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024화 베이스볼 시리즈 2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147km가 찍혔다.
2구 또한 포심패스트볼로 바깥쪽 볼. 이번엔 자그마치 149km.
도정식의 스피드에 관중들이 감탄했다. 3구 슬라이더에 이중호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볼 카운트, 원 볼 투 스트라이크. 포수가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볼.
포수의 사인은 다시 슬라이더. 포수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다가 휘어지면 무조건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도정식이 고개를 저었다.
‘3연속 슬라이더를 던지면 타자는 놀고 있냐?’
2군 포수이기에 볼 배합을 믿지 못하는 도정식. 포수가 사인을 바꿨다. 5구는 몸 쪽 포심패스트볼. 아까 이중호가 반응하지 못했던 코스를 그들은 노렸다. 쉐에엑, 하면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사력을 다한 피칭이었다.
따악.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리는 경쾌한 타격음 소리. 몸 쪽으로 던졌던 포심패스트볼은 반대로 바깥쪽으로 들어왔고 이중호는 가볍게 밀어 우익수 키를 넘겨 버렸다.
“아, 이중호 선수 대단합니다. 도정식 투수의 공을 결대로 밀어 쳐서 우익수를 넘겼습니다. 강창선 선수 2루 돌아 3루로, 3루에서 홈까지 달려들어 옵니다. 우익수 민철주 선수 홈에 던집니다만, 여유 있게 세이프! 역전에 성공하는 삼호슈퍼스타즈!!”
“허봉호 감독의 작전이 절묘합니다. 이중호 타석 때 히트앤드런(hit-and-run) 사인이 나왔어요. 좀처럼 작전을 내지 않는 감독인데요. 결정적인 때에 적절한 작전으로 강창선을 홈으로 불러들입니다. 사실, 강창선이 발이 느려서 2루타에 홈까지 들어오는 건 버겁거든요. 그런데 허봉호 감독은 마치 이중호 선수가 2루타를 칠 줄 알았다는 듯이 히트앤드런을 과감하게 선택했네요. 와, 이 정도면 신들렸나 싶을 정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창선의 발까지 계산된 거 아니겠습니까?”
“아… 듣고 보니 정말 작전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세화스쿼럴스 김덕여 감독 마운드로 올라갑니다. 도정식 선수를 바꿀 모양입니다. 7회까지 호투한 도정식 선수, 아쉬운 듯한 표정이에요.”
경기는 7회의 점수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2:1, 삼호슈퍼스타즈의 승리로 끝났다.
성낙기의 완투승.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다음 날 스포츠 포털 사이트는 성낙기의 기사를 실었다.
<삼호슈퍼스타즈, 슬러거 이중호의 역전 적시타로 세화스쿼럴스를 잡다>
<성낙기 투수, 6승을 완투승으로>
<삼호슈퍼스타즈의 미래 어둡지 않다>
***
한 달 동안의 교류 경기에서 삼호슈퍼스타즈는 자그마치 6할 7푼의 승률을 거두었고 8월 말 경에는 북부 리그 2위 안강피그스마저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성낙기와 이중호, 안민기와 구문철 등이 맹활약한 결과였다.
이세환, 강창선 등의 베테랑들도 힘을 합쳐 이뤄낸 기적 같은 2위.
성낙기는 시즌 동안 눈부신 투구로 11승 2패 ERA 1.85를 기록하며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 그리고,
베이스볼 시리즈의 경기 일정이 잡혔다. 1군 포스트시즌보다 한 달 가까이 빠른 9월 7일, 와일드카드를 시작으로 동월 19일에 베이스볼 시리즈가 열리는 일정이다.
승률로 보면 경찰청이 1위, 2위는 역시 상무 피닉스. 3위 세화스쿼럴스에 삼호슈퍼스타즈는 감격적인 4위에 자리를 잡았다.
5, 6위인 안강피그스와 모연비퍼스가 단판 와일드카드전을 치르고 그 승자가 삼호슈퍼스타즈와 맞붙는다.
그렇게 해서 승자가 결정되면 1위와 4위, 2위와 3위가 맞붙어 결승에 오르게 되고 베이스볼 시리즈의 행방을 가른다.
대개 4위는 5위와 3판 2선승제를 치른 후 1위와 맞붙기 때문에, 4위가 1위를 이긴 전례가 없다.
이미 와일드카드의 승자와 격전을 치르느라 1, 2선발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4위는 어떻게 보면 온전한 4위가 아닌 셈.
삼호로서는 와일드카드 승자를 이긴 뒤라야 제대로 된 베이스볼 시리즈 개막인 셈이다.
안강피그스와 모연비퍼스의 단판은 예상대로 전력이 더 탄탄한 모연비퍼스의 승리. 하루를 쉬고 삼호슈퍼스타즈와 모연비퍼스의 경기가 열렸다.
