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003화 새로운 시작 3
따악, 딱.
배팅 연습이 한창이었다.
“테스트를 받으러 왔다고? 세븐윈터스에 있다가 방출당했고? 맞나?”
“그렇습니다.”
“거참. 간이 큰 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가? 이곳은 세븐윈터스보다 높은 레벨이야, 프로 2군이라고. 가만, 자네 이름이 성낙기라고? 얼마 전 우리 팀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와서 강판당한 그 성낙기? 고1 때 각광받다가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2년을 재활했지, 맞나?”
“맞습니다. 감독님. 부탁드립니다.”
“허어, 이건 말이 안 되는군. 세븐윈터스에서 방출당한 선수가 아무리 2군이라지만 프로 팀을 찾아오다니. 아쉽지만 여긴 아무나 받아주는 곳이 아니야. 다른 곳을 찾아보게.”
“감독님, 그동안 저만의 루틴을 찾았습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 코치 이게 말이 된다고 보나?”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가 애들 놀이터도 아니고… 전에 던진 그 공으론 못 버팁니다.”
-야, 10구만 던지고 가겠다고 해.
“더도 말고 딱 10구만 던지겠습니다. 그래도 아니다 싶으시면 두말없이 물러가겠습니다.”
“보기보단 고집이 세군. 음… 그렇다면 좋아, 던지는 걸 한번 보지.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말게.”
선수들의 휴식 시간, 성낙기는 마운드에 섰다. 포수인 이두열은 툴툴댔다. 전에 자기 팀에 털린 투수가 테스트를 받으러 와서 자기 휴식 시간을 빼앗으니 맘에 들 리 없다.
이두열이 보기에 성낙기는 평범 이하의 투수다. 키도 겨우 180cm 언저리에 몸도 마른 편이어서 공에 힘이 실릴 리가 없다.
눈에 독기가 있긴 하지만 그런 독기는 실력 없는 애들이나 필요한 법이지. 이두열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하품을 했다.
“포심부터 볼까?”
3루 파울라인에 서서 허봉호 감독이 말했다.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선수들은 더그아웃에서 키득거리고 있다.
팡.
성낙기의 포심패스트볼이 포수 미트에 꽂혔다.
[강속구 58/100 + 퀘이크볼 1CM]
꽂힘과 동시에 눈앞에 글도 떴다.
팡.
[슬라이더 위력 52/100]
팡.
[커브 제구력 53/100]
“흠, 이 코치 어떤가?”
성낙기가 던지는 공을 본 허봉호 감독이 투수 코치 이계현에게 물었다.
“글쎄요… 전보다 좋아진 것 같기는 한데… 애매한데요? 공은 느린데 제구가 되는 것 같고 변화구도 곧잘 던지는데 예리한 건지 아닌지 감이 잘 안 옵니다. 공이 빠르면 느낌이 바로 오는데 말이죠.”
“그래? 타임!”
허봉호 감독이 성낙기의 투구를 멈춰 세우고 타자를 불렀다. 이정우. 2군의 1번을 도맡아 보는 테이블세터다. 그의 타율은 3할 1리로 발이 빠르고 컨택이 좋아서 1군 콜업 1순위로 알려져 있다.
[프로2군 첫 타자 승부 기념으로 라이징패스트볼(1.5/10)이 생성되었습니다.]
-억, 뭐야.
실바가 놀라는 사이, 성낙기는 있는 힘을 다해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팡.
[포심 제구력 61/100 + 라이징패스트볼 1.5/10]
이정우는 123km의 느린공이 들어오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헛스윙을 했다. 생각보다 느린데다가 볼 끝은 살아온다. 느리면 볼 끝도 죽어야 정상인데 그 반대다.
“이것 봐라? 전과 다른데?”
이정우는 성낙기가 선발로 올라왔을 때 두 차례나 안타를 친 적이 있다. 성낙기의 공을 우습게 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 볼은 분명 뭔가가 다르다. 이정우는 우습게보던 마음을 접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삼진이라도 당하면 그야말로 망신이다.
팀 최고의 컨택 타자답게 안타 성 타구를 만들거나 최소한 플라이 볼 정도는 날려줘야 겨우 체면치레는 한다. 이정우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붕붕, 배트를 돌렸다.
포수 이두열은 딱히 사인도 없이 정 가운데에 미트를 대고 있다. 그냥 니 맘대로 던지라는 얘기다. 성낙기는 살짝 긴장했다. 이 타자를 돌려세워야 입단의 가능성이 생기는데, 상대는 2군 주전이다. 성낙기는 아까와 같은 아웃코스로 공을 던졌다.
[슬라이더 (52/100)]
이 수치는, 100이 존이 가졌던 전설의 꺾임과 위력적인 구위를 뜻한다면 성낙기의 공은 절반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팡.
