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6화 (6/188)

# 6

006화 선발은 정해졌습니까? 3

성낙기는 며칠 전의 투구로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오늘 삼호의 선발은 2선발인 기영만인데 ERA 5점대에 불과했으나 1, 2회에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어서 나름 계산은 서는 투수였다.

-야야, 성낙기. 오늘은 감독 앞에서 어필 좀 해. 가만있으면 가마니로 알아.

실바가 성낙기 옆에서 너스레를 떤다.

기영만은 3연승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굳은 얼굴로 마운드에 나갔다.

오늘 상대는 중외 울프스. 6월 말 현재 28승 32패 4.66의 승률로 5위로 삼호슈퍼스타즈와는 4게임 차를 유지하는 중이다.

삼호가 2연승을 하는 동안 1승 1패로 반타작을 하는 바람에 한 게임이 줄었다.

만약 맞대결 3연전을 스윕이라도 하는 날엔 1게임 차로 줄어들어서 역전 가능성이 충분해진다.

1회에 삼호 타선이 터져서 3점의 리드를 안고 출발한 기영만은 3회까지 65구나 던지며 1실점으로 막아냈으나 4회에 볼넷과 장단 4안타를 연속으로 맞고 4실점, 스코어 3 대 5를 만들어 놓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허봉호 감독은 놓칠 수 없는 경기라고 판단, 원아웃 1, 2루에서 필승조 이오수를 투입했다.

우선 급한 불을 끄고 이오수의 힘이 떨어지면 선발자원 문상열을 당겨 쓸 생각이었다.

그만큼, 믿을 만한 불펜 자원이 부족하다는 증거였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것과 같지만 몰아붙일 수 있을 때 몰아붙여야만 한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팀 분위기가 또 올라올지 알 수 없다.

시즌 중 처음 있는 3연승에 실패하면 삼호슈퍼스타즈의 기본 전력으로 볼 때 기나긴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도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땡길 때 확 땡겨 줘야 한다.

이오수는 불펜 자원답게 몸 쪽 커브로 병살타를 잡고 이닝을 잘 마쳤지만, 5회에 연속 볼넷을 내주고 문상열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문상열은 ERA 7.44가 우연이 아니라는 듯 나가자마자 안타로 노아웃 주자 만루를 만들어 놓았다.

중외울프스 타선은 불이 붙자 식을 줄을 몰랐다. 성낙기는 실바의 조언대로 감독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힐끗거리면서 감독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쟤는 왜 저렇게 얼쩡거려?”

허봉호 감독이 이계현 코치에게 말했다.

“내보내 달라고 그러는 것 같은데요?”

“내보내 달라고? 이 위기에? 허허… 돌아가시겠군. 오늘 경기를 잡아야 분위기를 타는 건데, 츱.”

“만약을 모르니 준비 시킬까요?”

“…지금 누가 몸을 풀고 있지?”

“김용찬, 위대준, 진종갑입니다.”

위대준을 제외하고는 둘 모두 추격조였다. 위대준은 필승조지만 부상에서 돌아와 영점이 잘 잡히지 않는 중이다.

“휴~ 답이 안 나오는군. 하는 수 없지. 임병주를 쓰기엔 너무 이르고. 일단 그렇게 해.”

허봉호 감독은 이계현 코치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안이 없다는 걸 알고 승낙했다. 며칠 전의 호투가 생각 난 까닭도 있다. 이계현 코치가 성낙기를 불렀다.

“성낙기, 준비 해.”

성낙기가 몸을 풀자마자 몇몇 관중들이 성낙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는 동안 경기는 또다시 내야안타로 1실점, 문상열은 흐르는 비지땀을 닦으면서 더그아웃을 힐끗 보았다.

“타임!”

감독은 타임을 불러놓고도 망설였다.

위대준과 성낙기 둘 중 누굴 내보낼 것이냐.

컨디션 좋은 날엔 최고 구속 140km 초반까지 나오는 위대준이지만 영점이 잡히지 않은 제구가 아무래도 불안하다.

결국, 문상열이 내려오고 성낙기가 올라갔다.

여전히 노아웃에 만루 상황에 스코어 3 대 7에서 점수를 더 내주면 오늘 경기는 접어야 한다.

성낙기의 1구는 122km의 살짝 빠진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이었다.

-야야, 변화구 승부 해. 문상열이 포심 던지다 맞았어.

실바가 커브 그립을 잡고 던지는 시늉을 했다.

-변화구만 주야장천 던지라고? 그러다가 강속구는 평생 던져보지도 못하고 은퇴할 걸? 맞더라도 강속구 위주로 던져야 수치가 오르지.

