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013화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났지? 3
“너, 오늘 던진 볼이 뭐지?”
구문철이 성낙기에게 물었다.
구문철이 보기엔 성낙기가 이상한 공을 던진다.
다른 건 대충 알겠는데 타자 앞에서 흔들리듯 들어오는 공은 처음 보았다. 작은 움직임인데 예리하게 간파한 구문철.
“그거? 평소에 그립을 내 마음대로 잡고 던질 때가 있거든. 어쩌다 보면 보통 변화구하고 다른 각이 나오기도 하더라고.”
“그럼… 그 솟아오르는 볼은 뭐냐?”
“솟아오르는… 너 근데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 일본에서 선진 야구 배워온 애가.”
“너 정도 스피드로 그렇게 솟아오르는 건 처음 봤다.”
“그래? 수준 있는 투수 맞구나, 너. 알아줘서 고맙다. 네 볼도 만만치 않아. 쟤는 괴물이고.”
“나?”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던 이중호가 고개를 돌리며 반문했다.
“이 방에 괴물이 너밖에 더 있냐? 니가 타석에 서면 투수들 오줌 지리겠더라. 벤치클리어링에서도 일당백이었지. 상대 팀 선배들이 설설 기던데?”
“에이, 뭘.”
“너 담에 혹시 나 만나면 홈런 치지마라. 그땐 너 죽고 나죽는 거다.”
“끄응… 알았다.”
이중호는 보기보다 순한 데가 있다.
커다란 몸을 가지고도 성낙기에게 한풀 죽는다.
이중호도 처음엔 성낙기를 엉뚱한 놈이거나 생각이 없는 놈이라고 봤는데, 구문철이 강창선에게 대들 때와 오늘 벤치클리어링에서 가장 먼저 자신을 부르는 모습에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코치에게 막걸리도 얻어먹는다.
자신은 하지 못할 일들을 척척 해내는 성낙기가 대단해 보였다.
오늘도 성낙기 덕분에 선배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근데 너 왜 나에게 반말해?”
“응?”
“내가 너보다 한 살 많잖아.”
“어, 그거? 난 생일이 빨라. 생일이 몇 월인데?”
“11월.”
“난 1월. 겨우 두 달 차이네.”
“?”
구문철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일본에서 오래 살아서 까먹은 모양인데 이런 경우는 친구 먹는 거야. 중호야, 맞지?”
“응? 으응. 그렇지.”
그렇게 셋이 친구 먹기로 하고 성낙기는 한숨을 푹 잤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삼호파크 불펜에 나왔다. 존이 닦달했기 때문.
-뒈지게 던져. 구속을 올려야 1군 된다. 그런 공으로는 꿈도 못 꿔.
강화된 팔과 어깨의 느낌을 알아보고도 싶었다.
초시계처럼 돌아가던 강화는 성낙기가 잠이 든 뒤에도 계속되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일어나니 근육이 뻐근했다.
마치 경기에서 완투한 뒤의 느낌이 이럴까.
팡,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제법 묵직해졌다.
느낌으로도 130km에 가까운 것 같다. 공이 빨라지면서 회전수도 많아져서 안 그래도 괜찮은 볼 끝에 더 힘이 실린다.
현재 성낙기의 성적은 15이닝 2실점으로 1.2의 ERA를 기록 중이다. 데이터가 적어서 평균값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상쾌한 출발이다.
‘내년엔 우짜든지 1군에 들어가야지.’
실바의 사투리를 닮아가는 성낙기는 존의 가르침대로 포심패스트볼만 던졌다.
-제구는 신경 쓰지 마. 네 약점은 스피드다. 무조건 전력투구 해.
500구를 넘겼을 땐 자정이 가까웠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글귀가 떴다.
[세기의 강속구가 (65/100)으로 오릅니다.]
***
다음 날 은성캣츠와의 3차전엔 전날보다 더 많은 관중이 퓨처스리그 경기장을 찾았다.
은성의 홈구장인 O.S 파크필드. 은성 감독 박영태는 초조했다.
오늘까지 경기를 내주면 홈에서 3연패다.
그것도 만년 하위 팀인 삼호슈퍼스타즈를 상대로 말이다.
‘내일 선발로 김민철을 올려야겠어.’
‘3일 휴식인데 괜찮을까요?’
‘어쩔 수 없어. 3연패 당하는 꼴은 못 봐. 삼호 같은 팀에게 3연패 하면 개망신이야.’
