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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MLB 단장-256화 (256/268)

< 256화 - 에그가디언 출동 >

이번 시즌 레이스는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를 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월드시리즈에서도 레이스는 홈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홈 어드밴티지냐고 묻는다면 약간의 어폐가 있었다.

브레이브스가 있는 애틀란타에서 탬파까지는 차로 6시간 40분 정도, 비행기를 타면 1시간 2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다. 1차전과 2차전이 토, 일요일에 열리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부터 온 브레이브스 팬들이 글라이드 파크에 넘쳐났다. 덕분에 레이스 프런트는 그 어느때보다 바빴다.

“여기 입장은 어떻게 하는거에요?”

“티켓 발권은 어디서 하죠?”

“여기 도와주세요!”

지금까지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었던 에인절스는 이미 작년부터 레이스를 따라 E-티켓을 도입한 팀이었고, 화이트삭스 역시 이번 시즌 E-티켓을 도입했다. 게다가 거리가 먼 덕분에 탬파까지 원정을 와서 응원하는 팬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하는 일은 상당히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브레이브스에서 온 팬들은 글라이드파크에 와본적이 없다. 게다가 브레이브스는 아직까지 E-티켓을 도입하지 않은 다섯 팀 중 하나였다. 그러다보니 인포데스크와 각 출입구들은 문의하는 팬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B게이트에 인원 부족합니다!”

“폴! 케이트! 지원나가!”

“파트장님! F게이트에도 두 명 정도 증원 부탁드립니다.”

“샘, 하치. 나가”

“D게이트에서도······.”

“브래드! 마케팅 팀도 좀 도와줄 수 있나?”

“물론이지. 핫산, 플로라 나가서 도와줘.”

프런트 사무실은 지원나간 인원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단장님. 내일부터는 더 증원해야겠는데요?”

“그러게요. 사무국은 왜 이렇게 늦장을 부리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사무국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통용되는 티케팅 앱을 만들기만 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티케팅 앱을 통해서는 각 구단의 시즌권자들을 포함한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용 티케팅 앱을 만들지 않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이로 인한 문제가 일어났었다는 점이었다.

이미 E-티켓을 도입한 메츠와 그렇지 않았던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상당한 수의 카디널스 팬들이 입장에 어려움을 겪었다.그래서 아직까지 들어오지 못한 팬들을 위해 1차전이 30분 정도 연기되는 일까지 발생했던 것이다.

덕분에 사무국은 내년 포스트시즌에는 전 일정을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용 앱을 내놓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냥 일괄적으로 모든 구단에서 E-티켓을 사용하게 만들면 편할텐데말이죠.”

“그게 또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컵스와 레드삭스와 같은 구단들은 아직까지도 E-티켓 도입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야구의 전통적인 즐거움을 해친다나 뭐라나.

“대체 티켓이랑 입장방법이 왜 야구의 전통적인 즐거움을 해친다는건지 알 수가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반 티켓과 포토티켓까지 발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놨는데 말이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다운은 클라인에게 추가적인 지시를 했다.

“당장 일일 파트타임 모집 사이트에 구인글 올리세요. 클러비들한테도 혹시 일할 지인 있으면 추천하라고 하고요.”

“시급은······.”

클라인은 러셀에게 가면 짜디짠 시급을 내놓을 것을 알고있어서인지 다운이 결정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다운은 웃으며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앤디랑 논의하세요.”

“크흑······.”

클라인은 눈물을 훔치며 러셀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미소지은 다운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7:00

30분 뒤면 경기가 시작한다.

구단주 실 앞으로 간 다운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희미하게 들리는 들어오라는 소리에 다운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잽싸게 문을 닫았다.

“아니 어스틴! 뭐해요!”

글라이드는 창가에 제니퍼의 사진이 구장 안을 바라보게 만들고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야구의 신님,그 외 여러 신님, 제발 우리 레이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이기게, 아니 욕심이 너무 과한가? 일단 1차전에서 이기게 해주십쇼.”

다운은 다시 한 번 블라인드가 쳐져있는지를 확인한 뒤 글라이드의 옆에 의자를 가져다 앉았다.

“이 모습을 직원들이 보면 구단주가 미쳤다고 할걸요?”

