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015화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났지? 5
세이프!
주심이 양팔을 옆으로 펼쳤다. 공은 아웃 타이밍으로 빠르게 날아왔지만 포수 오른쪽으로 치우쳤고 이두열의 슬라이딩 허슬 플레이에도 서창모는 노련하게 홈플레이트를 짚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얼어붙은 삼호슈퍼스타즈 내야수들은 심심하면 볼을 놓쳤고 잘 잡았다 싶으면 1루수 머리 위로 혹은 원 바운드로 송구를 해댔다. 성낙기의 투구 수는 3회까지 55구에 추가 2실점으로 이닝 당 1실점을 했다.
“아, 오늘 성낙기 투수 실점이 많습니다. 안강피그스 타자들이 곧잘 쳐내고 있어요. 그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성낙기 선수 오늘은 고전입니다.”
“실점을 하긴 했습니다만, 제대로 맞은 타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코스가 애매해서 안타를 내줬고 에러가 많아요. 이래서는 투수가 실점하지 않을 도리가 없거든요. 오늘 말이죠, 왜 라인업을 이렇게 짰는지 의문입니다. 시범 경기도 아닌데 중요한 시즌 중에 그간 쓰지 않던 백업을 대거 기용했거든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동안 백업 기용을 자제하던 허봉호 감독인데 갑자기 무슨 일일까요.”
bbs의 유시진 아나운서와 장종운 해설자가 삼호슈퍼스타즈의 선수 기용에 의문을 나타냈다.
본래, 팀을 리빌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즌 초반부터 경기 감각을 익혀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기용하다 보면 실력이 늘고 백업과 주전의 차이가 줄어든다.
물론, 거기엔 리스크가 따른다.
백업 기용은 경기를 망칠 위험이 늘 있다.
성적을 내야 하는데 주전만으로도 성적이 바닥권인 삼호슈퍼스타즈 같은 경우는 더더욱 백업 키우기가 힘들다.
시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오늘 허봉호 감독의 백업 기용은 무려 다섯 명이다.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라인업 구성인데 투수가 성낙기 같은 떠오르는 신예라면 더더욱 승리를 챙겨줘야 맞다.
삼호슈퍼스타즈는 수비가 뚫리자 공격도 흐지부지 산발 3안타로 고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3회가 끝났을 때 성낙기의 체력은 (18/100)으로 떨어져 있었다.
실점을 최소한으로 막아내느라 라이징, 퀘이크볼 등의 주 무기를 많이 쓴 탓.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4회가 시작되었다.
‘체력이 18. 변화구 위주로 던질까?’
체인지업이나 커브 같은 느린 변화구를 던지면 30구 정도는 던지겠지만 안강피그스 타자들을 그렇게는 막을 수 없다.
전력투구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4회 안강의 공격은 선두 좌타자 서창모로 가장 까다로운 타자다.
서창모는 이미 성낙기의 공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그가 느낀 성낙기의 공은 빠르지 않지만 볼 끝이 살아 있고 제구가 되는 편이다.
수비 에러로 두 번 모두 살아 나갔어도 시원하게 때려낸 타격이 아니었다.
그는 초구부터 건드리는 대신 공을 신중하게 보기로 마음먹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몸 쪽에 꽉 차는 포심패스트볼이었다. 때리더라도 파울이 되기 쉬운 볼. 2구 역시 같은 코스로 오는 체인지업. 오다가 뚝 떨어진다.
볼.
‘만만치 않은 놈이야.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났지?’
서창모는 의문을 품으며 3구를 기다렸다.
한가운데로 오는 볼. 서창모는 꾹 참았다.
오다가 외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공은 서창모의 생각과 다르게 그대로 왔다.
스트라이크.
‘뭐야, 한가운데 포심이었어?’
투 스트라이크 원 볼에서 다시 성낙기의 공이 날아온다. 약간 높은 듯한 바깥쪽 공. 그러다가 타자 앞에 와서 뚝 떨어진다. 커브.
툭.
서창모는 배트를 툭, 갖다 대서 3루 쪽으로 공을 굴렸다.
파울라인 가까이 따라가는 공을 바라보면서 1루로 전력 질주 했다.
번트는 생각지 못했던 3루수 윤후광은 뒤늦게 스타트를 끊고 달려와 공을 잡았다.