하지만 배트가 따라 나오지 않는다. 아까와 같은 코스에 같은 높이로 들어가도 반응을 하지 않다니. 성낙기가 던진 슬라이더는 바깥쪽으로 가다가 떨어지면서 휘어졌다.
‘휴~ 공을 하나 더 보기로 마음먹었길 망정이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이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볼 끝도 좋지만 변화구도 상당히 예리하다. 참지 않았다면 1루 땅볼이나 파울, 혹은 스윙이었을 것이다.
‘볼 질에 안 따라 오는군.’
성낙기는 다시 포심패스트볼을 몸 쪽으로 던졌다. 이정후가 곧바로 반응했으나 이번엔 배트가 너무 늦게 나왔다. 1루 쪽 파울.
볼 카운트 투 스트라이크 원 볼에서 성낙기가 마지막으로 커브를 꽂아 넣었다. 이정우는 타이밍을 잃고 헛스윙. 더그아웃에서 보던 선수들이 웃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는 듯 이정우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허봉호 감독은 다시 한 타자를 내세웠고 그 타자는 평범한 땅볼을 쳐낸 뒤에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성낙기는 한 타자를 더 상대했고 이번엔 내야플라이로 끝났다.
“내일 다시 올 수 있겠나?”
“네.”
성낙기는 허봉호 감독으로부터 어떤 언질도 받지 못하고 집으로 오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았어?”
허봉호 감독이 성낙기를 보내고 이계현 투수 코치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투수 쪽은 경험이 많은 이 코치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쓸 만한데요? 전에 우리에게 털린 투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제구력도 어느 정도 되고 변화구는 수준급이고 무엇보다 볼 끝이 살아 있어서 괜찮아 보입니다. 사실은 좀 아깝네요. 공만 빠르면 앞날이 창창할 텐데 말이죠.”
“그래? 이 코치하고 내 생각이 비슷하군. 방출 당한 선수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일이 체면은 안 서지만 지금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야. 일단 입단 시켜놓고 상태를 봐야겠어. 패전 처리용으로 쓰다가 안 되겠으면 아웃시키는 수밖에 없겠지.”
***
성낙기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라고 해봐야 원룸이고 부모님은 강릉에서 작은 국숫집을 운영 중이다. 성낙기의 학창 시절에 아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시키면서 버는 족족 그 밑으로 돈이 들어갔다.
덕분에 하나뿐인 고1 여동생은 그 흔한 과외 한 번 시키지 못했다. 성낙기 때문에 부모의 집은 언제나 강릉의 18평에 머물러 있다.
성낙기는 그런 것들이 늘 마음의 짐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야구를 열심히 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한때는 유망주로 손꼽히기도 했다.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으려는 찰나 존과 실바가 나타났고 능력치를 부여받는 행운도 얻었다. 그러나 그 능력치란 가만있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치를 키우려면 피나는 노력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한 달이 넘게 한계치까지 몰아붙여 운동을 한 대가는 달콤했지만 그만큼 힘들었다.
“휴우…….”
성낙기는 방에 누워 오늘의 결과를 생각했다. 공이 느린 게 흠이지만 어쨌든 세 타자를 깨끗하게 잡았다. 이정우라는 친구는 호시탐탐 1군을 노릴 만큼 유망주이기도 했다. 예감은 나쁘지 않다.
-야야, 뭘 걱정하고 그래. 세 타자 연속으로 돌려세우는데 어느 감독이 거절하겠냐. 넌 실력으로 증명했어.
실바가 성낙기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희망 섞인 말을 건넨다.
-큭큭, 너 같으면 120km 던지는 애를 마운드에 세우겠나? 자고로 투수는 강속구를 꽂아야 폼이 나지, 아리랑 볼이나 던지고 있으면 선수단 전체 사기도 떨어지는 법이야. 애를 위로하는 것도 좋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막말로 아까 그 타자들이 얘 볼을 못 쳐서 안 쳤나? 워낙 느리니까 생소해서 그렇지. 느려도 어느 정도 느려야…….
“아, 그만! 느리니까 어쩌란 말입니까. 옥상으로 올라갈까요?”
-자네는 애 앞에서 별소릴 다하는군. 하여튼 금 수저 자식들은 배려를 몰라. 애가 또 뛰어내려야 직성이 풀리겠어?
실바가 성낙기를 달래면서 존을 걸고넘어진다.
-허허험… 그러니까 내 말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고 운동장에 나가서 뒈지게 던지라는 말이지. 뭐, 내 말이 틀렸나?
