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016화 타자들이 다르다 1
7회는 안강피그스가 자랑하는 불펜이 투입되었다.
이준, 이도연, 이명성, 의 3이 트리오.
퓨쳐스리그에서 3점대의 불펜이라면 상당한 수준이다.
하나, 이중호가 가세한 삼호 타선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이중호가 워낙 잘 치니 강창선도 반사이익을 보게 되고 강창선이 잘 치니 3번 지명타자 조성진 또한 요즘 들어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7회가 바로 3번 조성진부터 시작되는 타선이다.
“7회는 클린업 트리오부터 시작되는 삼호슈퍼스타즈의 타선이죠?”
“네, 그렇습니다. 이중호 선수가 뒤에서 버티니까 짜임새가 있습니다. 3, 4번은 1군에 당장 투입되어도 대타요원 정도는 충분히 할 만한 자원들이에요. 거기에 이중호 선수는 장래성이 아주 밝은 슬러거 형 선수입니다. 사실은, 이 선수를 주목해야 합니다.”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기대와는 달랐다.
조성진 땅볼 아웃, 강창선 외야 플라이 아웃. 5구만에 투아웃이 만들어졌다.
다음 타자 이중호는 배트박스에 나오기 전 성낙기의 말을 들었다.
‘내가 던진 경기에서 지면 안 돼. 절대 안 돼.’
픽, 웃고 나왔지만 뒤돌아 생각하니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성낙기는 김아경에게 했던 1패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이중호에게 눈을 부라렸던 것이다.
이중호는 괜히 안 져도 되는 짐을 진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홈런을 쳤는데 또 치라고? 휘두르면 다 넘어가는 줄 아나…….’
성낙기는 지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는 이런 말도 했다.
‘닭도리탕에 막걸리 먹은 거 기억나지?’
얻어먹었으니 값을 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젠장, 어쩌다 룸메이트로 저런 애가 들어왔는지 치사하고 더러워서 며칠 전에 먹은 닭이 넘어올 것 같다.
***
구원으로 나온 이준은 이중호를 내심 깔보고 있었다. 홈런타자이긴 하지만 변화구에 약점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다. 안강의 선발투수가 홈런을 맞은 볼도 몸 쪽 포심패스트볼이었다.
‘포심패스트볼로 빠른 볼을 보여준 뒤에 변화구로…….’
이준은 포수의 변화구 사인에 고개를 흔들었다.
작전대로 이준은 1구를 몸 쪽 높은 공으로 윽박질렀다. 이중호가 타석에서 한발 물러났다.
볼.
2구는 카운트를 잡아가는 바깥쪽 슬라이더.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흘러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계획대로 되간다. 3구도 바깥쪽 커브를 던졌다.
공을 제대로 채지 못해 다소 밋밋한 공. 이중호는 기다렸다는 듯 밀어 때렸다.
공은 높이 솟아 우익수 쪽으로 날아갔다.
우익수는 뒤로 슬슬 물러나면서 낙구 지점을 찾았다. 한데, 높이 솟은 공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날아갔다.
펜스가 가까워서야 우익수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의 아래 부분을 맞고 50도 정도의 각도로 치솟은 공이 우익수 키를 넘기고 쭉쭉 뻗어 펜스를 넘어가 버렸다.
-우와!
-와아… 저게 넘어가네.
-완전 괴물이다, 괴물.
삼호슈터스타즈 선수들은 더그아웃에서 입을 쩍 벌렸다.
저렇게 높이 솟은 공이 펜스를 넘어가는 건 1군의 강타자들이나 가능한 비거리다.
아무리 몸이 좋다 해도 배트에 맞는 순간 힘이 실리지 않으면 저런 비거리가 나올 수 없다.
밀어 때리면서 팔로스로우를 길게 가져가는 이중호의 타격은 그만큼 경이적인 데가 있었다.
“홈~런! 이중호 선수 홈런을 때려냅니다. 대단합니다. 스코어 5 대 5를 만드는 삼호슈퍼스타즈의 저력이 무섭습니다.”
유시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성낙기가 5점을 내줄 때만 해도 경기를 접는 분위기였던 삼호슈퍼스타즈는 주전들이 다시 투입되자 힘을 냈다.
관중들의 분위기도 이제 해 볼만 하다는 듯 응원 소리로 시끄러웠다.
치어리더들은 음악에 맞춰 한껏 흥을 돋웠다.
