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008화 스카우트 팀장입니다 1
성낙기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퀘이크볼을 전력투구했다. 전우식은 끈질긴 커트 후 드디어 바깥쪽으로 어정쩡한 높이의 볼이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공은 전우식의 생각과 다르게 마지막에 흔들렸고 그 바람에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성낙기로서는 가장 까다로운 타자를 잡은 셈이었다. 6회 마지막 타자는 3구에 참지 못하고 체인지업을 건드려 3루 땅볼 아웃. 남은 체력 5.
“성낙기. 더 던질 수 있겠어?”
6회를 마치고 더그아웃에 들어오자 투수 코치 이계현이 묻는다. 순간, 망설여진다. 이계현 코치는 7회에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묻는 거다. 6회까지 73구. 보통의 기준이라면 7,8회까지는 충분한 투구 수다.
“던지겠습니다.”
변화구만 힘 빼고 던져도 6구 정도로 끝나는 상황이었지만 성낙기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
게다가 2 대 0 박빙이다. 불펜도 강하지 않다. 삼호의 불펜으로는 이오수와 마무리 임병주가 있지만 요즘 실점이 잦다.
마무리 임병주의 방어율도 4점 대 중반이고 이오수는 한술 더 떠서 5.36의 방어율이다.
-이거, 이거 이래가지고 체력이 남아나겠나? 체력을 다 쓰면 아예 못 던진다는 건가?
실바의 말대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처음 체력은 55였는데 이제 겨우 5가 남았고 그걸 다 쓰면 어떻게 된다는 거지?
삼호슈퍼스타즈는 6회를 범타로 물러났고 성낙기는 7회 초 마운드로 올라갔다.
상대 타자는 중외울프스의 3번 이장삼, 4번 여태호 순이다. 중외가 자랑하는 거포들. 타율은 2할 중반대지만 힘이 좋다.
따악.
초구 커브에 파울, 커브를 노리고 있었는지 적극적이다.
2구 체인지업에는 배트가 따라오지 않는다. 3구 슬라이더에도 나오다 멈추는 배트. 4구 포심패스트볼엔 1루 쪽 파울을 쳐낸다. 눈에 익었다는 건가?
투 스트라이크 투 볼에서 5구째 바깥쪽 커브로 우익수 플라이 아웃. 남은 체력 2.5.
성낙기는 4번 여태호와도 어려운 승부를 펼쳤고 4구째에 남은 체력이 0이 되었다.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5구 바깥쪽 체인지업 사인에 성낙기는 와인드업을 하고 힘껏 공을 던졌다. 하지만, 공을 던지는 마지막 순간 성낙기는 팔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 혹사를 당하면서 느꼈던 몸과 팔의 상태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고 체인지업이라고 던진 공은 시속 80km대의 아리랑 볼이었다.
따악.
배트에 맞은 공은 유격수 키를 넘기고 좌익수 앞 원 바운드 안타. 실바와 존은 심각한 얼굴로 성낙기를 보았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고 와인드업을 한 뒤 전력으로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타자는 마치 배팅 볼을 치는 듯 경쾌하게 배트를 휘둘렀고 타구는 우익수 앞 안타였다. 1루 주자는 3루까지 내달렸다. 노아웃 1, 3루의 위기.
“아, 성낙기 선수 갑자기 난조인데요?”
“아, 7회 들어와서 던지는 공이 모두 이전의 공과는 다릅니다. 본래 볼 스피드가 빠른 선수는 아니지만 7회 들어와서는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네요.”
중계진이 멘트를 날렸다. 포수 최광규가 마운드로 올라왔고 이계현 투수 코치도 성낙기에게 다가왔다. 어깨와 팔이 욱신거렸고 손아귀가 저려왔다.
“너, 왜 그래?”
이계현 코치가 다짜고짜 물었다.
“아, 하하. 볼이 자꾸 미끄러집니다. 땀을 많이 흘렸나?”
“놀고 있네. 너 지금 체력이 바닥이야. 최광규, 애 볼 어때.”
“7회 들어서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지금까지 잘 던졌어. 쉬도록 해.”
이계현 코치가 성낙기에게서 공을 넘겨받았다. 그러곤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이오수에게 손짓했다. 마운드로 오는 이오수와 손을 마주치고 나서 더그아웃으로 가는 길이 천근만근이다.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는데 심판이 빨리 들어가라고 할 정도로 온몸에 힘이 말랐다. 성낙기의 뒤를 따라 실바와 존도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왔다.