머쓱해진 존이 헛기침을 하면서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실바가 혀를 차면서 성낙기 옆에 손 베개를 하고 드러눕는다. 그러자 존도 슬그머니 성낙기의 다른 쪽에 드러누웠다. 존까지 누우니 원룸이 꽉 찬다. 육체가 없으니 꽉 찬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그들이 보이는 성낙기에겐 자신의 자리가 좁게 느껴진다.
-차암~ 그때가 좋았지. 1999년도에 퍼펙트를 두 번이나 했었지. 2000년엔 노히트노런도 한 번 했는데 상대팀 투수가 헤이, 머시긴가 하는 작자였지. 외계인같이 생긴 게 키만 커가지고 힘으로만 던지다가 8회 홈런 처 맞고 질질 짜던 모습이 지금 나의 뇌를 강타하는군.
-…….
실바가 옛날을 회상하듯 하는 말에 존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성낙기에게 진동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온몸을 떠는 헤이드 존. 그러더니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받았다.
-2005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큭크, 투수인 내가 주자일소 2루타를… 으흐흐. 그때 그 털보 놈 얼굴이 가관이었는데 말이야. 그 2루타가 도화선이 돼서 그날 경기를 잡고 6차전까지 내리 이겨 버렸지.
-…….
이번엔 실바가 말이 없다. 분을 삭이는지 숨소리가 거칠다.
2005년 월드시리즈에서 실바와 존은 팀의 에이스답게 짠물 투구를 했다. 하지만 존의 말처럼 5차전의 2루타가 아이다호데블스의 사기를 올렸고 기가 꺾인 인디아나닥스를 꺾고 우승했다.
앙숙이던 존과 실바.
존은 침울해 있는 실바에게 술자리를 제안했고 둘은 코가 비뚤어지게 마셨다. 그리고 존은 그의 애마 페라리를 끌고 그의 집으로 가다가 자동차 전복 사고로 사망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난 고속도로였고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은 과속과 운전 미숙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죽은 사람은 존 혼자가 아니었다.
그 자동차엔 같이 술을 마셨던 실바가 타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존은 2005년 월드 시리즈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야 옳았다. 뒤늦게 그걸 깨달은 존이 말했다.
-어… 미안… 그런데 그게 다 사람 팔자 아니겠어?
그 말을 들은 실바가 부스스 일어나는 게 보였다.
***
퓨처스리그 12개 구단은 1군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올해부터 달라진 것은 기존의 12개 구단에 세븐윈터스와 오산스프링스와의 교류 경기가 팀 당 3게임 씩 할당되어 리그를 치른다는 거다.
수준은 낮지만 끈질기게 야구 협회와 프로 구단들을 조른 결과다.
12개 팀엔 경찰청과 상무가 끼어 있고 병역의무 때문에 1군 멤버들의 입단이 잦아서 두 구단이 남부 리그와 북부 리그의 톱을 다투는데, 시즌 115경기씩을 치른 후 5위까지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1,2위가 대망의 우승을 다투는 베이스볼 시리즈가 열린다.
매년 베이스볼 시리즈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1군으로 승격되거나 다른 팀의 트레이드 물망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서 선수들 역시 필사적으로 시즌 및 시리즈에 임하게 된다.
성낙기가 찾아갔던 삼호슈퍼스타즈 2군은 북부 리그 6개 팀 중 17승 28패, 3.77의 승률로 6위를 기록 중이다.
1위인 경찰청에 5월 말 현재 10게임이나 차이가 난다.
삼호슈퍼스타즈의 허봉호 감독 영입은 전년도의 최하위 탈피와 선수 육성을 위한 구단의 조커 카드였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
허봉호 감독 역시 구단의 바람을 잘 알기에 돌파구가 필요했고 겨우내 지옥 훈련에 가까운 훈련을 했다.
그러나 주전들의 부상이 잇따랐고 그 여파가 현재의 성적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다.
“하아, 참 답답할 노릇이야. 좀 하겠다 싶은 애들이 줄줄이 부상이니 어디 해볼 건덕지가 있어야 말이지.”
“네, 감독님. 강창선이 있어야 중심 타선이 살아날 텐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곧 돌아올 겁니다.”
허봉호 감독의 푸념에 박종태 타격 코치가 말했다.
“그래, 강창선도 그렇고 이세환도 그렇고… 차암… 손톱이 깨졌다고 에이스가 보름씩이나 부상자 명단에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우리 때는 손톱 정도는 무시하고 던졌는데 말이지. 안 그래, 이 코치?”
허봉호 감독이 이번엔 이계현 투수 코치에게 말한다.
“맞습니다. 요새 애들이 워낙 독기가 없어서 큰일입니다.”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코치의 푸념은 따지고 보면 선수도 선수지만 바닥을 기는 팀 성적에 대한 자기 위안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