1차전 선발은 삼호의 에이스 이세환. 그 역시 12승에 ERA 2.99를 기록하며 팀과 함께 날아올랐다.
선발 이세환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6회까지 7안타 2실점으로 선방, 7회에 구문철이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4:2로 삼호가 앞서는 상황. 구문철은 쾌조의 컨디션으로 변화무쌍한 변화구로 7회를 지웠다. 8회 김석문의 홈런으로 5:2에서 모연비퍼스의 추격으로 5:3인 상태에서 9회가 시작되었다.
마무리 임병주가 올라가자마자 연속 안타를 맞은 뒤 원아웃을 잡아냈다. 원아웃 1, 2루에 허봉호 감독의 타임. 관중석이 시끄러워졌다.
마운드로 올라간 허봉호 감독이 임병주의 공을 빼앗아들었다. 그리고 불펜에서 마운드로 빠르게 뛰어가는 한 선수가 보였다.
“와아, 성낙기다.”
“아하하! 쟤 나오면 게임 끝이지.”
“오오. 투수교체 타이밍 좋아.”
성낙기는 어느새 팬들로부터 믿을 만한 선수가 되어 있었다. 반면 성낙기의 출현에 모연비퍼스 관중석은 조용해졌다.
성낙기는 마운드에서 씨익 웃더니 삼구 삼진으로 다음 타자를 잡아 버렸다. 마지막 타자 역시 한층 업그레이드된 라이징패스트볼로 내야플라이 아웃. 간단히 경기를 끝내 버렸다.
“으와아… 다음 날 선발이 저래도 되는 거야?”
한 관중의 말처럼 다음 날 선발은 성낙기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날이 밝고 경기가 열리자 성낙기는 마치 사냥꾼이 동물을 사냥하듯 모연비퍼스 타자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2회에 일찌감치 삼호슈퍼스타즈가 3점을 뽑아냈기 때문에 성낙기는 최대한 투구 수를 아끼며 맞춰 잡았다.
포심패스트볼인가 싶으면 체인지업이고 체인지업인가 싶으면 가라앉지 않고 그대로 날아와 박혔다. 가끔은 라이징패스트볼로 떠올랐다가 커브를 간간히 섞었다가 느닷없이 패턴을 바꿔서 투심을 연달아 던지기도 했다.
팔색조 투구에 모연비퍼스 타자들은 전의를 상실했고 9회까지 단 5안타 7삼진을 당했다.
3:0 완봉승.
시리즈 전적 2:0으로 모연비퍼스를 셧아웃 시키며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은 팀이 생긴 이래 가장 사기충천한 상태로 마침내 상무피닉스를 맞이했다.
모연비퍼스 전을 끝내고 3일 후로 일정이 잡힌 4강전 첫 선발은 또 성낙기로 가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 코치, 상무피닉스…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 현재 우리 투수 중에서 누가 통하겠어?”
“아무래도 이세환이나 성낙기 아닐까요? 안민기는 공은 좋은데 들쭉날쭉한 편입니다.”
“근데 이세환이 교류 경기 때 상무를 상대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
“5이닝 4실점, 6이닝 5실점이었죠. 나름 잘 버티긴 했지만 아쉬웠습니다. 그에 반해 성낙기는 7이닝 2실점, 8이닝 3실점으로 틀어막았죠.”
“그래서 말인데 성낙기 어때?”
“성낙기는 던질 수 있다고 박박 우기는데 이틀밖에 못 쉬었습니다. 또 던지게 하면 혹사 논란도 있을 것으로…….”
“던질 수 있다고 했단 말이지? 그럼, 던지게 해.”
“네?”
“단, 80구까지 던지게 하고 그 다음 불펜을 가동하도록 하자고.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맥없이 물러날 수는 없어.”
어젯밤,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코치의 대화였고 성낙기의 선발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허봉호 감독은 첫 경기를 이세환으로 가면 무조건 패한다고 봤고 첫 경기를 내주면 3판 2선승제의 특성상 베이스볼 시리즈도 물 건너간다고 생각했다.
허봉호 감독으로서는 승부수를 띄운 거였지만 만약 성낙기가 무너지면 이기지도 못하고 욕은 욕대로 먹을 게 분명했다. 성낙기의 선발을 결정한 허봉호 감독은 집에 들어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드디어 상무피닉스와 결전의 날이 밝았다. 성낙기는 경기 시작을 앞두고 런닝에 열중이었다. 그런 성낙기를 이계현 코치가 불러 세웠다.
“야, 너 정말 던질 수 있겠어? 힘들겠으면 지금이라도 그렇다고 말해. 감독님께 말씀드려 볼 테니까.”
“저 던질 수 있다니까요. 못 믿으시나 본데 제 공을 보시면 멀쩡하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런데 너 불펜 투구 안 하냐?”
