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28화 (28/188)

# 28

028화 벤치클리어링 2

어느덧 1월 중순이었다. 삼호슈퍼스타즈의 전력분석관 정진수는 김아경의 지시대로 쓸 만한 선수 셋을 골랐다.

마크 트웰(30)-메이저리그 경력 23승 12패 ERA 4.69 트리플A 43승 22패 ERA 3.55. MLB 경력도 있는 데다 155km의 공을 뿌리는 좌완 투수. 192cm에 98kg의 육중한 몸으로 높은 타점에서 찍어 누르는 포심이 인상적인 투수. 다만, 9이닝 당 4.08의 볼넷 기록이 말해주듯 제구력에 약점이 있다. 예상지출 170만 불.

필 서든(26)-트리플A에서만 33승 10패를 기록한 선수로 ERA 4.12. 역시 195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최고 구속 159km의 강속구가 주 무기인 선수. 제구도 그런대로 쓸 만은 한데 직구와 슬라이더, 두 구종을 주로 던지며 커브는 제구가 잡히지 않아 투 피치 투수에 가까움. 예상지출 70만 불.

앤서니 페킨스(27)-우투우타 중견수. 강견에 빠른 발로 트리플A에서 올해 27도루를 기록. 타율 3.01 12홈런. 눈에 띄는 기록은 80%가 넘는 도루 성공률과 폭 넓은 수비. 특히 수비만큼은 mlb급이라고 평가받는 선수. 예상지출 90만 불.

허봉호 감독의 희망대로 mlb에서 뛰었던 선수가 포함된 스카우트 리포트. 허봉호 감독이 OK했고 김아경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콩을 볶아먹듯 계약을 체결했다.

***

그리고 시작된 2월의 스프링 캠프엔 70여 명이 참여했다. 코치들과 기존 1군은 물론 2군에서 주전급이었던 선수들과 외인들까지 총동원이었다.

베이스볼 시리즈에서 2위를 경험한 삼호슈퍼스타즈 2군 선수들은 사기가 올라 의욕적으로 훈련과 경기에 임했고 그 결과 1군 27명의 엔트리와 5명의 확대 엔트리를 합쳐 총 11명이 1군에 진입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2019 개막 일주일 전.

투수로는 이세환, 안민기, 구문철, 이오수, 그리고 성낙기가 포함되었고 2군의 주전 타자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김아경이 나이가 많다며 탐탁치 않아했던 강창선, 안학규, 김석문도 오랫동안 희망했던 1군 진입의 꿈을 이루었다. 이정우와 이중호, 이두열도 마찬가지.

그리고 2군에서 올라온 11명은 발표가 있은 날 저녁, 강릉 시내의 삼겹살집에 모였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앞에 두고 모두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야, 니들 1군 올라왔다고 오버하면 안 돼. 몸 다치면 그길로 바로 2군이다. 나도 3년 전에 1군에 와서 물불 안 가리고 설치다가 발목이 돌아가 버렸지. 딱 일주일 뛰고 시즌 아웃되어 버린 거야.”

스프링 캠프에서 2할 8푼 3리의 나름 준수한 성적을 낸 강창선의 말. 홈런도 4개나 쳐서 한 방으로 어필하는 중인데 다만, 1루 수비가 조금 약하다.

이중호도 3할에 가까운 성적으로 주전이 눈에 보이고 이정우도 마찬가지다.

안학규 등은 타율이 조금 안 좋지만 핫 코너인 3루 수비만큼은 발군이고 포수 이두열은 1군 포수 강길만의 백업으로 경쟁하는 중이다.

투수들도 나름 스프링 캠프 동안 제구와 변화구 등을 갈고 닦아서 쓸 만해졌다. 특히 투피치 투수인 안민기는 2군에서 간간히 던지던 커브를 이계현 투수 코치에게 집중 조련을 받아 실전에 쓸 수 있을 만큼 일취월장했다.

“어쨌거나 2군 성적이 좋아서 1군에 대거 합류했는데 모두 잘해보자. 우리를 잘 아는 감독님이 1군 감독으로 가서 참 다행이다. 무조건 살아남아 보자.”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해 봐야지.”

선수들이 저마다 의욕을 다졌다. 강찬선은 소맥을 만들어 돌렸고 기분 좋은 선수들은 술을 물처럼 들이켰고, 얼큰하게 취해서 일어섰다. 일부는 집에 들어갔고 일부는 노래방으로 2차, 그리고 다음 날 기사가 떴다.