“두 분 말씀 잘 알았습니다. 적절하게 섞어 던질게요. 제가 부르기 전에는 shut the mouse! 해주세요.”

-제자라고 하나 있는 놈이…….

-내 말이…….

성낙기는 두 유령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커브를 던졌다.

일단 122km라도 포심패스트볼을 보여준 뒤의 커브는 효과가 있다.

같은 폼에서 빠른 볼 다음의 느린 커브.

성낙기의 구질 중에서 그나마 수준급인 (53/100)의 제구력을 갖춘 커브에 타자는 제 스윙을 못하고 툭, 갖다 대고 말았다.

타구는 전진 수비를 하던 3루수에게 잡혔고 곧바로 홈 송구 뒤 1루 송구로 아웃, 순식간에 투아웃이 되어버렸다.

-우와, 병살타!

-굿! 제법인데? 위기에서 떨지도 않고 잘 던지네.

-저런 공으로도 병살이네. 희한하다, 희한해.

-성낙기 최고!

삼호슈퍼스타즈 팬들이 한마디씩 했다. 간단하게 공 두 개로 투아웃을 만들자 침울하던 응원석이 시끄러워졌다.

성낙기는 다음 타자에게도 몸 쪽 높은 포심패스트볼을 보여준 다음에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유격수 땅볼 아웃을 잡아냈다.

[커브제구력이 54로 오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51로 오릅니다.]

[위기상황 보너스로 어깨 근육 강화(2/10)가 오릅니다.]

[위기상황 보너스로 팔 근육 강화(2/10)가 오릅니다.]

[위기상황 보너스로 악력(3/10)이 오릅니다.]

성낙기가 마지막 타자를 잡고 마운드를 내려올 때 뜨는 글귀. 전에 1단계였던 근육 강화가 2단계로 조정되었다.

변화구 수치 조정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난데없는 보너스에 성낙기는 놀랐다.

팔과 어깨 근육 강화 2단계라니. 1단계에서도 근육의 느낌이 상당했었는데 2단계는 어떨까.

아닌 게 아니라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는데 오른쪽 어깨와 팔 근육이 팽팽히 당겨지고 조여지는 게 느껴졌다.

-옴마야. 난 몰라.

-크크큭. 아주 초인이 될 기세로다.

실바와 존은 놀라움과 더불어 말이 안 되는 보너스에 기절할 지경이었다. 헛웃음만 나오는 능력이 성낙기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아, 성낙기 선수 대단한데요? 공 네 개로 쓰리 아웃을 잡아냅니다. 이건 참 보기 드문 장면이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참 묘한 매력을 가진 선수입니다. 두 타자 모두에게 속구를 보여준 다음 변화구로 타이밍을 뺏었죠? 그런데 그건 투수라면 누구나 하는 겁니다. 이 선수의 장점은 변화구가 딱 치기 좋게 들어온다는 거죠. 배트가 안 나갈 수가 없도록 말이죠. 그러나 치고 보면 범타가 많습니다. 제구가 그만큼 좋다고 봐야 합니다.”

bbs의 유시진 캐스터와 장종운 해설자가 성낙기의 투구에 감탄하는 멘트를 날렸다.

제구가 좋다고 설명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장종운 해설자다.

그가 보기에도 뭔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제구가 좋다고 해도 내야 밖으로 공을 걷어내지 못하는 중외울프스 타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웃 당한 타자들은 느꼈다.

성낙기의 변화구가 생각 이상으로 볼 끝 변화가 있다는 것.

속구뿐만이 아니라 체인지업도 보기보다는 공 반 개 정도는 더 가라앉는 것 같고 커브도 날아오는 각도보다 조금 더 휘어져 떨어진다.

그것도 헛스윙이 아니라 땅볼을 치기 딱 좋은 정도의 변화였다.

-흐흐, 놀라기는. 전설의 변화구인데 절반만 익혔다고 해도 각이 살아 있는 거지.

-그래도 성낙기 애가 생각보다 강심장인데? 위기 상황인데 연습할 때랑 똑같이 던졌어.

-존아, 뛰어내리는 놈 잡아다 살려놨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

-애는 뭔 말을 못하게 하네. 털보 시키가.

‘아이, 참 고만 좀 해요. 나잇살이나 드신 분들이 유치원생보다 더하네.’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물을 마시던 성낙기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옆에 있던 선수들이 성낙기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지만 푸른 하늘 뭉게구름만 보인다.

성낙기가 실점 없이 5회를 마치자 삼호슈퍼스타즈 타자들은 5회 말에 중외울프스 선발을 공략해서 2점을 뽑아냈다. 스코어 5 대 7.

