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25화 (25/188)

# 25

025화 베이스볼 시리즈 3

팡.

라이징패스트볼(4cm/10)

‘이번엔 솟아올랐어!!’

채두성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가 예전에 성낙기를 상대하여 안타와 홈런을 때려낼 때는 보지 못했던 공이다.

라이징패스트볼이 날아올 때 분명 낮다고 봤는데 솟아올라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 버렸다. 채두성이 놀라고 있는 동안,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성낙기는 또 다른 승부구를 준비 중이었다.

지금 기세를 꺾어놓지 않으면 안 그래도 좋은 타격감이 불붙을 것이다. 여기서 싹을 잘라야 한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성낙기는 전과 달리 소리 내어 전광석화를 외쳤다. 그리고 혼신을 다한 1구를 던졌다.

팡.

휘잉.

채두성은 이미 공이 들어오고 난 뒤 뒤늦게 배트를 휘둘렀고 스윙아웃을 확인한 순간, 배트를 내동댕이쳤다.

포수 이두열은 손이 얼얼했다. 성낙기가 전력으로 강속구를 던지겠다는 사인을 보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142km!! 성낙기 선수, 어마어마한 공을 뿌려서 강타자 채두성을 돌려세웁니다!”

“저 볼이 또 나왔네요. 체감 속도는 광속구 중에 광속구입니다. 135km나 될까 말까한 볼을 던지다가 갑자기 6, 7km가 증가된 볼을 던지는 투수의 공을 칠 타자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투수예요.”

성낙기의 투구에 기세를 탄 삼호슈퍼스타즈는 5회에 예성혁을 공략, 1점을 뽑아냈다. 대표적인 득점 루트, 이정우가 내야안타로 1루에 진출한 뒤 4번 강창선의 볼넷에 이은 이중호의 적시타가 터졌다. 성낙기는 5회를 마치고 상태 창을 떠올렸다.

[체력이 18 남았습니다.]

체력이 18이라면 6회까지는 충분하다. 마무리 임병주가 불안하긴 하지만 구문철, 이오수는 2군에서는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낙기 수고했다. 푹 쉬어.”

더그아웃에 들어오자마자 허봉호 감독이 말했다. 성낙기가 웃으면서 더 던질 수 있다고 말하려는 순간, 들려오는 말.

-그래, 그만 던져.

“왜요? 아직 체력이 18이나 남았는데?”

-넌 생각이 왜 그렇게 짧냐? 오늘만 잘 던지면 결승 올라가는 거야? 3차전 생각도 해야지.

“3차전을 왜요? 오늘 이기고 내일 이기면 끝나잖아요.”

-너희 전력으로 2연승은 무리야. 운이 좋아서 오늘 경기를 이기면 3차전도 니가 던져야 베이스볼 시리즈에 나갈 수 있어. 내일은 이세환이 던질 거고 안민기로 3차전은 무리라고 봐야지. 상무피닉스가 만만해 보여?

“알겠습니다. 오늘 몇 구 안 던졌으니 3차전에 불펜으로라도 나갈게요.”

성낙기는 쉬라는 허봉호 감독에게 못 이기는 척 그렇게 말했다. 오늘 성낙기가 던진 볼의 개수는 48개.

그리고 체력이 18이면 삼일 후엔 거의 풀로 찬다는 계산이 나온다. 6회엔 구문철이 마운드로 걸어 올라갔다.

구문철은 삼호에 입단할 때만해도 최고 구속 135km에 머물렀지만 이후로 살을 찌우고 웨이트를 병행한 결과 140km까지 구속이 올랐다.

던지는 구종은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리고 체인지업과 커브를 주 무기로 썼는데 구분하기 힘든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현혹했다.

타자 앞까지는 포심처럼 오다가 떨어지면서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를 타자들은 무척 까다로워했다.

-구문철이 막을 수 있을까? 나름 막강 타선인데.

-구문철이라면 막을 수 있어.

-변화구 하나는 죽이지.

-구문철 다음 이오수, 음… 임병주가 좀 불안한데.

-임병주 어떻게 안 되나? 맨날 드라마 쓰려고 준비 중이야.

포털 사이트에서도 팬들은 구문철, 이오수는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어느새 그들 둘은 리그에서 막강 불펜으로 통하고 있다.

구문철이나 이오수를 마무리로 승격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법 많다. 팬들의 기대대로 구문철은 6회를 깔끔하게 틀어막았고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무리를 해서라도 구문철이 2이닝을 틀어막으면 8,9회는 이오수, 임병주로 막으려는 계산이지만 구문철도 전가의 보도는 아니었다.