“그래서 안보이게 해놨잖냐? 그리고 구단주가 자기 구단이 월드시리즈에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건데 그게 뭐 어때서?”

“보기 남사스럽다는거죠.”

“허이고. 평소에는 남의 시선도 신경안쓰던게 남사스럽다는 표현도 알아?”

“이게 다 구단주님 체통을 지켜드리려는 노력 아니겠습니까?”

다운의 능청에 글라이드가 코웃음을 쳤다.

“퍽이나.”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끌고와 그라운드가 내려다보이게 통유리로 만들어진 곳 앞에 앉았다.

“그나저나 넌 이 시간에 여기엔 웬일이냐?”

보통 다운은 경기 전에는 라커룸에 가서 선수들을 한 번 둘러본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고 여기에 있었다.

“정신이 없어서요. 오늘 브레이브스 팬들이 너무 많이와서 프런트가 정신없었잖아요.”

“그것뿐이냐?”

당연히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치르는 첫 월드시리즈 경기잖아요.”

신경이 날카로운 선수, 긴장하고 있는 선수,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 등 대부분은 처음 맞이하게되는 월드시리즈를 맞아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고 있을거다. 거기에 단장이 나타난다면 부담이 되진 않을까 싶었다.

“부담을 주기 싫다는거냐?”

“네.”

다운의 답에 글라이드가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다운을 꼬나봤다.

“겁나냐?”

“네?”

정곡을 찔렸다.

“평소에는 다 네가 책임지겠다고 하던 놈이 갑자기 왜 월드시리즈 와서 몸을 사리고 있어?”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떨려요, 아니. 겁나요.”

선수들만 월드시리즈에 처음인 것이 아니다. 다운도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라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다보니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생각들이 들려온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이 틀리지는 않았을까?

다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얘가 아니라 쟤를 데려왔어야 했나?

괜히 저 선수를 내줬나?

심지어는 맨브로스키를 내린건 잘못된 일이 아니었을까? 기우는 아니었을까? 경험많은 맨브로스키를 대신해서 아직까지 메이저리그 경험이 단 두 경기 밖에 없는 디아즈를 올린 것은 실책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레이스를 맡기 전에 월드시리즈에서 패배해버린 양키스, 대런의 판단들을 시니컬하게 평가하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가 다시 한 번 느껴질 정도였다.

툭!

복잡한 표정을 짓고있는 다운의 어깨에 글라이드의 손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이건 정다운이 아니잖아. 내가 아는 정다운은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선택을 굳게 믿는 그런 사람이었어.”

글라이드는 다시 한 번 다운의 등을 밀었다.

“평소대로 가서 애들한테 너희를 믿는다고, 우리 프런트도 너희와 함께한다고 전해줘. 그러면 선수들도 힘이 날거다.”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은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생각이 정리된 다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게요.”

***

레이스 라커룸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다들 월드시리즈 경기라는 점에서 긴장한 것이다.

물론 레이스에도 월드시리즈를 경험한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20년에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었던 전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드레이크라던가, 브래넌, 마이어, 더지 등의 선수들은 월드시리즈를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전적은 0승 4패.

그야말로 처참하게 발렸다.

그러다보니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에도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아냐! 내가 여기서 이러면 안돼!’

브래넌이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라커룸의 문이 열렸다.

다운이었다.

그를 본 브래넌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야 왔네!”

평소보다 브래넌이 더 환영하는 듯 엉겨오자 다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얘 왜 이래?”

왜 이러는지 아냐는 듯 선수들을 둘러본 다운은 이내 주머니를 뒤집었다.

“오늘 경기 이긴다고 포상 그런거 없어, 그러니까 제발 좀 떨어져줄래?”

“쳇!”

주머니를 뒤집어 털털 터는 다운과, 그의 말에 정색을 하며 떨어지는 브래넌을 지켜보던 선수들이 여기저기서 피식하며 웃었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조나 파인트였다.

“다운.”

“음?”

“초구 뭐 던질까요?”

설명을 요구하는 여러 시선에 파인트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 월드시리즈에서 다운이 초구 정해줬던게 생각나서요. 그 날 잘 던졌잖아요.”

“아, 엄청 잘했지. 7이닝 0실점이었나?”

“그러니까 오늘도 딱 느낌오는걸로다가 하나 정해줘봐요.”

