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54화 (254/268)

< 254화 - 맞겠네 >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벌어지는 3차전은 엄청난 투수전이었다.

따악!

- 타구는 유격수 앞으로, 켈리 부드럽게 잡아서 2루로, 드레이크가 다시 1루로! 공이 바운드됩니다! 서머스의 나이스 픽업! 교과서적인 6-4-3 더블플레이입니다!

- 방금은 정말 좋은 픽업이었어요. 전문 1루수가 아닌 선수들에게는 앞에서 숏 바운드도 아니고 두세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바운드 될때가 가장 무섭거든요. 거기서는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지금 서머스는 끝까지 공을 보고 미트를 땅에 대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튀는 것에 맞춰서 미트를 들어올렸어요.

진성찬이 특유의 사이드암과 땅볼유도로 투구수를 아끼며 타자들을 농락하는 반면

파아아아앙!

“스트라이크 아웃!”

- 와우······.

- 정말 이건, 할 말이 없네요.

- 조엘 블랑코는 정말······.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화이트삭스가 발견한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그러게말입니다. 부상당한 선수도 있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오늘 나올 예정이었던 테드 워스는 이 정도로 압도적인 투수가 아니었거든요. 그가 오늘 발목을 접지르는 바람에 긴급등판하게 된 블랑코가 이 정도로 던져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심지어 감독도 몰랐을걸요? 조엘 블랑코는 고작해야 화이트삭스가 다음 시즌 콜업할 예정이었던 팀 내 1위 투수유망주인 로메로 가르시아를 대신해서 올린 선수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4회까지 43개의 공을 던진 찬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89개의 공으로 레이스 타선에게 1루를 아예 허용하지 않고 있어요.

- 투구수에서 찬은 그 누구도 비교할 수가 없죠. 규정이닝을 던진 선발투수 중에서 이닝당 평균 투구수가 9.8개로 가장 적은 투수니까요. 조나가 10.7개로 2위를 기록하고 있는걸 보면 알 수 있죠. 뭐 중요한건 그게 아니죠.

- 그렇습니다. 중요한건 블랑코가 레이스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고 있다는거죠. 정말 다행인 점은 그의 배터리도 이제 바닥났을거라는 겁니다. 화이트삭스의 불펜진이 가동을 준비하고 있는걸보면 6회부터는 다른 투수가 올라올 것 같군요.

블랑코의 활약은 경기를 지켜보던 다운의 눈마저 사로잡을 정도였다.

“저 친구 괜찮아 보이는데?”

“그렇네요? 저희 애슬레틱스에 데려오면 딱이겠는데요?”

시즌 내내 편하게 이야기하다보니 이제 프레슬리가 애슬레틱스의 차기 단장이 될 예정이라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피셔와의 인터뷰에서 꽤나 좋은 인상을 보였는지 피셔는 어제 드디어 그에게 채용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그럼 프레슬리는 지금 어떻게 여기에 있나?

“제 계약은 이번 시즌이 끝날 때 까지입니다. 그래서 당장에 일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은 시즌 레이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도운 다음에 노하우를 쏙쏙 뽑아오겠습니다!”

프레슬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피셔는 홀라당 넘어갔다고한다.

“노하우를 쏙쏙 뽑아온다는게 이런 뜻이었어?”

“뭐 겸사겸사죠.”

그의 답에 다운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번 시리즈 끝나고나면 엄청 가격 올릴텐데?”

“적당히 등쳐먹어야죠. 또 제가 여기서 배운 짬밥이 있지 않겠습니까?”

“얼씨구? 그러다가 나도 등쳐먹겠다?”

“에헤이~ 저희는 서로 윈윈 해야죠. 단장님이 좋아하시는 윈윈!”

정식으로 채용되더니 하룻밤만에 능글맞음의 수준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은 기분탓일까?

“허 참!”

피식 웃은 다운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해봐라.”

“네.”

고개를 끄덕인 프레슬리는 곧 경기장 안의 상황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도 슬슬 점수를 내야할텐데요······.”

“다음 이닝에서 내겠지.”

