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47화 (247/268)

< 247화 - 저도 하나 부탁해도 되겠십니까? >

솔직히 말해서 프레슬리는 애슬레틱스의 제안을 받은 이후 흔들리고 있었다.

“이 업계에서 일한지 고작 일 년 반 밖에 안된 사람이 다시 이런 제안을 받을 수 있을까?”

애슬레틱스의 구단주인 피셔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면접 제안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오지 않을 기회라는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약혼녀조차도

“자기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도전해봤으면 좋겠어. 면접 본다고해서 무조건 취직되는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차근차근 준비했다.

하지만 마음 한 쪽 구석에서는 자신을 다시 사회로 끄집어내주고 사람구실을 하게 만들어준 레이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자신을 붙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레슬리는 면접 날짜가 3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마음을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운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말을 이었다.

“너 하나 없어진다고해서 레이스가 무너지는건 아니야.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갈 길을 갈거고, 그러기 위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과 새로 들어올 직원들이 미친듯이 노력하겠지. 하지만 그 어디에도 네가 발전할 수 있는 틈은 없어. 네가 최종적으로 위치해야할 단장 자리에서 나는 내려올 생각이 없거든.”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인 다운이 프레슬리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네가 우리 레이스를 좋아하고, 레이스에게 은혜를 갚고싶어한다는 건 알고있어. 하지만 난 지금의 너보다는 5년, 10년 뒤에 경력이 쌓이고 쌓인 베테랑 단장이 된 네가 더 필요해. 그때쯤이면 난 단장이 아니라 사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우리 애가 그때면 10살쯤 됐을테니까, 구단주나 하면서 편하게 지내려고 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난 그때 네가 필요해.”

프레슬리의 어깨에 팔을 두른 다운이 그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도전해. 그리고 발전해서 돌아와. 10년 뒤 우리 레이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줘.”

다운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던 프레슬리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프레슬리는 다운을 끌어안았다. 다운 역시 그를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둘 옆에 한 명이 있었으니.

“어······. 조금 있다가 다시 올까요?”

***

와일드카드 시리즈 1차전은 누구나 예상했듯. 아니, 어쩌면 예상하지 못했듯 호시노 쇼헤이를 애스트로스가 착실히 공략하며 3대 0 승리를 따냈다.

이어진 2차전에서 자신이 공략당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호시노는 5타수 4안타 2홈런 5타점을 기록하면서 에인절스의 승리를 이끌었다.

에인절스타디움으로 옮긴 뒤 치뤄지는 3차전.

이제는 1승만 더하면 디비전 시리즈로 갈 수 있는 티켓을 따낼 수 있는 양팀의 집중력은 극에 달했다. 그래서인지 9회 말까지도 양 팀의 점수는 0대 0. 그리고 그 상황을 깬 한 명이 있었다.

[따아아악!]

[갑니다! 갑니다! 갑니다! 갔습니다! 게임 오버! 게임! 오버! 3차전을 끝내는 마이크 토켈스으으으은! 에인절스가! 애스트로스를 누르고! 디비전 시리즈로오오오오~ 갑니다!]

바로 에인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마이크 토켈슨이 그 주인공이었다.

“결국 에인절스가 올라오네요. 프레드.”

다운이 케이지의 이름을 부기도 전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부터 에인절스 집중분석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남은 시간은 2일. 전력분석팀은 48시간 동안 제대로 잠도 못자면서 올 시즌 에인절스 선수들이 한 경기를 돌려볼것이다.

“우리 선발진은 어떻게 할지 교통정리했어요?”

다운의 말에 캐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마다가 불펜 겸 비상선발로 대기할거야. 일단 우리 첫 경기는 조나가 맡을거야.

시즌 전체적인 성적으로 봤을 때 파인트와 진성찬이 비슷했고, 더지와 카스티요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메이저리그 경력도 많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파인트가 1선발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중요한건 1선발, 그리고······.”

“3선발이죠.”

5전 3선승제로 치뤄지는 디비전 시리즈뿐만이 아니다. 7전 5선승제로 진행되는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시리즈에서도 가장 중요한건 1선발과 3선발이다.

첫 번째 경기의 중요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다. 시리즈 전체의 기세를 좌우할 수 있는 경기이다보니까 중요한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런데 2경기 보다 3경기가 왜 중요한거죠?”

