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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투수 성낙기-19화 (19/188)

# 19

019화 나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1

성낙기가 마운드로 올라가면서 투덜거렸다. 김아경에게 1패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하게 생겼다.

김아경이 예쁘게 생겨서가 아니라, 그리고 그룹 회장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한 번 내뱉은 말은 목숨을 걸고라도 끝까지 지킬… 리는 없지만 그래도 사나이 가오가 있지.

경기를 지고 나면 다시 보았을 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야, 쓸데없는 말 말고 너 할 일만 해. 솔직히 니가 쟤보다 못한 게 뭐냐. 멘탈이 좀 딸리고 볼 스피드 느리고 제구가 약간 들쑥날쑥 한 거 빼면 비슷해. 오히려 변화구는 니가 열라 많잖아.

-어이, 실바. 니가 딸린다고 말한 게 야구에서는 전부야. 뭘 알고 씨부려야지.

“흥, 쟤가 점수 안 주면 나도 안 주면 되죠. 경찰청? 오늘 니들은 죽었어.”

성낙기는 자신 있는 말투를 내뱉으면서 포수 미트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전력투구로 몸 쪽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성낙기의 공은 김계윤의 스피드건에 130km를 찍었으나 타자에게는 체감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만큼 종속이 빠르기 때문.

김계윤도 타자가 헛스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걸 느꼈다. 보면 볼수록 아쉬웠다.

‘공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아깝다.’

김계윤의 생각을 뒤로하고 성낙기는 경찰청 하위 타선을 깔끔하게 삼자범퇴 시켰다.

마운드를 내려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경찰청의 경기인 데다 현호석이 선발이고 토요일이어서 2군 경기장임에도 관중들이 제법 많았다.

bbs의 유시진 아나운서와 장종운 해설 위원도 변함없이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아, 성낙기 선수 경찰청 강타선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아주 의왼데요? 물론 벌써 2승을 거둔 투수라고 해도 상대는 경찰청입니다.”

“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잘 던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공 스피드가 빨라졌거든요? 고교야구 시절에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선수인데요. 세븐윈터스에서 방출 당한 뒤 삼호슈퍼스타즈와 계약을 한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삼호슈퍼스타즈에 입단한 후로 전혀 다른 투수가 되었어요. 보통은 저런 경우에 자포자기 하기 십상인데요. 성낙기 선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삼호의 주축 투수로 거듭났습니다. 음… 저는 저런 경우를 처음 봤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성낙기 투수 대단합니다.”

성낙기가 세브윈터스에 있을 때의 모습을 보았던 유시진 아나운서와 장종운 해설자는 거듭난 성낙기의 투구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여러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듯 성낙기는 5회까지 산발 4안타에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상대 투수 현호석 역시 1안타 무실점과 5삼진을 곁들여 무실점, 팽팽한 0:0의 균형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낙기의 투구 수도 68개로 깔끔하다. 그리고 6회 말이 되었을 때, 성낙기의 눈앞에 글귀가 떠올랐다.

[체력이 18 남았습니다. 적극 관리하십시오.]

체력이 18이면 9이닝은커녕, 이번 이닝도 간당간당하다. 최대한 전력투구를 아끼며 타자들을 요리했으나 언제나 체력이 문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최선을 다하고 불펜을 믿어야 한다.

-야, 성낙기. 5회에 2안타나 맞았다. 니가 허용한 4안타 중 2안타가 5회에 집중되었어. 이건 뭘 뜻하지?

“제가 그거 알면 전설이게요?”

-잘 들어. 이번 회부터 던지는 패턴을 바꿔. 지금까지는 포심을 보여준 후에 변화구로 승부했다면 이제부턴 퀘이크와 라이징패스트볼 위주로 끝장 승부 해. 4안타 중에서 3안타가 커브, 슬라이더야.

실바가 성낙기에게 말했다. 존은 그 옆에서 껑충하게 큰 머리를 끄덕였다. 둘의 생각이 같은 건 참 오랜만이다.

“흐, 그래요?”

성낙기는 지금까지의 패턴을 버리고 첫 타자에게 퀘이크볼을 던졌다. 5회까지도 간간히 던졌지만 체력 소모 때문에 라이징패스트볼과 함께 많이 구사하지 않았던 구종이다.

팡.

[퀘이크볼(1.5cm/5)

타자는 공의 궤적을 바라보다가 스트라이크가 선언되자 고개를 갸웃했다. 포심은 포심인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 성낙기는 2구 역시 같은 구질의 공을 던졌다.

