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벼랑 끝에 서다 >
브레이브스는 브래넌의 앞에서 고의사구를 한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했다.
- 갑니다! 갑니다! 펜스를 직격하는 브래넌의 적시타! 앳킨슨 홈 인! 켈리도 홈으로! 그리고 루이스! 루이스!
1루주자였던 마르코 루이스는 슬라이딩을 할 방향을 알려주는 켈리의 손짓을 보고 오른쪽으로 슬라이딩을 해서 들어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공이 도착했다. 그리고 심판의 양 손이 옆으로 벌어졌다.
“세잎!”
- 세잎! 세잎입니다! 브래넌의 싹쓸이 2루타!
비슷한 타이밍이었기에 당연히 브레이브스 측에서는 비디오판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내 전광판에 나오는 당시 화면을 본 관중들이 환호성을 보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 완벽하게 세잎이네요. 마르코의 손이 먼저 홈플레이트를 스친 뒤 길모어의 미트가 종아리에 닿았어요.
- 판정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요.
예상대로 심판들은 헤드셋을 금세 벗었다. 그리고 원심대로 세이프가 선언되었다.
- 이걸로 레이스가 다시 경기에서 앞서갑니다!
야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흐름이다.
이미 흐름과 기세가 레이스로 넘어온 상황에서 브레이브스가 이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 아웃! 아웃입니다! 2이닝을 던지며 오늘의 승리를 챙긴 제프리스가 활짝 웃습니다!
- 이 기세 그대로 2차전까지 가져가야합니다! 레이스!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브레이브스 역시 운빨이라던가 뽑기로 이곳에 온 팀이 아니었다.
따아아아악!
- 아 또 다시 넘어가네요.
- 오늘의 브레이브스는 말릴 수가 없네요.
2차전에서는 더지가 3.2이닝 3실점, 뒤이어 올라온 알렉스 알마다가 2.1이닝 2실점, 미치 베이커가 0.2이닝 2실점, 로건 앤더슨이 1.1이닝 1실점을 하면서 8이닝동안 총 8점을 실점했다. 그나마 마지막에 올라온 리처드 로버트슨이 무실점으로 9회를 막긴 했지만, 단 한 점 밖에 내지 못한 레이스 타선이 9회 말에 7점을 따라잡고 역전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 이렇게 되면 브레이브스가 훨씬 유리해지네요.
- 아무래도 홈에서 3연전이 펼쳐지니까 상대적으로 유리하겠죠.
- 하지만 브레이브스도 저희 홈에서 1승을 챙겨가지 않았습니까? 저희 선수들도 할 수 있습니다.
- 맞습니다!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을 믿어야합니다! 분명 지금도 머리를 싸매고 브레이브스를 격침시키기 위한 작전을 짜고 있을거에요! 게다가 3선발인 찬은 큰 경기에서 강한 선수입니다! 어떻게든 막아줄거라 믿어요!
이어진 3차전
진성찬은 모두의 예상처럼 9이닝을 81구로 완벽하게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 셧다운! 찬이 9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냅니다!
- 81구를 던지는 동안 그가 맞은 안타는 단 두 개! 하지만 그 중에서 홈으로 들어온 주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 이게 찬의 장점이죠! 공격적인 투구로 투구수를 최소화하면서도 점수는 주지 않아요! 이런 투수가 왜 지금에서야 미국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동안 한국에서 성장해왔으니까 이런 투수가 됐을수도 있죠!
- 하하! 그렇군요!
하지만 진성찬이 9회를 완벽히 막았다고해서 경기에서 승리하는건 아니었다.
- 자! 이제는 타선이 정말로 힘을 낼 차례입니다.
브레이브스 타선이 9이닝 동안 안타 두 개를 때리는 동안, 레이스 타선은 9이닝 동안 안타 다섯 개를 때려내는데 그쳤다. 심지어 한 회에 두 번 이상의 안타가 나온적이 없었다. 그 말은 곧, 레이스도 점수를 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어진 연장 10회 초
- 아······. 아웃입니다.