그때, 서창모는 1루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공을 던졌지만 세이프.
‘후, 오늘 경기 안 풀리네.’
성낙기의 인상이 구겨졌다. 견제구를 하나 던지고 다음 타자에게 1구를 던질 때 서창모는 냅다 2루로 뛰었다.
이두열이 2루로 던진 공은 수비수 키를 넘어 외야로 날아갔고 서창모는 2루를 거쳐 노아웃에 3루를 밟았다. 삼호슈퍼스타즈의 내야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수준이다.
-휴, 동네 야구도 이보다는 잘하겠다. 낙기야, 4회만 던지고 그만 던지겠다고 해라. 불쌍해서 못 보겠다.
-1점은 준다고 생각하고 네 할 일만 해. 내가 할 일은 1구, 1구에 집중하는 거야.
실바와 존도 답이 안 나오는지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이런 야구를 해봤을 리가 없다.
야수 앞으로 굴리기만 하면 다 빠뜨리고 평범한 플라이 볼을 다이빙 캐치를 하질 않나. 모든 게 한 박자씩 늦는 백업들을 어찌할거나.
그동안 백업을 쓰지 않았던 허봉호 감독의 속내도 짐작이 갔다.
2번 타자가 친 공은 외야로 날아갔다. 높이 뜬 타구였는데 좌익수와 3루수의 중간 지점이었다.
3루수 윤후광과 좌익수 안흥식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공을 놓쳤고 1점을 헌납했다. 성낙기는 4회에만 안타 하나, 에러 3개를 묶어 2실점을 하고 간신히 이닝을 마쳤다.
[체력이 3/100 남았습니다.]
성낙기는 얼음찜질을 마다하고 불펜 투구를 했다. 이계현 코치에겐 자기만의 어깨 회복 운동이라며 둘러댔다. 내 어깨는 이래야 풀어진다고.
그리고 체력을 0으로 만들었다.
4이닝 5실점의 비참한 기분에도 실바와 존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야야, 불펜 투구해서 0을 만들어. 체력이 고갈되어야 더 많이 찰 거야.
-그건 실바 말이 맞다. 어여 불펜 투구 해.
성낙기는 화장실 가는 척하며 통로를 빠져나와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고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던진 결과가 너무 처참했다.
에러도 에러지만 4이닝 동안 삼진을 하나밖에 못 잡았다.
그만큼 안강피그스의 타자들은 수준이 달랐다. 성낙기의 공에 대해 연구를 하고 나온 듯한 느낌도 받았다.
정타는 몇 개 없었지만 못 치는 볼이 없을 정도로 컨택 능력이 뛰어났다.
그동안, 볼의 변화와 능력치 상승에 들떠서 아무도 내 공은 못 칠거라 자만했었다.
현실은 아니다.
조금만 타자 수준이 높아져도 결과가 이렇게 다르다.
2위 안강피그스가 이 정도인데 1군에서 뛰다가 군복무를 하는 선수가 많은 경찰청의 타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휴우, 도대체 뭐가 문제였죠?”
잠시 숨을 돌린 성낙기가 실바와 존에게 물었다.
자신의 공을 너무나 쉽게 건드리는 안강의 타자들, 공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길이 없다.
-문제? 문제는 없다. 넌 잘 던졌어.
“잘 던졌는데 이렇게 털려요?”
-잘 던져도 털리는 게 야구야. 그리고 그걸 극복하는 것도 야구지.
“무슨 뜻인가요?”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는 친다. 잘 치고 못 치고가 있을 뿐이지. 잘 던지고도 맞는 날이 있다. 너도 오늘 잘 던졌고 타자들은 그런대로 공을 쳐냈지. 너무 잘 던지려고 하면 타자들이 감을 잡는 거야. 공은 빠른데 볼 끝은 안 좋거든. 네가 딱 그랬어. 너도 모르게 긴장했던 거다. 2위 팀이니 호승심도 생겼겠지. 비워야 채워진다, 어디서 못 들어 봤냐?
“…….”
-존 말이 맞아. 그동안은 상대도 약했고 운도 좋았던 거야. 하지만 걱정 마. 네 자책점은 아마도 1점일 테니까. 이제 시작일 뿐이야.
실바의 말이 끝나자 눈앞에 글귀가 떴다.