따악.

타자가 친 공은 유격수 앞 땅볼, 이정우가 여유 있게 잡아 1루로 던졌다. 성낙기는 다음 타자에게도 같은 공을 던져서 2루 땅볼로 처리했다. 다음 타자는 우민섭. 3회에 내야안타를 때려냈다.

팡.

[라이징패스트볼(3cm/10)

“스트라이크!”

“웃!”

약간 낮다고 판단한 우민섭은 공이 마지막에 떠올라 미트에 박히자 움찔했다.

같은 팀 현호석도 간간히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지지만 포심패스트볼에 비해 그다지 큰 느낌을 받지 못했던 우민섭은, 포심패스트볼과 전혀 다른 성낙기의 라이징패스트볼이 들어오자 놀란 눈빛을 떴다.

따악.

우민섭이 건드린 3구째 라이징패스트볼은 우익수 파울라인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우익수가 따라갔지만 볼은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투 스트라이크.

[남은 체력이 3입니다.]

볼을 던져서 타자를 현혹시킬 타이밍이 아니다. 속지 않는다면 체력 고갈과 함께 던지는 족족 맞아 나갈 것이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성낙기는 체력 소모가 2.5인 그간 쓰지 않았던 전광석화 모드를 발동했다.

그리고 와인드업.

우민섭은 내심 이번엔 변화구가 들어올 거라고 짐작했다. 방금 파울을 때린 라이징패스트볼을 또 던지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이다.

공의 변화가 심하지만 조금씩 타이밍이 맞고 있다. 하지만, 성낙기가 던진 공은 우민섭의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갔다.

팡.

헉!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포심패스트볼을 우민섭은 멍하게 바라만 보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처구니없이 빠른 공이 눈 깜짝할 새에 포수미트에 박혔다.

“아아, 저거 뭐죠? 137km가 찍혔습니다. 눈을 의심하게 되는 숫자인데요. 어떻게 된 걸까요.”

“그, 글쎄요. 스피드건에 문제가 생겼나요? 갑자기 아주 빠른 강속구를 던진 성낙기 선수입니다. 우민섭 선수 꼼짝없이 당하고 물러섭니다.”

유시진 캐스터와 장종운 해설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관중석에서도 갑자기 빨라진 공을 보고는 난리가 났고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으억! 137km 나왔다.

-마지막 공 어떻게 된 거?

-아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야? 어떻게 성낙기가 137km를 던져?

-에이, 스피드건이 불량이네.

-마지막 공은 무지하게 빨랐어. 우민섭이 손도 못 댔잖아.

-도깨비 같은 투수야.

6회가 끝났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도중에 글귀가 떴다.

[체력이 0.5입니다.]

“아아, 두 분 말대로 했다가 체력이 바닥났잖아요. 이제 어떡합니까?”

-그 대신 6회를 깔끔하게 막았잖아.

실바의 말을 뒤로 하고 성낙기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더그아웃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계현 투수 코치가 다가왔다.

이계현이 파악한 성낙기의 투구 수는 현재 77구. 완투 경험이 없는 성낙기에게 더 맡겨도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성낙기, 어때. 7회에 올라갈 수 있겠어?”

“글세… 더 던지고는 싶은데 체력이 0.5밖에 안 남았습니다.”

“체력이 0.5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아하하, 체력이 바닥났다는 뜻입니다.”

“그래?”

이계현 코치는 성낙기의 엉뚱한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러갔다. 불펜에선 이미 이오수와 구문철이 몸을 풀고 있다.

성낙기가 지금까지 워낙 잘 던졌기에 의사 타진을 해본 것뿐, 허봉호 감독의 계산으로도 여기가 성낙기의 한계 투구 수다.

“뭐래?”

“체력이 바닥이랍니다.”

“그으래? 저놈 성격으로는 무작정 더 던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앞뒤는 가리는 놈이었군. 구문철로 가지.”

[세기의 강속구가 (67/100)으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59/100)으로 오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61/100)으로 오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55/100)으로 오릅니다.]

[퀘이크볼이 (2cm/5)로 오릅니다.]

현호석이 7회에도 마운드에 나가는 걸 보며 더그아웃에 앉아 있을 때 성낙기의 눈앞에 글귀가 떠올랐다.

성낙기는 다른 구종보다 퀘이크볼의 능력치 강화가 더 기뻤다. 7회는 어느새 투아웃. 구문철은 불펜에서 충분히 몸을 풀고 있고 타자로 이중호가 나갔다.

