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금기의 단어 >
드레이크의 선제포로 인해 경기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 이거거든요! 이게 바로 리드오프 네이트의 위력입니다!
- 그렇습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1번 타순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타자는 애스트로스의 로빈 플라워스로 29개를 기록했죠. 드레이크는 바로 그 다음인 23개를 기록한 선수입니다! 중간에 메이슨 스탠하우스가 들어오고, 그가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면서 1번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몇 개의 홈런이 더 추가는 됐겠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몇 안되는 1번 타자 중 하나라는 점이죠!
- 맞습니다. 3위의 홈런 수가 10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가치는 더더욱 올라가게되는거죠!
- 지난 시즌보다는 장타력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말이죠. 이럴 때 해주는군요!
순간 자신들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은 제프는 여전히 웃음을 입에 달고는 차분해지자는 손짓을 했다.
- 이제 시작입니다. 시작. 시작부터 너무 저희가 들떠버렸군요.
- 하하! 그렇네요. 다시 차분하게 중계를 진행해보록 하죠.
하지만 이들의 다짐은 길게 가지 못했다.
“볼. 베이스 온 볼스.”
- 앤드류 켈리! 드레이크가 초구를 노렸다면 난 투구수를 늘리겠다!
- 무려 12구만에 볼넷으로 1루에 나가는 켈리! 팀을 위한 타격이 어떤건지를 보여줍니다!
따아아악!
- 갑니다! 멀리······. 아! 펜스 최상단을 맞고 떨어지는 타구! 켈리는 3루로, 3루를 돌아! 돌아서 홈으로! 홈으로 들어갑니다! 마르코 루이스! 역전 1타점 2루타!
- 이거죠! 마르코 루이스! 리그가 바뀌었어도 웨슬리 앤더슨은 자신의 아래에 있음을 증명합니다!
따아악!
- 가볍게 배트를 휘두릅니다! 타구는 3루수를 살짝 넘어서 좌익수 앞으로 갑니다! 마르코는 3루에, 그리고 배리는 1루에 멈춰섭니다. 배리 브래넌의 안타! 그리고 아직 아웃카운트는 제로입니다!
- 하하! 제가 배리를 처음 봤을때, 그는 무조건 풀스윙만 하던 사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가벼운 스윙도 구사하는군요.
- 본인도 얼마 전에 그랬지 않습니까? ‘은퇴를 앞둔 지금 이제서야 타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게 되었다.’라고 말이죠. 마음 같아서는 한두시즌을 더 뛰라고 하고싶습니다만······.
- 커리어를 위해서 배리의 건강을 해칠수는 없는 노릇이죠.
- 맞습니다. 그게 참 아쉽습니다.
그리고 이번 1회 말의 화룡점정은 알렉스 스프라우트의 타석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스프라우트는 앤더슨이 던진 초구 패스트볼과 2구 슬라이더를 그대로 지켜봤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슬라이더가 살짝은 존 바깥으로 나가는 궤적으로 들어오자 길디 긴 팔을 쭉뻗어서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스윙은 간결하고 가벼웠지만 거기에서 터져나온 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따아아아아악!
- 타구는 멀리! 높이! 그리고오오오오! 글라이드 파크 외야석에 그대로 꽂힙니다!
- 브레이브스에 드링크워터가 있다면 레이스에는 내가 있다! 나를 보낸 브레이브스에게 비수를 박아넣겠다! 알렉스 스프라우트의 3점 홈런! 레이스가 4점 차이로 달아납니다!
- 이거 웨슬리 앤더슨이 표정이 좋지 않은데요?
- 그럴만도 하죠! 무려 1선발! 에이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내려갔습니다! 기분이 좋을리가 없죠!
- 브레이브스의 불펜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투수코치와 길모어가 마운드에서 앤더슨에게 뭔가를 말한 뒤 내려오고 있군요.
- 아마도 다음 투수가 몸을 풀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달라는 말을 했을겁니다.
- 그렇다면 저희 레이스 선수들이 해야할 일은 명확하군요! 다음 투수가 올라오기 전까지 열심히 앤더슨을 두들겨야합니다!
레이스 더그아웃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 빠른 타이밍에 공 하나를 노리고 들어가서 때려버려.”
알버트 서머스도
따아악!
- 알버트! 바로 초구를 후려서 2루타를 만들어냅니다!
올리버 올드먼도
따아악!
- 투수 옆! 그리고 2루 위를 그대로 스쳐지나가는 올드먼의 안타! 서머스는 3루에 멈춥니다!
알렉스 윌슨도
따아악!
- 초구를 그대로 후리는 윌슨! 유격수 키를 넘어! 좌중간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서머스 홈인! 올드먼은 2루를 돌아! 3루를······. 3루에서 멈추는군요. 그리고 윌슨은 2루에 안착합니다! 올리라면 충분히 홈을 노려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고작 1회잖아요? 벌써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타이밍 상 이제 투수교체가 일어날텐데요.
때마침 투수코치가 공을 들고 마운드에 올라갔다.
- 주자가 2루에만 있는것과 2루와 3루에 있을때 투수가 느끼는 압박감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도 아웃카운트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내야를 빠져나가기만 하면 1점은 내줘야하는 상황에서 올라오는데 얼마나 압박감이 크겠어요? 게다가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긴하지만, 2루에 있는 알렉스가 그렇게 위협적인 주자는 아니잖아요?
- 하하! 그건 그렇죠. 그런데 올리가 그것까지 생각했을까요?
-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직감적으로 알고있었을겁니다. 올리는 예전부터 어떤 짓을 하면 상대 팀이 싫어할지를 굉장히 잘 알고있는 선수였거든요.
