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002화 새로운 시작 2
성낙기는 야간에도 개방하는 야구장의 마운드에 섰다. 앞에 보이는 포수 자리엔 쿠션이 세워졌다. 성낙기가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던졌다.
팡, 하고 쿠션에 꽂히는 볼. 쿠션에 맞기는 했지만 제구도 빠르기도 프로2군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휴우, 이러니 안 쫓겨날 수가 없지.
실바가 성낙기의 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보기엔 제구는 엉망이고 투구 폼도 엉성한데다가 자세조차 흔들린다.
이런 상태로는 공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존도 양손을 펼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답이 안 나온다, 뭐 그런 뜻이리라. 성낙기가 얼마간 공을 던지고 났을 때 상태 창도 새롭게 떴다.
[세기의 강속구 특성 측정을 시작합니다.]
[강속구의 스피드가 (55/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45/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40/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세기의 제구력 특성 측정을 시작합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51/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44/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1/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1/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체력 측정을 시작합니다.]
[체력이 (40/100)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어깨 근육과 팔 근육의 강화를 시작합니다.]
[삼각근-이두근-광배근의 어깨 근육이 강화됩니다. (1/10)]
[상완근-삼두근-완요골근의 팔 근육이 강화됩니다.(1/10)]
[손의 악력이 강화됩니다. (2/10)]
[공을 많이 던질수록 어깨와 팔이 자동으로 강화되어 스피드가 올라갑니다.]
-와, 엄청나군. 완전 신개념인데? 많이 던질수록 팔이 강화되면서 스피드까지 올라가다니!
-허허, 이게 뭔 소리야. 그럼 60세까지 던지면 스피드가 더 올라간단 말이야? 늙어 죽을 때까지 던지라고?
실바와 존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시스템 같다. 던질수록 근육이 강화되어 스피드가 올라간다니. 성낙기는 어깨와 팔이 저절로 당겨지고 조여지는 느낌에 소스라치고 있었다.
“우웃!”
양쪽 어깨와 팔이 욱신거리면서 내부로부터 힘이 돋아나는 느낌,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10여 분 동안 조여지고 당겨지고 풀어지던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차츰 멎었고 성낙기는 넓어진 듯한 어깨와 두툼해진 팔 근육을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보았다.
-슈퍼맨이라도 만드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아니, 정말 던질수록 스피드가 오른다는 게 실화야? 정말이라면 이건 괴물을 넘어 초인이라고 봐야겠는데?
[단, 27세에 최고치에 도달하는 스피드는 몸의 노화와 함께 근육이 풀어지면서 조금씩 줄어듭니다.]
상태 창이 존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스피드에 대한 설명 글귀를 떠올렸다. 어깨도 안 좋은데 무작정 던지라는 존의 말에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던 성낙기는 어깨와 팔 근육의 변화에 던지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었다.
“공을 던져볼게요.”
-응, 그래. 힘껏 던져 봐.
팡.
성낙기는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시원한 소리를 내며 꽂히는 공. 스피드는 별로 오른 것 같지 않았지만 어딘가 볼 끝에 힘이 느껴진다. 전처럼 가라앉지 않고 솟는 느낌에 어깨와 팔에서 전해지는 상쾌함도 함께였다. 전엔 던질수록 기분 나쁜 욱신거림 같은 것이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던질수록 근육이 팽팽해지면서 활을 쏘기 전의 시위처럼 당겨진다.
성낙기는 실바와 존이 가르쳐주는 그립대로 공을 던졌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외 커브 등은 포심패스트볼의 스피드를 잃고 난 뒤 살아남기 위해 갈고 닦은 구종이었으나 상태 창의 측정 결과는 형편없다.
-무조건 연습을 해. 오늘부터 하루에 500구씩 던져서 모든 구질을 네 것으로 만들도록 해.
“그러면 변화구 수치도 오를까요?”
-그렇지, 당연한 소리를 하고 그러냐. 지금은 모든 구질이 저질이지? 내 판단으론 스피드와 주무기가 모두 70은 넘어야 선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어.
