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53화 (253/268)

< 253화 - 낚시 좋아하시나요?(2) >

멘탈을 터트릴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일까?

바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예상치도 못하게 뒷통수를 후려갈기는거다.

따악!

- 맷 고어가 쳤습니다! 우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타구! 고어는 2루를, 2루를 지나! 아, 2루에 멈췄습니다!

- 스프라우트나 스탠하우스의 어깨를 생각하면 3루까지 뛰기는 쉽지 않죠.

- 주자 억제력. 이게 바로 우익수와 중견수의 어깨가 중요한 이유죠.

- 그렇습니다. 고어의 2루타로 인해서 더지가 7회에 다시 한 번 화이트삭스가 득점권에 가는 것을 허용합니다.

- 이렇게 되면 투수를 바꿀 수도 있겠는데요? 투수코치와 비어만이 마운드로 올라가네요.

마운드에 올라간 코치는 더지의 등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 리키?”

더지의 투구수는 이제 95구다. 파인트와 같은 투수들은 100구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체력을 배분할 수 있는 노련함이 있지만, 더지에게는 아직까지 그 정도의 능력까지는 없었다. 1회부터 98마일 패스트볼을 뿌려댔던 더지는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원한다면 지금 교체해줄 수도 있어. 알마다가 몸 다 풀고 대기하고 있고, 짐도 몸 풀기 시작했어.”

“보스는 뭐랬어요?”

지금은 레이스만 1점을 내고있는 터프한 상황이다.

“나는 교체를 제안했어. 하지만 보스는 너에게 이런 상황이 도움이 될거라며 너에게 결정을 맡겼어.”

보스의 뜻이 그렇다면 자신은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한 타자 정도는 더 상대할 수 있어요.”

“오케이. 아직까지 그거 안써먹었지?”

비어만과 더지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깔끔하게 이닝 끝내고 내려오자 오케이?”

“네.”

“결정구는 어떻게 할까?”

“슬라이더로 가자. 오늘 공 좋더라.”

“오케이.”

투수코치와 함께 비어만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온 앨런 폰테를 흘끗 쳐다봤다.

‘앨런 폰테. 한 방이 있는 우타자로 타율은 낮다. 브레이킹 볼 보다는 패스트볼에 강한 전형적인 공갈포 타입.’

하지만 선구안이 나쁘지 않고, 나쁜 공은 치지 않는 경향이 있는 좋은 타자였다.

‘일단 첫 공은······.’

슬라이더다.

우타자의 먼 곳에서부터 휘어들어와서 존으로 들어오는 슬라이더에 폰테는 무지막지한 스윙을 선사했다.

후우우웅!

파아아앙!

배트로 인한 풍압에 일순간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그의 배트는 리키의 슬라이더를 맞추는데 실패했다.

‘좋아. 이걸로 카운트 하나.’

다음 공은 몸 쪽 패스트볼.

1회와는 다르게 94마일까지 구속이 떨어졌었던 더지였는데, 이제 마지막 타자라는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구속이 96마일까지 올라왔다.

파아아아앙!

완벽하게 보더라인에 걸친 공은 아니었지만, 몸 쪽 깊숙히 파고드는 96마일짜리 패스트볼에 폰테가 얼어붙었다.

‘좋다 좋아.’

앞선 타자보다 2마일이나 빠른 공으로 윽박질러놓은 상황. 누가봐도 이 순간 들어가야할 공은 체인지업이나 커브같은 타이밍을 빼앗는 공이다. 심지어 화이트삭스 타자들은 체인지업이 결정구로 들어올거라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을 터.

비어만은 약속했던 사인을 그대로 냈다.

‘발목으로 꺾여들어가는 슬라이더.’

위치는 존에 살짝 걸치도록. 조금 여유있게 들어와도 된다. 체인지업보다 빠른 타이밍에 다른 궤적을 그리며 들어오는 슬라이더는 체인지업을 노리고 있는 선수의 스윙에 맞아나가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슈우우우웅!

