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66화 (266/268)

< 266화 - 혈투 >

“아! 내가 출루했어야하는데!”

“잘했어 네이트.”

아쉬워하는 드레이크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타석에 들어온 켈리는 앞선 18개의 공들을 다시 떠올렸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는 생각보다 컨디션이 별로였어. 커브는 컨디션이 괜찮았고, 스플리터도 엄청나게 변화하는 느낌은 아니었어.’

그리고 역시나 일본투수들의 강점인 제구력만큼은 알아줄만했다.

‘하나 노릴까?’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은 언제나 타자들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원하는 공을 원하는 곳에 꽂아넣을 수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결국 타자도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가기 좋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실패하면 기세를 올려준다는건데······.’

제구력이 좋은 투수가 타자의 약점을 공략하는건 기본적으로 결정구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결정구를 던지게 만들려면 스트라이크를 두 개 내줘야한다.

만약 저쪽에서 켈리가 생각한 결정구를 던져주지 않는다면 삼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된다면 드레이크에게 18개의 공을 던지면서 흔들리고 있을 타카시가 다시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라는 타이틀은 그 정도의 무게감이 있었으니까.

‘노릴까 말까?’

일반적으로 타격해도 상관없기는 하다. 하지만 이왕이면 더지가 당했던 것 처럼 ‘결정구라고 생각했던 제구 잘 된 공이 맞았다.’라는 것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노리자.’

장타도 필요없다.

자신이 한 번만 멘탈을 흔들어주면 뒤에 들어올 루이스와 브래넌은 얼마든지 타카시를 두드려 패서 자신을 홈으로 부를 수 있는 타자들이었다.

‘내 약점은 몸 쪽 낮은 패스트볼.’

대부분의 타자들은 몸 쪽 높은 패스트볼에 약하다. 하지만 자신은 몸 쪽으로 낮게 들어오는 패스트볼에 약했다. 그 부분의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골프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해봤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시즌에도 그 코스로 들어오는 패스트볼 타율은 고작해봐야 0.264(?)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코스에서 터진 홈런은 0개.

상대적으로 얻어맞을 확률도 낮고, 장타도 나오질 않는 곳을 과연 저 핀 포인트 피쳐가 그냥 지나칠까?

‘절대 아니지.’

예상대로 타카시는 바깥쪽 빠지는 슬라이더, 몸 쪽 패스트볼을 던지며 좌우를 활용하는 척을 하고서는 세 번째 공으로 몸 쪽 높은 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아아악!

강력한 풀스윙에 파울이 되어 날아가는 공.

카운트는 1-2

이제 결정구가 날아올 시간이다.

슈우우웅!

타카시의 손에서 날아온 공이 몸 쪽 낮은 코스. 그것도 아주 꽉 차게 들어왔다. 완벽하게 자신이 노리던 공이 들어오고 있었다.

켈리는 앞선 타석에서 했던 풀스윙은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그냥 정말 가볍게 공을 향해 배트를 돌렸다.

따악!

풀스윙을 할 때만큼 시원스러운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시원했다.

- 가볍게 3루수 키를 넘긴 타구! 하지만 좌익수 앞에 짧······. 켈리가 1루, 1루를 지납니다! 홀리데이가 급하게 2루에 쏩니다!

2루수가 태그하기 쉽도록 2루 왼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본 켈리가 오른쪽으로 훅 슬라이딩을 하며 들어갔다.

촤아아아악!

공은 제 타이밍에 도착했다. 하지만 새우처럼 굽어있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있는 켈리의 몸에 글러브는 닿지 못했다.

“세잎!”

심판의 팔이 양 옆으로 벌어지자 관중석에서 지진이 난 듯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 앤드류 켈리! 세잎입니다! 2루에서 세잎!

- 이야! 홀리데이가 방심하고 있었던 찰나를 노리고 2루를 노렸어요. 지금 뛰는 모습을 보면 조금이라도 느슨한 플레이가 나오면 2루를 노리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히나 홀리데이가 어깨가 강한 선수는 아니니까 더더욱 그랬을거고요.

