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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투수 성낙기-4화 (4/188)

# 4

004화 선발은 정해졌습니까? 1

성낙기는 며칠 후 입단 통보를 받았다. 생애 처음으로 프로 선수가 된 것이지만, 허봉호 감독으로서는 모험이기도 했다.

프로 2군이라면 연봉을 지급해야 하고 계약서도 작성한다.

최저 연봉 2700만원으로 구단의 지출이 늘어나는 일이다.

시즌 중에 다른 팀에서 방출 당한 선수를 감독의 권한으로 입단 시켰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면 큰돈은 아니지만 무의미한 낭비가 된다.

성낙기가 못하면 못할수록 감독의 선수 보는 눈이 형편없다는 뒷말만 나올 것이다.

기대하지 못했던 프로 입단이었기에 성낙기의 감격은 컸다.

계약을 마치고 돌아온 날 성낙기는 평소보다 많은 공을 던지며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는 성낙기와는 달리 허봉호 감독은 혹시나 하는 복권 긁기 식 도박에 가까웠다.

투수 쪽 부상자가 많아서 얻은 행운이기도 했다.

그리고 2주 후, 야구장에 가라앉은 6월 중순의 무더운 공기 속에 성낙기는 출전 기회를 잡았다. 공교롭게도 세븐윈터스와의 경기였다.

출전하지 못한 2주 동안 성낙기는 주야장천 볼을 던졌으나 능력치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라이징패스트볼(1.5/10)이나 상하 1cm떨림, 체력도 (50/100)에 멈춘 채 그대로였다.

아마, 숫자가 올라갈수록 스탯 증가가 더딘 시스템 같았다.

경기는 스코어 3 대 6 석 점을 뒤진 상황, 삼호슈퍼스타즈의 2선발인 기영만은 5회까지 6점을 내주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이미 90구를 넘겨서 한계 투구 수에 다다랐다.

상대 팀인 세븐윈터스는 새내기 투수 안민기가 5회까지 삼호슈퍼스타즈를 잘 틀어막았고, 4번 타자 이중호를 축으로 중심 타선이 터졌다.

이중호는 성낙기가 다시 찾아갔을 때, 정연동 감독이 언급했던 것처럼 걸물이었다.

이제 겨우 22살인데 파괴력이 장난 아니다. 그 경기에서 이중호는 1홈런에 2루타로 혼자서 3타점을 올렸다.

안민기 역시 140km를 웃도는 스피드에 슬라이더가 좋다.

가끔 던지는 커브는 제구가 되지 않았지만 포심과 슬라이더, 투피치 만으로 5이닝 3실점 선방 중이다. 투구 수도 86개로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호의 선발이었던 기영만이 강판되고 드디어 성낙기가 마운드에 섰을 때 세븐윈터스의 선수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야아~ 쟤 생명력 장난 아닌데? 어떻게 삼호에 들어갔지?”

“정말 돌겠다. 우리 팀에서 방출당한 애가 떡하니 마운드에 올라오다니.”

“도대체 성낙기 뭐냐? 무슨 백으로 저기 간 거야?”

지켜보는 세븐윈터스 선수들은 은근 질투가 일기도 했다. 세븐윈터스보다 상위 팀으로 옮겨간 성낙기와 그를 받아준 삼호슈퍼스타즈의 감독 허봉호.

둘 사이에 뭔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는 선수도 있다. 세븐윈터스 감독 정연동도 같은 생각이다.

“내 참, 별일을 다 보네. 내가 보낸 선수가 다른 팀에 가서 우리랑 하는 경기에 불펜으로 나와? 그것도 방출당한 선수가?”

“희한하죠? 뭘 보고 영입했을까요? 탈탈 털릴 게 뻔한 애를.”

정연동 감독의 말에 조일수 투수 코치가 동조했다. 그들이 볼 때 마운드에서 연습구를 던지는 성낙기의 구위는 전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편, bbs에서 경기를 중계 중이었다.

bulletin board system(전자 게시판 시스템)의 약자로 주로 가십거리에 대한 청취자와의 쌍방향 소통을 내걸고 출발했는데, 2018년부터는 퓨쳐스 중계로 그 영역을 넓혀 가는 방송사다.

