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화 (1/188)

# 1

001화 새로운 시작 1

<2015년, 고2 황금사자기 대회 때 팔꿈치 인대 파열 후 수술>

<2016년, 고3 봉황기 대회 5연투 후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2년 동안의 재활>

성낙기의 이력이다.

연고지 지명 제도에도 불구하고 삼호 슈퍼스타즈는 성낙기를 지명하지 않았다. 두 번의 큰 수술로 그의 선수 생활은 끝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은 세븐윈터스와 오산스프링스라는 두 곳의 독립구단 중, 세븐윈터스였다.

세븐윈터스는 프로를 꿈꾸던 선수들이 드래프트에서 떨어진 후, 재기를 모색하며 머무는 팀이었다. 프로에서 방출 후, 부활을 꿈꾸는 선수들이 거쳐 가는 곳이기도 했다.

중소기업청이 체육부의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구단인데, 운영을 맡은 우량 중소기업 중 세븐일렉트릭이라는 신발 회사와 오산철강의 자체 투자는 미미했다.

팡.

2019년 봄, 성낙기는 1회에만 28구를 던지는 중이다.

상대 팀은 세븐윈터스와 모든 조건이 비슷한 선수들로 구성된 오산스프링스. 성낙기는 4월 시즌을 오픈하고 3번째 선발 등판이다.

첫 등판 때는 4이닝 7실점으로 강판되었고, 두 번째 등판 때는 2과 3/1이닝 6실점으로 강판 되었다.

그에 반해 다른 선발은 그럭저럭 5이닝까지는 끌어가는 편이었다. 오늘도 같은 결과라면 감독의 인내심이 바닥날 터.

실업 팀에서 옮겨온 정연동 감독은 고교 때의 자질이 아까워 성낙기를 선발로 세웠지만 구속자체가 워낙 떨어진다. 한때 140km를 웃돌던 구속은 어깨 수술 후 120km 언저리가 최대치인, 사회인 야구 수준으로 전락했다.

오늘 역시 이를 악물고 마운드에 올랐으나, 1회 원 아웃에 벌써 2점을 줬고 1, 2루의 위기에 상대 타자는 거포 우상훈이었다.

거포 중의 거포였으나 워낙 선풍기인 탓에 대학 리그에서도 2할 7푼이 최고 성적이었다.

프로 구단의 스카우트들은 우상훈을 뽑았을 경우, 2할 1푼 18 홈런에 출루율 2할 9푼 정도를 예상했다.

예상 데이터가 매번 맞는 건 아니지만 타격의 정확도가 워낙 떨어져서 좀 더 두고 보자는 게 스카우트들의 결론이었다.

대학 리그 때의 득점권 타율로 보아 18홈런 또한 영양가가 떨어질 걸로도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달랐다.

그는 지금 당당한 4번 타자에 2할 8푼을 치는 슬러거다. 이제 4월 중순인데 벌써 5홈런을 기록 중이기도 했다.

임순호 포수의 사인은 슬라이더.

포심패스트볼이 겨우 120km 넘을까 말까 하니 당연한 선택이다. 게다가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는 타자다.

성낙기는 포수의 사인대로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졌다.

휘잉-

우상훈은 거포답게 큰 스윙으로 일관했다. 원 스트라이크에서 다음 공의 사인은 조금 더 빠진 바깥쪽의 같은 구질이었고 성낙기는 똑같은 슬라이더를 던졌다.

볼.

그새 눈에 익었는지 우상훈이 말려들지 않는다. 임순호는 이번엔 바깥쪽 커브를 요구했다. 성낙기는 고개를 저었다.

첫 등판에서 커브를 던지다 홈런을 맞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인데, 자신의 사인을 거부하는 성낙기를 보고 임순호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야, 뭘 던지려고 그래?”

“몸 쪽 포심 던지겠습니다. 꽉 차게요.”

“그래? 너 전에도 포심 고집하다가 쳐 맞은 건 알고 있지?”

포수 임순호가 며칠 전의 상황을 상기시키고는 배터 박스로 돌아갔다. 우상훈 같은 거포에게 포심패스트볼로 상대하는 것은 당연히 위험하다.

