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화 - 첫 번째 스텝 >
파아아앙!
찰리 제프리스가 던진 공이 깔끔하게 화이트삭스 타자의 몸 쪽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심판의 우렁찬 콜이 울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S까지밖에 들리지 않았다. 관중들이 지른 함성이 글라이드 파크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 제프리스가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레이스의 동부지구 우승을 결정짓습니다!
- 2024시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그의 우승은 탬파베이 레이스가아아아! 차지합니다아아아!
해설들과 관중들이 난리가 난 것처럼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프런트 역시 난리가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승! 우승이다! 우리가 우승이야!”
“젠장! 이게 얼마만이야!”
“4년 밖에 안됐는데 왜 이렇게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지?”
“4년이고 자시고 일단 쏘리 쥘러!”
“예에에에에에!”
하지만 가장 난리가 난 곳은 라커룸이었다.
“으아아아아! 우리가 우승이다!”
“뿌려! 뿌려!”
촤아아아악!
선수들은 지급된 고글을 쓰고는 이곳저곳에 샴페인을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체통도 잊고 우승 기념티셔츠를 입은채 샴페인을 뿌리고 다니는 글라이드도 있었다. 다운은 부끄럽다는 듯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조용히 속삭였다.
“구단주님······. 그래도 체통이 있는데······.”
평상시라면 헛기침을 하며 물러났을 터. 하지만 오늘의 글라이드는 그런게 먹히지 않았다.
“내 구단이 되고나서 첫 우승인데 체통이 무슨 상관이냐! 넌 가서 셰프들한테 우리 새끼들 먹일 요리 잘 하고 있나 확인이나 하고 와!”
“이미 하고 왔죠.”
“그럼 빨리 와서 샴페인이나 터트려! 오늘 하루 정도는 즐겨도 돼!”
샴페인을 흔들며 사라지는 글라이드를 보며 다운은 슬며시 웃으며 샴페인 병 하나를 들었다.
“그래. 오늘 하루 정도쯤이야.”
그리고 샴페인 병을 맹렬히 흔들었다.
“거기서라아아아!”
***
시즌이 일주일 남은 시점.
다운은 대런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요.]
수화기에서 전해져오는 퉁명스러운 대런의 목소리.
“너 아직도 삐져있냐?”
대런은 켈리의 트레이드 첫 날 5억 달러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의 15년 1억 5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물론 보통과는 반대되는 의미로)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을 앓아누웠다고한다.
‘하긴 나였어도······.’
스탠하우스를 잘 키워놨더니 연장계약을 거부해서 트레이드를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거기가서 레이스가 제안했던 금액의 1/5정도의 금액에 사인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마 혈압이 올라서 뒷목잡고 쓰러지지 않았을까?
“그건 내가 미안하게 생각해 어? 나라고 앤디가 계약서 건넨지 한 시간도 안되어가지고 거기 기자회견장에서 터트릴 줄 알았겠어? 그 날 내 얼굴 너도 봤잖아?”
[봤죠. 황당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 다 봤죠. 다운의 페이스가 그렇게 깨지는 건 또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저장까지 해뒀거든요.]
그걸 또 뭘 저장까지 하고 자빠졌는지······.
[근데 그래도 이건 아니죠! 1년에 1000만 달러라니! 내가 제안한 금액이······.]
처음에 켈리가 500만 달러 이상이면 괜찮다고 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숨겨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래. 그래도 우리가 준 애들 다 잘하고 있잖아.”
로드리고는 양키스에 가서도 변함없이 팀의 중심이 되는 타격을 선보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1년짜리 렌탈을 왜 데려왔냐는 말을 했던 팬들도
“나는 양키스에서 아주 행복하다. 양키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팀을 떠날 계획은 없다.”
라는 인터뷰를 한 뒤부터는 로드리고를 새로운 리더 중 하나로 받아들인 모양새였다. 울먹이며 팀을 떠났던 블랜튼은 양키스로 간 뒤 3루에 고정되었다. 확실한 자신의 자리가 생기자 그의 타격도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마이너리그에서도 ‘메이저 레디’라는 평가를 받았던 윌슨은 아직까지 많은 경기는 아니지만 세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1실점, 5이닝 3실점, 7이닝 0실점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는 중이었다.
보낸 선수들이 모두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운은 대런 앞에서 큰 소리를 뻥뻥 칠 수 있었다.
[그······렇긴 한데······.]