성낙기는 죽어라 공을 던졌다. 존과 실바는 마운드 뒤에 서서 잔소리를 해댔다. 둘 모두 자신이 선호하는 투구 폼을 주장하다가 제구가 더 나빠지자 성낙기에게 맞는 폼이 무언가를 상의하느라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제 맘대로 던지겠습니다.”
***
성낙기는 실바와 키가 비슷했다. 실바의 생전 투구 폼은 몹시 간결했는데 와인드업을 생략하고 셋 포지션으로 던지는 것 같은 투구 폼이었다.
15시즌 동안 그가 허용한 도루가 겨우 99개였으니 무척이나 경제적인 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실바가 제대로 와인드업을 했더라면 구속이 150km는 넘겼을 거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그는 스피드 대신 제구와 커맨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나, 성낙기가 그런 폼으로 던진다면 120km는커녕, 110km나 나올까 싶은 게 그런 공을 핀 포인트로 제구해 봤자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다.
일단은 안 그래도 망조인 볼 끝이 더 죽을 테고 변화구조차 낙폭이 줄어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택할 투구 폼은 아닌 것이다.
-좋아, 투구 폼은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자. 우선은 뒈지게 던져. 그 길만이 살길이다.
성낙기는 거의 자정 무렵까지 공을 던졌다.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성실성 하나만은 특급이었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저런 성실성으로 감독이 시키는 대로 막 던지다가 어깨와 팔꿈치가 고장 나긴 했지만.
존과 실바가 곁에 서서 조언을 해주니 공 끝에 힘도 실리고 제구도 더 잘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500구를 다 채웠을 때 눈앞에 글귀가 나타났다.
[첫날 연습 투구 기념으로 공의 상하 떨림 1cm가 생성되었습니다. 일명: 퀘이크볼]
-와, 이거 뭐냐?
-오 마이 갓!
존과 실바는 떠오른 글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공이 상하로 떨린다니. 비록 1cm지만 그 1cm로 홈런과 안타와 아웃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두 사람이니 놀람은 당연하다. 그에 비해 성낙기는 그저 떨떠름할 따름. 겨우 1cm 움직이는 게 뭐 대단하다고 호들갑이람? 하는 표정이다.
-이봐라, 이봐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털보 실바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한국말에 빙의가 되었더라도 말 쓰는 본새가 아주 천연덕스럽다.
그날부터 성낙기는 자나 깨나 공을 던졌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공을 그렇게 던지는 데도 특별히 어깨가 아프거나 하지 않았다는 거다.
성낙기 본인은 심드렁하게 넘겼지만 일주일째 되는 날 눈앞에 뜬 글귀는, [체력이 45로 오릅니다. (45/100)] 였다.
존과 실바는 그날도 방방 떴었다. 무슨 놈의 체력이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느냐고 말이지.
현재 성낙기의 몸 상태는 시합에 나가 5회까지 던져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던졌을 때 성낙기는 세기의 강속구 특성과 세기의 제구 특성 모두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
[세기의 강속구가 활성화 됩니다.]
[강속구가 (58/100)로 오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52/100)으로 오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50/100)으로 오릅니다.]
[세기의 제구가 활성화 됩니다.]
[포심의 제구가 (61/100)으로 오릅니다.]
[커브의 제구가 (53/100)으로 오릅니다.]
[포크의 제구가 (21/100)으로 오릅니다.]
[투심의 제구가 (18/100)로 오릅니다.]
[체력이 (50/100)으로 증가 합니다 (포심패스트볼 기준 전력피칭 50구)]
처음의 증가 속도로 보아 공의 떨림과 체력도 급속하게 오를 것으로 보였지만, 그건 아니었다.
공의 떨림은 그대로였고 체력만 고작 10이 올라 50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의 발전은 성낙기가 살아온 22년의 신체 변화보다도 더 컸다.
어떻게 보면 부상이라는 변수가 그에겐 득이 된 셈일까. 평범한 선수였다면 존과 실바가 찾아왔을 리 없고 군대가 면제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좋아, 이제 이 정도면 됐어. 실전으로 가자.
실바 말했다.
“실전요? 상대가 있어야 실전을 하죠. 난 무직 신세입니다. 백수라고요.”