우상훈도 계속 변화구로 승부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성낙기는 우상훈의 의표를 찌르는 쪽을 택했다. 몸 쪽으로 포심패스트볼을 제대로 붙이면 스윙 또는 범타를 유도할 수 있다. 성낙기는 확신했다.

따악!

하지만, 마음먹고 뿌린 공은 정교함이 떨어졌고 우상훈이 치기 좋은 코스와 높이로 들어갔다.

배트에 맞은 공은 중견수 키를 넘겨 한참을 날아갔고 관중석 상단을 맞고 떨어졌다. 우상훈은 배트를 3루 파울라인 쪽으로 높이 던지고는 주먹을 치켜들면서 1루로 뛰어갔다.

외야 관중 몇이 공을 주우려고 쫓아갔다.

추가로 3실점. 성낙기는 망연자실했다. 1회에 5실점이라니. 온몸에 힘이 축 빠지면서 주저앉고 싶었다.

‘후우… 내가 미쳤지.’

고개를 숙이는 성낙기에게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왔다. 잔뜩 성이 나서 식식거리는 폼으로 보아 투수를 다독여 준다거나 뭐, 그런 일 따위는 없을 게 분명했다. 포수 임순호도 마운드로 왔다.

“야, 거기서 몸 쪽 포심 사인을 내? 우상훈이 어떤 타잔지 몰라?”

정연동 감독은 대뜸 임순호를 닦달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성적 부진으로 자신마저 잘릴 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고집했습니다.”

성낙기는 공을 넘겨주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 모르는 척 운동장만 바라보는 선수들은 패배에 익숙한 듯 고요하기만 하다.

그들의 눈에서 읽히는 씁쓸함이 아팠다.

뭔가 팀이 잘 돌아가야 스카우트의 눈에도 들 테고 희망도 가질 텐데, 이런 오합지졸 팀에 누군들 관심을 가지겠는가?

경기는 3 대 12, 세븐윈터스의 패배로 끝났다.

성낙기는 이것으로 야구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해왔던 야구, 일생에 걸친 노력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끝났다. 그날 오후, 구단은 그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그래, 죽자.’

먼저 숙소로 돌아온 성낙기는 라이베라 모텔 옥상에 올라갔다. 드넓은 하늘이 새파랗다. 한때, 저 하늘처럼 푸른 희망을 꿈꾸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이었을 뿐이다.

국수 가게를 하면서 아들의 야구 인생을 밀어준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성낙기는 아찔한 아래를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날았다.

***

-뭐, 뭐야! 내가 먼저 잡았는데?

-웃기는 소리! 내가 먼저다.

성낙기는 눈을 감고 날아 내리다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어쩐 일인지 아직도 허공이다. 8층에서 날아 내리면 2,3초면 바닥에 닿을 텐데 어림잡아도 10초는 지났다.

성낙기가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붙잡은 흐릿한 형체를 본다. 야구 복을 입은 두 외국인이 자신의 허리와 머리카락을 잡고 있다. 사실은 잡았다기보다는 알 수 없는 힘이 성낙기를 떠받친 거지만… 두 남자와 성낙기는 서로 잡고, 잡혔다고 믿었다.

자신이 먼저라며 싸우는 두 남자가 다투는 틈에 성낙기는 붕 떠올라서 원래의 자리로 옮겨졌다. 성낙기는 어리벙벙한 채로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너 왜 죽으려고 했어? 그렇게 죽으면 안 되지.

옥상에 올려진 성낙기를 보고 그중 키 작은 남자가 물었다.

“야구가 없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니니까요.”

성낙기는 놀라움도 놀라움이지만 일단 대답부터 했다.

죽으려고 하니까 별 이상한 일도 생기는구나 싶다. 둘은 분명 외국인인데 한국말을 하고 있다.

마치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처럼 능숙하게 한국말을 하는 두 외국인. 분명 놀라운 일이었지만 성낙기는 그런 생각을 깊게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죽지 마. 야구를 다시 할 수 있게 해줄게.

이번엔 키가 2m도 넘어 보이는 키다리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말이 끝난 직후, 성낙기의 눈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세기의 강속구 특성이 부여되었습니다.]