다운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정말 느낌가는 공을 불렀다.

“커브.”

“오케이. 커브 갑니다. 들었지 알렉스?”

“접수.”

그런 그들의 모습에 다운이 피식 웃었다.

“너희 그래놓고 지면 내 탓 하려고 하는거지?”

다운의 말에 파인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하! 어떻게 알았지? 지면 바로 다운 탓 하려고 했는데.”

“오늘 맞으면 내 리드 때문 아니다. 단장님 때문이다.”

능청스럽게 답하는 파인트와 윌슨 두 사람의 모습에 다운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저 꼴을 보라는 것처럼 선수단을 둘러봤다.

이제 선수들은 그 누구도 긴장한 얼굴이 아니었다. 다들 평소와 같이 농담따먹기하는 라커룸의 분위기에 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다운은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떨리냐?”

다운의 말에 몇몇 선수들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하지만 다운은 멈추지 않았다.

“불안하고 무섭냐?”

다운의 질문에 대답하는 선수는 이번에도 없었다. 하지만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기에 다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두어번 쳤다.

“고작 10분 전에 구단주님한테 듣고 온 질문이야.”

다운의 고백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몇몇 선수들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떨린다. 불안하고 무섭다.”

그리고 구단주실에서 했던 생각들을 풀었다.

“시즌 중에 있었던 그 모든 선택들의 끝에 여기 월드시리즈에 올 수 있었지만, 혹여나 그 선택들에 의해 발목을 잡힐까봐, ‘혹시나 내가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했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들에 떨리고 무서워.”

다운의 말에 파인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나도 오랜만에 오는 월드시리즈에 떨린다. 그래서 다운한테 초구를 물어본거야.”

브래넌도 한 마디를 보탰다.

“은퇴전에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꼭 하나 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봐 무섭다.”

최고참 두 사람이 시작하자 하나 둘 자신의 마음을 풀기 시작했다.

“지난 월드시리즈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하나 했는데, 이번에도 하지는 않을까 걱정돼.”

“지금까지 잘했는데, 월드시리즈에서는 죽쑬까봐 걱정이야. 괜히 날 넣었다는 이야기가 나올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선발들 중에서 내가 제일 못 던졌잖아? 이번 4차전에서도 패배의 원흉이 되면 어떡하지 걱정돼.”

“빅리그 두 경기밖에 안뛰었는데 콜업 기회를 받게되어서 너무 좋아요. 그런데 기회가 왔을 때 제가 잡을 수 있을지, 만약에 잡지 못하면 다음 시즌 입지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합니다.”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다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가 있는 앤디부터 이번에 합류한 빅터까지. 고민이 없는 선수는 없어. 그건 브레이브스도 마찬가지일거다. 최고의 유격수라고 불리는 앤디도, 올 시즌 MVP가 유력한 조나도, 한국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여겨졌던 성찬이도. 빅터와 같이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과 똑같이 불안해하고 있어. 그런데 저 놈들이 멀쩡하다고?”

다운이 원정 라커룸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열성적인 우리 레이스 팬들의 함성까지 더해서 벌벌 떨고있다는데 내 알 한 쪽을 건다!”

다운의 장담에 여기서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두 쪽이 아닙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브래넌이 그런 말은 왜 하냐는 듯 답했다.

“둘 다 걸었다가 대가 끊기면······. 아니지, 단장님 이제 애도 있잖아. 두 쪽 다 걸죠?”

조용히 솟아오른 가운뎃 손가락에 다들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우우!”

“남자도 아니다!”

“두 쪽 다 걸어라!”

선수들의 야유에 다운이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두 쪽 다 건다.”

다운의 말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불안해하는 두 놈들이 만나면 결국에는 걱정이나 잡생각이 적은 쪽이 이기는 법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우리보다 브레이브스가 더 벌벌 떨고있을거라는 내 발언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 두 쪽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걱정고민을 나한테 떠넘기고, 월드시리즈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경기를 즐겨줬으면 좋겠다. 할 수 있냐?”

다운의 외침에 선수들이 웃으며 외쳤다.

“네!”

“그럼 가자!”

“가자! 단장님의 두 쪽을 지키러!”

“Go! Rays!”

“Go! Go!”

< 256화 - 에그가디언 출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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