-알아. 그러니 구단을 알아 봐야지.
“어디……?”
-네가 전에 잘린 구단부터 가보지 않을래?
-에이, 이 사람아 자넨 자존심도 없나? 잘랐던 곳을 왜 가? 얘 입장은 생각 안 해?
존이 실바에게 핀잔을 줬다.
-어따…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일단은 야구를 해야 좆심도 나오는 거지.
그렇게 성낙기는 실바의 우격다짐으로 세븐위터스로 가서 정연동 감독을 만났다. 감독은 성낙기가 나타나자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심한 눈빛이다.
“낙기야.”
“네?”
“공을 다시 던지겠다고?”
“네.”
“네 팔은 연습을 많이 한다고 나아지는 팔이 아니란 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공이… 좋아졌습니다.”
“공이 좋아… 졌어?”
“네,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너 쟤 보이지?”
정연동 감독이 가리키는 마운드엔 앳된 선수가 공을 던지고 있다. 20세나 되었을까? 아직 성장기를 벗어나지 못한 티가 물씬 나는 투수였다.
“그리고 쟤도 보이지?”
정연동 감독이 이번엔 타석을 가리켰다. 역시 젊은 얼굴이었는데 키가 190cm는 넘어 보이고 몸무게도 100kg은 나갈 듯싶다. 완벽한 슬러거 형이다.
“쟤들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들이다. 투수는 안민기라고 하는데 벌써 저 나이에 140km를 던지지. 그리고 타자는 이중호. 맞으면 무조건 장외다. 앞으론 저런 애들이 세븐윈터스를 이끌어 갈 거야. 네 마음은 알겠다만 현실을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라. 나나 되니까 이런 얘기도 해주는 거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성낙기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신이 던지는 공을 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 걸 확인한 마당이니 더 이상의 말은 무의미했다.
-워… 뭐 저런 감독이 있냐? 적어도 공 몇 개는 봐줘야 하는 거 아냐? 꼴에 생각해 주는 척 하기는.
존이 씩씩거렸다.
-그럼 뭐 어서 옵쇼 할 줄 알았나. 자넨 눈물 젖은 빵을 안 먹어 봐서 한참을 모르는군. 하긴, 날 때부터 큰 키에 무쇠 어깨를 타고났으니 고생을 알기나 하겠어?
-말이면 다인 줄 아나? 나 이래봬도 마이너리그에서 1년이나 굴러먹었다네.
-난, 3년일세.
실바의 말에 존이 입을 다물었다.
***
차를 몰고 원룸으로 돌아오는데 실바가 말했다.
-이봐. 집으로 가면 안 되지. 구단이 어디 한두 군데야?
“그럼요?”
-아직 1군은 무리이니 프로2군으로 가서 테스트를 받자.
“프로 2군요?”
-그래, 왜 놀라고 그래? 공은 느리지만 제구도 어느 정도 되고 변화구 종류도 많으니 보는 눈이 있는 감독이면 OK 할 거야.
성낙기는 곰곰이 생각했다. 실바 말이 맞다. 여기서 물러나면 남자도 아니다. 부딪혀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다.
“좋습니다.”
성낙기가 차를 돌렸다.
-오, 제법. 용기도 있고 마인드가 됐어. 확실히 죽다 살아난 놈이라 다르단 말이야.
성낙기는 2시간여를 차를 몰아 강릉에 있는 삼호슈퍼스타즈의 2군 훈련장에 도착했다. 1군은 꼴찌를 도맡아놓은 팀인 데다 2군도 10개 구단 중 가장 레벨이 낮아서 해볼 만하다 여겼다.
창단 20년 차인데 우승은커녕 10년 전 플레이오프에 딱 한 번 진출한 게 전부인 팀이다.
3년 전, 삼호 그룹 회장이 보다 못해 FA를 사들이면서 300억을 투자했지만 작년과 재작년 모두 7위에 그쳤다. 꼴찌만 면했을 뿐 FA효과는 미미하다.
그예 1, 2군 감독을 모두 물갈이하고 새롭게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1군은 서진 감독, 2군은 허봉호 감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