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27화 (27/188)

# 27

027화 벤치클리어링 1

공성진.

모연비퍼스 소속으로 전성기 나이인 29세에 17승 7패, ERA 2.68의 성적을 거둔 그는 최고 구속 155km를 자랑하는 좌완 파이어볼러다.

프로 데뷔 이후 92승을 거둔, KBO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타자에게 오다가 뚝 떨어지는 드롭성 슬라이더와 파워커브가 주 무기인 선수.

이 세 구종으로 리그를 지배해 왔는데 올 후반기엔 간간히 스프링 캠프에서 익힌 서클체인지업을 섞어 던져서 타자들의 머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실제로 후반기의 성적만 보면 9승에 1,88의 방어율로 건드릴 수 없는 공을 던지는 투수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투수.

이런 상황이니 어느 팀이건 공성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의하면 이미 지방의 한 구단으로부터 4년 130억을 제시받고 고민 중이라는 것부터 일본 프로야구 진출과 이미 신분 조회를 바친 mlb의 두 구단이 상당한 액수의 오퍼를 넣었다는 말까지 다양했다.

연준후.

세화스쿼럴스에서만 102승을 거둔 우완 투수로 역시 150km대의 빠른 볼과 횡으로 변하는 슬라이더가 일품인 투수인 동시에 KBO선수로는 드물게 포크볼로 많은 삼진을 잡아내는 삼진왕이다.

올해 205이닝을 던지면서 잡아낸 탈삼진이 무려 189개, 30세의 나이로 아직 전성기를 지나지 않았다.

2018년 최종 성적 18승 9패로 ERA3.22 다승과 탈삼진 2관왕에 빛나는 이닝이터이며 공성진과 마찬가지로 거액의 오퍼가 있어야 잡을 수 있다.

천강조는 다른 말이 불필요한 슬러거 중의 슬러거다.

2018 홈런왕에 타점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43홈런에 135타점, 공낙진과 마찬가지로 모연비퍼스가 우승하는 데 대체 불가의 공을 세웠다.

135타점이라는 기록에서 보듯 득점권에서 3할6푼이라는 경이적인 해결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나이도 젊은 28세, 그를 잡기 위해서는 공성진 이상으로 큰돈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도는 중이다.

성격이 냉정하고 독불장군 식의 태도가 문제지만 워낙 출중한 능력으로 뒷말이 나올 새가 없다.

김교민.

안강피그스의 테이블세터로 리그의 대표적인 1번 타자. 1번답지 않게 홈런도 곧잘 때리는 데다 출루율이 4할에 육박했다.

올해는 23홈런 21도루에 그쳤지만 작년엔 38도루를 기록을 정도로 발이 빠르고 도루 성공률도 8할이 넘어서 루상에 나가면 골치 아픈 유형의 선수다. 끈질긴 커트와 높은 볼넷 비율 또한 그의 장기다. 눈에 보이는 성적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팀 공헌도가 높다는 세간의 평가가 늘 따라다닌다.

***

11월 말, 김아경과 마영진 단장, 허봉호 감독이 자리를 함께했다.

삼호파크 내의 단장실.

셋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꽤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이는 다름 아닌 김아경이었다.

“비정하다해도 어쩔 수 없어요. 이제껏 해온 방식은 잊어야 합니다. 구단에서도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어요. 지금 있는 주전 선수들은 패배 의식에 젖어 있고 그걸 탈피할 생각도 여력도 없습니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합니다.”

“뭐… 전에 백업 강조하실 때부터 대충은 알겠는데 어느 정도나 생각하시는지.”

“마 단장님과는 얘기가 되었는데, 불펜 투수 몇 명만 남기고 32세 이하는 모두 트레이드하거나 방출할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32세 이상 선수 중에 야수는 경쟁력 있는 선수가 없고 선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찬규도 말입니까? 올해 8승을 거뒀는데?”

“ERA는 6.49지요. 볼넷도 많고 올해 타선 지원을 받았을 뿐, 작년보다 구위가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32 넘는 선수가 거의 1/3인데 알고나 말하는 거요?”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인원은 2군에서 수혈하면 어떨까요?”

“허허, 어이가 없어서 졸도할 지경이네. 아무리 구단주 따님이라지만 감독을 핫바지로 보시는군. 그럴 바엔 아예 감독으로 나서지 그럽니까. 뭐, 물갈이만 하면 안 좋던 성적이 좋아진답니까? 야구는 경험이 중요한데 초짜들 모아놓고 구구단이라도 가르치라는 거야?”

