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화 - 영웅이 되기 위해서(2) >
- 케빈 캐시가 여기서 대타 카드를 꺼내듭니다.
- 오늘 메이슨은 호시노의 공에 손도 못댔죠. 끝내기 찬스가 올 수도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메이슨보다는 확실히 다른 선수가 나아보입니다. 아마 지금 쓸 수 있는 대타 카드 중에서 가장 좋은건 아마 맨브로스키가 아닐까 싶은데요? 좌타에 한 방이 있고 장타능력이 좋죠. 타율은 조금 떨어지지만 출루율은 좋은 편이니······.
- 어? 그런데 지금 올드먼이 나오는데요?
- 여기서 올드먼을 쓴다고요?
의아해하는 중계진들과는 다르게 관중들은 열과 성을 다해 응원했다. 그저 오늘 저 미친 포스의 호시노의 공을 때려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올리이버!
올드으먼!
- 올드먼은 올 시즌 호시노를 상대로 단 한 차례도 타석에 들어선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그를 올렸다는건 분명 믿고있는 바가 있다는 것일텐데요.
- 캐시 감독이 아무런 생각없이 대타기용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요. 일단은 믿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중계에서는 올드먼의 기용에 대해서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올드먼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올드먼에게 들리는 소리는 오직
올리이버!
올드으먼!
올리이버!
올드으먼!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정확히는
“아빠! 안타! 아빠! 안타!”
홈 더그아웃 옆에서 목이 터져라 자신을 응원하는 아들의 목소리만이 귀에 들어왔다. 홈 더그아웃이 1루쪽이라 아들의 얼굴을 보며 타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얼굴을 보면 제대로 타격에 집중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헤이 올리! 그만 타석에 들어와.”
심판의 말에 올드먼은 마구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무시한채 타석에 발을 들였다.
“후우우우우!”
크게 숨을 내쉬며 더그아웃에서 나서기 전 전력분석팀이 읊어준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올리. 오늘의 호시노는 패스트볼, 슬라이더, 스플리터가 미쳤어. 그에 비해서 커브는 쓰지 않고있지. 오늘 커브 컨디션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거든. 고작 두 개밖에 안던질 정도였지. 그러니까 커브는 버리고 무조건 앞선 세 구종에 포커스를 맞춰.”
그들이 말해준 내용대로라면 자신이 노려야 할 공은 패스트볼, 슬라이더, 스플리터의 빠른 공 계열이다.
하지만 올드먼의 생각은 달랐다.
‘나한테 패스트볼? 안쓸 것 같은데?’
오늘의 호시노는 미쳤다.
1회부터 9회까지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뻥뻥 꽂아대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기에 다들 잊고있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의 체력도 분명히 떨어졌을 것이란 것.
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치면서 올드먼은 상당히 자기객관화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객관화를 적용시킨 결과가 바로 저거다.
‘대타라고는 하지만 정규시즌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날 상대로 호시노가 과연 전력을 다해 던질까?’
이미 직전 타석에서 드레이크가 6개의 공을 소비시키고, 출루까지 만들어냈다.
심지어 이어지는 타선을 봐라.
오늘 안타 하나가 있는 앤드류 켈리, 정규시즌 내내 호시노를 상대로 강했던 알렉스 스프라우트가 뒤이어 나온다.
그 사이 준비를 완료한 호시노가 왼발을 들어올렸다.
슈우우우우웅!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패스트볼이 곧이어 굉음과 함께 미트에 틀어박혔다.
파아아아앙!
몸이 절로 움찔댈 정도의 엄청난 구위의 패스트볼이다. 하지만 그걸 바라본 올드먼은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94마일이다.’
앞선 타석에서 100마일짜리 공을 세 개나 던지며 힘을 뺐다. 그런만큼 이후 이어지는 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의 타석에서 힘을 줄인 것이다.
‘여기서 슬라이더나 스플리터? 안들어올 것 같은데?’
슬라이더나 스플리터보다 힘이 덜 들어가면서도 타이밍 차이를 많이 줄 수 있는 커브. 왠지 그 공이 결정구로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확실히 먹게 해주려면 자신이 해야할 행동은 명확했다.
슈우우우웅!
따악!
올드먼은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살짝 늦은 타이밍으로 커트해냈다. 그리고 살짝 몸을 돌리며 포수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좋아. 조금만 빠르게······.”
나는 빠른 타이밍에 맞출거니까 제대로 낚으려면 커브를 던져라는 의미의 중얼거림. 포수가 제대로 알아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한 번 더 세팅을 하려다가는 들킬 확률이 높았다.
올드먼은 다시 배트를 움켜쥐고 타석에 들어섰다.
“후우우우우!”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건 제발 커브를 던지기를 기도하면서, 70마일 중후반에 형성되는 호시노의 커브 타이밍에 배트를 휘두르는 것 밖에는 없었다.
세트포지션으로 있던 호시노가 1루에 있는 주자를 한 번 째려본 뒤 왼발을 미끄러지듯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커브다!’
어린시절이었다면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고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36살의 노장이 된 올드먼은 덤덤하게 현 상황을 보며 자신의 스윙을 가져갈 정도의 마음 다스림이 가능했다.
정확히 커브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휘둘러진 배트는
따아아아아아아악!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타구를 멀리 날려보냈다.
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들에게 자신은 오늘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
올드먼의 끝내기 투런포로 1차전을 승리한 레이스는 2차전에는 더욱 기세를 끌어올렸다.
첫 경기를 이기고 기세가 올라온 레이스와, 한풀 기세가 꺾인 에인절스.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이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뻔할 뻔자였다.
- 오늘 경기는 할 말이 없네요.
