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041화 돈 먹은 거 맞지? 1
성낙기는 주변의 여러 가지 반응에도 담담했다. 8회까지 1실점으로 막고 홈런을 쳤음에도 스탯이 그다지 오르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그날 8회까지 던졌을 때,
[세기의 강속구가 75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75으로 오릅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50으로 오릅니다]
이런 상태 창이 떴는데 개막전 이후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에 비해 스탯의 상승은 매우 느렸다.
하지만 2군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가져온 셈이다.
얼마 전까지 최고 구속 138km이었던 강속구는 이제 140km까지 올랐고 이대로 쭉 상승을 거듭해서 최후의 100을 찍는다면 무려 165km를 던진다는 계산이 선다.
마일로 치면 100마일. 거기에 포심의 제구력 75는 스트라이크 존을 4분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보통의 수준급 투수들이 4분할 정도의 제구력인 걸 생각하면 성낙기 역시 이미 상당한 제구력을 갖추었다는 말이 된다.
그뿐이면 말을 안 하지, 팔색조 변화구에 라이징패스트볼이나 퀘이크볼 같은 깡패 구질까지 있으니 이 정도의 성적이 가능한 것이다.
성낙기의 홈런이 기폭제였다. 삼호슈퍼스타즈는 무더운 장마철에 더욱 힘을 냈다.
선발 투수들이 꿋꿋이 버텨줬고 타자들도 경기가 거듭될수록 경험이 쌓이며 기량이 좋아졌다. 7월이 넘어가자 삼호슈퍼스타즈는 중외울프스를 밀어내고 6위로 등극, 플레이오프를 위한 대반격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하여, 7월 중순의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5위인 성진재규어스를 3게임차로 좁히며 4할 9푼의 승률로 5할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
그리고 7월 16일 드디어 올스타전이 열렸다. 삼호슈퍼스타즈에서는 공성진과 성낙기 필 서든이 투수조로 뽑혔고 타자로는 이중호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당연하게 홈런 레이스에 이중호도 신청했다.
그러면서 동군인 세화스쿼럴스 백일도 감독이 들고 있던 명단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명단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성낙기가?’
그랬다. 이중호의 눈에 분명 성낙기라는 이름 석 자가 들어가 있었다.
놀람도 잠시, 하여튼 어쩔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이중호는 실소했다. 대타로 나와 결승홈런을 하나 쳤다고는 하지만, 운이 따른 홈런이었는데 정말 자기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후, 타석에 서서 공을 쳐 보면 그제야 제 실력을 알게 되겠지.’
더그아웃에 가서도 이중호는 성낙기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았다.
성낙기가 나도 홈런 레이스 신청했다고 말할 때도, 그래? 잘해봐, 하는 격려를 해줬을 뿐이다.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가끔 팬들을 즐겁게 하려고 이벤트성으로 투수가 홈런 레이스에 나선 적이 종종 있었으니까. 예상대로 관중들의 반응은 좋았다.
“야, 방금 들었어? 홈런 레이스에 성낙기라는 이름이 발표됐어.”
“들었어. 완전 웃기네. 투수가 겁도 없이 슬러거들 잔치에 끼어들다니.”
“아무리 그래도 한두 개는 치지 않을까?”
“7아웃에 하나도 못 치는 타자도 많아. 투수는 담장 넘기기가 어렵다고 봐야지.”
허봉호 감독과 마영진 단장, 김아경 등은 삼호 파크의 단장실에 모여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모처럼 올스타에 넷이나 뽑혀 기분이 매우 좋은 듯 마영진 단장과 김아경은 연신 웃음을 내비쳤다.
게다가 성낙기가 홈런 레이스에 참가한 사실에 놀라면서도 흥미진진한 표정들이다.
분위기가 좋은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올스타전 이전에 6위에 올라섰고 후반기에도 선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참 성낙기 선수 특이해요. 홈런 레이스를 신청하다니. 팬들을 즐겁게 할 줄 아는 투수예요.”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선수죠. 현대 야구는 저런 선수들이 많아야 이슈를 만들고 팬들의 이목을 끌 수 있습니다.”
김아경의 말에 마영진 단장이 맞장구를 쳤다.
“허… 재미는 무슨 재미요. 저게 다 철없는 짓거리지. 투수는 공만 잘 던지면 되는 건데 쓰잘머리 없이 홈런 레이스? 타격 재질이 있다고 해도 타격만 본격적으로 해온 애들을 어떻게 당해내겠소.”
“그래요? 그럼, 감독님은 몇 개나 칠 것 같으신데요?”
