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40화 (40/188)

# 40

040화 별종 투수의 탄생 8

휘잉.

“성낙기 너, 또 병 도졌냐? 가만 앉아서 얼음찜질이나 해.”

이계현 코치가 성가시다는 듯 팔을 휘저었다. 성낙기는 허봉호 감독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감독님, 저 살아나갈 자신 있습니다.”

“뭐? 너 지금 대타로 보내달라고 이러는 거야?”

“네, 자신 있습니다.”

“이봐, 이 코치. 얘 어떻게 좀 안될까? 타격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놈이 설치면 타자들은 뭐가 되겠어. 지가 무슨 베이브루스야, 80년대 김성헌이야? 성낙기, 너 이리 좀 와봐. 확 대가리를 뽀사 버릴까보다.”

[행크아론의 타격이 (2단계/5단계)로 오릅니다.]

“으앗! 올랐다.”

성낙기는 놀람의 외침을 한차례 뱉은 뒤에 행크아론의 스윙 스킬을 서너 번 반복했다.

보기만 해도 살벌한 스윙 소리가 허봉호 감독에게 들렸고 배트는 날카롭고 빠르게 돌았다.

비록 서너 번이지만 한 번 보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게 감독이자 코치다.

“너……!”

허봉호 감독이 놀라는 동안 김석문은 투 스트라이크 원 볼에서 바깥쪽으로 흐르는 커브를 또 참아냈다.

성낙기는 이중호가 건네준 헬멧을 쓰고 다시 한번 어필하듯 힘찬 스윙을 했다.

‘아… 저 또라이 새끼. 공을 잘 던지니까 참는 거지, 안 그랬으면 벌써 목 졸랐다.’

휘잉.

‘근데 스윙은 참 쓸 만하네. 어디서 저런 레벨의 스윙을 익혔지?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허봉호 감독이 박종태 코치에게 물었다.

“박 코치, 성낙기 스윙이 전과 다르지 않아? 타자들도 저런 간결한 스윙을 못하는데… 이상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스윙만 보면 제법 프로 티가 나긴 하는데… 막상 투수가 던지는 볼을 상대하면 다르겠지요.”

“어차피 강길만이 지금 슬럼프지?”

“설마… 성낙기를…….”

“그래, 저게 저래보여도 얼쩡거릴 땐 꼭 사고를 쳤던 놈이야. 지금까지 손해를 본 적이 없었지.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그리하여 성낙기는 김석문이 몸 쪽 강속구에 삼진을 당하자, 배트를 끌고 타석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르르르르 하는 배트 끝과 흙의 마찰음이 에이빌드런에게 기분 나쁘게 들렸다.

기분도 나쁘고 놀랍기도 하다.

오죽 내보낼 타자가 없으면 투수를 대타로 내보내나. 모연비퍼스 포수 마성남도 마스크 뒤에서 씨익 웃었다.

이윽고 성낙기가 타석에 섰다.

“내 보다보다 투수가 타석에 서는 건 첨 본다. 너희 감독이 드디어 맛탱이가 갔구나.”

마성남이 비꼬며 성낙기에게 말했다.

“직구 던질 거죠?”

“어쭈, 지금 나하고 대가리 싸움 해보겠다고?”

“싸울 게 뭐 있나요. 어차피 넘어갈 건데.”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뭘 믿고 이렇게 갑치지? 좋아, 강속구가 뭔지를 보여주지.’

마성남은 성낙기의 말대로 포심패스트볼 주문을 냈다.

말하는 폼이 변화구에 약점이 있어 보이지만, 어차피 에이빌드런의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은 칠 수 없다.

아무리 초보자라 해도 몸 쪽은 걸리면 넘어가는 일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간다는 게 마성남의 생각이었다.

‘건방진 놈.’

마성남은 바깥쪽으로 찔러오는 에이빌드런의 공을 받기 위해 글러브를 내밀었다. 여기서 무참하게 꺾어버려야 다시는 투수가 타석에 서는 무식한 일이 없을 것이다.

따악.

마성남의 그런 생각과는 달리 성낙기는 바깥쪽 낮은 포심패스트볼을 무식하게 걷어 올렸고 배트에 맞은 공은 우익수 쪽으로 높이 날아갔다.

우익수 주영진은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오는 공을 보더니 궤적을 좆으며 끝까지 따라갔다. 거의 펜스에 다다랐을 무렵, 주영진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야구장 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주영진의 글러브와 높이 솟아올라 떨어지는 공을 보고 있었다.