“오늘 게임 재미있는데요? 세븐윈터스가 프로2군인 삼호슈퍼스타즈를 상대로 의외로 선전하고 있어요. 6월 16일 현재 7승 16패로 잔인한 6월을 맞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다릅니다. 안민기 선수가 삼호의 타선을 효과적으로 막아주고 있고 타선에선 슬러거 이중호 선수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혼자 3타점을 올렸어요.”

유시진 캐스터의 말이 들떠 있다. 자신의 말대로 흥미진진한 모양이다. 그 옆에는 1990년대 초에 3년 내리 홈런왕을 지낸 장종운이 해설자로 나와 있었다.

“그렇습니다. 안민기 투수와 이중호 선수 모두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죠. 고등학교 땐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선수들인데요. 이제 한 팀에서 나란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래 기본은 되었던 선수들인데 부상 등의 여파로 고교 대회에서 주목받지는 못했거든요. 안민기 선수는 팔꿈치 부상으로, 또 이중호 선수는 발목 골절로 수술대에 오른 전력이 있어요. 프로 구단의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죠. 아마, 드래프트에서 떨어지고 그동안 칼을 간 것 같습니다.”

“말씀을 재밌게 하시네요. 칼을 갈았다, 하하하.”

“특히 이중호 선수는 하드웨어 자체가 슬러거 형입니다. 힘이 장사인 유형인데 저런 선수들은 보통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는데 오늘 이중호 선수는 변화구에도 곧잘 대응을 합니다.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선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장종운 해설위원도 현역 때 슬러거로 이름을 날렸었죠?”

“그야, 뭐 한때죠. 지금은 그때보다 타자들의 기량은 많이 좋아졌는데 투수 쪽은 에이스급 선수가 많이 배출되지 않아서 많은 홈런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뛰던 시기엔 30개만 넘기면 홈런왕을 바라보는 시대였죠.”

“그렇군요.”

성낙기는 연습구를 마치고 세븐윈터스의 2번 타자와 마주했다.

한때 한 팀이었던 선수이자 핫코너인 3루를 보면서 성낙기에게 적지 않게 도움을 주었던 강지성.

6월 현재 2할 8푼 4리에 6도루를 기록 중이다.

성낙기는 첫 구로 포심을 던졌다.

팡.

[포심패스트볼 (55/100)].

몸 쪽으로 바짝 붙는 속구. 제구가 그런대로 잘되어 강지성은 움찔하면서 물러났고 볼은 스크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원 스트라이크.

내심 슬라이더나 커브를 기다렸던 강지성이 의외라는 눈으로 성낙기를 본다. 세븐윈터스에 있을 때 속구에 자신이 없었던 성낙기는 변화구 위주의 투수였다. 그런 강지성에게 성낙기의 2구는 더 놀라웠다.

팡.

[포심패스트볼 (55/100) + 라이징패스트볼(1.5cm/10)].

“으응?”

성낙기는 2구로 라이징패스트볼이 가미된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강지성의 배트가 여지없이 헛돌았다. 강지성이 느끼는 공의 체감 속도는 익히 봐왔던 성낙기의 것과 다르다.

투 스트라이크.

성낙기는 3구째 슬라이더로 바깥쪽을 공략했고 강지성의 배트가 맥없이 따라왔다.

원 아웃.

강지성은 타석에서 물러나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엔 슬라이더가 밋밋했는데 오늘은 포심패스트볼처럼 오다가 뚝 떨어진다. 다음 타자 이재완은 체인지업으로 3루 땅볼로 잡았고 4번 타자가 타석에 섰다.

오늘의 히어로 이중호.

배트를 젓가락처럼 붕붕 휘두르는 그가 들어서자 배터 박스가 꽉 찬다.

심호흡 후, 모자를 매만지는 성낙기에게 정연동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걸리면… 넘어간다.’

팡.

[포심 (55/100) + 라이징패스트볼(1.5cm/10)]

따악!

이중호는 거침이 없었다.

타이밍이 빨라 파울이 되었기에 망정이지 페어 지역에 들어왔다면 2루타 성 타구였다.

정연동 감독이 칭찬할 만하다. 거구 이중호의 거침없는 스윙은 성낙기가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포심에 타이밍이 너무 잘 맞는데? 앞선 타자들 상대하는 걸 보고 패턴을 읽은 게 분명해. 커브가 좋겠어.

실바가 마운드에서 말했다.