<삼호슈퍼스타즈 강창선 음주 운전으로 가로수 들이받아 중상. 2군 출신 선수들끼리 개막전파티 열었나>

<삼호슈퍼스타즈가 꼴찌 하는 이유. 극심한 기강 해이로 스프링 캠프 성과 날려>

“아니, 이 새끼들이 휴식 기간에 뭘 한 거야. 몸조리하라고 보냈더니 술을 처먹어? 코치는 선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허봉호 감독은 아침 기사를 보자마자 열이 끓어올랐다. 기껏 많은 훈련량으로 올해는 뭐 좀 해보나 했더니 악재가 터졌다.

강창선은 무려 전치 6주의 중상이며 음주 운전으로 상당 기간 전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한 건 외부에서 선수단을 보는 눈과 선수단 자체의 사기에 영향이 가는 사건이라는 것.

어쨌건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에도 날짜는 갔고 내일이 개막전을 다가온 3월 31일, 성낙기는 김아경이 있는 구단 스카우트 실을 노크했다.

선수단 파일을 들여다보던 김아경은 2군에 있을 때 점심을 대접하다가 줄행랑을 친 전력이 있는지라 커피를 끓여 테이블에 내왔다.

선수 개인이 김아경은 찾은 경우는 처음이다.

가끔, 말도 안 되는 공을 던지는 성낙기가 갑자기 스카우트 실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지만 알 수 없다.

“선수가 스카우트실을 찾은 경우는 처음인데요?”

“아, 그렇습니까? 실례한 거라면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저야 좋죠. 천하의 성낙기 투수가 저를 찾다니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전, 메이저리거가 꿈입니다.”

성낙기의 난데없는 말에 김아경이 눈을 크게 떴다. 느닷없는 방문도 갑작스러웠는데 와서 한다는 첫 마디가 메이저리그가 꿈이라니. 야구 선수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그야… 그런데요?”

“문제는 포스팅 시스템이나 FA가 되기를 기다리려면 최하 7년 이상을 1군에서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그건 KBO 공통의 룰인데요?”

“우승과 상관없이 한국 시리즈에서 3승을 하면 방출해 주십시오.”

“한국 시리즈 3승요?”

“네, 한 해에 한국 시리즈 3승을 한 뒤 메이저리그로 가겠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후 삼호슈퍼스타즈에서 선수 생활을 끝낼 생각입니다.”

“하… 제가 보다보다 이런 어이를 찜해 먹는 경우는 처음 봐요. 아직 1군 경기도 안 뛴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한국 시리즈 3승도 꿈에서나 가능하죠. 일단 우리 야구단은 포스트 시즌도 못 나가고 있어요.”

“그 꿈이 이루어지면 보내주실 건가요?”

“말씀도 황당하지만, 이건 감독님이나 단장님의 동의가 필수고요. 제가 구단주 딸이라지만 이런 제의에 대해서는 말해줄 입장이 못 됩니다. 그나저나… 하하하… 한국 시리즈 3승이라니. 7차전 중에서 3승? 그건 80년대에나 가능했죠. 지금은 타자들 수준도 다르고 무엇보다 어깨가 견디질 못해요.”

“제가 한국 시리즈 3승을 하면 구단에도 좋은 일 아닌가요? 전 지금 진지하게 말하는 겁니다. 삼호슈퍼스타즈 출신의 메이저리거 1호가 되겠습니다.”

“휴… 꿈같은 얘기를… 좋아요,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감독님과 단장님을 설득해 보죠. 됐나요?”

“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되든 말든 일단 싸질러놓고 보는 거야. 가만있는 것보단 낫겠지.’

씨익 웃으며 나가는 성낙기를 보고 김아경은 생각했다.

성격이 별나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지만, 망상 비슷한 증세가 있는 건 아닌지 지정 병원으로 보내 검사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이다.

그나마 입단 계약서 고치자고 들이대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

그리고 2019년 4월 1일,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개막전 상대는 1군 중외울프스.

삼호슈퍼스타즈의 투수는 작년에 9승 10패 ERA4.23을 올린 김도진이다.

