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 은퇴식을 위해서 >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에 라커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돌아갔다.
“배리!”
소리가 들린 곳에서는 브래넌이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는 멋쩍게 웃고 있었다.
“괜찮아?”
“혹시 심장에 무리가?”
“병원 가야하는거 아니에요?”
쏟아지는 질문에 브래넌이 팔을 휘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냐. 진짜 괜찮아. 그냥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을 뿐이야. 내가 어릴때부터 빈혈기가 좀 있었거든. 딱 봐도 연약해보이지 않아?”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그의 말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는 병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배리. 그래도 팀닥터에게 검사는 받아보자.”
“그래. 마크가 너 때문에 심장질병 관련 징후같은거 얼마나 공부 많이 하는데, 한 번 정도는 봐줘라. 배운거는 써먹어야할거 아냐.”
“맞아 배리. 어서 가봐. 아니다. 그냥 내가 데려갈게. 나랑 같이 가실분?”
“내가 갈게.”
순식간에 올드먼과 마이어가 브래넌의 팔 한 짝씩을 묶었다.
“야! 야! 나 괜찮, 아니 내 발로 걸어갈게! 나도 검사는 한 번 받아야한다고 생각했어! 진짜라니까? 진짜······.”
브래넌이 라커룸을 떠나자 라커룸은 다시 한 번 정적에 휩쌓였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가 드는 정적이었다.
‘배리가 쓰러질만큼 열심히 뛰는 동안 나는 뭐했지?’
오늘 브래넌은 18회까지 뛰면서 7타수 3안타 1볼넷을 얻어냈다. 심지어는 17회에는 도루까지 기록하면서 어떻게든 이번 경기를 잡아보려고 노력했다.
평소에는 두 경기를 뛸 에너지, 그 이상을 오늘 하루만에 다 때려넣었으니 몸에 무리가 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배리는 저렇게 지칠 정도로 뛰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멀쩡하지? 수비까지 했는데?’
‘과연 난 오늘 배리만큼 최선을 다했을까?’
선수들이 각자의 생각에 빠져 오늘 경기를 되돌아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배리 브래넌이라는 남자를 정말 존경해.”
목소리의 주인공은 윌슨이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정적이 흐르고 있던 라커룸이었기에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소리였다.
“양키스에서 뛰고 있을 때에도, 존경했고, 레이스에서 같이 뛰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어. 내가 갖지 못했던 포수로서의 공격력을 가진 남자를 정말 동경해왔거든. 배리는 정말 아낌없이 나에게 모든걸 전수했어. 포수가 하면 안되는 것들부터 어떻게 하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지까지도 말이야. 난 그래서 배리가 정말 좋은 선수이자 리더라고 생각해. 너희도 아마 나랑 같은 마음일걸? 우리 구단, 아니 여기 있는 선수들 중에서 배리에게 도움받지 않은 선수가 있긴 해?”
선수들은 하나 둘 고개를 저었다.
“난 20년에 팬데믹으로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었을 때, 배리가 돈을 빌려줬었어.”
“너도?”
“응? 너 그때는 어머니한테 받았다며?”
“거짓말이지. 그때는 자존심때문에 그렇게 말했었지. 나도 배리한테 5000달러 빌렸었어. 그리고나서 배리가 나한테 ‘그 돈은 나한테 갚지 말고, 메이저리거가 되면 너보다 힘든 마이너리거에게 꼭 돌려줬으면 좋겠어. 내가 꼭 지켜본다 응? 안그러면 확 그냥······.’”
거기까지 말한 에르난데스가 뒷통수를 긁었다.
“뭐 그래서 빌렸지.”
“아, 그럼 그때 저한테 빌려줬던 5000달러가?”
“배리한테 받은걸 돌려준거지.”
에르난데스의 말에 에이바르가 억장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와······. 진짜 그때 감동했었는데, 그게 배리가 한 말이었어요?”
“따지자면 그렇지······?”
금전적인 부분만이 아니었다.