어제 나눈 투수 코치와의 대화였다.
그만큼 박영태 감독은 오늘 경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안 그래도 2위 안강피그스와 격차가 벌어졌는데 더 벌어지면 따라갈 여력이 없을 것이다.
아니, 여력은 고사하고 삼호슈퍼스타즈에게 3연패를 당하고 나면 사퇴 압력에 시달릴지 모른다.
삼호슈퍼스타즈가 어떤 팀인가.
모래알 팀워크에다 승점 자판기 아닌가.
그런 팀을 상대로 3연패? 상상도 하기 싫은 결과다.
“이세환 컨디션 어때?”
“아주 좋습니다. 공이 좍좍 뻗어오는 게 힘이 있어요.”
“좋아, 3연승 가자!”
반면,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코치는 자신감 충만 이다. 작년에 1군에서 한 달쯤 활약하다가 제구와 멘탈 등의 이유로 다시 내려왔으나 2군에선 누구랑 붙여도 밀리지 않는 에이스 오브 에이스가 이세환이다.
팀이 받쳐주지 못해 6승 4패 ERA 4.08에 머무르고 있지만 상위권 팀에 있었다면 ERA 2점대에 시즌 중반인 지금, 10승 언저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김민철과 이세환은 자존심이 걸린 이 경기에서 호투를 이어 갔다.
하지만 삼호슈퍼스타즈는 하위권에 머무는 이유를 7회에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에러에도 불구하고 이세환이 후속 타자들을 잘 처리했지만 7회엔 안타 하나와 알까기와 낙구 지점 오판 등으로 3실점을 내줬다.
경기는 두 에이스가 나란히 7회를 마치고 물러났고 8회에 1점을 만회한 삼호의 패배.
그나마 1점은 이중호의 솔로 홈런이었다.
1 대 3 경기 끝.
***
“이래서는 상위권으로 치고 갈 수가 없어요. 뭐가 문제죠?”
“선수들의 집중력이…….”
“상대 팀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는데 우리 팀만 그런단 말인가요?”
“그게… 참.”
경기가 끝난 뒤 단장실. 단장에게 말하는 김아경의 지적처럼 삼호슈퍼스타즈는 시즌 초부터 줄곧 에러에 시달려왔다. 수비가 적극적이지도 않고 매사에 수동적인 매너리즘의 낌새를 보인다.
김아경은 이 문제를 단장과 상의하는 것이다.
“겨울에 부상 선수가 많아서 수비 연습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동계 훈련이 1년 농사를 좌우하는 것인데…….”
“아뇨, 전 그것보다 다른 이유가 더 크다고 봐요.”
“다른 이유라면?”
“현재 삼호슈퍼스타즈는 백업이 거의 없어요. 백업이 있다고 해도 있으나마나 입니다. 주전을 꿰찬 선수들만 경기에 계속 나가죠.”
“그야, 그 선수들 기량이 더 나으니까…….”
“물론 낫겠죠. 그러니 기용하는 것일 테고요. 하지만, 백업은 전혀 성장하지 못해요. 주전들은 으레 주전이니 하던 대로만 하는 타성에 젖어 있어요. 사람은 긴장하지 않으면 방심을 하게 되고 방심하면 언제든 사고를 치게 되어 있죠. 야구나 사업장이나 마찬가지예요. 제 제안은 지금부터라도 선수단에 긴장과 활력을 주자는 거예요.”
“하지만, 당장 성적이 곤두박질 칠 수도 있는데… 허봉호 감독이 가만있을까요? 성적이 안 나오면 진퇴와 직결됩니다.”
“내년까지가 허 감독님 계약 기간 인가요? 성적은 제가 책임지겠어요.”
김아경이 강하게 나온다. 마영진 단장은 난감하다.
김아경과 허봉호 감독 사이에 끼여서 중재하고 의사 전달하고 둘의 강한 성격을 다 받아 내려니 온몸이 욱신거릴 지경이다.
‘에이, 영업 팀 부장으로 그냥 있을 걸 괜히 야구단을 지원해 가지고 이 고생을 하네.’
부장 직을 내려놓고 야구단에 뛰어든 지 5년 동안 20년은 폭삭 늙은 느낌이 들었다.
밖에서 볼 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직접 선수단을 이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김아경의 말은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인데 냉정히 생각하면 이건 월권이다.
감독이 허수아비가 아니고서야 선수 기용까지 간섭을 하면 가만있을 사람이 없다.