‘뭐지? 체력이 0이라는 게 이런 건가? 혹사를 당하고 부상을 안고 던질 때의 그 느낌이야.’
성낙기가 더그아웃에 앉아 한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그때야 알았다. 상태 창이 말하는 체력 0은 성낙기 본인의 체력과 시스템의 체력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 또 하나는 실바와 존의 구질과 라이징패스트볼 등은 성낙기가 원래 던지던 구질보다 체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도. 하긴, 그랬으니 6회까지 중외울프스 타선을 잘 막았겠지만.
“삼호슈터스타즈가 오랜만에 중외울프스를 상대로 깔끔한 승리 기회를 잡았는데 아쉽네요. 이오수 투수가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일단 이오수 투수의 컨디션은 좋아 보이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요즘 실점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역할은 해주는 선수라고 봐야죠.”
이오수는 중외울프스 첫 타자를 맞아 희생플라이를 내주고 1실점했다. 이어진 원아웃 1루에서 볼넷으로 1사 1,2루로 고전했지만 다음 타자의 병살타로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임병주는 9회에 안타 하나를 맞은 뒤 나머지 타자를 모두 돌려세웠다.
경기 스코어 2 대 1로 삼호슈퍼스타즈의 승리. 타선의 큰 도움 없이도 스윕패를 면했다.
2연패 끝의 승리로 성낙기의 이름이 팬들에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
성낙기는 그 경기의 수훈 선수로 인터뷰를 했다. 1군처럼 방송사 카메라가 돌아가지는 않고 기자 몇이 사진을 찍고 궁금한 점을 묻는 수준이었다.
허봉호 감독과 투수 코치 이계현, 타격 코치 박종태와 선수들은 웃는 얼굴로 관중에게 인사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모였다.
“성낙기 선수를 허봉호 감독님이 데려왔나요?”
“네에… 그렇습니다. 최근에 입단했지요.”
“성낙기… 감독님이 선수 보는 눈이 있네요. 저런 선수들로 채우면 우리 팀도 베이스볼 시리즈 나갈 수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가씨.”
관중석 한쪽에 젊은 여자와 나란히 앉은 마영진 단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대화 상대는 바로 김아경이었다. 관심을 갖고 있던 성낙기의 등판일이고 3연전 스윕 여부가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그녀의 등장은 단장 이하 프런트를 긴장시켰다.
워낙 야구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가진 데다가 야구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김현중 회장이 그녀의 말이라면 껌벅 죽기 때문에 더 그랬다. 야구단에 있어서만큼은 그녀의 의중이 곧 김현중 회장의 뜻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팀장으로 불러주세요.”
“팀장이라면…….”
“2군은 스카우트가 따로 없죠?”
“네, 1군 스카우트가 2군까지 일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2군을 맡을 게요. 선수 수급이 필요한데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2군 첫 승리를 축하합니다. 보너스로 체력이 (60/100)으로 오릅니다.]
[2군 첫 승리를 축하합니다. 보너스로 라이징패스트볼이 (2cm/10)으로 오릅니다.]
[2군 첫 승리를 축하합니다. 보너스로 퀘이크볼이 (1.2cm/5)로 오릅니다.
[2군 첫 승리의 보상으로 전광석화(電光石火)모드가 생성됩니다. 1경기에 5번의 초강속구를 던질 수 있습니다. 최대 능력치의 7km 상승. 체력소모 2.5. 축하합니다.]
-대애박!
실바의 목소리. 인터뷰를 끝내고 들어오는데 눈앞에 글귀가 떴다. 관중들은 승리를 한 선수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간간히 성낙기를 외치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승률 4할도 채 안 되는 팀을 꾸준히 응원해 온 팬들은 간만의 깔끔한 경기에 체증이 내려가기라도 하는지 마냥 소리를 질러댔다.
“성낙기, 감독실에 가 봐.”
이계현 투수 코치가 턱짓을 했다.
“무슨 일 있나요?”
“특별한 일은 아니고 새로 온 스카우트 팀장이 널 좀 보자고 하신다.”
“스카우트 팀장이요?”
“그래, 너 어디 보내는 거 아니니까 놀라지 말고. 그룹 회장 따님이니까 그리 알고 가 봐.”