“내가 왔을 때 팀에서 좀 겉돌았잖아? 그때 배리가 많이 챙겨줬지. 배리가 아니었으면 진짜 적응하기 힘들었을거야.”
“루키시즌때 배리가 수비하다가 나하고 부딪혀서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배리가 나보고 ‘네가 안다쳐서 다행이다. 난 레이스에서 지는 해지만, 넌 뜨는 해잖아. 내 몫까지 팬들을 즐겁게해줘 네이트.’라고 해줬어. 만약 그 말이 아니었다면 난 자책도 많이 하고, 자신감을 많이 잃었을거야.”
브래넌은 여러 방면에서 선수들을 도와주었고, 레이스 선수단 중에서는 그 도움의 영향을 간접적으로나마 받지 않은 선수들이 없었다.
“레이스 팬들 역시 배리에게 많은 도움과 위안을 받았어. 레이스라는 비인기팀에 왔다고 불만을 표하던 선수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어?”
수도 없이 많았다.
심지어 누군가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대놓고 경기 좀 보러오라고 핀잔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브래넌은 아니었다.
“우리가 못해서 팬들이 안오는게 아니야. 너희가 그딴식으로 팬들을 대하니까 안오는거야.”
누구보다 솔선해서 팬들을 대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레이스에 머무는동안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매 해 조금씩이나마 늘었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게 다가가서 경기장까지 온 이유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배리에게 사인을 받고 싶어서요!”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 남자의 마지막 시즌이야. 근데 그거 알아? 배리는 올 시즌 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은퇴식만큼은 하지 않았어.”
그러고보니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브래넌은 은퇴투어까지 다 해놓고도 은퇴식은 하지않았다.
“그건 본인이 그렇게 하길 원했다고······.”
“우리한테는 그렇게 알려졌지. 하지만 실상은 달라.”
***
마지막 원정 시리즈를 마치고 마지막 홈 시리즈를 치르기 위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다운은 브래넌을 불렀다.
“어 왔어? 앉아봐.”
브래넌은 다운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오늘은 또 왜?”
“왜겠어?”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인상을 찌푸렸다.
“또 은퇴식 이야기야?”
“맞아. 진짜 안할거야? 지금이라도 준비 시작하면 마지막 날에는 홈에서 팬들이랑 은퇴식을 할 수 있어.”
은퇴식 이야기는 시즌 초반부터 계속해서 나왔었다. 하지만 브래넌은 계속해서 은퇴식만큼은 거절해왔다.
“진짜 안해.”
“왜? 은퇴투어도 다 했는데 왜 은퇴식은 하기 싫다는건데? 이유라도 알아야지 내가 납득을 하고 물러날거 아냐. 네가 계속 거절하고 은퇴식을 안하니까 팬들이 뭐라고하는지 알아? 구단의 레전드가 될 선수 은퇴식도 까먹고 안챙기는 후레단장이 되고 있다고!”
“후레단장? 그건 또 어디서 나온 단어야?”
“인터넷에서 떠도는 단어의 기원까지 내가 알아야겠어?”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유나 말해봐. 그래야 네가 거절하더라도 마지막 날에 성대한 은퇴식을 열지, 아니면 저 거지 같은 단어를 인내할지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
“별 이유 아니라도 인내해주는거야?”
“그게 내 선수가 원하는 바라면? 잠깐, 별 이유도 아닌데 은퇴식 안한다고 한거야?”
다운의 말에 브래넌은 피식피식 웃더니 결국엔 입을 열었다.
“은퇴식이란건 뭐야? 내 선수생활의 은퇴의 기점이 되는 행사잖아.”
“뭐 의미상으로는 그렇긴 하지.”
“의미상으로는 은퇴식을 한 다음부터 나는 선수가 아닌거지?”
“그렇겠지?”
