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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투수 성낙기-30화 (30/188)

# 30

030화 벤치클리어링 4

타임!

이두열이 마운드로 걸어 올라갔다. 불펜 지시는 없었다.

본래 허봉호 감독의 지론이 스스로 해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스타일인 만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작전 지시를 따로 하지 않는 편이다. 선수들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이두열도 위기라 판단하고 스스로 움직였다.

“왜? 사인 나왔어?”

“아닙니다. 그냥 제가 올라왔어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 거르자고?”

“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앉아.”

이두열이 다시 돌아와 앉았고 타석에 김광우가 들어섰다.

진중결과의 승부에서 2할8푼이니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밥도 아니다. 이두열이 슬쩍 곁눈질로 김광우를 쳐다봤다.

이전 타석과 달리 배터 박스 앞쪽으로 바짝 붙었다. 진중결의 장기인 슬라이더가 거의 아웃코스로 들어온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볼.

이두열이 역으로 몸 쪽 깊은 공을 요구해서 김광우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다시 바짝 붙자 같은 코스를 요구했고 이번엔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몸 쪽으로 스트라이크가 선언되자 김광우는 바깥쪽만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히 조금 뒤로 물러나 몸 쪽에도 대비했다. 그러고 난 뒤의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들어왔으나,

볼.

김광우의 배트가 딸려 나오다가 멈췄다. 여기서 이두열이 다음 공으로 낸 사인은 몸 쪽을 파고드는 슬라이더였는데, 그 공이라면 타자는 사구의 공포 때문에 제대로 된 타격을 하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

첫 투구로 몸 쪽을 깊이 찔러 넣어 약간의 공포심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내기 힘든 사인이다.

따악.

김광우는 이두열의 판단대로 제대로 된 타격을 하지 못했고 빗맞은 공은 타석 바로 앞에 맞고 튀겨서 3루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포수와 3루수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서 공이 속도를 줄였고 3루수 이한영이 런닝스로우로 공을 던졌지만 공은 1루수 앞에서 원 바운드로 글러브에 들어갔다.

“세이프!”

노아웃 주자 만루.

그때까지 팔짱을 끼고 그라운드를 주시하던 허봉호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걸어 나왔다.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오른다는 것은 투수 교체를 의미했다.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모창모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심정으로 불펜을 나와 그라운드로 향했다.

성낙기 역시 불펜을 나와 엉거주춤 서서 마운드를 바라보았다.

모창모가 그라운드에 들어섰고 허봉호 감독은 진중결에게서 빼앗은 공을 들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걸어 올라오는 모창모가 보였다.

그리고 저 뒤에 뻘쭘하게 선 성낙기도 보였다. 다음 순간 허봉호 감독이 소리쳤는데 모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성낙기!”

허봉호 감독은 손바닥을 펴서 모창모를 막은 뒤에 성낙기에게 손짓을 했다. 관중석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2군에서 잘 던졌다는 건 대충 들어 알았지만 설마 1군 경기에, 그것도 노아웃 만루 상황에 성낙기를 올리다니.

1군의 경기만 쫒아 다니던 팬들 중에 성낙기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뭐야, 경기를 포기하는 건가? 2군에서 놀던 투수를 이 상황에 올려?”

“모창모가 긁히는 날은 아무도 못 건드리는데, 왠 듣보잡?”

“에라… 이로서 3연패 확정인가.”

“리빌딩한다 할 때부터 내 이럴 줄 알았어. 결과가 빤히 보여서 더 이상은 못 있겠다.”

관중 일부는 성낙기가 연습 구를 던지는 동안 자리를 떴다.

키도 크지 않고 몸도 마른 편의 볼품없는 투수에게 기대를 거는 팬은 거의 없었다. 2군 경기를 죽 봐온 소수의 팬들만이 성낙기라는 이름 석 자를 연호했다.

“마침내 1군 마운드에 서는가?”

성낙기는 마운드에 서서 관중들을 훑어보며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낮게 읊조렸다.