“구단의 의견이 그렇다는 거지, 감독님께 그대로 따라달라는 겁 아닙니다.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 제가 온 거고요. 부탁드립니다. 만년 꼴찌 2군 선수들을 데리고 2위까지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년까지 리빌딩 기간으로 잡고 감독 계약 끝나는 3년째 가을 야구만 하게 만들어 주세요.”

“하이고… 난 모르겠수. 뭐,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따지고 보면 김아경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고, 말 중간중간에 감독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허봉호 감독은 못 이기는 척 한발 물러섰다.

“호홋, 그럼 승낙하신 걸로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감독님, 커피 한 잔 갖다 드릴까요?”

<삼호슈퍼스타즈, 대대적인 리빌딩으로 술렁이는 선수단 - 스포츠나인>

<5:3 트레이드로 유망주를 얻고 주전을 내준 삼호슈퍼스타즈 – 이브닝베이스볼>

<삼호슈퍼스타즈 무려 11명을 방출하다 - 스포츠투모로우>

허봉호 감독과 내년 계획을 짠 김아경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최고의 에이스 공성진을 낚아 올린 것이다. 떠도는 소문처럼 4년 130억에 세금까지 내주는 조건이었다.

물론 세금 쪽과 옵션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계약서에 붙은 옵션은 한 시즌에 14승 이상 달성하면 20억을 얹어주는, 공성진의 구위로는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와 같은 옵션도 하나 붙었다.

몇 년 전에 수백억을 FA에 투자하고도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걸 생각하면 이번의 공성진 영입 역시 커다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김아경의 이런 모험의 배경엔 2군 선수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허봉호 감독 및 코칭스태프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공성진의 영입으로 시리즈 우승 팀 모연비퍼스는 에이스를 잃었고 삼호슈퍼스타즈는 확실한 연패 스토퍼를 얻었다.

시즌 중의 연패는 어느 팀이나 있게 마련인데 그 연패를 끊어줄 투수가 없으면 팀의 사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삼호슈퍼스타즈는 투수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고 모연비퍼스는 에이스를 잃음으로써 KBO리그의 평준화에도 기여를 한 셈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공성진의 영입으로 구단은 지갑을 닫았고 트레이드로 내야 유망주들을 얻은 것에 만족했다.

새해가 밝았고 성낙기는 집으로 돌아왔다.

선수협과 구단 간의 협정에 의해 맞이하는 한 달간의 휴식기. 실바와 존은 성낙기가 쉴 틈도 없이 몰아붙였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배터지게 먹고 마실 작정이었던 성낙기는 두 멘토의 닦달에 쉬지도 못하고 근처 초등학교 야구부의 마운드에 섰다.

“2군에서 한 시즌 미친 듯이 굴렀으면 좀 쉬어야지 말이야. 던지면 던질수록 어깨가 아작 나는 거 몰라요?”

-니 어깨가 어디 보통 어깨냐? 세기의 강속구가 100까지 풀로 차기 전에는 망가질 일 없으니 열나게 던지기나 해.

-너 지금 나이가 23세가 되었지? 4년 남았다. 시스템 말대로 27세까지는 스피드가 계속 오를 테니 걱정 마. 너 이런 식으로 놀다간 절대 4년 안에 풀 스피드 못 채운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스피드가 올라갈수록 레벨업도 느려지게 되어 있어. 이 정도에서 만족하면 넌 그렇고 그런 투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겠지. 그런 게 좋아?

“그 말씀은 지금 내 공이 1군에선 안 통할 거라는 거예요?”

-대충은 통하겠지만, 2군에서처럼 절대적이진 않지. 1군을 휘어잡으려면 휴식기 동안 스피드를 리그 평균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해.

실바와 존은 번갈아가며 훈련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2군에서의 피칭에 만족했던 성낙기는 실바와 존의 말을 듣고 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성낙기의 아버지 성용구 씨는 수백 개의 공을 초등학교로 실어 날랐고 국수와 순대로 간식을 준비했다.

배터 박스 한쪽에 서서 성낙기가 한 구, 한 구, 공을 던질 때마다 나이스를 외치며 힘을 북돋웠다.

성낙기가 1군에 진입하리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과 다름없다.

2군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1군에 그대로 올라갔고 1군의 베테랑들은 모조리 정리해 버렸다. 1/3의 인원이 텅 비어버린 이상, 2군에서의 선수 수혈은 불가피하다.

성낙기는 이중키킹에 가까운 자신만의 투구 동작을 더욱 가다듬었고 하루 천 구 이상의 공을 던졌다.

실바에게 셋 포지션을 최대한 간결하게 가져가는 방법과 변화구의 그립을 세밀하게 사사 받았고 존에게는 위력적인 공을 더 위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포커페이스와 타자와 정면 승부를 하는 요령 등을 전수 받았다.