- 저도 마찬가집니다. 너무 초반부터 몰아쳤어요. 1회부터 무려 6점을 뽑아낸 덕에 에인절스의 투수진이 갈려나갔죠.
1회부터 6점이나 털린 탓에 곧바로 투수를 교체해야했던 에인절스는 총 7명의 투수를 써야했다. 정규시즌이었다면, 하다못해 1승이 있었다면 야수를 올리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차전을 지게되면 한 경기만 더 지면 떨어지게 되는 탓에 에인절스는 최선을 다해서 점수를 내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에인절스는 3회 3점, 7회 2점을 추가하면서 경기를 따라잡나 싶었다.
따아아아아악!
- 갑니다! 갔습니다! 배리 브래넌! 이번 포스트시즌의 첫 홈런포를 오늘! 쏘아올립니다!
- 완전히 도망가는 브래넌의 쓰리런!
8회 말 터진 브래넌의 3점 홈런으로 인해서 또 한 번 패배의 고배를 들이켜야했다.
그리고 LA로 넘어가서 치르는 3차전.
3차전의 주인공은 9이닝 19K, 87구 완봉승을 한 진성찬이 아니었다.
따아아악!
- 쳤습니다! 또 쳤습니다! 올리버 올드먼! 아니, 올리버 옥토버가 또 다시 안타를 때려내면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합니다!
선발 2루수로 출장해서 다섯 번 타석에 들어서서 5타수 5안타, 2홈런, 8타점을 포함해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올리버 올드먼이 바로 3차전의 주인공이었다.
“오늘 에인절스를 완전히 침몰시킨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뭐 따로 준비할게 있었나요? 그저 저는 저희 전력분석팀이 준비한대로 선수단과 함께 성실히 준비했을 뿐입니다.”
“이번 디비전 시리즈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누구에게 감사하시나요?”
“제 과거가 있는데도 저를 잘 받아들여준 레이스 팀원들,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 수 있게 도와준 스캇. 저에게 포스트시즌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우리 단장님, 감독님. 감사할 사람이 너무 많네요 하하! 그리고 저를 추천해준 찬에게 감사합니다. 이봐 찬. 너는 말하지 않았지만 네가 추천한거 다 알고 있다고. 무엇보다 제가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해서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도록 서포트해준 우리 가족들. 엠마, 벤. 많이 사랑한다.”
***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운은 올드먼을 찾아갔다.
“단장님? 무슨일로······.”
디비전 시리즈가 끝나면 다시 한 번 더 로스터를 변경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다운은 올드먼을 빼고, 다른 선수를 넣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드먼은 한껏 긴장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요 올리. 걱정하는 것처럼 로스터에서 빼겠다고 부른건 아니니까요.”
웃으며 말하는 다운이 물컵을 내밀었다. 그의 태도에 올드먼도 긴장을 풀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게 다 티가 났습니까?”
“벤이 와도 알아챘을걸요?”
“하하······.”
올드먼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다른건 없고, 그냥 탬파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고 싶어서요.”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요?”
“가족들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엠마같은 경우는 한국을 좋아한다고, 거기서 더 살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는 한국에 있을때보다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특히나 레이스 1군 선수단의 와이프들과 자주 만나서 모인다는데 거기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귄 모양이었다.
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쓰는 친구들을 사귀기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집에서 엄마와 함께 노는게 그의 전부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른 선수들의 아이들과도 놀 수 있고, 이번 가을에는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고 했다.
“다행이네요.”
알 수 없는 말을 한 다운은 곧이어 그에게 하나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1년 300만 달러짜리 계약서에요.”
“네?”
다운이 자신에게 연장계약을 제안할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올드먼은 정말로 깜짝 놀랐다.
“여, 연장계약이요?”
“네. 대신 조건이 있어요. 1루 수비와 코너 외야 수비를 소화할 수 있어야해요.”
너무 이른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운 역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맨브로스키가 떠난다. 브라이언과는 연장계약을 맺었고, 앳킨슨이 남아있긴 하지만 둘 다 1루수로는 별로야. 그리고 내년이 첫 풀타임인 레이몬드는 체력적으로 분명히 문제를 보일거야. 그 부담을 나눠가질 선수가 하나는 필요해.’
거기다가 이번 가을에서의 활약을 생각해봐라. 디비전 시리즈에서만 두 경기에서 홈런 3개 10타점을 올린 선수다. 앞으로 어떤 활약을 할지는 모르지만, 이번 시즌뿐만 아니라 다음 시즌에도, 그 다음 시즌에도 대권 도전을 노리는 팀을 만들고 싶은 다운에게 가을 DNA의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는 필수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많은 역경을 거쳐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은퇴를 하게 된 브래넌의 공백을 그가 한 시즌 정도는 메워줄 수 있을 것으라 생각했다. 투수진에는 파인트나 진성찬이 있지만 야수진에서 그런 경험을 전해줄 선수는 마이어나 켈리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마이어는 수비적인 측면을 제외하고는 배울점이 큰 선수라고 보기에는 힘들었고, 켈리는 ‘그냥 하면 되는데 왜 못해?’라는 천재형 선수였다. 한때는 천재형이었지만 여러 역경과 노력을 거쳐서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된 올드먼이라면 분명히 팀 멘탈리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솔직히 300만 달러라는 돈이 큰 돈이 아니라는건 인정해요. 이번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더 좋은 제안을 스캇이 물고 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희 구단만큼 가족들이 지내기 좋은 것은 없을거라 확신하죠. 그리고 50경기 출장보장 조건도 걸어줄 수 있어요.”
다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한 번 생각해봐요.”
다운은 생각해보라며 떠났지만 올드먼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하자.’
벤에게 한 시즌 정도는 더 영웅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 250화 - 영웅이 되기 위해서(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