7회에 원아웃 1루에서 채두성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커브가 밋밋했어. 잘 통하는 슬라이더 놔두고 왜 커브 사인을 내?”

이계현 코치가 툴툴거렸다. 언제부턴가 허봉호 감독은 포수 이두열에게 볼 배합 사인을 내지 않았다.

최광규에 비해 볼 배합이 떨어지지만 직접 사인을 내 보아야만 스스로 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 성낙기와는 합이 잘 맞았지만 구문철과의 호흡은 썩 매끄럽지 않다.

“타임!”

허봉호 감독이 타임을 부르고 최광규를 불렀다. 포수를 바꾸고 나서 구문철은 7회를 범타로 마감했다.

게임 스코어 1:2. 8회 초까지 삼호슈퍼스타즈 타선은 점수를 내지 못했고 상무피닉스는 마무리 민영준을 올렸다. 민영준 역시 1군 불펜에서 뛰다가 입단한 루키로 제구에 약점이 있지만 공이 빠르고 구위가 좋다.

9회 초 삼호슈퍼스타즈 타선은 6번 김석문부터 시작이다. 하위 타선이기에 어려운 승부. 김석문이 타석에 섰지만 크게 기대하는 팬도 없다.

팬들은 대타! 대타! 외치면서 김석문을 불신했지만 허봉호 감독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여름 한철 반짝하다가 타격감이 떨어져 2할 6푼으로 시즌을 마치고 포스트시즌에서도 11타수 1안타, 오늘도 3타수 무안타로 헤매는 중이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휘잉.

민영준은 위력적인 포심패스트볼을 연속으로 뿌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두 번째 공은 김석문의 헛스윙. 마운드의 민영준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럴 만도 했다. 워낙 공이 무거워서 맞아도 좀처럼 장타를 허용하지 않는데다가 잘 맞은 안타도 드물 정도로 강한 구위를 가졌으니.

김석문의 반응을 본 상무피닉스의 포수 나경철은 또다시 포심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현재 민영준의 구위와 김석문의 타격감으로 볼 때 강속구로 찍어 누를 수 있다고 봤다.

따악.

그런 나경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른 리그라서 타자에 대한 연구가 없는 탓이다. 아니면 게으름이거나.

나경철이 김석문을 알았다면 무조건 변화구로 승부했을 것이다.

김석문은 타율이 떨어져도 뜬금포를 잘 치는 타자다.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게다가 그가 친 장타는 거의 포심패스트볼일 정도로 강속구에 강점이 있는 타자였다. 경찰청 마무리 이만교도 김석문에게는 함부로 포심 위주의 공을 던지지 않는 이유다.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 상무피닉스 배터리의 정직한 승부에 김석문 선수, 찬스를 만들어냅니다.”

“아쉽네요. 김석문 선수 기록을 보면 변화구에 약점이 있는 타자라는 걸 알 텐데요. 제가 판단하기로는 김석문 선수, 150km의 직구도 쳐내는 타자거든요. 아, 여기서 대타를 내나요? 7번 최일현 대신 안흥식 선수입니다. 허봉호 감독, 승부사 기질이 있네요. 수비는 불안해도 안흥식 선수가 타격에는 자질이 있는 선수예요.”

무사 주자 2루에서 허봉호 감독은 최일현 대신 백업요원인 안흥식을 대타로 냈다. 안흥식은 초구를 흘려보낸 다음 2구째 민영준의 높은 슬라이더를 밀어 쳐 우익수 앞 안타를 만들었다. 그사이 김석문은 홈으로 쇄도했다.

얕은 수비를 했던 우익수였지만 타구가 1루수 키를 간신히 넘기는 텍사스성 안타여서 타구의 체공 시간이 길었다.

세이프. 2:2 동점.

관중들이 환호하는 동안 허봉호 감독은 또 하나의 승부수를 준비했다.

포수 최광규를 빼고 2루수 김석문의 백업인 주진철을 대타로 낸 것. 포수마저 빼버리고 승부수를 띄우는 허봉호 감독의 용병술에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우, 허봉호 감독 다시 봐야겠는데? 맞아, 승부는 저렇게 하는 거야.

-글쎄… 내 생각엔 이건 오바야. 큰 경기에 경험도 없는 애를 내보내서 어쩌자는 거지.

더그아웃에서 성낙기 곁에서 어슬렁거리던 실바와 존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

삼호 그룹 회장실에서도 두 부녀는 어김없이 경기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김현중 회장은 모처럼 역사에 남을 포스트시즌 진출에 고무되어 경기장을 찾을 생각이었으나,

선수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김아경의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꿨다.