처음엔 아주 높이 떠서 플라이로 잡힐 줄 알았던 공이 의외로 비거리가 나와 펜스를 넘기느냐 마느냐 조마조마한 지점까지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주영진의 몸이 떨어져 내렸고 땅에 착지한 뒤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펜스를 바라보았다.

“으아아… 홈런이닷!”

“우와, 세상에 저런 일이.”

“미, 미쳤어. 투수 아녔어?”

“역전 홈런을 때려내다니… 성낙기 방금 욕한 거 미안.”

관중석은 대충 이런 반응이었는데 성낙기는 조용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특별한 세러머니도 없었다.

다만, 마치 안타를 친 것처럼 다이아몬드를 빠르게 도는 것이 다른 타자들과 달랐을 뿐.

-야, 천천히 뛰어. 홈런이잖아.

“…….”

실바의 말에도 입을 꾹 다물고 성낙기는 3루를 거쳐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러고는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서 있는 선수들에게 건성건성 액션을 취해주고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 앉아 헬멧을 벗고 숨을 몰아쉬었다.

선수들은 기분 좋아 하면서도 웃지 않는 성낙기를 보고는 갸우뚱거렸다.

‘하마터면 안 넘어갈 뻔했어. 뭐가 잘못되었지?’

행크아론의 능력을 부여받고 쉽게 홈런이 될 줄 알았는데 주영진의 글러브질이 아니었다면 넘어가지 못했을지 모른다. 주영진이 사력을 다해 떠올랐고 높이가 최대치에 이르는 순간, 공은 글러브에 맞고 떨어졌다.

관중석 쪽으로.

점프력이 좋은 주영진이 글러브로 공을 받은 지점은 분명 펜스 상단이었고 가만 놔뒀으면 맞고 경기장으로 들어올 공이었다.

그러니까, 주영진의 강한 점프력과 미숙한 글러브질이 공을 담장 너머로 안내한 꼴이었다.

“마지막에 배트질을 할 때 손목을 더 썼어야 했어.”

성낙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고 그런 모습을 본 허봉호 감독은 이계현 코치에게 강하게 지시했다.

“쟤 있잖아. 이 코치가 내일 병원 한번 데리고 갔다 와. 증세가 더 심해지고 있어. 가족력도 필히 조사해 봐야 할 거야.”

***

경기는 공수가 교대되어 9회 말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무리의 임무를 맡고 구문철이 마운드에 섰다.

더불어 수비적인 볼 배합을 선호하는 강길만을 빼고 이두열을 투입했다.

상대 타선은 6, 7, 8로 이어지는 하위타선이라곤 하지만 모연비퍼스의 타선이 아니라면 하위 타선일 리가 없는, 수준급 타자들이다.

팡.

스트라이크.

하지만 구문철은 지난 세화스쿼럴스의 경기가 약이 됐는지 과감하게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었다.

타석에 선, 중견수를 맡고 있는 미카엘 오르티스는 만만한 타자가 아니다.

홈런 타자를 선호하던 그간의 KBO구단의 선입견이 바뀐 뒤로, 모연비퍼스도 발이 느린 30홈런 타자를 방출하고 영입한 중장거리 타자였다.

발이 빨라 수비에 능하고 어깨도 강하지만 아직 타격은 적응이 덜 되었는지 2할 7푼 언저리에서 고전하는 중이다.

하지만, 6월 들어 서서히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는 슬로 스타터형 선수.

따악.

미카엘이 때린 구문철의 커브가 쭉쭉 뻗어갔고,

“아, 큽니다. 우익수 쪽으로 날아가는 타구, 이중호 선수가 전력질주하면서 뒤로 물러납니다. 넘어가느냐. 이중호 펜스 앞에서 점프합니다.”

바라보던 성낙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홈런성 타구가 우익수 쪽으로 날아갔고 이중호가 전력 질주로 펜스 앞에 도달했고 그리고 점프했다.

거구의 이중호가 그 공을 쫒아간 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펜스를 짚고 뛰어오르기까지 했다.

그런 뒤 그의 글러브 속으로 타구가 쏙 빨려 들어간 것이다.

“와아아. 뭐야 잡았어?”

“아, 시발 어떻게 저걸 잡냐. 약 처먹은 거 아니야?”

“괜찮아, 아직 원아웃이다.”

“무슨 게임이 이러냐. 잘하면 지겠네. 병x들.”

설마, 설마 하던 모연비퍼스 팬들은 9회 말 원아웃까지 점수가 뒤지자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올해 내내 밥이었던 삼호슈퍼스타즈에 에이빌드런을 투입하고도 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황당함은 더 컸다.

구문철은 자신감을 얻었는지 다음 타자 주영진에게도 공격적인 투구로 내야 땅볼 처리, 이제 포수 마성남이 열받은 표정으로 타석에 섰다.