“그럼 된거 아냐? 제수스는 팀이 버리지 않으면 계약사항 그대로 이어나가기로 했다며? 그거면 됐지! 덕분에 양키스는 미래가 생겼잖아, 미래가.”
계속 이야기하다가는 뭔가 다운에게 말릴 것 같다는 생각에 대런이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왜 전화했어요?]
“아~ 뭐 별건 아니고. 내일 우리 양키스 원정가잖아.”
내일부터 3일간 레이스는 시즌 마지막 원정이자 마지막 양키스 원정이 계획되어있었다.
“배리 은퇴투어 준비는 해놨어?”
은퇴투어는 보통 해당 팀과의 시즌 마지막 원정경기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선물을 받는 것으로 진행된다. 맨프레드는 브래넌이 양키스와 레인저스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서 마지막 앞 원정을 레인저스로, 레이스가 치루는 올 시즌의 마지막 원정을 양키스로 가는 일정을 만들어줬다. 앞서 뛰었던 구단에 가서 대접도 좀 받고, 팬들에게 그간 감사했다는 말도 좀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라는 뜻에서였다.
‘레인저스에서야 그게 가능했지.’
레인저스에서 뛴 건 솔직히 몇 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브래넌은 그 기간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런 선수로 활약했다. 그래서인지 레인저스는 그에게 BB가 박혀있는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를 선물했다.
하지만 양키스는 다르다.
솔직히 양키스와 브래넌의 이별은 아름답지 못했다.
다운은 그를 최대한 아름답게 보내주려고 노력했지만, 양키스는 그를 그냥 버렸다. 심지어 스타인브레너는 오랜기간 함께했던 그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 하나만을 발송하고 그와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런 양키스였기에 브래넌의 마지막을 축하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슬쩍 확인을 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당연히 해놨죠.]
다행히도 대런은 브래넌의 마지막 선물을 준비해둔 것 같았다.
[안그래도 요즘 이미지 안좋은데 은퇴투어도 안챙겨줬다? 기자들 먹잇감 될 일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배리한테 한 일이 미안하기도 하고······.]
항상 느끼는거지만 썩 나쁜 놈은 아니다. 어떻게 저런 아버지 밑에서 이런 아들이 태어났는지 미스테리할 정도다.
[여튼 제대로 준비해놨으니까 걱정말고 오세요.]
***
양키스 원정길
사실 브래넌에게 있어서 이 원정길은 그렇게 의미있는 원정길은 아니었다. 커리어 내내 아메리칸 리그에 있었기 때문에 레인저스에 있을 때에도 양키스 원정은 한 해에 한 번은 꼭 왔다. 같은 지구인 레이스로 온 다음부터는 매 년 9~10경기 정도는 꾸준히 원정경기를 치르곤했다. 그래서 브래넌은 이 마지막 원정길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오판이었다.
뉴욕에 들어온 그 순간까지도 괜찮았던 브래넌의 마음은 양키스타디움에 들어오는 순간 감상에 물들었다.
‘여기서 데뷔전을 치뤘었지······.’
선발 데뷔전이 확정된 그날도 이렇게 팬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경기 전 훈련을 위해서 지금 있는 원정 라커룸이 아닌 홈 라커룸에서 홈 더그아웃을 나왔다. 고개를 내밀었을 때 사방에 깔려있는 양키스 팬들. 그들이 오늘 선발 데뷔전을 치를 것이라고 예고된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었다.
“브래너어어어언! 손 한 번만요!”
“사인해줘요 사인!”
“진짜 이번 시즌 끝나고 은퇴해요? 양키스에서 마지막으로 한 시즌만 뛰어요! 난 어릴적부터 당신 팬이었다고요!”
브래넌은 소리를 지르는 팬들을 향해 웃으며 답해줬다.
“옛다 손!”
“사인은 나중에 해줄게. 지금은 훈련이 먼저거든. 좀 이따가 팬서비스 타임에 다시 말해라 꼬마야. 근데 올때는 양키스 모자말고, 이 모자 쓰고오고. 알겠지 꼬맹아?”
자신이 쓴 모자를 벗어준 브래넌이 꼬맹이의 마음에 레이스라는 바이러스를 떨어트린 뒤 자신의 팬이었다고 했던 그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핀스트라이프 유니폼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레이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브래넌은 그런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넌······.”
“기억하세요?”
브래넌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때는 바야흐로 브래넌이 기념비적인 커리어 첫 홈런을 때렸을 때였다. 구단에서는 홈런볼을 잡은 사람을 찾았고, 그리고 정중히 그 볼을 브래넌에게 줄 것을 요청했다.