겉으로 보기엔 늘 걱정도 없고 훈련도 설렁설렁하는 것 같은 표정이지만, 사람들의 그런 선입견과 달리 성낙기는 겨울 내내 실바와 존이 짜 준 훈련 매뉴얼을 성실하게 끝마쳤고 그 결과 스탯이 비약적으로 올랐다.

우선은 체력이 5이닝 정도는 전력으로 던져도 될 만큼 올랐고 세기의 강속구 역시 어느덧 138km에 이를 정도로 향상되었다.

계속 노력한 결과, 1군 투수들의 평균에는 못 미치지만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거기에 성낙기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무려 8개의 구질까지 가졌으니 자신감을 가질 만도 했다.

성낙기의 현재 스탯.

[체력(75/100)]

[세기의 강속구(73/100)]

[포심의 제구력(68/100)]

[커브의 제구력(70/100)]

[슬라이더의 위력(68/100)]

[체인지업의 위력(73/100)]

[투심의 제구력(44/100)]

[포크의 제구력(45/100)]

[퀘이크볼(3cm/5)]

라이징패스트볼(6cm/10)]

팔 근육 강화(5/10)단계.

어깨 근육 강화(5/10)단계.

악력(7/10)단계.

전광석화(電光石火) + 7km. 9이닝 5구.

성낙기는 마운드 위에서 심호흡을 했다.

주자 풀 베이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6번 타자 오재진은 프로 경력이 많은 베테랑이었다.

비록 6번을 맡고 있지만 그건 나이를 감안해 배치한 감독의 배려일 뿐, 작년엔 5번을 줄곧 칠 정도로 팀의 중심 타자나 마찬가지다.

오늘 공성진의 투구에 밀렸으나, 개막전 2안타와 2차전 1안타의 연속 안타를 때려낼 정도로 타격감도 나쁘지 않다.

팡.

스트라이크.

성낙기가 던진 포심패스트볼이 바깥쪽에 꽂혔다.

136km.

나름 위력적인 구위였다.

볼 끝이 전혀 죽지 않으니 타석에 선 타자에게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오재진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타석에서 한 발을 빼고 방금 전 공의 타이밍을 되새기면서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팡.

스트라이크.

성낙기는 포심패스트볼을 또다시 바깥쪽에 던졌다.

스트라이크 존에 간신히 걸칠 만큼 절묘한 볼 컨트롤이다.

오재진이 한숨을 쉬면서 하늘을 본다.

성낙기라는 투수의 공은 상당히 느리고 변화구에 강점이 있는 기교파 투수 정도로 알았는데, 투수 코치의 말과는 완전 딴판이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좌우로 휘어지고 떨어지는 변화구에 속지 않으면 볼 카운트가 유리해 질 거고 그러다 보면 찬스가 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과감하게 포심패스트볼을 꽂아대는 정면 승부 스타일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사이에 성낙기의 제3구가 날아왔다.

이번엔 몸 쪽이다.

앞의 공과 같은 높이에 같은 구질로 판단한 오재진은 배트를 휘둘렀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뭐지?

오재진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성낙기와 포수 미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분명 아까와 같은 포심패스트볼이었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공의 높이보다 훨씬 위로 꽂혔다. 공을 받은 포수의 미트가 거의 자신의 가슴께에 위치한 걸 보면서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오재진.

동계 훈련 동안 6cm에 이르는 폭으로 발전한 라이징패스트볼이었다.

말이 6cm지 실제로 보면 공이 확 치솟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변화가 심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직선으로 포수 미트에 꽂히는 것만으로도 타자들은 공이 떠오른다고 느끼게 되고 좀처럼 배트 중심에 맞히지 못하는데 실제로 솟아오르는 성낙기의 라이징패스트볼은 더더욱 위력적인 공일 수밖에 없다.

꺄오.

고개를 들어 한 차례 포효한 성낙기는 다음 타자 김말영에게는 높은 직구를 하나 보여준 다음 커브와 슬라이더로 볼카운트를 잡고,

팡.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으로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했다. 순식간에 투아웃이 되었고 삼호슈퍼스타즈 더그아웃은 예상외의 호투에 한층 사기가 올라갔다.