- 삼자범퇴로 끝나는 이닝. 이제 레이스는 드링크워터, 앙헬 주니어, 카브레라로 이어지는 브레이브스의 3, 4, 5번 타순을 상대해야합니다.
- 혹시 찬이 한 이닝을 더 던지지는 않을까요? 투구수가 81개에 불과해서 한 이닝 정도는 더 가능할 것 같은데요?
실제로 레이스 더그아웃에서도 저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것도 선발투수인 진성찬의 입에서 말이다.
“보스. 저 1이닝 정도는 더 던질 수 있다니까요? 1이닝이 아니면 딱 19개만 더 던지고 내려올게요. 딱 19개 던지고 100개 채우면 도중에 교체해도 오케이할게요.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네?”
하지만 캐시는 단호히 그걸 거절했다.
“안돼.”
캐시라고해서 진성찬을 쓰고싶은 마음이 없는건 아니었다. 아직 81구밖에 던지지 않았는데다가 체력안배도 잘해서 94마일이 나온다. 윌슨에게 물어보니 볼 끝도 1회와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진성찬은 여기까지만 던져야한다.
“우리가 이기려면 다음 경기도 생각해야해.”
지금은 원정 첫 경기인 3차전의 중요성 때문에 진성찬을 잠시 3선발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홈으로 돌아가서 6차전까지 가는 상황이 생긴다면 캐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성찬을 선발로 세울 생각이었다.
“6차전에서 던지려면 휴식일이 3일 밖에 없어. 그러니 지금 더 던지게 놔둘 수는 없어.”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불펜진들에 대한 신뢰 표시였다.
이미 9회까지 던진 선발의 투구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10회에도 올려버린다면 어제 털린 불펜진에서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거다.
“아······. 보스가 우리를 이제 못 믿나? 아니면 찬이 우릴 못믿는건가?”
의심이 생기면 자존심이 떨어지고, 자존심이 떨어지면 자신감이 하락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절대로 앞으로 있을 경기들에서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불펜진을 아예 쓰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남은 경기에서도 불펜을 쓰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신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일단은 네 동료들을 믿어봐라.”
결국 진성찬은 곧바로 아이싱 팩을 어깨에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불펜진은 브레이브스 타선을 아주 잘 막았다.
파아아앙!
- 삼진! 삼진입니다! KKK! 짐 토머슨이 브레이브스에게 1루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10회에 올라온 짐 토머슨은 레이스의 강타선을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그리고 뒤이은 투수들도 어제의 모습을 씻어내겠다는 듯이 하나같이 호투를 펼쳤다.
- 토마스 애커슬리! 안타를 하나 허용하긴 했지만 무실점으로 11회를 막습니다!
- 타구는 3루수, 3루수! 올드먼이 잡아냅니다! 곧바로 공을 2루로! 2루에서 아웃! 더블플레이! 올리버 올드먼! 환상적인 더블플레이!
하지만 야구라는건 투수들만이 잘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야수들이 점수를 내야지 이길 수 있는 스포츠다.
따아아아아악!
- 타구가 멀리! 멀리갑니다! 갑니다! 펜스를 넘어! 넘어! 이런 및······.
- 허허허허허······.
한 명이 비속어를 말하다 멈추는 동안 한 명은 실성한 듯 웃었다.
- 죄송합니다. 험한 말이 나올 뻔 했네요.
- 괜찮습니다. 저도 잠깐 정신줄을 놨었으니까요. 누가 드링크워터가 펜스를 타고 올라서 저 공을 저렇게 잡을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 전 넘어간 줄 알았어요.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 대타작전은 실패입니다. 타구는 좋았는데 드링크워터가 너무 잘 잡았어요.
- 데이튼도 아쉬운지 연신 그쪽을 바라보네요. 지금 저 공만 넘어갔으면 2루에 있는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데다가 본인도 홈으로 들어오면서 레이스에게 2점을 안겨줄 수 있었거든요.