“싫어! 싫다고! 내꺼야!”
“정말 얘가 왜 이럴까······.”
홈런볼의 주인은 6살 배기 꼬맹이었다. 그리고 그 꼬맹이는 부모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고집스럽게 홈런볼을 손에 쥐고서는 놔주질 않았다.
데뷔 첫 홈런을 친 브래넌은 그런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됐어요. 내버려두죠. 꼬마야 사인해줄까?”
“그러고 뺏어가려고!”
“아냐. 안뺏어가. 그래도 내 첫 홈런볼인데 그 징표랑 사인은 있어야할거아냐.”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싸했는지 꼬맹이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으며 조심스레 공을 건넸다.
“꼬마 친구 이름이?”
“······ 티모시.”
배리 브래넌의 커리어 첫 홈런볼은 티모시에게! -BB-
수백번은 연습해온 사인을 홈런볼에 멋들어지게 새긴 브래넌은 공을 다시 꼬맹이에게 넘겨주었다.
“잘 간직하고 있어. 600, 아니 700홈런은 넘게 칠 사나이의 첫 홈런볼이니까 말이야.”
***
“톰, 아니 티모시였지?”
“이야! 기억하시네요! 전 또 700홈런 넘게 친다 해놓고 못쳐서 기억에서 잊은줄 알았죠!”
“닥쳐 자식아 내가 건강하기만 했어도 700홈런이 뭐냐, 800홈런은 넘겼어!”
호쾌하게 웃는 그를 향해 브래넌이 입고있던 트레이닝 재킷을 벗어던졌다.
“너도 나중에 저 꼬맹이 손 잡고 와있어라. 안 오면 죽는다?”
“하하! 네 알겠어요! 안그래도 레이스 유니폼에는 사인 한 번도 못받아서 좀 그랬다고요!”
“안되겠다. 넌 마치고도 남아. 연쇄 사인마가 무슨 뜻인지 알게해주지. 그리고 내 첫 홈런볼을 돌려받아야겠어.”
그러자 티모시는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한데 지금 저한테 없는걸요?”
“내가 받아내고야 말거니까 걱정 마.”
오랜 인연이 있던 팬과 헤어진 브래넌은 경기장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여기 이 원정 더그아웃으로 뜬 공 잡으려다가 실려갈뻔 했었지.’
‘이야~ 예전에 이 펜스 사이에 공 끼어가지고 3루타 기록할 수 있었던게 2루타로 둔갑했었지!’
‘여기에 내 팬들을 위한 전용 좌석도 있었는데······.’
‘공 드럽게 많이 흘렸었지······. 백네트에 있던 팬이 뭐랬더라? ‘우리 집 개를 앉혀놔도 그것보다 공 잘 막겠다!’였나? 그 자식은 잘 살아있나 모르겠네.’
앞으로 다시는 선수로 이곳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먹먹한 가슴을 끌어안고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그리고 경기 시작 전.
- 오늘 시즌의 마지막, 그리고 선수로는 마지막으로 치뤄지는 양키스 원정길에 오른 배리 브래넌에게 양키스가 준비한 선물이 있습니다! 배리 브래넌은 나와주세요.
장내 아나운서의 호명에 양키스타디움에 꽉 들어찬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그리고 브래넌이 그들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양키스를 대표해서 나온 사람은 얼마 전 건너간 로드리고였다.
“이렇게 보내요 배리.”
“거긴 좀 즐겁냐 제수스?”
“좋아요. 항상 핀스트라이프가 제 꿈이었거든요. 여튼 이걸 제가 주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은퇴 축하해요 배리. 그리고 항상 신의 은총이 당신의 앞길을 비춰주길 바랄게요.”
“고맙다 제수스.”
로드리고는 베일에 쌓여있는 조그마한 박스를 건넸다.
“지금 까봐도 되냐?”
“얼마든지요.”
베일을 벗기자 아크릴 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배리 브래넌의 커리어 첫 홈런볼은 티모시에게! -BB-
라고 적혀있는 사인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사인볼 아래에는 브래넌이 거쳐간 팀들과 양키스에서 새긴듯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홈런타자 배리 브래넌의 첫 번째 스텝은 역사에 길이남을 기록으로 마무리 되었다.
은퇴 이후의 배리 브래넌의 첫 번째 스텝 역시 그런 기록의 위대한 첫 번째 발자국이 되기를······.
- by New York Yankees -
< 244화 - 첫 번째 스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