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43화 (43/188)

# 43

043화 돈 먹은 거 맞지? 3

팡.

볼.

공을 받자마자 진동만은 3루로 공을 뿌렸다. 3루 도루는 매우 뜻밖이었다. 성공률은 2루 도루와 그다지 차이가 없지만 그건, 확신이 없는 한 시도 자체를 아예 안하기 때문이다.

3루 도루를 시도하는 경우는 느린 변화구 타이밍이 거의 확실하거나, 3루수가 번트 수비를 위해 베이스를 비우거나, 배터리가 방심하는 경우뿐이다.

이 경우, 약간 방심했다고 볼 수 있지만 주자가 뛰는 걸 보았고 공은 포심패스트볼이 들어왔다. 충분히 아웃 타이밍이고 이런 경우 거의 도주자로 기록된다.

‘뭐야?’

3루로 공을 던진 진동만은 눈을 껌벅거렸다. 공을 받자마자 지체 없이 던졌고, 자연 태그에 가까울 만큼 공의 위치도 좋았다.

세이프!

하나, 심판의 판정은 세이프이었다. 성낙기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한 뒤 일어서서 허리띠에 들어간 흙을 털었다.

웃으며 팬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는 폼이 마치 수없이 도루를 해본 선수처럼 여유롭기만 했다. 피터레오나드는 3루에 안착한 성낙기를 보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아니, 저 자식… 와인드업도 하기 전에 뛴 게 분명해.’

투구 폼을 빼앗겼다는 생각은 다음 타자와의 승부에 영향을 줬고 6번 정영훈이 받아친 공은 3루와 유격수 사이를 꿰뚫는 안타로 연결됐다.

성낙기는 홈을 밟고 나서 더그아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선수들 사이에 환호성이 터졌다. 상대 에이스 피터레오나드를 두들겨 3:1로 앞서가자 삼호 선수들의 사기는 오를 대로 올랐다. 피터레오나드가 전반기에 상대했던 타선과는 다른 끈끈한 정이 선수들 사이에 흐르고 있다.

다음 타자인 포수 이두열이 아웃됐지만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은 승리를 눈앞에 뒀다고 믿었다.

155km까지 던지는 마크트웰의 컨디션이 최상인 데다가 수비도 시즌을 치르면서 점점 견고해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크트웰은 기대에 부응하듯 7회까지 1실점으로 막아냈다. 여전히 3:1로 앞서는 상황에서 구문철이 8회에 올라 1안타 무실점으로 화산레빗스 타선을 잠재웠고 대망의 9회 성낙기가 마무리를 하기 위해 올라왔다.

“아, 성낙기 선수가 올라오는데요? 지명타자의 대타로 출전한 다음 마무리 투수로 전환합니다. 이거 가능한 건가요?”

“네, 가능합니다. 대타로 나온 다음 투수로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지명타자는 소멸하게 됩니다. 9회가 아니고 더 빠른 회라면 투수가 지명타자 타순에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렇군요. 오늘은 참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타자로 나와 적시타를 때려내더니 마무리 투수로 나오는 성낙기 선수입니다.”

“그러네요. 만약 깔끔하게 9회를 지운다면 성낙기의 날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어요. 그나저나 허봉호 감독은 투타 겸업을 시킬 생각인가요? 한국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선수가 탄생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9회에 마운드에 오른 성낙기는 힘들이지 않고 첫 타자를 잡아낸 뒤, 4번 에브라파운드에게 2루를 스치는 안타를 허용했다. 충분히 잡을만한 공이었는데 느린 스타트가 문제였다.

팡.

스트라이크.

라이징패스트볼과 제구력이 일정한 성취에 올라와 있는 체인지업으로 다음 타자에게 내야 땅볼을 유도해 냈고 유격수와 2루와 1루를 잇는 6-4-3의 병살타가 만들어졌다.

게임아웃!

당연히 그날의 인터뷰어는 성낙기였고 덤덤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성낙기의 튀는 언행을 기대했던 기자는 무언가를 끌어내려고 애썼지만 성낙기는 할 말만을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어딘지 성낙기 선수가 좀 겸손해진 것 같죠?”

“네, 전반기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톡톡 튀는 행동은 선수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볼 때 저런 태도는 이룰 거 다 이루고 난 심드렁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이는데요. 벌써부터 고참같이 행동하면 안 되죠. 모름지기 신인은 통통 튀는 맛이 있어야 보는 재미도 있거든요.”

“하하, 그런 의견이시군요. 이상 캐스터 유시진, 해설 장종운이었습니다.”