따악.

나가자마자 들리는 경쾌한 소리. 성낙기는 이중호의 배트에 맞은 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공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날아갔다.

현호석이 공의 궤적을 보지도 않고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우와, 홈런이야.”

“윽! 현호석에게 홈런을 쳐냈어.”

“이-중-호!”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이 두 손을 치켜들고 환호했다. 뜻밖의 일격을 맞은 경찰청 팬들이 조용해졌다.

덩치가 큰 타자인 건 알았지만 현호석의 강속구를 홈런으로 연결시킨 이중호의 힘에 모두들 혀들 내둘렀다. 비거리가 족히 130m는 되어 보였다.

현호석은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8회엔 올라오지 않았다.

삼호슈퍼스타즈는 8회에 2점을 더 뽑아냈고 구문철이 8회 1사까지 잘 막은 뒤 이오수가 8회를 마무리, 경찰청은 9회 말 임병주에게 2점을 얻어내는 것으로 경기가 끝났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삼호슈퍼스타즈의 3:2 승리.

‘성낙기인가 뭔가 하는 놈한테 완전히 말렸어.’

김동선의 생각처럼 경찰청 타선이 후반에도 무기력했던 이유는 성낙기에게 6회까지 당한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운드에서 실실 웃는 표정에다가 아무런 걱정 없이 던지는 모습은 타자들의 혈압을 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낙기는 3승을 이루어냈다.

***

다음 날은 장맛비로 개점휴업. 그렇게 하루를 쉬고 난 경찰청과의 2차전에 기영만이 선발로 나섰다.

기영만은 근래 들어 로테이션을 걸러서인지 싱싱한 어깨로 마운드에 올랐고 인생투를 던졌다. 던지는 공마다 손에 잘 긁혔고 5회까지 2실점으로 막아내고 6회를 준비 중이었다.

삼호슈퍼스타즈도 경찰청을 상대로 무려 4점을 뽑아내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올스타브레이크까지는 단 2경기가 남았다. 허봉호 감독은 6회에 승부수를 뽑아들었다.

다음 날 출격 예정이었던 에이스 이세환을 불펜으로 전격 투입하기로 한 것. 이세환은 에이스인 자신이 불펜으로 나가는 것에 탐탁지 않아 했지만, 팬들은 달아올랐다.

올스타브레이크 3일 동안 투수진이 휴식을 취할 수 있으므로 후반기 투수 로테이션에 무리가 가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2 상황에서 이세환은 에이스답게 6,7회를 잘 막았으나 8회에 연속 안타를 내주고 원아웃 1, 2루에서 이오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오수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은 뒤 적시타가 터져 1실점, 다음 타자 볼넷으로 투아웃 만루에서 구문철이 좌익수 플라이로 이닝을 마쳤다. 임병주는 2안타를 맞고도 있는 힘을 다해 9회를 지웠다.

2차전도 4:3으로 1점차 승리. 관중들은 경찰청에 2연승을 거둔 뜻밖의 횡재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캐스터와 해설자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TV를 보던 삼호 그룹 김현중 회장과 김아경도 뇌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선발도 선발이지만 구문철, 이오수, 임병주도 꾸역꾸역 잘 막아낸다. 과부하가 걸렸던 전반기 내내 이오수, 임병주가 고전했지만 구문철의 가세로 한층 탄탄해졌고 이닝을 짧게 나누다 보니 상대 팀 타자들도 타이밍 찾는데 애를 먹었다.

이 모든 게 선발 야구가 되기 때문.

안민기가 특유의 강속구로 타자들을 상대했고 성낙기는 팔색조 같은 종잡을 수 없는 변화구로 타자들의 혼을 빼놓았다. 거기에 에이스 이세환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은 기영만까지 호투를 이어갔다.

“어때요? 우리 선수들 전과는 많이 다르죠?”

김아경은 회장실에서 김현중과 TV를 시청하고 득의만만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스카우트 팀장을 맡은 뒤로 출중한 선수들을 데려왔고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말이 팀장이지 마영진 단장 위에서 간섭하는 위치였으니 잘되든, 못되든 모두 자신의 책임이다.

경찰청과의 2연전만 보더라도 톱니바퀴처럼 선수단이 하나가 되어 돌아가고 있다.

허봉호 감독이 자신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백업을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있고 자신감을 얻은 젊은 선수들로 인해 더그아웃은 활기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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