레이스는 다음으로 올라온 톰 리케츠를 상대로 3점을 더 뽑아냈다.
ATL 1
TBR 8
강하디 강한 팀들의 에이스가 나와서 격돌하는 경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점수차가 1회부터 나기 시작했다.
레이스 팬이라면 누구나 기뻐할 지금 이 상황. 글라이드 파크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방방뛰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렇치! 이래야 내 새끼들이지! 잘한다!”
“이거 생각보다 경기가 쉽네요? 하하하!”
“뭔가 딱 술 맛 좋을 것 같은 상황 아니냐? 저기 냉장고에서 맥주 좀 가져와라. 너도 한 잔 하고.”
원래 경기를 보면서 술은 하지 않는 다운이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맥주 한 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럴까요?”
“빨리 가져와서 앉아.”
챙!
맥주 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한 모금씩을 들이켰다.
침울해있는 브레이브스 더그아웃을 보니까 뭔가 술맛이 더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크~”
“캬~ 이거지.”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감탄사를 내뱉은 글라이드가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내가 이럴때 쓰는거라고 배운 단어가 있어.”
“아직도 배우는 단어가 있어요?”
“그럼! 인간이란 죽을때까지 배우는 동물이야.”
그의 말에 다운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뭘 배웠는데요?”
“Haechiwhatna?”
어색한 한국어가 귀에 들리는 순간 다운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가 글라이드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뭐, 뭐라고요?”
“해치웠나?”
조졌다.
***
‘해치웠나?’의 효과는 굉장했다.
1회에 브레이브스의 에이스인 앤더슨과 뒤이어 올라온 톰 리케츠에게서 8점을 뽑아낸 레이스는 파인트의 호투에 힘입어 2회를 10구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문제는 2회 말부터 올라온 레오디스 마틴에게 막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보통 포스트시즌에서는 저렇게 긴급등판해서 올라온 선수들이 깜짝 활약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월드시리즈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 이유는
1. 주로 올라오는 선수들은 포스트시즌에서 나온 경기가 많지만, 로스터의 가장 마지막에나 위치한 선수들은 포스트시즌 내내 등판한 경기가 적다.
2. 따라서 분석이 덜 되어있다.
3. 로스터에 등록이 된만큼 실력은 있는 선수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4.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이 무대에서 던질 수 있을지 모르는 선수들이 많기에 집중력이나 열정이 다른 선수들의 배는 된다.
이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2회부터 올라온 마틴은 6회까지 4이닝 동안 레이스 타선을 완벽하게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면 파인트는 실점했냐고?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정규시즌에서 1회에 이 정도 경기가 벌어지면 레이스는 언제나 승리를 챙기곤 했다. 우선 이 정도로 점수가 벌어지면 상대팀도 초반에는 선수를 쓰다가 후반에는 투수를 아끼기 위해서 야수를 올리곤 했다. 게다가 오늘 지더라도 내일 이기면 되는게 정규시즌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쏟아붓지는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월드시리즈는 다르다.
모든 팀들이 오늘도, 내일도 지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평소와 같았다면 파인트가 9이닝, 혹은 8이닝을 던지면서 브레이브스 타선을 완벽하게 막았을거다.
하지만 파인트는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 1회부터 피치를 한 단계 올려서 투구했다. 그만큼 브레이브스 타선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건 평소보다 빠른 타이밍에 마운드를 내려갈 예정이라는 말이었다.
마틴에게 막히면서 레이스의 흐름은 끊겼고, 계속해서 브레이브스 타선을 막아서던 조나 파인트라는 벽이 7회 초 사라졌다.
그 때부터 브레이브스 타선은 터지기 시작했다.
따악!
- 브랜트 홀리데이가 출루하네요.
- 코스가 워낙에 좋았어요.
따악!
- 브레이브스의 연속 안타.
- 아, 길모어 저 선수 원래는 우투수한테 약한 선순데 말이죠. 이렇게 안타를 치네요.
뒤이어 시몬스, 캐스퍼 Jr, 드링크워터까지. 7회에만 5점을 뽑아내며 빅이닝을 만들어낸 브레이브스는 8회에도 홀리데이가 출루하며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다.
“이게 다 나때문이야······.”
“미안하지만 맞는 것 같아요 어스틴.”
“하아······.”
글라이드가 자책하고 있는 와중에 캐시가 승부수를 띄웠다.
- 8회 초, 원 아웃 상황에서 찰리 제프리스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바로 마무리인 찰리 제프리스를 마운드에 빠르게 등판시킨 것이었다.
- 승부수를 던졌네요.
- 그렇습니다. 여기서 로버트 길모어를 잡아내지 못하면 진다는거죠.
- 그렇습니다. 홀리데이도 그렇고 길모어도 앞선 타석에서 안타가 있었던 선수거든요. 승리까지 아웃카운트 다섯 개만 잡으면 되는데, 그게 이렇게 힘드네요.
- 하지만 전 찰리가 우리의 승리를 지켜줄거라고 굳게 믿고있습니다.
제프리스는 그런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로버트 길모어를 공 네 개로 삼진을 잡아냈다.
파아아아앙!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 삼진! 삼진입니다! 앞으로 승리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네 개! 하나만 더 잡으면 주자를 베이스에서 지울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타석에는 오늘 안타가 하나도 없었던 도니 베스비가 들어섭니다.
- 이번 정규시즌에서 베스비는 그다지 성적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내내 적재적소에서 안타를 때리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활약이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 부디 계속해서 활약을 안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중계진의 그런 기대는 잠시 후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무너졌다.
따아아아아악!
< 258화 - 금기의 단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