“포수를 바꿔 버려? 허허, 만약 무승부로 끝나면 10회엔 어쩌려고 저러는 거지?”

“무승부로 갈 바엔 차라리 지겠다는 거죠. 승부예요. 선수단에 강력한 메시지를 띄우는 거죠. 오늘 보니 단기전에 강점이 있는 분 같아요.”

“뜻대로 되면 그게 야구냐? 야구는 보기보다 심오한 스포츠야.”

부녀가 연속된 대타 작전에 대해 말하는 동안, 허봉호 감독은 또 하나의 작전을 지시했다. 원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 히트앤드런 사인을 냈다.

볼 카운트를 항상 유리하게 끌고 가는 민영준과 나경철 배터리의 습관을 생각한 작전이었는데, 사실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작전이기도 했다.

만약, 스트라이크가 들어오지 않고 헛스윙이라도 하게 되면 발이 빠르지 않은 안흥식은 2루에서 객사할 수도 있다. 민영준이 와인드업을 하는 순간 안흥식이 뛰기 시작했고,

따악.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친 주진철은 타구를 확인하고 고개를 숙이며 1루로 달렸다. 여기서 상무피닉스의 실수가 나왔다.

병살을 노린 유격수가 2루로 공을 던진 것.

안흥식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고 2루수가 급하게 1루로 공을 던졌으나 간발의 차이로 다시 세이프.

무사 1,2루에서 9번 안학규는 투수 앞 땅볼로 2루, 1루의 병살로 찬물을 끼얹었고 안흥식은 3루로 진출했다. 투아웃 3루.

이어진 찬스에서 이정우의 기습번트가 나왔다.

1루와 투수 사이로 절묘하게 댄 번트에 민영준이 1루 커버를 들어갔지만 세이프. 게임 스코어 3:2. 귀신에 홀린 듯 역전이 되자 경기장이 들끓었다.

그리고 상무피닉스의 하위타선을 맞아 임병주가 1안타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최종 스코어 3:2로 삼호슈퍼스타즈의 승리.

<만년 꼴찌 삼호슈퍼스타즈, 강적 상무피닉스에 1차전 승리하다 - 스포츠나인>

<기적의 승리 삼호슈퍼스타즈 - 베이스볼스포즈>

<아무도 예상 못한 꼴찌의 반란 – 야구닷컴>

삼호슈퍼스타즈의 구성원들은 경기가 끝나고도 자신들이 이룩한 승리가 믿기지 않았다.

허봉호 감독의 지시로 경기장에서는 마치 페넌트레이스에서 1승을 거둔 것 마냥 담담하게 행동했지만 라커룸에 들어와서는 고함을 치고 비명을 지르고 샴페인을 서로의 얼굴에 끼얹기 바빴다.

주전도 백업도 따로 없었다.

후반기부터 적절한 때에 자주 기용한 뒤로 백업들의 기량이 많이 올라왔고 팀에는 젊은 활력이 넘쳤다.

대주자, 대수비 혹은 대타라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뛰는 백업들 덕에 주전과 베테랑 선수들도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과 주전으로서의 기량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 가졌다.

그런 팀 분위기가 오늘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고 타자들이 점수를 뽑아도 투수진이 무너지면 말짱 헛일이다.

2차전은 이세환. 에이스로서 상대 타선을 막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인지 이세환은 올라가자마자 볼넷을 남발했다.

1회 2실점, 4회 3실점. 5:0으로 경기가 일찌감치 기울었다.

상무피닉스의 선발과 불펜을 상대로 6득점을 하기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경기는 7회에 1점을 추가한 상무피닉스의 6:0 승. 하루를 쉰 뒤 마지막 결전의 날이 밝았다.

<3차전 선발 성낙기 예고, 혹사논란>

<투혼의 성낙기 3차전에도 마운드 선다>

<제 2의 최동원인가. 허봉호 감독의 무리수>

옹호하는 목소리는 극소수였고 포털 사이트마다 허봉호 감독의 투수 운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1차전에 던지고 겨우 이틀을 쉰 성낙기의 구위가 1차전과 같으리라고 생각하는 기자도 없었다. KBO프로야구는 4일 휴식 후 등판하는 mlb와 달리 5일 휴식이 대세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한데, 성낙기는 4, 5일도 아니고 겨우 이틀을 쉬고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생각될 리 만무했다.

그러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낙기는 3차전이 열리는 날, 당당하게 마운드로 올라갔다. 아무런 걱정거리도 없는 양 밝은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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