팀 전력이 괜찮았다면 13승 언저리에 3점대 방어율을 찍었으리라는 게 팬들의 생각이었을 만큼 포심패스트볼의 구위가 좋고 각이 큰 슬라이더를 던진다.

경기는 중외울프스의 홈, 인천에서 열렸다.

프로야구의 열기가 느껴지는 관중석은 경기 시작 전에 이미 절반 이상이 들어차 있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1회 말, 김도진은 스프링 캠프 내내 닦은 기량을 뽐내듯 연습 구부터 전력투구했다.

그리고 첫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중외울프스의 리딩히터 민영찬이다.

2018년 타율 0.307에 도루 18개를 기록한 정교하고 발이 빠른 타자.

김도진은 영점이 잘 안 잡히는지 연거푸 볼을 던졌고 간신히 투 스리까지 볼카운트를 끌고 갔으나 볼넷.

그 후로 흔들리기 시작한 김도진은 1회에만 3점을 헌납해서 의욕에 들뜬 삼호 선수단에 찬물을 끼얹었다.

2회부터는 제 페이스를 찾고 5회까지 꾸역꾸역 막아내다가 6회에 다시 2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삼호 타선도 덩달아 침묵해서 개막전은 0:5로 셧아웃.

그렇게 첫 경기가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허봉호 감독은 자신의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느꼈다.

프랜차이즈까지는 아니지만 몇 년 동안 팀의 에이스 급이었던 김도진의 기를 살리고 무엇보다 기존 선수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개막전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다음 날 경기에 허봉호 감독은 마크 트웰을 투입했다.

마크는 강속구를 내세워 중외울프스 타자들을 윽박질렀고 3회에 연속 볼넷과 안타로 1실점을 제외하곤 잘 던져서 6회까지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삼호슈퍼스타즈의 타선은 상대 투수로부터 3득점을 얻어내 3:1로 앞선 상황.

7회엔 구문철이 1안타를 맞았지만 잘 막아냈다. 8회가 문제였는데 나윤태가 올라와 볼넷과 안타로 불을 지르기 시작하더니 큼직한 3루타를 맞아 순식간에 동점을 내줬다.

이어 마무리 투수 진중결 역시 깨끗하게 홈런을 내줘 3:5로 역전.

경기가 그대로 끝나 버렸다.

-역시, 스프링 캠프에서 좀 하더니 본 경기 가니까 진면목을 보여주네.

-올해도 글럿다아아아~

-선발이 잘 던지면 뭐하니. 뒤에서 다 말아먹는데.

-와… x발, 연패는 기본으로 깔고 가네.

-어디 쓸 만한 마무리 없나요?

-사회인 야구 잘 봤다.

팬들은 경기 결과 기사마다 찾아다니며 감정을 쏟아냈다.

선발은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췄는데 마무리가 문제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코치도 난감했다. 작년 16세이브를 올린 진중결이 첫 등판부터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 코치, 우리 불펜 어떻게 생각해? 스프링 캠프에선 곧잘 던지더니 어제 오늘 완전 헤매고 있어.”

“그게 참… 구위들은 그런대로 되는데 제구가… 좀 기다리면 컨디션이 올라올 겁니다.”

“아니야. 내가 보기엔 이 상태론 대책이 없어. 차라리 구문철을 마무리로 써 볼까?”

“구문철은… 7, 8회가 제격입니다. 경기를 결정짓기엔 부족하지 않을까요?”

“휴… 개막전부터 연패라니.”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코치의 대화는 별다른 묘안 없이 끝났다. 그리고 3연전의 마지막 날에 드디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공성진이 마운드에 올랐다.

“아, 드디어 공성진 투수의 등장이군요. 관중들이 술렁입니다.”

“하하,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이번 FA에서 아주 대박을 터뜨렸거든요. 그리고 그만한 값어치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다만, 수비가 뒷받침돼야 좋은 성적도 가능합니다. 삼호슈퍼스타즈 수비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서… 글쎄요… 올해 어떤 성적을 거둘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공성진의 등장에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며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와 파워커브, 그리고 새로이 장착한 서클체인지업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삼호슈퍼스타즈 팬들도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공성진은 연습 구부터 강속구를 연달아 뿌려댔다.

패기 넘치는 그의 모습엔 연패의 부담감이 전혀 없다. 오히려 자신감만 가득한 모습. 공성진의 그런 모습을 보며 이계현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에이스답게 파이팅 넘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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