“몇 개는 무슨 몇 개. 한두 개 치면 많이 치는 거지.”
“그래요? 전 4개는 칠 거라고 봐요. 시즌 중에도 친 적이 있으니.”
“어쩌다 뽀록으로 넘어간 거 가지고 환상에 젖어 계시는구먼.”
“그럼, 감독님은 몇 개 예상하시는데요?”
“1개가 타당한 성적이지.”
“허 감독님 많이 박하십니다. 전 3개봅니다.”
“그래요? 박하시기는 단장님도 마찬가지네요. 전 4개로 하겠습니다. 어때요? 지는 사람이 술 한잔 사기로 할까요?”
“뭐 그럽시다, 까짓 거 술을 사겠다는데 마다할 순 없지.”
단장실에서 설왕설래하는 동안 홈런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세화스쿼럴스의 거포 여태호였다. 페넌트레이스 전반기에만 21홈런을 치고 있어서 작년에 기록한 38홈런을 넘길 거라는 예상이 많을 정도로 요즘 홈런 페이스가 좋다. 라이벌인 천강조가 컨디션 조절을 이유로 결장하였기에 여태호로선 경쟁자가 한 사람 준 것도 좋은 기회였다.
따악.
예상대로 첫 구부터 담장을 넘겨 버렸다.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치어리더의 율동에 맞춰 막대 풍선을 두드렸다.
“역시 대단합니다. 작년엔 아깝게 외국 선수에 밀려 2위를 했기에 올해는 홈런 레이스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고 하는데요. 과연 몇 개를 넘길지 궁금합니다.”
“흠… 아마 여태호 선수라면 7아웃 동안 10개에 가까운 숫자를 기록할 겁니다. 레이스 경험도 있는 데다가 요즘 타격감도 아주 좋거든요.”
여태호는 홈런레이스 예선에서 7개를 기록, 괜찮은 성적을 냈고 모연비퍼스의 미카엘 오르티스 역시 8개로 5명이 겨루게 되는 결선 안정권이다.
화산래빗스의 에브라파운드 역시 7개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뽐냈고, 이중호는 6개를 넘겼다. 그 외 선수들은 3, 4개 정도에 머물렀다. 드디어 성낙기의 차례가 왔다.
“와하하.”
관중들이 웃었다. 타격 폼도 엉거주춤 독특한 데다가 언뜻 보면 타격을 하려는 자세인지 스윙연습을 하려는 것인지 분간이 안갈 만큼 어설퍼 보였다.
투수로 나선 삼호슈퍼스타즈의 이계현 투수 코치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에 성낙기의 몸 쪽 알맞은 높이에 공을 던졌다.
따악.
“악, 저거 뭐야.”
“워우… 대단한데?”
“저건… 그야말로 미친놈.”
관중석에 앉은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낙기의 타구를 보면서 감탄을 쏟아냈다.
성낙기가 친 공은 좌익수 쪽으로 높이 날아가 관중석 상단에 꽂혀 버렸다.
그때부터 시작된 성낙기의 홈런은 2개가 넘어가고 3개, 4개를 넘어 5개를 담장 밖으로 넘기고서야 끝났다.
그렇게 성낙기는 5명이 겨루는 홈런 레이스 결선에 5등으로 올랐다.
김아경은 성낙기가 홈런을 칠 때마다 환호했고 허봉호 감독은 쟤가 저 정도였나 싶은지 눈을 크게 떴다. 더불어 성낙기가 그동안 배트를 들고 알짱거린 일들이 떠올랐다.
그땐, 신출내기 투수의 치기쯤으로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성낙기는 정말 자신이 있어서 그랬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중이다.
“참, 묘한 놈일세. 타격이라고 해봐야 고등학교 때 해본 게 고작일 텐데 쟁쟁한 타자를 물리치고 결선에 오르다니. 5개나 친 걸 보면 뽀록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말이지.”
“그렇죠? 2군부터 죽 봐왔는데 정말 예측 불가의 선수예요. 이대로 성장하면 야구사를 뒤흔들 몬스터가 될지도 몰라요.”
허봉호 감독의 말에 김아경이 맞장구를 쳤다.
5개를 담장 밖으로 넘긴 성낙기를 본 시청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성낙기, 이름 석 자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팬들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경기가 시작되었고 5:5로 팽팽하게 맞선 5회 말이 끝나고 홈런 레이스 결선이 열렸다. 레이스의 시작은 여태호 선수부터였다.