공성진의 FA를 마무리한 뒤에도 김아경과 마영진, 허봉호 감독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 1, 2군 선수들에 대한 평가, 혹은 토론이 이어졌고 구단의 미래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경기 중에 쓸 선수를 올리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었지만, 구단의 미래 방향과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을 잇자는 것이 김아경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강창선, 안학규, 김석문을 올리시겠다고요? 만년 2군 선수들이잖아요. 우리가 정리한 선수들만큼 나이도 있고 실력은 오히려 떨어집니다.”

“요번에 선수들을 싹 정리하는 바람에 쓸 선수가 없소. 그러게 앞뒤 안 재고 선수단을 물갈이하는 법이 어디 있어.”

“이번에 트레이드로 받은 유망주들은 안 보이시는가 보죠?”

“어이, 여자. 뭘 알고나 얘기를 해야지. 걔들은 말 그대로 유망주지 1군 주전에 보낼 선수들이 아니오.”

“어이, 여자라고요? 헐… 어이가 없네. 전 엄연히 삼호슈퍼스타즈의 스카우트 팀장…….”

“알아, 구단주 딸인 거. 근데 막말로 스카우트 팀장으로 한 일이 뭐요? 공성진 데려온 거? 그건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하는 일이야. 그리고 주전 선수 5명하고 새파란 애들 3명을 바꿔? 지금 밖에선 나보고 미쳤다고 난리야. 시즌을 어떻게 꾸려 나가려고 저 지랄하냐고 말이지.”

“저, 저 지랄? 그, 그래요. 제가 지랄했다고 쳐요! 이번 2군 성적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가요? 제가 지랄하면서 데려온 선수들 아니었으면 2위는커녕 가을 야구도 못했어요, 알아요? 흥, 자기가 능력이 좋아서 2위한 줄 아시나 봐.”

“아니, 보자보자 하니까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뭐어? 주둥이?”

“아아, 두 분 그만하세요. 왜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그러십니까. 아가씨도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아가씨 아니고 스카우트 팀장이라고욧!”

처음엔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가 그들은 차근차근 현재의 삼호슈퍼스타즈의 전력과 리빌딩의 규모를 두고는 고민에 빠졌다.

너무 전격적인 리빌딩으로 성적이 바닥을 치면 팬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성적이 하위권이라도 승률이 4할 언저리면 그나마 괜찮은데 그 아래로 떨어지면 극성맞은 매스컴과 여론에 떠밀려 리빌딩도 순조롭게 될 리 없다.

“공성진이 왔다지만 지금 전력으론 4할도 무리야. 야구 혼자 하나?”

“2군 투수들 있잖아요. 이세환, 안민기, 성낙기, 구문철 같은 선수들 말이에요. 야수로는 이정우, 이중호도 있죠.”

“글세… 예상은 자기 마음이지만, 2군 투수들이 거기서 좀 던졌다고 1군에서도 통할까? 말로야 뭘 못하겠어. 그게 말대로 되면 1, 2군을 굳이 나눌 필요도 없는 거지.”

“휴~ 좋아요. 감독님 말씀이 다 맞다 쳐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씀이세요?”

“외국인 투타 수급은 어떻게 되는 거요.”

“아하하, 그건 걱정 마세요. 전력분석 팀이 미국에 파견되어 있으니까요. 아마, 곧 소식이 올 겁니다.”

“이 봐라, 이 봐라. 감독이 누굴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선수를 골라?”

“누굴 원하다니요? 그야 투수 둘에 타자 하나 아닌가요? 젊고 건강한 선수 위주로 알아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젊고 건강…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가을 야구 하고 싶으면 메이저리그급이 필요하우.”

“메, 메이저요? 아니, 돈이 땅 파면 나오는가요? 공성진에 벌써 150억을 쏟아부었어요. 감독님 말씀하시는 경력자들은 200만 달러가 넘어요. 그리고 내년에 가을 야구 안 해도 됩니다. 지금은 리빌딩에 집중할 시기예요.”

“리빌딩도 위에서 끌어주는 선수가 있어야 진행이 되는 거지. 훈련하고 경기에만 나가면 저절로 되는 줄 아시나. 그리고 뭐?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흥… 전에 내가 1군 감독을 맡았을 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었지. 근데 결과는 뭔지 아시나? 2년만의 경질이었지. 죽도록 고생해서 쓸 만한 선수들 만들어 놓으니까 돌아온 건 사약이었단 말이지. 그때 내가 키운 선수들이 3년째부터 맹활약을 해서 지금의 세화스쿼럴스가 만들어졌어. 상 차리는 놈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더군.”

“어휴! 감독님하곤 말이 안 통해. 하여튼 알았으니까 A플랜이 정해지면 따로 연락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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