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미안하다 대런 >
워낙에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올스타전은 순식간에 휙! 하고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레이스 팬들은 곧바로 그 충격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 Breaking News! 디에고 카스티요 레이스 행!
- 레이스! 카스티요까지 품에 안는다!
- 카스티요 영입으로 판타스틱 4를 완성한 레이스!
- 카스티요 “로테이션은 시즌 내내 바뀌는 것, 선발 순서에 연연하지 않아. 레이스의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카스티요를 영입이 발표된 바로 그 날, 후반기 시작을 하루 앞둔 레이스의 프런트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스. 너클, 아니 라일리가 다시 한 번 강속구를 뿌릴 수 있도록 최고의 코치들을 붙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예 폼이 완벽하게 잡힐때까지만이라도 혼자서 훈련시키는게 어때?”
“그것도 생각해봤는데, 라일리에게는 경기가 더 필요해. 라일리의 가장 큰 문제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을 때, 제구를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아무리 혼자서 지지고 볶아도 이 부분은 나아질 수가 없어. 일단은 더블 A로 내려서 천천히 적응을 시키는게 최선이야.”
“거스 말대로 하죠. 그리고 케빈. 5선발로는 알마다를 쓸거라고 했죠?”
“그럴 예정이야.”
“거스랑 이야기해서 필요한 투수 뽑아봐요. 그리고 데이튼은 불렀죠?”
“비행기 타고 오고있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리타가 문을 두드렸다.
“단장님. 헤네시 에이전시 도착했습니다.”
“브라이언도 왔지?”
“네. 단장실로 안내해놨습니다.”
앤더슨도 왔다는 것은, 이제 연장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러 왔다는 것이랑 같은 말이었다.
“리타. 제수스랑 네이트 출근하면 곧바로 불러줘.”
“조 블랜튼도 부를까요?”
“그래. 부탁할께. 다들 이야기 좀 하고 있어요.”
단장실에 들어가자 두 사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다운을 맞았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단장님!”
“오랜만이네요 웨인. 잘 지냈죠?”
“하하! 물론이죠! 단장님도 신수가 훤하십니다?”
악수를 나눈 다운은 그들의 앞에 앉았다.
“마음은 정하셨습니까?”
다운의 말에 헤네시는 말도 말라는 듯 이 손사래를 쳤다.
“저는 그래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 브라이언이 워낙에 레이스에 남고싶어해가지고요. 단장님이 제안하신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다운이 제안한 조건은 700만 달러짜리 1년 옵션을 지우는 대신, 새로운 4년 3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는 것이었다.
“계약금 400만 달러에 연 650만 달러짜리 4년 맞습니까?”
원래는 750만 달러 4년으로 설정하려고 했는데, 앤더슨은 연봉을 낮추더라도 계약금을 받는걸 원했다. 얼마전 셋째가 태어나면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완벽하네요.”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검토해보시죠.”
헤네시가 계약서를 검토하는 동안 앤더슨은 흥분한 듯 다운에게 말을 걸어왔다.
“단장님. 너무 무리하신거 아니에요?”
“카스티요 건?”
“네. 디에고 카스티요라니! 우리 팀 선발진을 이길 수 있는 팀이 안보이던데요?”
아마 앤더슨의 잔류 결정에는 ‘월드시리즈를 노릴 수 있는 로스터를 갖춘 팀’이라는 것 역시 한 몫 했을것이다. 이제 32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앤더슨에게는 레이스가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는 팀이 될 것이니까. 그 역시 약한 팀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을거다.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뉴스도 곧 터질 예정인데?”
다운의 말에 계약서를 검토하던 헤네시가 살짝 눈을 들었다.
“그 소문이 사실인가보네요.”
“벌써 소문까지 났답니까?”
“양키스와 엄청난 딜이 있을거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아마도 비어스 측에서 샌 것 같았다. 현재 구단에 없는 비어스에게는 이미 전화로 설명한 상황이었으니까.
“양키스에서 누굴 데려온다고요? 그럴만한 애가 있나?”
“아직은 조율중이야. 근데 메인 칩은 정해져서 미리 말해둔거지.”
“지금 로스터에 있는 애들 중에서도 떠나는 애들이 있나요?”