“하, 죽겠네. 젊은 애가 시집이나 가지 야구에 환장을 해가지고… 쯧.”
마영진 단장은 김아경과 헤어져 돌아와서도 내내 입맛이 썼다.
***
성낙기는 오랜만에 집에 가는 중이다.
작년, 엄마가 뽑아준 중고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 산뜻하다.
단종 된 코란도 구형이라 덜덜거려도 130km까지는 무난하게 나간다.
현재 자신이 던지는 구속과 비슷한 속도.
성낙기는 좌회전 우회전 운전대를 돌릴 때마다 기하학적 곡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커브를 생각했다.
어제 경기는 이세환이 잘 던지고도 져서 아쉬웠지만 이제 곧 자신의 로테이션이 온다. 다음 상대는 안강피그스와의 홈 3연전.
그중 한 게임에 자신이 나가게 될 것이다.
안강피그스는 경찰청을 위협하는 유일한 팀이며 몇 년째 북부 리그 2위를 놓치지 않는 강자다.
안강피그스 1군이 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이유가 있다.
2군의 선수 수급이 원활하고, 부진에 빠진 1군 선수들이 담금질을 하고 올라가는 통로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삼호슈퍼스타즈로 말할 것 같으면 부진에 빠진 1군 선수가 와도 담금질이 아니라 기량이 퇴보되어 버린다.
이걸, 문화라면 문화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 한번 고착화된 팀의 분위기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봉호 감독은 그걸 깨기 위해 특별히 영입되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성낙기는 나이에 맞지 않게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맛나국수>집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다.
“엄마 나 왔어요.”
“옴마야, 낙기 왔네? 웬일이니 연락도 없이.”
“아들이 뭐 자기 집 오는데 연락하고 와야 하나? 아버지는?”
“그 인간 갈 데가 어딨겠냐. 뻔하지 뭐, 순댓집에 있겠지.”
“요즘도 막걸리 많이 드세요?”
“휴,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놈의 막걸리하고 원수를 졌는지 나가면 함흥차사다.”
성낙기는 건너편 <멍청이순대>에 갔다. 과일 가게 아저씨와 부동산, 순댓집 주인까지 골고루도 모여 있다.
“으하하, 낙기 왔네. 우리 아들 낙기. 이보게, 이번에 프로 입단한 우리 아들일세.”
“아이고야, 낙기 오랜만이네. 중학교 때 보고 처음이다.”
“그새 많이 컸네. 성사장은 세상 부러울 게 없겠구먼. 프로가 되어서 금의환향 했네 그랴. 연봉은 많은가?”
“이 사람아 연봉이 문제 겠나? TV에도 나오는데.”
“그래? 어느 팀에 들어갔어?”
“허허, 삼호슈퍼스타즈라네.”
“삼호슈퍼스타즈? 거기가… 만년 꼴찌 팀인데 거길 왜 갔어? 꼴찌 팀에 있어 봐야 꼬랑지 노릇이나 하다가 끝나지.”
다른 사람은 다 축하해 주는데 ‘멍청이순댓집’ 주인만 꼬투리를 잡는다. 기분이 급 나빠진 성용구씨는 성낙기를 데리고 국숫집으로 와 버렸다.
성낙기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서희도 친구 장하연과 집에 왔다. 성낙기는 장하연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처음 보았을 때가 초등 6학년 때였는데 뒤로 묶은 머리 하며 분위기 있는 예쁜 얼굴이 특히 기억에 남았던 아이다. 중학교 때도 서희의 단짝이었고 고3인 지금 보니 처녀가 다 되었다.
“낙기 오빠, 하연이 알지?”
“응? 잘 알지. 초등학교 때 우리 집에 많이 놀러 왔었잖아.”
“와, 기억나세요?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하연이가 좀 예쁘니. 그러니까 내가 전에 사인할 때 너한테만 하트를 그려줬지.”
“풋, 그야… 고마워요, 오빠. 참, 공 잘 던지시던데요? 얼마 전 오빠 경기 TV로 중계했어요. 완전 멋졌어요.”
“그, 그래? …고맙다.”
“낙기 오빠 왜 갑자기 말을 더듬어?”
니미럴. 예쁜데 어쩌란 말이야.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보면 볼수록 예쁘다.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아이. 정말, 여자가 다 되었다.
성서희, 저 계집애는 철도 없이 안 해야 될 말을 꼭 하는 습성이 있어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성낙기 엄마 양연숙이 국수를 만들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성용구가 서빙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