감독실에 가니 허봉호 감독과 마영진 단장, 그리고 젊고 예쁜 여자가 원형 탁자에 앉아 있다. 쭈뼛거리는 성낙기. 그런 성낙기를 보고 여자가 일어선다.
“안녕하세요. 제가 뵙자고 했어요.”
“아… 네.”
“이번에 2군을 맡게 된 김아경 스카우트 팀장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제가 무엇을……?”
“아니, 다른 부탁 아니고요. 오늘 투구에 감명 받았어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드리고 앞으로도 삼호슈퍼스타즈 마운드를 잘 지켜달라는 부탁입니다.”
회장 따님이라더니 되바라지지 않고 의외로 싹싹하다. 마영진 단장과 허봉호 감독도 내심 놀라는 중이다.
자기들에게는 저렇게 겸손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선수에겐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 아마 현장을 중시하는 김현중 회장의 지론을 그대로 물려받았나 싶으면서도 겨우 첫 승을 거둔 투수에게 지나치게 친절하다.
“그런 부탁이시라면 앞으로 1패도 하지 않겠습니다.”
“호호홋, 정말요? 진심으로 그럴 거라고 믿어요.”
성낙기는 성낙기대로 기분이 좋아져서 말이 나오는 대로 질러 버렸다. 거기에 환하게 웃으며 리액션을 넣는 김아경이다.
두 사람을 보는 마영진 단장과 허봉호 감독은 어이가 없다.
회장 딸의 선수에 대한 배려 정도는 이해하겠는데 거기에 대고 1패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놈이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듯한 김아경이나.
-흐으. 겨우 120km 던지는 놈이 1패도 안 하겠다니… 이거는 완전한 또라이… 어이, 실바. 우리가 이상한 놈을 제자로 거둔 것 같다. 이쯤에서 철수하자.
-시끄러. 패기가 얼매나 좋냐. 입 다물고 쥐죽은 듯 있으면 아무도 안 알아주는 세상이야. 되든 안 되든 지르고 보는 거지. 그리고 머 철수는 니 맘대로 하냐?
성낙기는 김아경의 기분 좋은 말을 듣고 감독실을 나섰다. 기분 좋다. 1승도 하고 스탯 보너스도 받고 회장 딸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들었다.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데다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형 미인이다.
“집에 가서 축하주 한 잔 부어야겠어. 크큭.”
성낙기의 말을 들은 실바와 존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
안강피그스-33승 24패로 2위, 승률 0.578-10게임 차.
중외울프스- 27승 30패로 5위, 승률 4.73-4게임 차.
경찰청은 승률 6할이 넘으니 제쳐두더라도 김아경이 목표한 안강피그스는 거의 넘사벽 수준이다.
한 달에 잘해야 5,6게임을 따라잡을 수 있는 현실이고 보면 어려움은 더 명확해진다. 승률 8할을 올려도 상대가 반타작만 하더라도 대략 7게임을 줄이는데 그친다.
하물며 삼호슈퍼스타즈의 전력 상 8할은 꿈의 수치인 동시에 안강피그스가 반타작에 그칠 전력도 아니다.
그나마, 스윕을 면했고 요즘 안강피그스가 삽질하는 바람에 격차가 좁혀지기는 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은 언제든 제 모습을 찾아간다.
-그런데 왜 강속구는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내 수준이 될까. 어우, 답답해. 너 막걸리 그만 마시고 공 던지러 가자.
내일은 휴식일이다. 성낙기는 원룸에 돌아와 승리를 자축하며 막걸리를 마시는 중이다. 안주는 깍두기에, 오다가 산 순대.
-냄새 죽인다. 동양 애들은 어떻게 동물 내장을 처먹냐? 내장에 뭐 이상한 걸 집어넣어 가지고… 으휴.
“신경 끄세요. 남이야 내장을 먹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커억, 막걸리는 역시 도봉산 막걸리가 최고여. 으적으적.”
성낙기는 트림을 하면서 깍두기를 씹고 있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실바와 존. 겨우 1승을 올렸다고 술판을 벌이는 놈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자신들은 승을 따내고 난 뒤에 얼음찜질에 마사지에 별 지랄을 다해가면서 팔을 아꼈건만 성낙기라는 애는 어깨나 팔 따위 안중에도 없다.
[세기의 강속구가 (60/100)으로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