5회 초 진성찬은 단 6개의 공으로 또 다시 화이트삭스 타선을 바보로 만들어버렸다.

“단장님. 찬 저한테 주시면 안됩니까?”

다운은 조용히 중지를 들어 프레슬리의 눈 앞에 뒀다.

“누가 올라오려나?”

“토드 클리어워터나 하이메 로드리게스가 올라오겠죠. 아까 불펜보니까 둘이 몸 풀고있더만요.”

“그 전에 몸 푼 투수가 있었나?”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의 불펜은 외야에 위치해있다. 오픈되어있는 곳이라 누가 몸을 풀면 곧바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두 투수를 제외하고 제대로 몸을 푼 선수는 없었다.

“1회에 잠깐 몸 푼 친구는 있었죠. 한 10개 던졌나? 2회에도 한 명 있었고.”

계획된 선발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투입한 선발이었기에 백업할 선수가 1, 2회에 몸을 푸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블랑코가 잘 던지니까 그들을 다시 엉덩이를 벤치에 붙였다. 그런 다음부터는 불펜들은 몸을 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저기 올라오는 저 놈은 클리어워터나 로드리게스가 아닐까?”

마운드를 향해 걸어오는 투수는 클리어워터도, 로드리게스도 아닌 애드 코신스키였다.

“그러게요? 코신스키를 지금 쓰네요?”

코신스키는 3년차 불펜투수로 최고 102마일에 달하는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다. 하지만 대부분의 파이어볼러들이 그렇듯, 그의 제구력은 좋지 않았다. 제구력도 좋지 않은 투수를 몸도 풀지 않고 마운드로 올린다?

“뭔가 꺼림칙한데요?”

6회 초 레이스의 타선은 6번 서머스, 7번 비어만, 8번 올드먼으로 이어졌다.

“일단 지켜보자고.”

꺼림칙하던 느낌과는 다르게 코신스키는 선두타자로 나선 서머스와 2볼 2스트라이크의 승부 끝에 안타를 허용했다.

따악!

- 3유간을 깔끔하게 꿰뚫는 서머스의 안타!

- 코신스키가 올라오자마자 안타를 얻어맞네요. 이렇게되면 화이트삭스는 다음 투수도 빠르게 준비해야겠는데요?

- 이미 클리어워터와 로드리게스가 몸을 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 MVP 후보 5인 중 하나인 비어만이 타석에 들어서는군요.

- 조나, 찬, 켈리, 샘까지. MVP 후보가 무려 네 명이나 있는 팀이라니, 정말 몇 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텐데 말이죠.

- 그만큼 저희 레이스가 강한 팀이 되었다는 이야기겠죠. 자 이제 비어만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아까 느꼈던 꺼림칙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

꺼림칙함을 느낀 것은 비단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서 코신스키라고?”

코신스키는 화이트삭스의 필승조라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해서 패배조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제구가 잘 되는 날에는 최고 102마일짜리 싱커를 앞세워 엄청난 구위로 상대 타자들을 찍어눌러버리는게 바로 코신스키였으니까. 하지만 블랑코가 앞서 엄청난 퍼포먼스로 5이닝을 막아낸 상황에서 확실한 승리조라고 할 수 있는 클리어워터나 로드리게스가 아니라 코신스키를 지금 타이밍에 올렸다는건 이상했다.

“혹시······.”

벤치코치가 Hoxy를 시전했지만 캐시는 곧바로 말을 끊었다.

“확실치 않은건 이야기하지 말자고. 다만 애들보고 조심하라고는 말해줘.”

“알겠습니다.”

하지만 코치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코치가 이제 막 더그아웃을 나서려는 서머스에게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이미 브래넌이 들러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 지금 상황에서 코신스키는 말이 안돼. 분명 저놈들 뭔가 속셈이 있을거야. 예를들면 일부러 맞힌다던가 하는 그런 식의 속셈이.”

“저 놈은 그 정도의 제구가 안되잖아요?”

“그걸 노린거라니까? 원래 제구가 안되는거라며 ‘어쩔?’이걸 시전하려고 하는거라고. 그리고 내가 봤을 땐, 그 대상이 너나 샘일 확률이 높아. 현재 우리 팀에서 1루에서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건 너밖에 없고, 샘은 둘 밖에 없는 포수 중 하나니까. 그러니 조심해.”