- 18회 초에도 결국 레이스는 점수를 내지 못합니다.
무려 18회.
두 경기를 뛴 것과 같은 이닝이다. 그 기간동안 두 팀은 단 한 점도 내질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건 타자들의 탓이 아니었다. 그저 3차전을 가져가기 위한 양 팀의 투수들과 수비진의 집중력이 워낙에 좋았던 탓이었다. 그래서 관중들 역시 6시간 13분 째 이어져 새벽 한 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임에도 오늘의 승자를 지켜보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 이제는 레이스에서도 올릴 선수가 없는데요?
이미 쓸 수 있는 모든 투수들을 소모했다. 교체하려면 야수들이 올라오거나 모레 선발 예정인 파인트가 불펜피칭을 대신해서 등판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 결국 위트먼이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오릅니다.
-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난 이닝을 8개의 공으로 삼자범퇴를 만들어냈던 위트먼 아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한 이닝 정도는 더 막아줄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참히 박살났다.
따아아아아악!
- 아······. 도니 베스비······.
- 도니 베스비가 정말 싫어질 것 같네요.
1차전에서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점수를 만들어냈던 도니 베스비가 이번에는 브레이브스에게 승리를 안기는 끝내기 홈런을 때린 것이었다.
- 늦은시간까지 함께해주신 레이스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승리의 소식을 결국 전해드리지 못해서 너무 아쉽네요.
- 동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 이 경기가 아닙니다. 이렇게되면 내일 경기가 걱정입니다.
- 오늘 이미 불펜을 다 소모했죠?
- 네. 2차전에서 꽤 오래 던진 알마다가 오늘을 휴식을 취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불펜소모를 너무 많이 했어요. 2차전은 물론이고 오늘까지 던진 미치 베이커, 로건 앤더슨, 리처드 로버트슨은 4차전까지 던지면 3연투입니다.
- 중간에 휴식일이 끼어있기는 했지만, 또 던지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죠. 그리고 오늘 1이닝 이상을 소화했던 자비어 에르난데스와 짐 토머슨, 글렌 위트먼도 내일은 던지기 힘들겁니다. 결국 내일 캐시가 쓸 수 있는 불펜이라고 해봤자 알마다, 애커슬리, 에이바르 그리고 제프리스까지 넷 밖에 없는겁니다.
넷이면 충분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포스트시즌에서 던지는 선발진들이 소화하는 이닝은 평균적으로 5이닝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압박감이 크고 체력소모가 큰 무대였기 때문이다. 카스티요가 5이닝을 소화하고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투수들 중 한 명이라도 얻어맞는다면 누군가는 1이닝 이상을 던져야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 만약 지쳐있는 다른 불펜이 올라온다면 결국 얻어맞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을거에요. 그 정도로 브레이브스 타선은 강력하거든요.
- 결국에는 카스티요가 이닝을 얼마나 소화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네요.
이어지는 4차전
카스티요는 1회에 제구가 되지 않으며 만루상황까지 몰리며 21개의 공을 던지며 핀치에 몰렸다. 하지만 결국 수비진의 도움으로 인해서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5이닝동안 97구를 던지며 무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뒤이어 올라온 토마스 애커슬리가 자책점 3점을 기록한 것이 결승점이 되면서 결국 4차전의 승자는 다시 한 번 더 브레이브스가 되어버렸다.
ATL 3 vs TBR 1
브레이브스는 이제 월드시리즈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스는 이제 한 경기만 더 지면 가을야구가 끝나게 된다.
탕!
라커 닫는 소리
스르륵! 탁!
옷을 벗어서 던지는 소리
항상 떠들썩하던 레이스의 라커룸이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듣기 힘든 소리들이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부분이 이상하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마치 다들 자신들은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문채 조용히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큰 소리가 라커룸 가운데서 울려퍼졌다.
쿵!
< 260화 - 벼랑 끝에 서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