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영웅이 되기 위해서 >
첫 타자인 드레이크가 101마일짜리 공에 헛스윙을 하자 더그아웃에서도 탄식이 터져나왔다.
“와 씨······.”
“저 미친 놈. 아직도 100마일을 던져?”
“조나도 만만치 않잖아.”
파인트마저도 오타니의 공에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저건 못해. 난 일부러 오늘 길게 던지려고 구속 낮추고 제구하고 변화각 위주로 투구한거잖아. 그에 비해서 저 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매 이닝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거야.”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포스트시즌이니까 힘이 빡 들어간건가?”
“그렇다고 봐야지. 근데 워낙에 공이 좋으니까 아무도 못치는거고. 난 놈은 난 놈이야.”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질린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한 사람만큼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보고 있었다.
‘누굴 넣지?’
어떻게든 투구수를 늘리라는 명을 받고 들어간 드레이크다. 출루를 하면 좋겠지만, 커트에만 집중해서는 안타를 때려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건 상대적으로 힘이 빠진 호시노를 공략할 2번부터가 중요해진다는 말이다.
이어지는건 2번 타자인 스탠하우스, 3번 앤드류 켈리.
켈리는 오늘 안타가 하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꽤나 기대해볼만했다. 하지만 스탠하우스는 오늘 호시노에게 삼진만 세 번을 당했다. 네 번째 타석이라고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는건 대타를 쓸 타이밍이라는 말이다.
‘지금 쓸 수 있는건 넷.’
앳킨슨은 윌슨의 안타때 대주자로 교체되었고, 그 다음에 비어만이 다시 앳킨슨을 대신해서 들어갔다. 고로 남은건
롭 맨브로스키
브라이언 앤더슨
올리버 올드먼
케빈 마이어
이렇게 네 명이었다.
‘일단 케빈은 빼야돼.’
만약에 경기가 길어진다면 이번 교체 이후에 스탠하우스를 대신해서 들어갈 선수는 마이어밖에 없었다. 물론 스프라우트가 중견수로 이동하고 앤더슨이 우익수를 보는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수비의 견고함과 안정성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앤더슨보다는 마이어가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고로 앤더슨도 제외.’
경기가 길어지고 또 다시 대타를 써야할 상황이 나오면, 그것도 외야수 차례의 대타가 나와버리면 외야수비를 볼 수 있는 자원은 앤더슨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앤더슨은 아껴둬야한다. 그리고 앤더슨은 우완보다는 좌완을 상대로 타율이 더 좋다. 그를 쓰는 것 보다는 좌타자인 맨브로스키나 올드먼을 쓰는게 낫다.
캐시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을 때
딱!
빗맞은 타격음이 들렸다.
애매한 높이로 타구가 떠오르자 글라이드 파크에 있는 모든 시선이 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공이 2루수와 우익수, 그리고 중견수 사이에 떨어지는 그 순간 쌓여왔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드레이크는 1루에 들어갔다.
무사 1루 상황에서 들어갈 다음 타자.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메이슨!”
“넵!”
“교체다! 그리고 ㄹ······.”
맨브로스키를 부르려는 순간 다운이 했던 말, 그리고 진성찬이 자신있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규시즌에는 피안타 4개, 피홈런 0개였는데 포스트시즌에서는 4년 내내 만나서 16번에 1볼넷, 2삼진, 10피안타, 3피홈런이었대요.’
정말로 올드먼이 가을 DNA가 있다면, 그걸 확인해야하는 타이밍은 바로 첫 경기인 오늘이어야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경기에서 올드먼을 믿어볼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테니까.
“올리버!”
자신의 이름이 불릴거라는건 생각지도 못했는지 올드먼이 움찔했다.
“네, 넵!”
“시원하게 휘두르고 와라!”
“넵!”
***
올드먼이 쫓겨나듯이 미국을 떠났을 때는 그가 29살일 때였다. 일본프로야구에 발을 디딘 올드먼은 2년간 오릭스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을 망치자 일본에서는 더이상 계약이 날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32세의 나이로 그는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진 4년.
자! 다 같이 갑니다!
빠빵빵빵빵!
오올~ 드으~ 먼! 나이츠! 오올~ 드으~ 먼! 홈런을 날려줘요~ 올! 드! 먼!
나이츠 용병 사상 최소경기 100홈런 달성과 더불어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한 그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엄청난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치르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한국의 음식도 마음에 들었고, 빠른 문화도 마음에 들었다. 아내와 어린 아들이 살기에도 좋은 치안 역시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올드먼은 이곳에서 뛰다가 은퇴를 할 생각이었다. 가족들이 원한다면 한국에 남아있을 생각 역시 하고 있었다.
“2년 계약을 제안하지. 연 240만 달러로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은 안되지만, 역대 한국 용병 최고액이야.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은퇴 후에는 우리 구단의 해외 담당 스카우트로 일해줬으면 좋겠어. 메이저리그와 NPB, 그리고 한국야구를 경험했고, 이런저런 힘든 상황들을 많이 극복해온 올리버 너라면 좋은 스카우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니까 저도 기쁘네요. 그래도 이런 결정은 저 혼자서 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요. 집에 가서 가족들과 상의해보도록하죠.”
“좋은 소식 기다리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2024년과 2025년은 한국에서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6살 난 아들이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를 보며 자신에게 말했다.