“저는 그래도 엘보우 가드도 차는데요?”

“핸드가드도 차고 나가. 손뼈 부서지면 답도 없다.”

“아이 참, 타석에서 걸거치는데······.”

“그 결정 하나가 네 커리어를 크게 걸고 넘어질 수도 있다는걸 명심해. 너 만약에 부상당해서 내리막 타면 단장님이 우리 팀에 냅둘것 같아?”

브래넌의 말에 옆에서 듣고있던 비어만이 고개를 흔들며 조용히 핸드가드를 찼다.

“티나 생각해야지?”

“아 정말, 알겠어요. 찬다 차!”

투덜대며 핸드가드를 차고 있는 그에게 올드먼이 마운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별 일 안생길거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너희는 중심으로 빨려들어가지 마. 내 뒤에 서라. 알겠어? 앞서나가지 마. 너네 퇴장 당하면 진짜 망한다.”

그의 스산한 눈빛을 보며 서머스와 비어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따악!

“휘이이익! 잘한다 알!”

“나이스 배팅!”

“점수 내자! 찬 도와줘야지!”

“그래 인마! 나 좀 도와줘라! 비어만 홈런~! 짝짝짝짝짝!”

서머스의 안타로 더그아웃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비어만이 좌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컨디션이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네.’

서머스를 상대하는 동안 최고구속은 98마일. 코신스키가 자랑하는 102마일짜리 싱커는 오늘 보이지 않았다. 쌀쌀한 시카고의 날씨 때문에 아직 몸이 덜 풀렸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비어만은 여전히 100마일 이상의 공을 머리에서 지우지 않았다.

‘그럼 앞선 알의 타석보다 조금 더 빠른 타이밍을 잡아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선 타석.

비어만의 오른발은 코신스키의 왼발이 들릴 때, 같이 들렸다. 그리고 코신스키의 오른팔이 앞으로 쭉 뻗어져나와 공을 뿌리는 순간 느꼈다.

‘맞겠네.’

스윙을 하던 도중이라 등을 돌리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운데 어정쩡하게 빠지고 있던 오른손이 타겟이 되었다.

퍽!

공을 맞는 순간 비어만은 격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대기타석에 있던 올드먼이 달려나갔다.

“야 이 개애애애 자식아!”

올드먼은 자신을 막기 위해서 달려오는 포수를 한 손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1루에서(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의 홈 더그아웃은 3루다) 달려오는 맷 고어의 턱에 깔끔하게 펀치를 먹였다.

“어딜 가려······ 억!”

그리고 마운드에서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던 코신스키의 오른손을 살짝 쳐낸 다음에 비어있는 그의 옆구리에 강력한 보디블로우를 먹였다.

“으억!”

비어만이 쓰러지고 난 다음부터 10초가 되지 않은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양 측 더그아웃에서 튀어나온 선수들이 벙찔 수 밖에 없었다.

“어······.”

이미 싸움의 원인이 된 투수는 누워있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은 순식간에 포수를 밀치고 고어와 코신스키를 때려눕힌 올드먼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어만은 아직도 고통을 호소하며 누워있는 상황.

올리버는 가장 가까이에서 ‘당신 누구야?’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서머스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한창 방황할때 많이 싸웠거든.”

어쩐지 오늘따라 그의 전신을 가득채운 타투가 더욱 무섭게 다가왔다.

상황이 소강상태에 접어든(사실 달아오르지도 못했지만) 틈을 타 구심이 멈칫하는 두 팀을 갈랐다.

“올드먼! 퇴장! 그리고 빨리 의료진 들어와!”

다행히 비어만은 핸드가드를 찬 부분에 맞았는지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듯 했다. 그리고 간만에 기회를 잡은 레이몬드가 선취 및 결승점을 올리는 덕에 레이스는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레이스 선수단은 한 가지를 머리에 새겼다.

‘올리한테 개기지 말아야겠다.’

< 254화 - 맞겠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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