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009화 스카우트 팀장입니다 2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는 성낙기의 눈앞에 별안간 떠오르는 글귀. 어깨 보호 안 하고 술이나 퍼 마셔도 능력치가 올라 버린다. 입을 벌리면서 눈을 굴리는 두 사람. 어이가 없어도 한참이나 없다.
-이러니… 애가 뭔 짓을 못하겠냐고. 술판을 벌여도 척척 능력치가 오르는데 와… 나는 그 개고생을 하면서 던지고, 던지고, 또 던져서 간신히 자리를 잡았는데 으으으… 이럴 수는 없어.
실바가 아니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존도 열불이 나는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
이틀 후, 마영진 단장은 세븐윈터스의 단장 우동식을 만났다. 경기도 일산의 보리밥집에서 만난 그들은 막걸리를 한 잔씩 기울였다.
“우단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지요. 이중호와 안민기를 저희에게 주십시오.”
“이중호하고 안민기 말입니까?”
“네, 현금으로 지불하겠습니다.”
“허허, 나 원 참. 남의 집 기둥뿌리를 뽑으려 하시다니… 더구나 시즌 중에 말이지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프로로 갈 선수들입니다. 저희들이 그 길을 터주겠습니다.”
“글쎄요, 조금 더 무르익으면 1군에서 제안이 올 겁니다.
그런데 굳이 2군으로 보낼 이유가 없지요. 출중한 선수에게는 1군에서도 거액의 현금을 지불하는 추세입니다. 아마, 저희에게 발목 잡히는 걸 생각하시나 본데 안심하셔도 됩니다. 우린 승을 위해서만 뛰지는 않으니까요. 구단 운영 목적은 잘 아시다시피 버려진 선수들의 부활이고 세븐일렉트릭은 거기서 사회적 이미지를 쌓는 겁니다. 좋은 일 하는 기업 이미지면 됐지, 순위 조금 올리자고 치열하게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제 말을 오해하셨네요. 회장님이 직접 오더를 내린 사안입니다. 1군 같은 2군 육성으로 1군을 리빌딩 할 생각입니다. 회장님 손이 큰 건 아실 테고… 구단 예산 상황이 녹록치 않을 텐데 이 기회에 기름을 쳐보시지요.”
“허허허…….”
우봉식 단장은 말이 막히는지 헛웃음을 웃었다. 딴은, 무슨 순위를 목표로 한 것도 아니고 그렇잖아도 모기업 지원이 거의 없어서 힘든 상황이다.
“1군에 올라가도 2년 안에 주전을 꿰찰 선수들입니다. 일반적인 유망주 수준이 아니지요.”
우동식 단장이 슬슬 흥정 모드에 돌입했다. 마영진 단장은 김아경과 합의한 액수가 적힌 휴대폰 화면을 클릭했다.
***
현금 박치기만큼 깔끔하고 위력적인 건 없다.
선수의 기량을 견주어보고 장래성과 스타성까지 다 맞추어 본 다음, 손익계산까지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반적인 트레이드와 달리 현금 트레이드는 전력 누수가 전혀 없다.
만만찮은 현금과 무성한 뒷말을 감수할 용의만 있으면 된다.
이번 트레이드는 현금이 아쉬운 세븐윈터스와 전력 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삼호슈퍼스타즈의 사정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리하여 이틀 후, 전격적으로 이중호와 안민기가 삼호슈퍼스타즈에 합류했다.
안민기는 합류하자마자 마운드에 올랐다.
일요일 성낙기의 1승 후, 휴식일인 월요일을 넘기고 우천으로 하루를 더 쉰 후 수요일에 맞이한 상대는 3위를 달리고 있는 은성캣츠.
안민기가 아니었으면 오늘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었던 문상열은 충혈된 눈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있고 느닷없이 5번을 내주고 6번으로 밀린 김석문은 열폭 중이다.
김석문이라면 삼호슈퍼스타즈 2군 부동의 5번 타자였는데 하루아침에 6번으로 밀렸다.
0.254의 타율에 7홈런 22타점으로 타율이 다소 아쉽지만 클린업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니미 시발, 기분 더럽네. 말 한마디 없이 6번으로 밀어내나. 덩치만 큰 듣보잡 때문에?”
김석문이 경기 전 문상열에게 한 말이었다.
문상열도 열불이 나기는 마찬가지.