더그아웃은 이중호의 홈런으로 축제마냥 떠들썩하다. 다음 타자는 김석문. 안 그래도 이중호 때문에 5번에서 6번으로 밀렸는데 오늘은 스타팅에도 나서지 못했다.
“닝기리… 도대체 얼마나 잘해야 하는 거야.”
얼마 전의 홈런과 타점 등으로 제 몫을 톡톡히 했던 그이기에 오늘의 백업 기용은 이해가 가지 않는 허감독의 월권이었다.
굳은 마음을 먹은 그는 안강피그스 이준의 1구 몸 쪽 공을 잡아당겨 펜스를 넘겨 버렸다.
-오아아… 와아.
-뭐야, 미쳤다.
-약 먹었다, 김석문.
-우어어어어어!!
김석문이 베이스를 도는 동안 관중도 선수도 아나운서와 해설자도 어리벙벙한 표정이다.
설마 백투백 홈런이 나올 줄이야!
그때부터 경기가 요상하게 흘러가더니 삼호슈퍼스타즈는 8회에도 1점을 추가로 뽑았고, 안강피그스는 9회 1점을 따라붙었지만 거기까지였다.
7 대 6 삼호슈터스타즈 승리.
***
허봉호 감독은 예상외의 승리에 멍한 기분이었다.
‘아니, 백업을 5명이나 집어넣어서 에러로 5실점이나 했는데 그걸 뒤집어? 이거 말이 되는 거야?’
하지만 현실로 나타난 스코어는 팀이 이겼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의 용병술 또한 의외이면서도 색다른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졌으면 욕을 한 바가지 먹었을 터인데 말이다.
“우리 선수들이 저력이 있는데요? 박종태 코치가 요즘 심혈을 기울인다 싶었더니 이런 결과를 내는군요. 안강피그스를 상대로 역전이라니…….”
허봉호 감독에게 말하는 이계현 코치가 그렇듯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 역시 오늘의 승리가 믿기지 않았다.
에러를 그렇게 하고도 이겼다는 사실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애매하다.
5회부터 주전을 투입했고 그때부터 내야가 안정되었다.
구문철이 2와2/3 이닝을 던지고 내려갔고 이오수가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삼호슈퍼스타즈의 내야는 초반처럼 에러를 범하지 많았다.
허봉호 감독은 오늘의 결과를 두고 생각할 거리가 있다고 여겼다.
주전으로만 꽉 짜여져도 이기기 힘든 안강을 백업을 기용하고도 이겨냈다는 것은 스스로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봐요. 제 말이 맞죠? 백업들의 에러로 실점을 했지만 그 후에 나온 주전들은 에러를 범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좋은 플레이가 많았죠.”
“그게 저… 백업 기용으로 주전 선수들이 긴장을 한 것만큼은 사실 같습니다.”
김아경은 단 한 경기만으로 자신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마 단장이 보기엔 이중호라는 특출 난 선수가 있어서인데.
어쨌든 이겼으니 된 거다.
***
삼호슈퍼스타즈의 선수 라인업 중, 노장 순으로 살펴보면 포수 최광규가 35로 나이가 가장 많다.
이미 선수로서는 하향기에 접어들었다.
볼의 프레이밍(빠지는 공을 스트라이크처럼 잡는 기술)이나 원 바운드 공을 잡는 포구 실력은 누구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어깨가 약하고 타격이 보잘 것 없다.
그가 1군에서 뛰지 못하는 이유.
그 아래로는 지명타자 조성진이 34살로 그도 타격은 곧잘 하지만 수비에 약점이 있는 타자다.
역시 2군에서만 머무는 이유.
3루수 안학규와 좌익수 최일현은 나란히 32세로 삼호슈퍼스타즈 2군에서 노장에 속한다. 투수 기영만 역시 32세로 노련한 편이지만 구위가 떨어진다.
2루수 김석문은 30세이고 1루에 4번을 맡고 있는 선발투수 문상열과 마무리 임병준, 강창선이 29세.
특히 강창선은 1군에서 통할 만한 실력이 있으나 수비가 불안한 게 약점이다.
1군에 잠시 불려갈 때도 있었는데 몇 번 알을 까고 2군에 다시 내려온 케이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수비가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삼호슈퍼스타즈의 노장은 대충 그 정도이고 나머지는 젊은 편.
안강피그스와의 경기에 나온 백업들은 20대 초반의 선수들이었다. 물론, 경찰청에도 삼호슈퍼스타즈 2군 선수가 세 명 있다.