-커브는 궤적이 너무 뻔해. 체인지업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이번엔 존이 말한다. 둘 모두 자신들의 주특기인 구종을 주장하는 중이다. 성낙기도 변화구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커브와 체인지업의 선택에서 헷갈린다.

“먼저 커브 던질게요. 속지 않으면 체인지업이요.”

커브를 던졌다. 이중호는 속구를 기다리고 있다가 커브가 들어오자 흘려보낸다.

성낙기가 보기엔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으나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곧바로 체인지업을 던졌다.

따악.

이중호가 걷어 올린 공은 중견수가 워닝트랙에서 겨우 잡을 만큼 큰 타구였다. 맞으면 넘어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바깥쪽 낮은 코스로 잘 제구 된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홈런 성 타구를 만드는 힘이 대단하다. 능력치가 오른 체인지업이 아니었다면 무조건 담장을 넘어갔을 것이다.

성낙기는 숨을 돌리면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좋아, 아주 잘했어.

자신의 장기인 체인지업으로 타자를 잡아내자 기뻐하는 헤이드 존. 실바는 커브를 잡아주지 않은 주심을 가리키며 구시렁거린다.

성낙기는 별로 기쁘지 않다. 분명 잘 떨어졌는데 그걸 걷어냈다. 다음에 만나면 언제라도 그럴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괜찮아, 능력치가 더 오르면 좋아질 거야. 넌 내 체인지업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니까 받아들여.

생각을 읽은 존이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는 성낙기의 어깨를 툭 쳤다.

“오, 놀라운데요? 성낙기라는 투수 말이죠. 공은 느리지만 제구에 상당한 강점이 있는 투수로 보이거든요? 볼 끝도 살아 있는 편이에요. 오늘 스윙맨으로 나왔지만 거포 이중호 선수를 3구만에 잡아낸 배짱도 칭찬할 만합니다.”

장종운 해설위원의 성낙기 볼에 대한 멘트였다.

“세븐윈터스의 안민기 선수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두 선수가 워낙 달라서 단순비교는 어렵죠. 안민기 선수는 일단 강속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여튼 오늘 경기 볼만합니다. 시청자들도 그렇게 느끼실 거예요.”

***

-느끼기는 뭘 느껴. 이중호한테 홈런 맞을 뻔했는데.

-그러게 말여, 공이 저렇게 느린데 무슨 놈의 칭찬이야?

-애들아. 니들 유희관 몰러? 걔도 135km야. 그래도 에이스 급이자나.

-지랄, 걔는 스트 존이 태평양이여.

-큭큭, 애는 130km도 안 된다. 박노균 상대할 땐 120km 나왔어.

-그래도 볼은 회전수가 많아 보여. 안 죽고 오긴 오잖아.

-제구는 좋아. 상당히 신기한 투수가 나타났어.

시청자 게시판엔 성낙기에 대한 멘트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대부분 느린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6회를 잘 틀어막은 성낙기는 7회에도 올라왔다.

그리고 5번 타자를 라이징패스트볼로 삼진 처리, 뒤이은 6, 7번 타자는 타이밍을 뺏은 커브와 체인지업으로 각각 유격수 땅볼과 1루 땅볼로 마감 지었다.

6, 7회를 던지면서 투구 수는 고작 21개. 예상외의 활약에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투수 코치는 한껏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런 느린 공으로 클린업에 이어 2이닝을 깔끔하게 지워 버리는 성낙기가 신통방통하다.

“이 코치, 이거 실화야?”

“의외로 먹히는데요? 공이 워낙 느린 데다가 변화는 있는 편이라서 생소하긴 할 겁니다.”

성낙기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가 원아웃에 바가지성 안타를 하나 맞았다. 그러고 맞이한 타자가 1번 황낙균. 이중호와 더불어 세븐윈터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타자로 2할 9푼 8리의 타율에 도루만 벌써 8개를 기록한 호타 준족이다.

***

그 시각, 삼호 그룹 회장실.

회장인 김현중 회장과 기획 실장인 딸 김아경은 마침 2군 경기를 시청 중이다.

김현중 회장의 자식 2남 1녀 중 막내인 김아경만 유독 야구를 좋아한다.

현재 기획 팀에서 일을 배우는 중인데 야구 경기가 있을 때면 이렇게 가끔 회장실에서 TV를 시청한다.

둘 다 야구의 광팬으로 mlb의 역사까지 좍 꿰고 있는 부녀는 삼호슈퍼스타즈를 한국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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