방금 겸손하다고 해놓고 바로 자기 말을 뒤집는 장종운 해설자의 말에 수습이 어려움을 깨달은 유시진은 서둘러 방송을 끝냈다.

***

후반기 첫 경기의 반향은 컸다.

전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선수로 인식이 되면서 성낙기의 인기는 치솟았고 그런 선수 기용을 한 허봉호 감독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홈런 레이스에서 타격 자질을 선보였다고는 하지만 투수인 성낙기를 승부처에 대타로 기용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용병술이라는 게 전체적인 평가였다.

실제로 피터레오나드는 성낙기의 등장에 흔들렸고 적시타를 맞고는 멘탈에 금이 갔고 도루까지 내주자 의욕을 잃었다.

정영훈의 안타까지 연결된 2득점은 성낙기 효과라는 걸 아무도 부인하지 않았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통쾌한 승리는 첨이다.

-거기서 어떻게 3루 도루를 하냐.

-성낙기가 원래 빨랐어?

-전력 질주 하는 걸 아무도 본 적이 없대. 애가 능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괴물도 이런 괴물이 있냐. 선발에 마무리에 타격에 도루까지 못하는 게 없다.

-메이저리그로 보내야 해. 여기서 썩으면 국가적 낭비야.

포털 사이트마다 팬들의 의견이 폭주했고 야구의 신이라며 추앙하는 사람들과 내일 바로 메이저리그로 보내야 한다는 의견과 정식으로 사귀자는 여자 팬들의 멘트도 줄을 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2차전 선발은 공성진이었다. 6승2패 2.85의 방어율로 승운이 다소 따라주지 않았지만 제 2선발의 위치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삼호슈퍼스타즈 같은 약팀에서 이 정도의 성적이라면 강팀에선 10승 언저리의 승과 2점 초반대의 방어율일 것이라는 게 팬들의 생각이다.

“화산레빗스와의 2차전에 공성진 투수가 선발입니다. 화산레빗스의 선발은 조쉬 길버트 선수로 140km대 후반의 강속구에 제구력이 빼어난 강점이 있는 투수입니다.”

“오늘 조쉬길버트 투수의 체인지업이 얼마나 먹히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 같습니다. 저 선수도 메이저리그에서 8승을 거둔 적이 있어요. 다음 해가 기대되었었는데 햄스트링 부상으로 마이너리그로 떨어진 뒤에 부름을 받지 못했고 화산레빗스에서 재빨리 낚아온 투수죠.”

“그렇군요. 투수 쪽도 기대가 되지만, 삼호슈퍼스타즈의 타순 변동이 있죠? 시청자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어제 경기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했던 성낙기 선수가 엔트리에 포함되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그야말로 빅 이슈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삼호슈퍼스타즈입니다.”

“하하하, 사실 언제 그걸 알려드려야 하나 입이 근질근질 하던 참입니다. 경기 전에 이미 명단을 봤었거든요. 타순을 처음 볼 때 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KBO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자그마치 지명타자입니다. 보통 지명타자라면 수비력보다 타격에 특화된 선수들의 몫인데요. 그런 선수들을 제치고 투수 출신이 그 자리를 꿰찼다는 것부터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활약이 몹시 기대됩니다. 과연 제구력과 변화구가 좋은 조쉬길버트를 공략할 수 있을지 말이죠.”

성낙기는 아나운서의 말대로 6번 지명타자에 자리 잡았다. 허봉호 감독의 결정에 난색을 보였던 이는 박종태 타격 코치였다.

일단, 하진수의 타격 사이클이 올라오고 있다고 봤고 투수가 지명타자를 차지하면 타자들이 겪게 될 위화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허봉호 감독은 성낙기를 밀어붙였는데 박종태 타격 코치의 생각과는 반대로, 타자들이 각성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더불어 홈런 레이스부터 보여준 성낙기의 타격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고 어제 그걸 증명해 보였다.

투수 출신이건 뭐건 잘하는데 안 쓸 이유가 없다는 게 허봉호 감독의 생각이다. 물론, 오늘 경기에서 무안타에 그친다면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팡.

151km.

1회 초에 공성진은 초구부터 어마어마한 공을 던졌다. 몸이 덜 풀렸을 텐데도 이 스피드라면 화산레빗스 타선이 쉽게 공략을 수준이 아니다.

공성진은 그걸 증명하듯 1회를 2삼진으로 마감했다. 조쉬길버트 역시 삼자범퇴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진 2회 말 삼호슈퍼스타즈의 공격에서 투아웃 이후, 성낙기가 첫 타석에 들어섰다.