“조금이라도 더 던지려면 안 하는 게 낫죠. 마운드에 올라가서 몇 개 던지는 걸로 충분해요.”
“휴… 모를 놈이네. 너 알아서 해라. 나중에 원망이나 하지 말고.”
성낙기가 1회 초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첫 타자를 맞아 상태 창을 떠올렸다.
[체력이(61/100)까지 채워졌습니다]
[세기의 강속구(70/100)]
[포심의 제구력(65/100)]
[커브의 제구력(68/100)]
[슬라이더의 위력(65/100)]
[체인지업의 위력(70/100)]
[투심의 제구력(38/100)]
[포크의 제구력(37/100)]
[퀘이크볼(3cm/5)]
라이징패스트볼(4cm/10)]
팔 근육 강화(4/10)단계.
어깨 근육 강화(4/10)단계.
악력(6/10)단계.
전광석화(電光石火) + 7km. 9이닝 5구.
오늘 밤쯤이면 체력이 [73]풀로 찰 것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61]로 상무피닉스를 상대해야만 한다. 성낙기는 몸 쪽 포심패스트볼로 경기를 시작했다.
느린 변화구 0.5, 빠른 변화구 및 강속구 1.0, 퀘이크볼 및 라이징패스트볼 1.5, 전광석화(電光石火) 3으로 볼 때, 느린 변화구를 적절히 섞는다면 예상되는 볼 개수는 7, 80구 내외. 우연찮게 허봉호 감독이 생각하는 성낙기의 최대 투구 개수와 거의 맞아떨어진다.
팡.
스트라이크.
첫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고 평범한 내야 땅볼로 솎아내는 순간, 3루수 안학규가 볼을 더듬었다. 1루에 던져보지도 못하고 세이프. 강팀을 만나 긴장한 탓이다.
실제로 교류 경기 때 성낙기의 8이닝 3실점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마무리 임병주가 역전 투런 홈런을 맞고 역전패 했었다.
이겼다고 생각한 경기를 내줬을 때의 데미지는 처음부터 끌려가서 지는 경기와 다르다. 내내 기억에 남아 패배 의식 같은 트라우마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누구나 인정하는 강팀이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에서 안학규의 에러는 선수들에게 오늘 경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성낙기만은 달랐다. 실수를 한 안학규를 향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더니 2번 타자를 삼진으로 떨궈냈고 3번 타자 서창민에게는 속도를 급격하게 줄인 몸 쪽 체인지업으로 다시 3루 땅볼을 유도, 병살을 이끌어냈다.
타자가 죽는 순간, 안학규가 팔을 휘두르는 모션을 취했고 성낙기 역시 주먹으로 하늘을 찌르며 늑대 울음으로 포효했다.
그 모습을 보고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은 많은 관중과 중요한 경기의 부담을 떨쳐냈다.
‘성낙기는 쫄지를 않는구나.’
선수들은 긴장한 빛이라고는 없는 성낙기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선수들이 성낙기를 보고 용기를 얻는 것과는 달리 성낙기는 더그아웃에서 상무피닉스의 선발투수 예성혁에게 타자들이 삼자범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살짝 긴장했다.
1군에서 3년 동안 주전으로 뛰며 군에 입대하기 전 해에 1군 타자들을 상대로 13승 7패 ERA3.23을 찍은 예성혁이 버티는 마운드도 마운드지만 다음 타자가 무려 채두성이기 때문이다.
교류전 마지막 등판에서 성낙기로부터 6회 투런 홈런을 때려낸 타자이자, 그 역시 1군에서 주전으로 뛰던 선수다.
26살의 나이에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어 상무에 입단, 26홈런으로 홈런 3위에 3.22의 타율을 기록 중인 슬러거이자 교타자였다.
‘전에 체인지업을 걷어 올렸었지? 그렇다면.’
완벽한 제구는 아니었지만 꽤 잘 떨어진 체인지업을 가볍게 걷어 올려 좌중간 홈런으로 연결했었던 채두성이다.
그 경기에서 안타도 허용했었는데 볼 카운트를 잡기 위한 포심패스트볼이었다. 이 말은 채두성에게는 현재 성낙기의 스피드와 볼 끝으로는 버겁다는 뜻도 된다.
‘퀘이크 볼.’
성낙기는 속으로 구질을 되새기며 그립을 잡았다. 3cm까지 올라온 퀘이크 볼의 떨림이 채두성의 바깥쪽을 공략했다.
팡.
‘뭐지? 공이 왜 흔들려?’
채두성은 좋은 타자답게 공의 작은 떨림을 눈으로 보고 나서 마운드 위의 성낙기를 쳐다보았다. 전에 상대하던 그 투수가 맞는데 구질이 전혀 달라 보인다. 성낙기는 채두성을 마주 바라보면서 다음 공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