마무리 투수 진중결이 무너지는 마당에 주자 만루에서 저 정도의 포스를 보이는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성낙기를 잘 모르는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에게도 성낙기의 여유로운 표정과 거침없는 승부는 경이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2군에서 올라온 투수 맞아?”

“구위는 그렇다 쳐도 저런 강심장이 존재하다니. 2:1 노아웃 주자 만루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제 공을 던지고 있어.”

관중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1군에서 보이지도 않던 투수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만루 상황에 두 타자를 가볍게 요리해 버렸다.

하지만, 중외울프스의 팬들은 마지막 타자에 대한 기대감을 꺾지 않았다.

안창남.

중외울프스의 포수이자 정신적 지주인 그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타율은 고작 2할 6푼 8리에 머물렀지만 득점권에서는 3할 3푼의 타율을 자랑하는 타자로 그 덕분에 지난 시즌 하위 타순이면서도 62타점이나 올린 선수였다.

휘잉.

스트라이크.

성낙기는 그런 안창남에게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해 냈다. 포심패스트볼에 맞춰 배트를 휘두른 안창남이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구사한 구종만 해도 포심패스트볼과 라이징패스트볼,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까지 무려 다섯 가지의 구종이니 무엇을 던질지 예측이 어렵다.

포심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다가 뚝 떨어지는 느린 체인지업에 당한 안창남은 2구 역시 포심에 타이밍을 맞추고 다음 공을 기다렸다.

그런 그에게 날아온 제2구.

‘드디어 왔다.’

그가 속으로 부르짖으며 휘두른 배트엔 그러나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만 허망하게 들려올 뿐,

휘잉

스트라이크.

이번 공은 바깥쪽 약간 높은 코스로 들어오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졌다. 타이밍은 거의 맞았지만 공의 궤적은 그의 상상을 벗어났다.

포수의 얼굴 높이로 오다가 무릎 아래까지 뚝 떨어지는 포크볼이었다.

성낙기가 구사한 제 6의 구종.

“x발, 뭐야.”

짜증 섞인 얼굴로 욕을 한 차례 내뱉고 타석에 섰을 때 한 템포도 쉬지 않고 3구가 들어왔다. 던지는 순간, 안창남은 들었다.

와인드업을 하는 성낙기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전광석화(電光石火).”

그리고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해 불가의 스피드로 포수 미트에 들어가 박히는 공.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끝!

자그마치 144km의 위력적인 공이 떠오르듯 몸 쪽을 파고들었고 안창남은 몸을 한 차례 움찔했을 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그라운드를 주시하고 있던 관중들과 양쪽 더그아웃의 선수와 코칭스태프,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자까지 한순간 말을 잃었다.

잠시의 정적이 경기장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1군 첫 세이브 기념으로 수비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1단계/5단계)].

2군 수준의 수비 능력을 가진 성낙기에게 수비 강화 스탯이 들어왔고,

[1군 첫 세이브 기념으로 행크아론의 타격이 활성화됩니다. (1단계/5단계)].

3771안타 755홈런 2297타점 240도루에 통산 타율 0.305의 행크아론 타격이 성낙기에게 들어왔다.

***

<혜성같이 등장한 성낙기, 중외울프스의 9회는 없었다 - 베이스볼 투데이>

<무려 144km의 강속구로 거듭난 2군 투수 - 야구닷컴>

<9회 3삼진으로 중외울프스 타선을 잠재우다 - 스포츠나인>

삼호슈퍼스타즈의 팬들은 언터처블(Untouchable)급 마무리 투수의 위용에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9회 3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기록은 삼호슈퍼스타즈 구단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록이며 더구나 볼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물러나는 타자들의 모습은 그동안 가래톳 서던 가슴 한쪽을 뚫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성낙기가 던진 마지막 공, 전광판에 찍힌 144이라는 숫자는 마무리 부재에 시달렸던 삼호슈퍼스타즈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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