디비전 시리즈는 홈 2경기, 원정 2경기, 홈 1경기로 진행된다. 그리고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시리즈는 홈 2경기, 원정 3경기, 홈 2경기로 이어진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승률이 가장 높은 레이스는 누가 상대로 오더라도 무조건 홈의 위치에서 경기를 치르게될 예정이었다.

그런 레이스에게 세 번째 경기는 두 번의 홈 경기를 마치고 치뤄지는 첫 번째 원정경기다. 그러다보니 앞선 두 경기에서 레이스가 어떤 경기를 펼치든간에 무조건 우리의 흐름을 이어가고, 상대의 흐름을 끊어야하는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세 번째 경기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서의 3선발은 무조건 상대방을 막아낼 수 있는, 기세를 꺾어버릴 수 있는 선봉장과도 같은 남자가 가야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건 아니었다.

“일단 두 경기 확실히 잡고 가는게 낫지 않을까요?”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러셀의 의견. 하지만 다운과 캐시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도 3선발이 더 중요해요.”

“내 생각도 같아. 솔직히 리키나 디에고 모두 다른 팀에 가면 원투펀치 맡기에는 충분한 놈들이야. 조나와 찬에 비해서 떨어져서 그렇지. 둘 다 2선발을 맡겨도 자기 몫은 해줄거야. 다만 찬이 이걸 받아들여주냐가 중요한거지.”

진성찬은 시즌 내내 2선발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포스트시즌에 와서 3선발로 밀린다?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성찬이하고는 제가 이야기할게요.”

“그래주면 고맙지. 그러면 1선발은 조나, 2선발은 리키, 3선발 찬, 4선발로는 디에고. 이렇게가 우리 포스트시즌 로테이션이 될거야.”

“리타. 성찬이 지금 마무리 훈련중일텐데, 그거 마치면 나 좀 보자고 해줘.”

“메시지 보내놓겠습니다.”

“그럼 알마다는 비상선발, 그리고 나머지 아홉명은 정규시즌처럼 가면 될거고······.”

선발 로테이션을 확정했으면

“일단 선발로는 호시노가 올라오겠죠?”

“아마 그러지 않을까?”

와일드카드 시리즈 1경기에서 선발등판한 호시노는 2경기, 이동일, 3경기, 휴식일까지 생각하면 총 4일을 쉴 예정이다. 레이스와 치르는 첫 경기에는 충분히 선발등판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포수 자리에는 윌슨을 넣을거야.”

비어만은 이번 시즌 강력한 MVP 후보 중 하나다.

158경기(1루수 23경기) 601타수, 195안타, 32홈런, 56볼넷, 112타점

0.329/0.358/0.517, ops 0.875

포수인 그에게 출루율이 4할을 안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거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천적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호시노 쇼헤이였다. 지난 시즌 한 번 맞대결해서 3타수 무안타, 이번 시즌 일곱 타석을 상대해서 빗맞은 안타 하나를 때려내는데 그쳤다.

그에 비해서 윌슨은 이번 시즌 호시노를 상대한 다섯 타석에서 4안타 2홈런을 때려냈다. 확실한 상대 우위를 가지고 있는 이번 시즌을 생각한다면 비어만보다는 그에게 선발 마스크를 맡기는게 나은 선택이 될 것이었다.

“샘한테도 제가 말할까요?”

다운의 말에 캐시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찬 같은 경우에는 전체적인 그림을 위한 양보를 구하는거라서 그런거였지. 이번 경우는 팀의 확실한 승리를 위한 전술적인 선택이야. 양보가 아니란 말이지. 억울하면 다음 시즌에는 호시노 상대로 좀 잘 치던가.”

어깨를 으쓱인 캐시가 말을 이었다.

“1루에는 데이튼이 들어갈거야.”

“롭이 아니라요?”

후반기 최고의 히트작인 데이튼 레이몬드는 호시노를 상대로 3타수 1안타 1볼넷을 때려낸 전적이 있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타격능력이 확실히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롭 맨브로스키 역시 호시노 상대로 2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했었기에 기록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레이몬드가 1루 수비에 확실히 적응하지는 못한 반면에, 맨브로스키의 1루 수비는 견고하다.

