못한다.

그래서 좋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볼넷이 적고 출루율이 0.355밖에 되지 않는다.

‘너 자꾸 그러면 재계약에 지장 있어. KBO 야구는 미국 야구와 달라. 팀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타자라도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야. 명심 해.’

시즌 내내 지켜보기만 하던 허봉호 감독이 엊그제 엔서니페킨스를 따로 불러 겁박을 주는 바람에 잔뜩 겁먹은 엔서니페킨스는 지난 경기에 볼넷을 두 개나 골라냈다.

허봉호 감독은 그걸 보고는 시즌 초부터 강하게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 말 한마디 했다고 저렇게나 변하다니.

팡.

볼.

끈질기게 공을 보는 엔서니페킨스에 하태문 투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원래 저런 타자가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고무줄처럼 질기다. 엔서니페킨스는 다음 공 변화구에 연속 두 개의 파울을 쳐냈다.

‘타이밍이 맞고 있어.’

하태문은 엔서니페킨스의 스윙을 보고 긴장했다. 발 빠른 중장거리 타자인데 22홈런이나 치고 있어서 더 어렵다. 제 6구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졌으나, 타자가 또 참아낸다.

‘뭐야. 비슷하면 치던 놈 아니었어?’

스리 투 풀카운트가 되자 포수 위현욱도 스트레스 만땅이다. 다음 공을 뭘로 던져야 애가 속을라나.

한참을 생각하던 위현욱은 외국인 타자들이 좋아하는 몸 쪽 높은 볼 사인을 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두어 개 정도만 높게 전력투구하면 스윙아웃 확률이 있다.

팡.

볼넷.

‘화, 더럽게 안 치네. 갑자기 다른 선수가 되어 버렸어.’

위현욱이 타임을 걸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자기도 스트레스 받는데 투수는 오죽하겠는가. 믿었던 필승조 하태문이 올라오자마자 볼넷을 주자 박재신 감독의 고민도 깊어졌다.

필승조로 남은 투수는 나종무와 마무리 이찬호뿐인데, 6회부터 하태문이 무너지면 계산이 안 서는 것이다. 박재신 감독은 불펜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종무, 이찬호, 준비 시켜 봐.”

“알겠습니다.”

박재신 감독은 일단 그대로 가되 여의치 않으면 바로 교체할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의 이면엔 비록 볼넷은 허용했지만, 제구가 흔들린 것은 아니었고 타자가 워낙 선구안이 좋았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휘잉.

이중호는 거구의 몸으로 위압적인 스윙을 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시즌 19홈런에 그치고 있지만, 누구보다 힘이 좋고 타율은 무려 0.321이다.

그뿐인가. 타점은 92점으로 팀에서 톱이다. 이대로 가면 100타점은 무난할 것이라는 게 모두의 예상. 만약 욕심을 내서 홈런만 노린다면 한 시즌 40홈런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문가도 있을 지경이다.

“아, 또 저 새끼네.”

하태문은 이중호를 보는 순간, 7월에 맞았던 홈런이 생각났다. 7회 투아웃 1루에서 역전 홈런을 때린 놈이다. 그리고 경기는 그대로 역전패 하고 말았다. 그랬던 타자가 지금 자신을 보면서 홈런 스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니미럴, 장마다 꼴뚜기냐.’

하태문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3할 타자다. 그리고 나머지 7할은 내 차지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바깥쪽 낮은 포심패스트 볼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타자가 움찔했지만, 배트를 내밀지 못한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낮은 공에 약점이 있지 않나 싶다. 최대한 낮게 던져야 맞더라도 1점에 그칠 수 있다.

하태문은 같은 코스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가운데서 휘어지면서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브레이킹 볼.

따악.

이중호는 슬라이더를 직감하고는 완전히 변화가 되기 전, 최대한 앞에서 배팅 포인트를 형성했고 배트에 맞은 공은 좌익수 쪽 파울라인을 따라 날아갔다.

타구는 쭉쭉 뻗어 좌익수 키를 넘기고 담장까지 넘길 듯 보였다. 척 봐도 홈런이었다. 다만,

“파울이냐, 홈런이냐. 아, 아깝습니다. 폴대를 살짝 비켜갑니다.”

이중호가 친 공은 비거리 130m가 넘는 파울 홈런이었다. 하태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쉬운 타자가 아니다. 볼로 유인했어야 했는데 괜히 객기 부리다가 골로 갈 뻔하지 않았는가. 큰 것을 허용할 뻔했지만, 덕분에 노볼 투 스트라이크로 볼 카운트는 유리해졌다. 투수 하태문과 포수 위현욱은 이심전심으로 유인구를 생각했다.

‘좋아, 몸 쪽 높은 공으로 하나.’

팡.

어깨 높이로 볼이 들어갔지만, 이중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공 역시 슬라이더로 바깥쪽 낮게 던졌으나, 배트를 내밀던 이중호가 급히 거둬들인다.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삼호슈퍼스타즈의 관중석은 응원 열기로 뜨거웠다. 다음 볼이 문제다. 볼을 하나 더 던져볼 것인가. 여기서 승부를 걸 것인가. 망설이는 순간, 배터리 코치의 사인이 왔다.

‘몸 쪽으로 깊게 포심패스트볼이다.’

일단 이중호의 타격 자세가 바깥쪽을 염두에 두고 배터 박스에 붙어 있으므로 내린 결론이었는데, 제구가 잘된다면 루킹 삼진이나 내야 땅볼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태문은 최대한 몸 쪽으로 붙인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졌다.

따악.

그리고 이중호가 걸려들었다. 이중호가 쳐낸 몸 쪽 낮은 볼은 안강피그스 더그아웃의 의도대로 유격수 쪽으로 굴러갔다.

타구가 먹힌 데다가 빗맞아서 빠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유격수는 공을 잡자마자 2루로 뿌렸고, 2루수는 1루 주자 앤서니페킨스를 포스 아웃을 시킨 뒤 1루로 공을 던졌다. 이중호는 유격수에게 공이 굴러가자 이를 악물고 전력 질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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