“그런데 우리는 아직 포스트시즌이 남았잖아. 디비전 시리즈가 남았고, 챔피언십 시리즈도 있고, 월드시리즈까지 치뤄야하잖아. 아직도 많은 경기가 남아있는데 은퇴식을 하게되면 난 그날을 기점으로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은퇴식은 하지 않으려는거야.”
꽤나 진지한 브래넌의 답에 다운은 미간을 구겼다.
“별 이유가 아닌게 아니잖아?”
“하하! 그런가? 근데 뭐 이건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거니까 별 이유가 아닌거일수도 있지.”
“하지만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잖아.”
“그럼 인내해주는거야 후레단장님?”
브래넌의 말에 다운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에휴······. 마음 넓은 후레단장님이 이해해야지 어쩌겠냐?”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브래넌의 코를 콕콕 찔렀다.
“대신 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고 나면 은퇴식 꼭 하는거다.”
“우리 월드시리즈에서 4승으로 끝낼건데 원정가서 은퇴식 해도 되는거냐?”
“뭐 어때? 꼬우면 상대가 우승하면 되는거잖아.”
“그렇게 냅둘 수는 없지. 좋아! 내 커리어 마지막 목표는 상대방 홈에서 은퇴식 하는거다!”
“팬들이 슬퍼하겠네.”
“뭐?”
“그토록 사랑했던 선수의 은퇴식이 원정경기에서 벌어진다니 얼마나 슬프겠어?”
“아까는 하라며? 뭐 어쩌라는거야 이 후레단장 자식이? 그럼 일부러 지기라도 할까?”
“퇴물이 단장한테 대들어? 미쳤어?”
“퇴에물? 퇴에물이라고 했냐?”
부시럭
“누구 있나?”
“뒷자리에서 알렉스 자고 있어.”
***
뒤에는 조금 더 험한 말이 오고갔지만 단장님과 브래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뒷 내용을 검열했다.
“그럼······. 우리가 내일 지면 은퇴식은 없는거네.”
없을거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브래넌은 받지 않을거다.
“배리의 은퇴식이 열리게 하려면······.”
“무조건 홈으로 가야해.”
“홈으로 가서 끝이 아니야. 배리 성격에 지고나서 은퇴식 하겠어?”
지금은 농담도 많이 하고,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려주는 리더의 느낌이다. 하지만 브래넌도 양키스에 있을때는 한 성격을 했던 사람이다. 레이스에 있을 때에도 팀원들이 안일하거나, 성의없는 플레이를 하면 칼같이 먼저 나서서 호통을 치는게 브래넌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패배한 다음에 은퇴식을 할거냐고 물어본다?
“절대 안하지.”
“물어본 사람은 한 대 얻어맞지 않을까?”
“단장님이라면 안 때릴수도 있어.”
“두 분은 서로 치고받고 싸울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어떻게든 유혈사태가 일어날거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남은 경기들을 모두 이기면······.”
“배리에게 은퇴식을 해줄 수 있어.”
배리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기 전까지만해도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아, 그 공 하나만 더 잘던졌으면······.’
‘그때 왜 그런 공을 요구해서······.’
‘내가 2루에 있을 때 안타 하나만 쳐주지! 그걸 못쳐서······.’
내 탓과 남 탓이 섞인 이런 생각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선수들의 머리에서 그런 생각들은 일절 사라졌다.
그들의 머리에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배리에게 성대한 은퇴식을 해주자.”
“월드시리즈 우승도 없는데 은퇴선물로 그거라도 갖게 해줘야지.”
“맞아. 은퇴선물로 반지 하나 안겨주자.”
내일 선발로 예정된 파인트가 먼저 나섰다.
“내일 난 단 한 점도 내줄 생각없어.”
파인트의 말에는 신뢰가 간다. 그러면 이제 남은건 하나 뿐이다.
“어떻게든 점수를 내자. 그러면 조나가 지켜줄거야.”
“해보자!”
“그래! 하자!”
“할 수 있다!”
“으아아아아! 가자아아!”
레이스 선수단에 불이 붙었다.
< 261화 - 은퇴식을 위해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