오늘이 5일 쉬고 등판일인데 안민기 때문에 하루가 밀렸다.
이건 뭔가.
굴러 들어온 투수 때문에 팀의 주전인 자신의 스케줄이 바뀌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다.
문상열은 올해는 2승 7패 ERA 7점대로 부진하지만 작년엔 9승이나 거둔 투수였다.
성낙기 때문에 등판일이 하루 밀리더니 이젠 5선발도 장담 못할 위치까지 추락했다.
둘은, 허봉호 감독이 철저하게 실력 위주의 라인업을 짠다는 사실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신들을 건드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성낙기는 어찌어찌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오는 놈마다 자신들을 뒤로 밀어낸다.
하지만, 감독에게 불만을 말하기에는 둘의 실력이 어중간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레이드되자마자 마운드에 오른 안민기는 문상열의 마음을 모르는지 3이닝 무실점으로 은성캣츠를 막아내고 있다.
김석문 대신 5번을 꿰찬 이중호는 첫 타석부터 2루타를 때려냈다.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서 스코어는 0 대 0.
“선수를 사주려면 시즌 초반에 사주지. 전반기가 다 끝나가는 지금 뭘 어쩌라는 거야?”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중위권에서 놀고 있을 텐데.”
허봉호 감독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계획성 없이 선수를 수급하면서 좋은 성적을 바라는 듯한 김아경의 말.
어제였다.
“감독님, 내일 좋은 선수 셋이 투입될 겁니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하위권에 있을 순 없어요. 전력 보강 걱정 마시고 베이스볼 시리즈 나가도록 해주세요. 믿습니다.”
김아경은 그런 말을 던져놓고는 커피를 마시다말고 바쁘다며 가 버렸다.
아니, 막말로 베이스볼 시리즈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북부 리그에서 3위 안에는 들어야 남부 리그 3위랑 와일드카드 결정전이라도 해보는 것인데 겨우 투수 둘에, 타자 하나 보강했다고 시리즈를 들먹이다니.
그중 한 투수는 듣도 보도 못한 선수고 나머지 둘도 세븐윈터스에서처럼 계속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야! 니가 회장 딸이면 딸이지 어디 야구판에 와서 거들먹거리고 지랄이야. 더러워서 못해 먹겠으니까 다른 감독 알아봐!
이럴 수도 없고.
입맛이 쓰다.
그나저나 김아경이 데려온 안민기와 이중호 둘 다 물건은 물건이다. 안민기는 공도 빠르지만 워낙 슬라이더가 좋다.
포심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오다가 떨어지기 때문에 쉽사리 공략이 어려운 공을 갖고 있다.
거기에 이중호는 타고난 슬러거의 냄새가 풍긴다. 타석에 서는 것만으로도 상대 투수에 위압감을 주는 가공되지 않는 원석 중의 원석의 냄새가 난다.
‘김아경… 선수 보는 눈은 있는 편이군.’
안민기는 이적 후 첫 경기인 은성캣츠 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선방했다.
잘 던지다가 5회에 볼넷 하나와 안타 하나에 야수 에러가 겹치는 바람에 2실점.
6회에도 볼넷이 있었으나 이닝을 잘 마무리했고 언더스로 투수 구문철과 이오수, 임병주가 차례로 이어 던져서 4 대 3으로 승리.
구문철 역시 김아경이 데려왔다.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으로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하고 군 제대 후 일본 독립 리그에서 뛰던 선수였는데 김아경이 직접 날아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추진력 하나 만큼은 김현중 회장을 빼박았다.
공이 까다로운 만큼 성격도 괴팍해서 늘 홀로 지내던 그를 이적료까지 지불하면서 데려온 김아경.
일본 독립구단 사츠미 단장은 안 그래도 껄끄러운 그를 반색하며 내줬다.
이적료도 챙기고 늘 겉도는 골칫덩어리도 치우는 일석이조의 거래가 아닐 수 없었다.
김아경이 평소 일본 출장을 가면 관전을 하곤 했던 독립 리그였고 거기서 뛰는 한국 선수들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독립 리그엔 구문철과 같은 케이스의 한국 선수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 구문철의 투구가 김아경의 마음에 들었다.
공은 빠르지 않지만 투구 폼이 독특해서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우며 변화구도 곧잘 구사했다.
오늘도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1이닝을 깔끔하게 지웠다.
김아경은 관중석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승리를 만끽했다.