“야, 쟤는 변화구 전문이냐? 남자새끼가 정면 승부를 해야지, 안 그래?”

“…어, 그렇죠. 그럼 직구 드릴게요.”

마성남은 타석에 서자마자 성낙기가 타석에서 주둥아리 털던 생각이 났는지 따라한다.

가만 보니, 이두열은 백업으로 경험도 많지 않고 전체적으로 두툼하게 생긴 것이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싹싹하게 말은 잘 받는다.

이렇게 대답해 놓고 변화구 사인을 낸다면 저도 민망할 것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게 되니까.

그렇지 않고 정말 직구를 던진다면 저 정도의 스피드는 한 방 가능성이 있다.

팡.

휘잉.

스트라이크.

‘이런, 직구는 맞는데 조금 솟아오른다.’

이두열은 마성남이 칠 수 없다고 여겼는지 직구 사인을 하나 더 냈고 궤적을 파악하지 못한 배트는 공의 아래 부분을 때렸고 공은 내야 높이 솟아올랐다.

언더스로의 특성은 공에 변화가 많다는 것이다.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느낌의 직구에 회전이 가미되어 타자 앞에서 조금 더 떠오른다.

이른바, 업슛.

1군에 올라온 뒤 구문철이 갈고 닦은 구질인데 공이 강속구가 아니어서 변화의 낙차는 크지 않지만, 마성남 정도의 타자를 요리하기엔 충분한 구질이다.

“아웃! 게임 끝!”

주심이 경기의 마무리를 선언하고 두 팔을 높이 들어보였다.

에이빌드런을 상대로 한 성낙기의 원맨쇼나 다름없는 경기였고 8이닝 1실점에 역전 홈런까지 쳐냈으니 경기 MVP는 당연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경기 그야말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팽팽한 투수전이 전개되었는데요. 결국, 삼호슈퍼스타즈가 승리를 낚아챘습니다. 5연패 뒤의 1승이라서 그만큼 값진 승리겠죠. 그 승리의 주인공을 모셨습니다. 바로, 성낙기 투수입니다. 오늘 타자로 나와서 홈런도 치시고 활약이 엄청났는데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 근데 아까 홈런을 치시고 세러머니도 없이 더그아웃에서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무슨 이유가 있었나요?”

“뭐 그런 걸 묻고… 사실은, 더 깔끔하게 칠 수 있었는데 운이 좋아서 넘어간 거거든요.”

“아, 그렇군요. 하하. 이런 열정이 오늘의 성낙기 선수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올 시즌 혜성처럼 나타나서 두각을 나타내고 계신데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네, 우승입니다. 올해 꼭 우승할 겁니다.”

“우승요? 정말 포부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워낙 강팀들이 많아서 만만치 않을 텐데요.”

“제가 계산을 해봤는데 20승에 15세이브 이상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 하하… 그런 포부가…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주세요. 이상 나인스포츠의 배화미였습니다.”

배화미 기자는 실행 불가능한 말을 남발하는 성낙기의 입담에 서둘러 인터뷰를 끝냈다.

성낙기 인터뷰에 대한 반향은 주로 삼호슈퍼스타즈 팬들로부터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의 댓글은 약간 맛이 간 놈이라는 반응, 패기가 있어서 좋다는 반응들이 엇갈렸다.

허봉호 감독과 코치진, 그리고 삼호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은 본래 주둥아리가 가볍고 아무 생각이 없는 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또라이가 또라이다운 인터뷰를 했다는 정도였다.

그보다는 성낙기의 홈런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베이스볼 이브닝이나 스포츠나인 같은 방송사에서는 성낙기의 홈런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올 시즌 가장 놀라운 퍼포먼스로 꼽았다.

“저, 자세를 보세요. 뭔가 엉거주춤한 것 같지만 공을 때릴 때의 임팩트는 정말 대단합니다. 하제에서 상체까지 균형 있는 스윙이 이루어지면서 가볍게 담장을 넘기는 모습은 마치 전문적인 타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스윙이 너무 부드럽고 볼이 날아가는 궤적으로 보면 플라이가 아닌가 싶었는데 그대로 담장을 넘겨 버린다는 거죠. 팔로우 스로우가 이상적이어서 공의 비거리가 장난 아닙니다. 타자로서의 능력도 있는 투수가 아주 드문데 KBO야구에 별종 투수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전문가들조차 리플레이를 보면서 성낙기의 타격 솜씨를 인정했다. 현역으로 뛸 때 레전드급 해설자들이었으므로 성낙기의 단 한 번의 타격으로도 자질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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