더지의 슬라이더는 자신의 미트가 있는 곳으로 정확히 말려들어왔다. 적당히 존에 걸치는 그런 위치로 말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보여서는 안될 그런 것이 비어만의 시야를 가렸다.

따아아아아아악!

“어?”

- 아······. 폰테의 타구가 높이 뜹니다.

- 이건 더 보지 않더라도 갔군요. 완벽히 노리고 있었어요.

- 폰테의 투런포가 터지면서 화이트삭스가 앞서나갑니다.

화이트삭스의 더그아웃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푸하하하! 내가 말했지? 분명히 저 녀석들 역이용하려고 한다니까?”

레이스가 만약에 알아채지 못했다면 1회 우타자들이 셋 나갔을 때부터 슬라이더-패스트볼-체인지업 조합을 썼을 것이다. 올 시즌 후반기 들어서 그게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자주 써먹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저들은 그 조합을 써먹지 않았다.

그렇다는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1. 해당 약점을 알아내고, 그 조합을 피하기로 했다.

2. 해당 약점을 알아내고, 화이트삭스를 낚아먹기로 했다.

3회에 슬라이더-패스트볼에 이어 체인지업이 들어왔을 때, 레이스가 1번이 아닌 2번을 택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저런 낚시에서 가장 큰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건 주자가 득점권에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더지의 투구수가 한계에 달해가는 지금 이 타이밍에 분명히 레이스는 자신들을 낚기 위해서 폰테를 상대로 써먹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타석에 들어가기 전 폰테에게

“무조건 슬라이더 노려. 넌 패스트볼에 강하니까 패스트볼은 뺄거고, 체인지업을 기다리다가 대처가 가능한 커브는 절대로 안 던질거야. 그러면 슬라이더밖에 없어. 무조건 슬라이더야. 오케이?”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투런포로 돌아온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격을 얻어맞은 레이스 더그아웃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알마다 올려! 리키랑 샘 잘 달래고.”

“넵!”

“알렉스!”

“예스 보스!”

“샘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 교체 준비해. 조나! 찬! 리키 들어오면 둘 다 이야기 좀 잘 해줘.”

“맡겨두세요.”

빠른 타이밍에 캐시가 수습을 했기 때문일까?

화이트삭스는 흐름을 타지 못했다.

- 알마다가 1.1 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냅니다!”

- 이번 포스트시즌 첫 출전인데도 떨지 않고 자신의 공을 완벽하게 꽂아넣네요.

- 레이스의 미래가 아주 밝네요.

그리고 야구의 흐름이라는 건 한 쪽이 막히면 한 쪽이 뚫리기 마련이다.

따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아아아!

- 쳤습니다! 쳤습니다! 배리 브래넌! 배리 브래넌! 동점 솔로 홈런!

따아아아악!

- 갑니다! 또 갑니다! 알버트 서머스! 역전 솔로 호오오옴런!

브래넌과 서머스의 백투백 다음에 윌슨이 아웃을 당했다. 하지만 다음 타자는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타격감이 좋은 올드먼이다.

따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아!

- 올리! 올리! 올리버 올드먼이 또 한 번 홈런을 칩니다!

- 이번 가을은 올드먼의 것이네요! 올리 더 옥토버 올드먼! 레이스에게 승기를 다시 가져옵니다!

- 승리를 가져왔다고 하셔야죠 하하! 이번 시즌 레이스가 이기고 있을 때 9회 실점률은 최하수준이니까요!

- 하하하! 올 시즌 세이브 상황에서 제프리스가 블론한 경기는 단 한 번밖에 없었죠. 하지만 오늘의 등판이 제프리스의 커리어 첫 번째 포스트시즌 등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합니다. 시즌중과는 분위기부터 상대 타자들이 독이 오른 정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거든요.

- 그래도 제프리스라면 잘 이겨낼 것 같네요.

-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관중들 역시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제프리스를 환영하네요!

제프리스는 이런 해설진들과 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파아아앙!

- 스트라이크 아웃! 제프리스 자신의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서 세이브를 기록하고 활짝 웃고 있습니다!

- 하하!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토록 염원하던 포스트시즌에서의 첫 피칭인데 말이죠!