[체력이 (60/100)으로 오릅니다. 체력 고갈 보너스 +3 추가. 다만, 0이 된 체력은 72시간 후에 완전히 채워집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67/100)로 오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53/100)으로 오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60/100)으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58/100)로 오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60/100)으로 오릅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18/100로 오릅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16/100으로 오릅니다.]
라이징패스트볼이 (3cm/20)로 오릅니다.
퀘이크볼이 (1.5cm/5)로 오릅니다.
[팔 근육 강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 2, 3, 4, 5, 6, 7… (2/10)단계로 오릅니다.]
[어깨 근육 강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 2, 3, 4, 5, 6, 7… (2/10)단계로 오릅니다.]
[악력 강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 2, 3, 4, 5, 6, 7… (3/10)단계로 오릅니다.]
비록 많은 점수를 내줬지만 능력치의 상승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었다. 팔과 어깨의 근육도 팽팽해지다가 조여지다가를 반복했다. 근육 강화가 끝나자 약간 피로했던 팔이 거짓말처럼 싱싱해졌다.
성낙기의 뒤를 이어 5회에 올라간 투수는 구문철.
그동안 꽤 오래 쉬었기도 하고 4회에 이중호의 투런 홈런으로 2 대 5가 되었기에 투입이 결정되었다.
백업을 5명 넣을 때는 거의 이길 생각이 없었으나 이중호가 홈런을 쳐서 2점을 따라붙고 보니 포기는 이르다는 생각이 구문철이 마운드에 나가게 된 이유이다.
김아경과 전력 분석관 정진수는 bbs 중계 방송실 뒤 스카이 박스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대화중이다.
“허감독님이 분명 저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러는 거겠죠?”
“아마도… 요. 느닷없이 백업을 5명이나 내보낼 땐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요.”
“그런데, 5회에 필승조 구문철을 내보낸 이유는 뭘까요? 앞뒤가 안 맞단 말이죠.”
“이중호가 홈런을 친 뒤에 마음이 변했을 겁니다. 3점은 퓨처스리그에서 어려운 점수가 아닙니다.”
“흥, 그러니까 내가 보고 있는 걸 알고 맛 좀 보라는 심정으로 백업을 5명이나 넣었다가 2점 따라붙으니까 이길 마음이 생겼다? 그렇다면 실책이 많았던 백업은 교체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김아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봉호 감독이 타임을 불렀다.
그러고는 내야의 2루수 주진철와 3루수 안흥식을 각각, 김석문과 안학규로 교체했다. 포수 마스크 역시 어느새 최광규가 쓰고 있었다.
“뭐야, 왜 갑자기 저러지?”
안강피그스의 오장한 감독은 야수들을 바꾸는 허봉호 감독의 의중이 궁금했다.
자신이 볼 때는 이미 경기가 기울었는데 이겨보겠다는 건지, 주전 투입이다.
오장한 감독은 성낙기의 강판을 호재로 여겼다. 공이 의외로 까다로워서 제대로 맞는 타구가 거의 없었다.
에러가 아니었으면 아마 스코어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정도.
그러다가 구원으로 나온 구문철의 독특한 투구 폼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언더스로는 거의 없어지는 추세인데 아직 저런 선수가 남아 있다는 게 놀랍다. 연습 투구를 보니 볼도 제법이다.
“삼호에 저런 투수가 있었나? 오늘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
하지만, 오장한 감독의 놀람은 결코 경외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어이가 없어서 놀란다거나 생각지도 못했기에 놀랍다는 반응일 뿐, 원래의 놀라움이 가진 낱말의 뜻과는 달랐다.
그런데 의외로 구문철은 5회를 깨끗이 지웠고 5회 말에 삼호슈퍼스타즈가 두 점을 더 따라 붙어 4 대 5가 되었다.
안강피그스 투수의 볼넷과 폭투가 겹친 결과였다.
구문철이 6회에도 올라와 심드렁한 표정으로 삼자범퇴를 시켰을 때에야 오장한 감독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김 코치, 저 도깨비 같은 투수가 도대체 어디 있다가 삼호로 왔지?”
“그, 글쎄… 저도 잘… 일본에서 투수 하나가 왔다고는 들은 것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경기 내내 여유롭게 웃으며 상대의 에러를 비웃다가, 한 점 차로 쫒기고 설상가상 불펜 투수 공략에 실패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