이런 점을 미루어봤을 때 레이몬드보다는 맨브로스키가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오늘 훈련을 보니까 안될 것 같아.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 등 쪽이 불편한 모양이야. 푹 쉬게 한 다음에 대타나 2, 3차전 중에서 출전시키는게 나을 것 같아.”

남은 내야는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다.

“2루수에는 네이트가, 3루수로는 서머스, 유격수 자리에는 켈리가 들어갈거야.”

외야수들 역시 마찬가지.

“좌익수에는 마르코, 중견수 메이슨, 우익수 스프.”

지명타자 자리는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다들 알고 있었다.

“벤치멤버로는 브라이언, 로렌, 케빈이 들어갈거야.”

“남은 한 자리는요?”

“아직까지 고민중이야. 올리버, 시몬, 매튜 세 명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겠지.”

올리버 올드만, 시몬 러브, 매튜 에드워즈 셋 다 성적이 고만고만하다.

“올리버가 그래도 수비는 좋은데······.”

“수비보다 확실한 타격이 필요하지 않을까? 수비는 별로지만 시몬이 그래도 한 방은 있는데.”

“시몬보다는 매튜가 낫지. 시몬은 대타로 나왔을 때 성적이 별로였어. 그에 비해 매튜는 대타로 나왔을 때 타율이 좋았잖아.”

파트장들이 서로 누가 더 나은지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리타가 살며시 다가왔다.

“단장님. 찬이 단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온 모양이다.

“잘 생각해봐요. 아직 내일까지는 시간 있으니까요. 저는 잠깐 성찬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옆에 있던 캐시가 부탁한다는 듯 팔을 두어번 두드렸다.

“이야기 좀 잘 해줘. 만약 싫어하는 분위기 생기면······.”

“바로 2선발 자리 준다고 할게요. 걱정마세요.”

“부탁할게.”

회의실을 나와 단장실에 들어가자 마무리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해서인지 뽀송뽀송해진 진성찬이 다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님 왜 부르셨어요? 오늘 같이 가려고요? 안그래도 와이프가 포스트시즌 이제 들어간다고 특제 장어덮밥을 준비했다던데······. 아 제 와이프가 각종 요리 자격증 보유자인건 아시죠? 그 중에서도 일식을 특히나 잘해가지고 장어덮밥이 기가 막히거든요? 거기다 손도 커가지고, 행님이랑 형수님이랑 오셔도 장어가 다섯 마리는 더 남을······. 읍읍읍!”

물꼬가 터지자 닫히질 않는 진성찬의 입을 엄지와 검지를 활용해 닫았다.

“제발 성찬아. 내가 너한테 양해를 구하려고 좀 경건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왔는데 네가 이렇게 떠들면 그 마음이 사라지잖니?”

“으흐? 그르믄 으르크 즈 읍스를 믁으믄 은들튼드으?”(그러면 제 이렇게 제 입술을 막으면 안될텐데요?)

한숨을 쉰 다운이 입을 막은 손가락을 놓아준 뒤 진성찬을 마주보고 앉았다.

“오늘 형수님이랑 같이 장어덮밥 먹으러 오시면 부탁 들어드릴게요.”

“하······. 뭔지도 안들어보고?”

“뭐 행님이 지금 할 수 있는 부탁이라고 해봤자 뭐 선발 로테이션 순서? 그 정도 아닙니까?”

하여간 이 자식은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날카롭다.

“맞아. 너 3선발로 나가줄 수 있냐? 프런트가 판단하기로는 원정 첫 경기인 세 번째 경기에 경험이 풍부한 네가 나가야······.”

“행님이 오면 나간다니까요?”

준비해놓은 말들이 쓸모가 없어졌다.

“간다 가!”

“오케이! 그럼 와이프한테 미리 말해놔야겠네요 흐흐흐!”

메시지를 다 보낸 진성찬은 허탈해하는 다운을 보며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행님! 저도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다운은 심드렁하니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뭔데 또.”

보나마나 뭐 밥먹으러 오라는 등의 이야기겠지.

하지만 다운의 예상은 틀렸다.

“혹시 제 경기 때 어떤 포지션이든 올드먼 출장 가능합니까?”

< 247화 - 저도 하나 부탁해도 되겠십니까?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