- 홈에서 벌어지는 2연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고 마음 편하게 원정을 떠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올 시즌 화이트삭스는 홈에서의 승률이 상당히 좋거든요.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는 과연 어떤 경기가 펼쳐질까요? 그럼 저희는 3차전에서 뵙겠습니다!

***

경기가 종료된 뒤 다운은 곧장 라커룸으로 가서 선수단에게 사과했다.

“우리 프런트 때문에 잘못하면 경기를 내줄 뻔 했어. 이건 우리 프런트의 확실한 불찰이야. 미안하다.”

이쪽에서 일부러 알아냈다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낚으려고 했는데, 그것마저도 화이트삭스의 낚시질 범위 안에 있었다. 만약에 레이스 타선이 힘을 발휘해주지 않았다면 이번 경기는 분명 패배했을거다.

물론 캐시 역시 이 낚시에 찬성했고, 더지와 비어만도 이번 일의 기본중의 기본이 되는 도화선을 제공했다는 책임소재는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경기를 치뤄야하는 선수들이 죄책감을 갖거나, 선수들이 믿고 따라야하는 감독이 패배의 원인이 될 뻔 했다는 상황을 만드는 건 좋지 않았다. 6차전이나, 월드시리즈에서도 등판해야할지도 모를 더지나, 또 포수마스크를 써야하는 비어만이 지금처럼 꿍해 있는것보다는, 차라리 다운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는게 나았다.

다운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짐작한 캐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우리도 잘 하다가 못하는 날이 있잖아? 프런트가 항상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는걸 모르는 애들은 없어. 그저 이번 한 번 낚인거지. 이건 그냥 저쪽이 잘한거야. 그치?”

캐시의 말에 브래넌이 앞으로 나오면서 박수를 쳤다.

“맞아. 이번에는 저쪽이 머리를 잘 쓴 것 뿐이야. 우리 프런트는 잘 하다가 이번에 속았을 뿐이고. 별것 아닌 이런 실수에 위축되어버리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어. 우린 프런트가 계속해서 우리를 전력으로 도와줄 수 있게 이해하고 응원해줘야해.”

마치 자신들에게 하는 말 처럼 들렸는지 비어만과 더지가 살짝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헤이! 다들 모여봐!”

브래넌이 손짓으로 모두를 동그랗게 모이게 만들었다.

“내가 셋을 세면 모두 승리의 고함을 지르고 오늘 일은 잊는거다. 오늘 잘한 사람도, 실수한 사람도 모두 잊는거야. 그리고 소리가 끝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3차전만 생각하자.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3차전을 앞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건 옳지 않은 일이야.”

브래넌의 말에 진성찬도 능글맞게 나섰다.

“나 이기고싶다. 내 경기에도 집중해줘. 안 그러면 너희 불닭볶음면 먹일거야. 져도 먹일거야.”

진성찬의 말에 여기저기서 피식 웃으면서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 찬은 물러가라!”

“젠장할 그건 음식이 아니잖아! 고문이라고!”

“우리 할머니가 먹을걸로 장난치는게 제일 나쁜거랬어! 찬 그러지 말자!”

“난 맛있던데?”

“닥쳐 알버트. 넌 혀가 없잖아. 샘 넌 어떻게 생각해?”

드레이크의 말에 비어만 역시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슬며시 웃었다.

“알버트는 미각이 마비됐지.”

“미뢰가 죽었을거야.”

“그······. 매운맛을 느끼는건 통각인데······?”

“니가 제일 나빠 글렌. 안그래 리키?”

순식간에 떠들썩해진 선수들 사이에서 비어만과 더지의 표정이 살짝 풀린 것이 보였다. 브래넌 역시 그것을 확인했는지 씨익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자 그럼 간다! 셋! 둘!”

“와아아아아아아아!”

“야! 아직 하나 안했······.”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아아아아아아!”

“우리가 2차전도 이겼다고오오오!”

“다 나와아아아아!”

“아니 아직 하나 안 외쳤······.”

“3차전으로 가자아아아아아!”

< 253화 - 낚시 좋아하시나요?(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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