문제는 경찰청에서 주전도 아니고 백업도 아닌 채로 군복무를 하는 중이다.
삼호슈퍼스타즈 2군에 있었으면 라인업에 들 만한 선수들인데 경찰청에선 보이지도 않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경찰청과 삼호슈퍼스타즈 프로 2군의 실력 차이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날의 안강피그스를 상대로 한 승리는 허봉호 감독에게 숙제를 안겨주었다.
허봉호 감독도 처음부터 백업을 등한시 한 건 아니다.
동계 훈련부터 싹수가 있는 선수들은 집중적으로 지도했고 스프링 캠프에서도 교체 멤버나 대타 등으로 실전 경험을 쌓게 했지만, 기존의 주전 선수에 비해 성적도 나지 않았고 수비 실수도 잦아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성적이 감독의 역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프로야구의 냉정한 현실 속에서 시즌 중에 백업을 시험해 볼 여유는 없었다.
그러다가 한 경기라도 망치면 팀의 사기는 물론 쏟아지는 비난을 모두 감당해야만 한다.
허봉호 감독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주전 기용이었다.
현재의 백업 기량으로 보아 내년쯤에나 쓸 만한 자원으로 여겼다.
뜻하지 않게 구단에서 백업의 적극 기용이라는 방침을 정했고 허봉호 감독은 후보들의 대거 기용으로 맞섰다.
한데, 의외로 막강 안강피그스를 상대로 역전승을 해버린 것이다.
‘어쩌다 이겼겠지. 선발과 불펜이 안정됐다지만 아직 안강피그스를 상대할 만한 전력이 아니다.’
다음 날 경기의 선발은 이중호와 함께 세븐윈터스에서 스카우트 된 안민기였다.
불펜 피칭을 하는 안민기의 공은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더 빨라졌다.
육안으로 봐도 140대 중반은 될 것으로 보였다.
2군 투수가 145km정도를 던진다면 제구만 잡히면 1군 콜업이 충분하다.
안민기의 유일한 단점은 투 피치 투수라는 것.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는 좋은데, 커브나 요즘 새로 익히고 있다는 싱커는 제구력이 엉망이어서 실전용이 아니다.
안민기는 씩씩하게 마운드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씩씩하게 안강피그스 타자들을 상대로 1회 2볼넷 2실점으로 고전했지만 그 후론 5회까지 잘 막아냈다.
타선에선 이정우가 1군 콜업 1순위 아니랄까봐 2타수 2안타 1도루로 활약했고 강창선의 적시타 등으로 2:2 균형을 맞췄다.
허봉호 감독은 어제 기용한 백업을 오늘도 기용했다.
5명이었던 숫자를 2명으로 줄인 게 다른 점이었다.
포수 이두열이 또 스타팅으로 나왔고 수비 부담이 적은 좌익수로 안흥식이 기용되었다. 그들 둘은 어제 한 경기로 제법 안정이 되었는지 큰 에러가 없었다.
6회가 문제였다. 투 피치에 적응한 안강피그스 타자들이 안타를 때려내기 시작했다.
원아웃을 잡고 나서 연속 2안타.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코치는 고민했다.
6회만 막아주면 구문철, 이오수, 임병주를 차례로 투입해 로테이션에 무리가 없는데, 6회부터 필승조 투입은 쉽지 않다.
어제 경기에서 구문철은 2이닝 이상을 책임졌고 투구 수가 적지 않았던 이오수, 임병주도 1이닝 이상을 던지기에는 부담이 있다.
“휴~ 바꿔줘야 할 시점인데 마땅치가 않네.”
“위대준은 어때?”
“대준이로는 좀 버거울 겁니다.”
그때, 안민기가 또다시 중견수 적시타를 맞고 1실점했다.
연속 3안타로 안민기를 몰아붙이는 안강피그스의 타선이 매섭다.
스코어 2 대 3에 원아웃 1, 2루.
“구문철 던질 수 있겠어?”
“이번 이닝은 가능합니다.”
“다음 이닝은?”
“…….”
“우선은 막고 봐야지. 이 코치 올라가.”
이계현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걸어갔다. 성낙기는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투수 코치 뒤에서 대화를 모두 들었다. 그러고는 상태 창을 떠올렸다.
[체력 충전 중, 현재 33%(20)입니다.] 체력이 20이면 2회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성낙기는 이계현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향하자 허봉호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저 던질 수 있습니다.”
“뭐? 넌 어제 던졌는데 뭔 소리야.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제가 나가면 100% 실점 없이 막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