- 켈리의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인해서 순식간에 주자는 득점권으로!

2루에서 유니폼을 털고 있는 켈리에게 1루 코치가 다가왔다. 그에게 프로텍터와 타격장갑을 넘겨준 켈리는 그가 알아낸 정보를 넘겼다.

“확실히 패스트볼 구위가 오늘 좀 별로에요. 그냥 툭 댔는데 저만큼 갔어요. 다음 타자부터는 브레이킹볼로 승부를 걸어올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멘탈 좀 아작났을거에요.”

“봤어. 결정구로 제일 장타가 적게 터지는 쪽으로 던지더라. 나이스 배팅이었어.”

코치는 곧바로 벤치의 사인과 함께 켈리에게 전달받은 것을 사인으로 내보냈다.

‘패스트볼 허약. 브레이킹볼 승부예상.멘탈 흔들림.’

사인을 확인한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일 잘하는 짓을 하면 되겠네.’

존에 들어오는 공을 커트하고 볼을 골라내는 것. 그게 바로 루이스가 가장 자신있어하고, 잘하는 것이었다.

‘패스트볼이 약하다고 했지?’

그렇다면 패스트볼은 보여주기 식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존 안으로 자신과 승부를 하러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가장 자신있어할 커브로 타이밍은 맞추고······.’

나머지 공은 다 커트해내기로 마음먹었다.

따악!

- 파울입니다! 꽤 괜찮은 코스였는데 커트를 해내네요.

- 타이밍이 살짝 늦긴 했지만 잘 커트해냈네요.

파아아앙!

“볼.”

존에 들어오는건 커브가 아닌 이상 커트하고, 밖으로 빠지는건 귀신같이 걸러낸다. 그러다보니 풀카운트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멘탈을 흔들어주려면

“네이트보다는 많이 커트해야하는데······.”

포수가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투수가 지켜볼 수 있도록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중얼거려줬다.

‘기분나쁘다고 맞추면 땡큐. 제구 흔들려도 땡큐, 존 안으로 하나 들어와줘도 땡큐.’

변화구?

지금까지 존 안으로 들어온 스플리터, 슬라이더, 커터는 모두 커트당했다. 딱 한 번 던진 커브는 존 아래로 떨어지면서 볼이 되었다.

‘네이트한테 그렇게 당했는데 또 변화구를 던질 용기가 날까?’

존 안을 한 번 더 공략해보고 안되면 바로 볼넷으로 내보낼지도 모른다.

‘패스트볼의 향기가 나는데······.’

이번 타석 루이스는 의도적으로 커브에 타이밍을 맞추면서 타이밍을 반박자 늦췄다. 패스트볼이 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한 짓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패스트볼은 딱 한 번, 존 위를 지나는 하이패스트볼로 들어온게 전부다.

하지만 지금 이 타이밍이라면?

계속해서 타이밍이 늦는 자신의 허를 찌르러 들어오지 않을까?

패스트볼이라면 타이밍이 늦고있는 자신이 헛스윙을 하지는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하며 패스트볼을 던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흘끔

2루에 있는 켈리를 한 번 본 타카시는 곧바로 홈플레이트를 향해 투구했다.

슈우우웅!

생각했던대로 패스트볼이다. 하지만 루이스의 배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파아아앙!

미트를 시원하게 파고들었지만 타카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베이스 온 볼스.”

이건 자신의 헛스윙을 노린 하이패스트볼이 아니다. 먹힌 타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몸 쪽을 노린건데 제구가 안돼서 공이 빠진 것이다. 그걸 확인한 루이스는 웃으며 1루에 걸어나갔다.

타카시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관중석에 있는 다운과 글라이드에게도 보였다.

“흔들리네.”

“제구 안되네요.”

“배리도 알겠지?”

“그걸 배리가 모를리가 없죠.”

그리고 자신이 아는 한, 배리 브래넌은 존 안에 들어온 실투를 놓치지 않는 사나이다.

따아아아아아악!

***

- 오늘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는 경기네요.