[강속구가 생성됩니다. 1/100]

[슬라이더가 생성됩니다.1/100]

[체인지업이 생성됩니다.1/100]

-너, 뭐야! 감히 내 앞에서 선수를 쳐? 그러다 맞는다.

자그마한 털보 남자가 괴물처럼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남자를 윽박질렀다. 키가 작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괴물처럼 키가 큰 남자와의 비교일 뿐, 180cm 언저리에 몸이 다부져 보였다.

-크흐흐,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지. 띨띨한 놈.

[세기의 제구 특성이 부여되었습니다.]

[포심의 제구가 생성됩니다. 1/100]

[커브가 생성됩니다.1/100]

[포크가 생성됩니다.1/100]

[투심이 생성됩니다.1/100]

-크큭, 건방지기는. 길고 짧은 거는 대봐야 아는 거지. 나에겐 변화구 구질 하나가 더 있지. 이 녀석의 자질은 내 스타일과 자웅동체야. 힘으로만 던지는 무식한 구질은 필요가 없어.

***

성낙기는 자살 도중 두 귀신과의 만남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메이저리그의 전설이라며 자랑했다.

키 작은 털보남자는 드랙 실바. 140km대의 공으로 리그를 주름잡은 남자. 그의 칼날 제구에 타자들은 범타로 물러나기 일쑤였다.

제구의 제왕이었으며 189승 70패의 전설.

키 큰 괴물형 남자의 이름은 헤이드 존. 최고 구속 165km의 강속구로 mlb를 호령한 남자다.

속구의 신으로 일컬어졌으며 205승 55패의 전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의 둘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성적과 라이벌 의식으로 앙숙이었다. 그런 그들이 성낙기의 멘토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일생일대의 행운이지만 성낙기는 이 놀라운 현상을 겪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미 끝난 야구 인생에 저런 게 무슨 도움이 되랴 싶었고 다시 죽고 싶었다.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필요 없으면 내치는 세상인데 귀신같은 인간들까지 장난을 친다.

-야, 너 우리 몰라?

“알아요.”

-근데 왜 떨떠름한 표정이야?

“저 이제 야구하기 싫습니다. 죽을 사람 죽게 둬야지 왜 말리고 그러는데요. 말 끝났으면 비켜줘요. 다시 뛰어내리게.”

둘은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런 행운을 마다하는 놈이 있다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구미가 당겼다.

이 자식을 꼭 야구를 하게 만들고 말리라. 존과 실바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의 대화를 나눴다.

-네가 야구를 하면 우리처럼 되게 만들어 주지. 어때, 전설 두 사람이 도와준다는데 이의 있어?

“흥,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건 제 실력이 아니잖아요. 두 분이 저를 통해서 누가 더 우월한지 겨루려고 하시는 거 아녀요? 내가 뭐 아바탄가?”

존과 실바는 어이가 없다. 떡을 먹여줘도 싫다고 징징거린다. 분명 둘은 성낙기를 통해 생전에 못다 한 자신들의 승부를 가늠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어린놈이 의도를 눈치 채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다니. 실바는 머리에 수증기가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누르며 성낙기를 달랬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리의 능력을 이어받은 너의 야구는 그대로 너의 것이다. 우리가 사라져도 야구는 그대로라는 말이지. 이래도 거절할 테냐?

“정말 그렇다면… 생각해 보죠.”

-이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들을 능멸하려 들다니. 확 그냥 강속구로 머리에 빵꾸를 내버릴라.

존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성낙기는 그런 존을 바라보면서 실바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존과 실바는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요, 그럼 뭘 하면 되죠?”

-잘 들어, 우리도 너에게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다. 신이 정한 랜덤 게임에 얻어걸린 게 너고 공교롭게 우리 둘이 같이 오게 된 거지. 이것 또한 너의 운명이고, 우리의 운명이니 받아들여. 우린 너를 도우러 왔고 우리가 가졌던 기본 능력을 전수할 수 있지. 그러나 이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모른다. 솔직히 우리 둘 중 한 사람의 코치만 받아도 기뻐 날뛸 일인데 둘의 경험치를 한꺼번에 전수받는 너는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지. 이래도 불만 있어?

“없습니다.”

-좋아, 이제 말이 좀 통하는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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