자신이 데려온 세 선수가 모두 좋은 활약을 했고 승리에 기여했다.
김아경은 이대로만 가면 아빠와 약속한 2위까지 치고 오를 거라는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다.
***
1번-이정우
2번-서상천
3번-조성진
4번-강창선
5번-이중호
6번-김석문
7번-최일현
8번-포수 최광규, 이두열.
9번-안학규
1선발-이세환
2선발-안민기
3선발-성낙기
4선발-기영만
5선발-문상열
불펜 필승조-구문철, 이오수, 임병주, 위대준.
불펜 추격조-진종갑, 김용찬. 이민중.
경기가 안민기의 선발승으로 끝나고 허봉호 감독이 대략적으로 정리한 엔트리였다.
최광규는 노장이라 이두열과 2인 라인업으로 가야 하고 투수는 성낙기와 안민기, 구문철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열악한 팀 사정 탓에 3선발로 시즌을 이끌어왔던 허봉호 감독은 이제야 뭔가 라인업이 짜인 느낌이 들었다.
이세환을 제외하고는 늘 선발이 무너져서 불안했는데 단숨에 2, 3선발이 라인업에 들어왔다.
기영만, 문상열만 힘을 내준다면 김아경이 강조한 베이스볼 시리즈 와일드카드도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안민기의 호투에 힘입어 3위 은성캣츠를 잡아내지 않았는가.
경기가 끝나고 이세환과 강창선은 자신들의 방으로 몇몇 선수들을 불렀다.
새로 합류한 성낙기, 안민기, 구문철과 이중호, 그리고 불펜 이오수와 마무리 임병주와 새 멤버가 오기 전 2, 3선발이었던 기영만 문상열이 왔고 타자로는 3번 조성진과 테이블세터 유망주 이정우와 노장 최광규도 함께였다. 방엔 통닭과 맥주가 차려졌다.
주장 강창선이 입을 열었다.
“우선 이번에 새 멤버가 된 것을 축하한다. 주장으로서 환영한다.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단합을 위해서인데 이제 새로 선수들이 왔으니까 뭔가 어수선하고 그래서 정리가 필요하다.
새로 온 애들은 나이가 많다고, 또… 야구 좀 한다고 깝죽대고 그러면 팀이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환영한다면서 뭘 깝죽대지 말라느니 팀이 어쩌고 하는데 의도가 불분명하다.
-켈켈, 애들도 텃세 부리고 이러네? 난 mlb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단 말야.
실바는 실바다. 조리 있게 말을 못하는 강창선의 의중을 바로 알아차린다.
“어… 그러니까 창선이 말은 앞으로 잘 지내자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팀워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자 그 말이다.
새로 온 애들은 기존에 있던 선수들에게 깍듯이 예의도 갖추고 그러란 얘기야. 기존 선수들도 새로 온 애들에게 잘해주도록 하고. 단합을 위해서 모인 것이니까 기분 좋게 먹고 마셔라.”
이세환이 강창선의 말을 풀어준다. 강창선이 내 말이 그런 뜻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은 자리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성낙기보다 두 살 어린 안민기가 싹싹하게 대답한다. 이중호는 뭔가 떨떠름하면서도 안민기의 말에 동조하는 모양새.
성낙기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통닭만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고 구문철을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을 노려보고만 있다.
“어이, 내 말 알아먹었어?”
강창선이 다그치듯 구문철에 말했다. 아무래도 인상 쓰는 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구문철이 고개를 들었다.
“겨우 그런 말 하려고 밤중에 불렀어요? 귀찮아 죽겠네.”
“이 자식이!”
강창선이 그 말을 듣자마자 손을 날렸으나, 성낙기가 잽싸게 잡았다. 엉겁결에 잡기는 잡았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헤에, 선배님 죄송함다.
“헤에, 선배님 죄송합니다.”
-야가 말이쥬. 일본에서 와 갖고 아직 암 것도 몰라요. 제가 알아듣게 말을 해놀랑게요.
“일본에서 와서 아직 뭘 모르는 친굽니다. 제가 잘 말해 보겠습니다.”
실바가 성낙기의 곁에서 힌트를 준다고 말하는데 그게 다 사투리다. 성낙기는 요령 있게 실바의 말을 표준어로 바꾸어 말했다. 어디서 저런 사투리를 배웠는지 하여튼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레전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