역전의 희망이 선수들에게 싹트기 시작했다.

성낙기는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엔 별다른 위기 상황도 없이 공 11개로 삼자범퇴로 간단하게 이닝을 마무리했다.

“위대준을 준비 시킬까요?”

삼호슈퍼스타즈의 공격 때 이계현 코치가 슬쩍 떠본다. 성낙기가 2이닝을 훌륭하게 막았지만 운이 좋아 야수 정면으로 갔을 뿐이지 타자들이 잘 맞추는 건 틀림없다. 그에 비해 위대준은 긁히는 날은 믿을 만한 투수다. 다만, 불펜 투구만으로는 긁힐지 아닐지를 판단할 수조차 없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7회만 잘 막아내면 역전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위대준?”

허봉호 감독은 잠시 생각했다. 이계현 코치의 의도를 모르지 않는다. 워낙 느리고 볼이 생소해서 중외울프스 타자들이 타이밍을 놓치고 있을 뿐, 맞아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허봉호 감독은 성낙기에게 한 이닝을 더 맡기고 싶었다. 이오수, 문상열도 맞아 나가는 마당에 위대준이라고 다를까. 차라리 새로운 얼굴이 낫다. 맞으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할 일이다.

“성낙기, 그대로 가.”

허봉호 감독은 7회에도 성낙기를 올렸다.

7회에도 투아웃을 잡은 뒤에 안타 허용, 투아웃 1루에서 유격수 땅볼 에러로 1, 3루 위기를 또 맞았다. 쉽게 풀리는 듯하던 7회가 에러 하나에 실점 위기로 둔갑했다.

성낙기는 유격수 이정우를 힐끗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성낙기, 잘 배워 둬. 야구는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야수들과의 호흡도 투구 못지않게 중요하지. 방금처럼 실책한 선수에게 눈 흘기는 짓은 하지 마. 너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상대는 그렇게 느끼는 거다. 차라리 괜찮다고 손짓을 해.

“알았어요.”

성낙기가 선선히 대답했다. 상황이 좋지 않고 기분도 별로지만 실바의 말이 옳다.

성낙기는 다음 타자에게 연속으로 라이징패스트볼을 세 개 던져서 유격수 깊은 플라이로 이닝을 마쳤다. 5회부터 30구의 투구.

[강속구가 (59/100)으로 오릅니다.]

[체력이 (25/100) 남았습니다.]

“고마워.”

성낙기가 다가오는 이정우에게 말을 건넸다. 마지막 깊은 플라이를 이정우가 잘 잡았기 때문.

“아니야, 아까는 미안, 바운드가 안 맞아서. 하하.”

이정우는 22살로 성낙기와 나이가 같다.

나이로 보면 경찰청에서 뛰는 게 맞는데 본인도 그렇고 구단도 1군 진입 관계로 미루는 중이다.

경찰청으로 들어가 2년 후에 1군에 진입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1군 콜이 언제 올지도 모른다.

잘 칠 때 1군 주전을 잡아놓은 다음 군대 생활을 해야, 제대 후에도 기량 유지는 물론 주전을 꿰차는 경우가 많다.

2군이라도 3할 초반을 꾸준히 때리는 타자는 흔치 않기 때문에 1군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을 터. 이정우는 1군에 빈자리가 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스코어 5 대 7에서 8회 초 삼호슈퍼스타즈의 공격은 2번 서상천이 안타로 출루하고 3번 조성만의 3루 땅볼 때 2루로 진루, 원아웃 2루에서 강창선의 투런 홈런으로 순식간에 동점이 되었다.

동점을 만들어 놓고 이닝이 마무리. 성낙기는 당연히 8회에도 나갈 줄 알고 있었는데 투수 코치 이계현이 다가왔다.

“성낙기, 오늘 잘 던졌어. 쉬도록 해.”

한마디 던지고는 돌아섰다. 성낙기는 불펜을 보았다. 어쩐지… 아까부터 마무리 임병주가 몸을 풀고 있다. 공수 교대. 임병주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카하하, 감독 웃기네. 잘 던지고 있는 애를 왜 바꾸고 지랄이야. 마무리를 8회에 올리질 않나… 투수 운용이 80년대 식이구만.

-6위 팀 감독에게 뭘 바라겠냐. 저러니 꼴찌를 밥 먹듯이 하지.

실바와 존이 투덜거렸지만 허봉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에러가 있었다 해도 7회는 실점 위기였다. 7회 투아웃에 안타를 맞았고 성낙기의 공에 중외울프스 타자들이 적응했기 때문에 8회까지 갈 경우 실점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마나 임병주가 경기 경험도 많고 안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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