“여태호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과연 몇 개를 담장 밖으로 넘길지 몹시 기대됩니다. 작년과 재작년 연속 2년 동안 외국인 타자들이 홈런 레이스에서 우승했는데요. 올해는 과연 한국 타자들의 홈런왕 탈환이 가능할지 지켜보겠습니다.”
“네, 기대가 됩니다. 우선 예상대로 여태호 선수가 올라왔죠? 작년에 이어 두 번째인 만큼 충분히 좋은 성적을 기록할 겁니다. 여태호 선수 말고도 젊은 거포 이중호 선수도 있습니다.”
“성낙기 투수가 결선에 올랐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우승이 가능할까요?”
“아, 하하… 성낙기 선수는 투수임에도 결선에 오른 희귀한 케이스인데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그 말씀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거라는 말씀이군요.”
“뭐 꼭, 그렇게까지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워낙 상대 타자들이 쟁쟁하기 때문에요. 그런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많은 볼거리를 주는 성낙기 투수입니다.”
***
따악.
여태호는 벌써 7개째를 담장 밖으로 넘기고 있었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3아웃.
결선의 10아웃 동안 9개로 우승 했던 작년에 비춰볼 때 여태호는 두 방만 더 때리면 우승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여태호의 홈런레이스는 10개를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헉, 저 정도면 강력한 우승 후보네.”
“그렇지. 10개 넘은 적이 거의 없었지.”
“역시 여태호야. 올해 홈런왕 가자.”
관중들이 즐겁게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 이중호가 들어섰고 새내기 거포답게 8개를 담장 밖으로 넘겼다.
뒤이은 외국인 타자 둘은 여태호의 홈런 개수에 부담을 느꼈는지 7개와 9개로 여태호의 기록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타자로 성낙기가 등장했다.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성낙기가 타격을 할 때마다 잠시의 침묵으로 선수의 집중력을 방해하지 않았고 그런 기대대로 성낙기는 1아웃이 남은 상황에서 8개나 홈런을 쳤다.
두 개만 더 치면 여태호와 동률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카운트에서 성낙기가 친 공은 중견수 쪽으로 죽죽 뻗어나가 담장 상단을 맞고 떨어졌다.
이로써 올해 홈런레이스는 여태호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성낙기에게 집중되었다.
타자도 아닌 투수가 내로라하는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8홈런을 기록한 것은 KBO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경기는 8:7로 동군의 승리로 돌아갔고 성낙기는 7회 1이닝을 던진 것으로 만족했다. 성낙기는 보여줄 수 있는 걸 모두 보여준 뒤, 강릉의 가게로 갔다.
[맛나 국수집 아들 성낙기의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축하합니다]
-도문시장 상인 일동-
가게가 있는 시장 입구에 도착하자 플래카드가 성낙기의 눈에 들어왔다.
간혹,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드물게 고시합격자 축하도 있었지만, 스포츠 분야로는 성낙기가 처음이었다.
가게 앞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아버지 성용구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성낙기의 눈에 보였다.
[올스타전 출전 기념 천원 국수 출시]
성낙기가 도착하자 국수를 먹고 있던 멍청이순대 아저씨와 복덕방과 과일 가게 아저씨가 박수를 쳤고 성낙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박수 대열에 합류했다.
고3 수험생이 된 서희와 친구 장하연은 부지런히 서빙을 하고 있었다.
“자, 프로야구 선수 이리 와서 한 잔 해.”
“어허, 이 양반 보게. 어디 프로선수에게 술을 멕일라고 그려.”
“괜찮어. 막걸리는 음료수나 같어. 자, 한 잔 받어라. 나 알지?”
“그럼요, 잘 알죠.”
아버지의 유명한 술친구를 어찌 모르겠어. 성낙기는 멍청이순대 박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꿀꺽꿀꺽 삼켰다.
역시… 집이어서 그런지 편안하고 술마저 달다. 성낙기를 알아본 젊은 커플은 사인을 해달라며 메모지와 펜을 내밀었고,
“아유, 오랜만에 온 아들 술 먹일 일 있어? 낙기야, 자리에 앉아 국수 말아줄게. 이 사람들이 즈들끼리 먹을 생각 안하고 누구 집 아들 술꾼 만들려고 작정을 했어 아주.”
엄마의 타박 속에 또다시 잔을 권하던 야채 가게 아저씨는 슬그머니 술병을 내려놓았다.
성낙기가 가게의 한 자리에 앉자 서희 친구 장하연이 물 국수를 가져다주고는 자기도 건너편에 앉았다. 성서희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