“야, 너 어지간히 해라. 응?”

타석에 서자마자 진동만이 신경을 긁었다.

“뭘… 말입니까?”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어디 남의 집에 굴 파고 들어와.”

“어차피 무너지는 굴 깨끗이 부수고 다시 짓는 게 낫죠.”

“장마다 꼴뚜기일 것 같아? 넌 오늘 뒤졌어.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가 가랑이 찢어진다.”

속담까지 적절히 섞어가며 말하는 진동만의 눈이 이글거린다. 하긴, 어제 맞은 적시타에 도루까지 쌓일 만도 할 거다.

진동만은 분을 삭이는 듯 말했으나 실제로는 투수에게 신중한 볼 배합을 요구했다.

제구만 잘되면 가장 치기 힘들다는 바깥쪽 낮은 공으로 사인을 냈고 조쉬길버트는 제구력 투수답게 낮게 깔린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찔러 넣었다.

팡.

스트라이크.

성낙기가 그 공을 친다 해도 페어지역에 들어갈지 장담하기 힘든 제구력이다. 더구나 오늘 주심의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이 후한 편이어서 투수에게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2구는 몸 쪽으로 오다가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였다.

성낙기는 궤적을 알고 있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 자식 봐라, 반응이 아예 없어? 그렇다면.’

원엔 원에서 몸 쪽으로 들어온 3구는 체인지업이었다. 오늘의 조쉬길버트를 있게 한 주 무기다. 타자가 치기 좋은 몸 쪽 약간 높은 코스로 오다가 뚝 떨어지기 때문에 포심패스트볼과의 구별이 어려워서 제구만 되면 십중팔구는 헛스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공 역시 알맞은 높이로 들어와 타자 앞에서 쑥 꺼졌다.

따악.

성낙기는 떨어질 줄 알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고 몸 쪽으로 낮게 깔리던 공은 유격수 키를 넘겨 버렸다.

성낙기는 빠른 속력으로 1루에 도착한 뒤, 좌익수가 천천히 포구하는 틈을 타서 2루까지 곧장 내달렸다.

2루!

진동만이 놀라며 좌익수를 향해 소리쳤고 좌익수 천호준은 허겁지겁 2루로 공을 던졌다. 1루를 지나 2루로 향하던 성낙기는 달리는 도중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리키헨더슨의 도주 능력이 오릅니다.(3/5단계)]

달리는 도중 다리에 힘이 붙고 근육은 촘촘해졌고 그에 따라 베이스 러닝에 최적화된 주법이 성낙기에게서 실현되고 있었다.

천호준이 던진 공이 2루에 도달하기도 전에 성낙기는 슬라이딩을 마친 후, 흙을 털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포수 진동만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하… 뭐가 저리 빨라. 아무래도 이상한데?”

화산레빗스 감독 김영춘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성낙기를 바라보았다. 그의 상식으로 타자도 아닌 투수가 저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인조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투수가 저렇게 빠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결국, 저건 약이다.

‘약을 친 게 확실해. 그렇지 않고는 설명이 안 돼.’

김영춘 감독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조쉬길버트는 2루수 김석문에게 공을 던지고 있었고, 성낙기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바로 3루 도루를 감행했다.

어제에 이어 포수 진동만을 얼마나 쉽게 보았으면 저럴까 싶은 것이, 뛸 타이밍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 다짜고짜 뛰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포수 진동만은 마스크를 벗으며 힘차게 공을 던졌다. 던지면서 열불 냈다.

‘아니, 근데 이 개새끼가 누굴 홍어 x으로 아나.’

3루에 던진 공은 꽤나 빠르고 정확해서 슬라이딩과 태그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고, 조금 머뭇하던 주심이 외쳤다.

세이프!

그와 동시에 진동만은 머리 위에 올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마어마한 분노가 그의 가슴과 눈에서 들끓었다.

심판이고 뭐고 없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심판을 가리키며 어필했다. 심판이 고개를 흔들자, 더그아웃을 향해 네모를 그려보였다. 비디오 판독 요청이다.

김영춘 감독은 잠시 망설였다. 그가 보기에도 세이프 쪽에 가까운 타이밍이다. 하나, 팀의 고참인 진동만의 강력한 주장을 외면하기도 애매했다.

“판독 요청합니다.”

투수 코치가 더그아웃을 나가 뜻을 전달했고 잠시 리플레이 결과를 듣고 있던 주심이 배터리박스로 돌아오며 양 팔을 폈다. 판독 결과도 역시 세이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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