- 그렇습니다. 클리닝 타임이 아니었다면 화장실도 못 갈뻔 했어요!

- 양 팀 다 물러설 수 없다는 엄청난 각오가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브래넌의 역전 쓰리런이 곧바로 터진 바람에 타카시는 1회 말 원 아웃만을 잡은 뒤 강판당했다.

그리고 그 뒤로 3회까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브레이브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건 4회 초, 두 번째 투수인 카스티요가 올라오고부터였다. 3일 휴식 후 등판하는게 처음이라 그런지 카스티요는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이후 뒤이은 타자에게 안타를 맞으면서 주자 1, 3루 상황에 몰리긴 했지만, 더블플레이로 1점과 아웃카운트 두 개를 맞바꾸고 남은 타자 하나를 더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4회를 막아냈다.

다시 1점 차로 줄어든 상황.

따아아아악!

- 아······. 도니 베스비. 투런 홈런입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의 영웅 도니 베스비가 다시 한 번 2점짜리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를 다시 뒤집었다.

“저 자식 올 시즌 끝나고 FA 아냐?”

“하······. 맞아요.”

“저거 영입해버릴까?”

“앤드류랑 네이트는 어쩌고요?”

“저 자식은 외야수로 써.”

말이 안되는 소리라는 걸 아는지 글라이드는 곧 베스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시즌 중에는 수비빼곤 잘하는 것도 없더니 왜 우리랑 할때 이렇게 날라다니는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레이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따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아아!

- 올리! 올리! 올리 마이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터져나가는 관중석의 함성에는 다운과 글라이드의 함성도 섞여있었다.

“제에에엔장! 내가 영입하자고 했지?”

“어스틴이 언제 그랬어요! 영입하자마자 ‘쟤 메이저에는 올라올 수 있겠어?’라고 했잖아요! 영입은 제가 했다고요!”

“널 단장으로 앉힌건 내 결정이었으니까 결국 올리를 영입한것도 내 결정이나 다름없지!”

다운은 무적의 논리를 앞세운 글라이드를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좋았다.

“다시 동점이다!”

그렇게 경기는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경기가 다시 급박하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7회 초였다.

따아아악!

- 코디 드링크워터가 2루에 서서 들어갑니다.

- 투 아웃을 잘 잡았는데 결국 안타를 허용하네요.

짐 토머슨이 안타를 얻어맞자마자 곧바로 벤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찰리 제프리스가 나오네요. 캐시의 선택은 제프리스였습니다.

- 그가 보기에는 지금 이 순간을 ‘무조건 막아야하는 타이밍’이라고 본거죠. 그리고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찰리는 4아웃은 물론이고 시즌 중에 6아웃까지도 잡았던 적이 있었던 멀티이닝이 가능한 마무리입니다. 그의 강력한 구위를 생각하면 지금 이 타이밍은 최적이라고 볼 수 있죠.

제프리스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카를로스 앙헬 주니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7회를 끝냈다. 그리고 이어진 8회 초 역시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내버렸다.

문제는 그 동안 레이스의 타선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 아······. 1번부터 시작하는 이번 8회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요.

- 역시 브레이브스의 불펜은 두텁네요. 우승 팀 답습니다.

다시 한 번 무득점으로 8회를 마친 9회

- 이렇게되면 이제 브레이브스 타선은 8번부터 시작되겠군요.

- 8번이면 지긋지긋한 도니 베스비군요.

오늘 3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한 도니 베스비가 선두타자로 나서는 이닝이었다.

“불안한데······. 저 자식 또 치는거 아냐?”

불안해하는 글라이드와는 다르게 다운의 얼굴은 평온했다.

“넌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냐? 해탈했어? 하늘에 우리 운명을 맏긴거냐?”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럼 뭐야? 나도 같이 좀 평온하면 안되냐?”

다운은 대답대신 불펜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곳에서 나오는 선수를 확인한 글라이드의 표정은 다운을 따라 평온해졌다.

- 조나! 조나 파인트가 9회를 틀어막기 위해 나옵니다!

< 266화 - 혈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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