“아빠. 저 사람들도 야구하는데 본 적 없는 팀이야.”
유니폼을 보니까 레이스다.
“하하! 벤. 저 사람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한국 야구고, 저기는 미국 야구.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
‘나도 예전에는 저기서 뛰었을 때가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을 때, 벤이 물었다.
“근데 아빠는 왜 저기서 안 뛰어?”
나쁜 의도는 없었을거다.
6살 짜리가 무슨 의도가 있었겠나.
벤은 일본에서 야구를 하는 첫 해에 태어나서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걸 본적이 없었다. 아마 기억이 있을 순간부터는 한국에서 엄청난 환호성을 받으며 야구를 하는 자신의 모습만을 봤을거다.
벤이 보기에 자신은 한국에서 엄청난 환호성과 응원을 받으며, 길가다가도 사인을 해주는 엄청난 야구선수다. 그런데 왜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뛰지 않는 것인지가 궁금했을거다.
“벤. 아빠는······.”
아내가 침착하게 어린 아들에게 설명을 하려는 순간 올드먼은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웃으면서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아빠가 저기에서 뛰는거 보고싶어?”
자신의 물음에 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빠도 야구 잘하잖아!”
어린 아들들에게 모든 아버지들은 영웅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은 아버지는 세상에 없을거다. 올드먼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마지막은 메이저리그에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솔직히 아깝다. 한국에서 나이츠의 손을 잡는다면 최소 2년간은 안정적으로 돈을 벌면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약속된 해외 스카우트까지 생각하면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전환할 수 있는 발판까지도 깔려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드먼의 선택은 아들에게 단 한 경기라도 자신이 메이저리그라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올리. 한국에 있는게 낫지 않겠어?”
“아니.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의 난 너무 못난 사람이었어. 그래서 적어도 당신, 그리고 내 아들에게만큼은 멋진 남편과 아빠가 되고싶어.”
마약에 빠져있을 때 시설에서 자원봉사자로 만났던 아내는 언제나 자신의 가장 큰 서포터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는 올드먼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당신은 이미 나한테는 너무 멋진 남편이야. 벤에게도 멋진 아빠라고 생각은 하지만, 자기가 조금 더 멋져지고 싶다는데 내가 그걸 막을 수는 없잖아? 응원할게.”
메이저리그 도전을 결정한 올드먼은 곧바로 예전의 인연을 찾았다.
“스캇.”
[올리. 안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잘 됐네. 나이츠의 제안을 거절했다면서. 왜 그런거야?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보라스는 자신이 드래프트 될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자신을 맡아주는 의리있고 능력있는 에이전트였다. 남들에게는 돈에 미친 에이전트로 보이지만, 자신에게는 언제나 ‘올리 네가 약만 안했어도 지금의 앤드류 켈리? 없는 선수였어! 그 앞에 올리 네 이름이 있었을거라고! 난 그게 너무 아쉬워!’라며 진심으로 아쉬워해주는, 가족이 아니어도 나를 아껴준다는 생각이 들게해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안정적인 나이츠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화내고 있었다.
“은퇴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뛰고싶어요. 도와줘요.”
[미쳤어? 지금 이 시점에? 네가 한국에서 지금은 잘 뛰고 있지만······.]
“벤이 저보고 아빠는 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있는 곳에서 안뛰냐고 물어요.”
보라스 역시 아버지다. 그렇기에 더는 올드먼을 몰아세울 수가 없었다.
“돈은 아무래도 좋아요. 한 경기라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 스캇이라면 해줄 수 있죠?”
[······빌어먹을 자식! 기다려 봐!]
하지만 생각보다 자신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활약?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어린 선수들도 많은데 굳이 36살이나 먹은 자신을 쓸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팀이 구해지지 않고 있던 자신에게 보라스가 계약을 들고왔다.
“마이너리그 각 단계를 돌면서 실전을 기를거야. 대신 네 경험담과 극복할때의 노하우 같은걸 강연해주는 조건이야. 그렇게만 해주면 20경기를 보장해주기로 했어. 할 수 있겠어?”
자존심 같은건 없어진지 오래다.
“할게요.”
그렇게 시작된 레이스와의 계약.
레이스는 예상과는 다르게 선발로도 자신을 출장시켜주었다.
‘임팩트 있는 모습은 보여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아들의 앞에서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서 자신이 홈런을 때리는 모습까지는 보여줄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시즌에는 다시 한국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서울 나이츠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자신에게 다시 한 번 해외 스카우트 직을 제안했다.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있을 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네? 제가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등록이 됐다고요?”
정규시즌에서 보여준건 많지 않다. 그리고 모든 메이저리그 레벨을 돌면서 이미 자신보다 야구를 잘하는 어린 선수들을 수도 없이 만나봤다. 포스트시즌 대비 훈련에서도 시몬 러브나 매튜 에드워즈 같은 어린 선수들이 하는걸 본 뒤라서, 자신이 로스터에서 탈락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을 제치고 자신을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넣었다?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결국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그리고 이렇게 타석까지 찾아왔다.
“아빠아아아아! 화이티이이잉!”
더그아웃을 떠나는 자신의 귓가에 아들 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 타석에서 절대 쉽게 물러날 수 없다!’
< 249화 - 영웅이 되기 위해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