어차피 조금 있다가 라커룸에 가면 알게 될 사항.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제수스와 조가 갈거야.”
앤더슨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떠날 예정이었던 친구와 자리를 잘 못잡고 있던 친구가 가네요.”
“라커룸에 가서 작별인사 잘 해줘.”
“알겠습니다.”
잠시 후 계약서 검토를 완료한 헤네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문제될 사항 전혀 없어. 그나마 조금 걸리는건 15개 팀 상대 트레이드 거부권이 아니라 10개 팀 상대 거부권이라는 건데······. 이 정도는 상관없지?”
“전혀 상관없어요. 어차피 리빌딩 팀만 아니면 되는거라서.”
계약서에 시원스럽게 사인한 앤더슨이 다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단장님.”
“나야말로 잘 부탁해 브라이언. 웨인도 수고했어요.”
“하하! 별말씀을! 그나저나 단장님 제가 데리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이번 시즌 마치고 FA가 되는 친구들이 좀 있는데······.”
“파일 놓고가시죠. 그럼 제가 나중에 한 번 보겠습니다. 영상같이 첨부할 자료 있으면 제 메일 알고 계시죠?”
“알죠!”
“그쪽으로 보내주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브라이언 같은 좋은 선수도 소개해주셨는데 이 정도쯤이야 봐줄 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앤더슨과 헤네시가 단장실을 떠났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걸로 끝이다. 이제부터는 조금 힘든 이야기를 시작해야한다.
“드레이크 선수가 왔습니다.”
“들여보내줘.”
방으로 들어오는 드레이크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앉아봐 네이트.”
다운의 말에도 드레이크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는 서있는 자세 그대로 다운에게 물었다.
“트레이듭니까?”
드레이크의 10년 계약에는 트레이드 거부 조항이 없었다. 31세가 되는 시즌에 FA가 되어서 팀을 떠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거부권을 넣지 않았던 것이었다.
드레이크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도 귀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비어스와도 꽤 친했기 때문에 양키스와의 대형 딜이 임박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양키스에서 데려올 수 있는 대형 선수. 누가봐도 지금까지 연장계약을 하지 않고 있는 앤드류 켈리다. 양키스 선발진도 강력하긴 하지만, 카스티요까지 영입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선발 영입은 하지 않을테니까 그 가능성은 더 높아보였다. 그래서인지 드레이크는 자신이 트레이드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냐. 널 왜 트레이드 해?”
다운의 부정에 드레이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후우······. 다행이다.”
“그런 소문을 믿었던거야?”
“당연히 안믿었죠. 근데 어제 저녁에만 ‘너 곧 트레이드 된다던데?’라는 연락을 100통 넘게 받았어요!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 들으니까 마음이 불안해지더라고요.”
하긴 주변에서 100번 넘게 저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흔들릴 것 같다.
“그럼 켈리는 안오는거에요?”
안도감과 함께 아쉬움이 공존하는 드레이크의 말투에 다운이 피식 웃었다.
“어째 아쉬워하는것 같다?”
“아쉽긴하죠. 우리 팀에 있었으면 나랑 뭐가 그렇게 다른건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이길 수 있을지를 쏙쏙 뽑아먹었을텐데.”
역시나 멘탈리티가 남다르다.
“그리고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앤드류 켈리잖아요. 같이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죠. 이번에 올스타전에서도 키스톤으로 합 맞춰서 한 번 뛰어봤는데 꽤 재밌었거든요.”
예상대로 반응이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는다.
“다행이네.”
“네? 뭐가요?”
“곧 네가 원하던대로 쏙속뽑아먹을 기회가 올테니까, 기회 놓치지 말고 잘 뽑아먹어봐.”
다운의 말에 드레이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다고요? 진짜? 앤드류 켈리가?”
“어. 그럴 가능성이 높아.”
만약 예정된 시기까지 누군가가 부상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난 또 혹시나 네가 밀릴 수도 있으니까 괜찮냐고 물어보려 한 건데 괜찮아보이네.”
“제가 안괜찮다고해서 파토날 딜은 아니잖아요?”
“그건 아니지. 팀에 필요하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 제가 밀린다고 해도, 그건 더 큰 도약을 위한 것일 뿐! 곧 다시 유격수 자리를 제가 차지할거거든요. 흐흐흐! 뽑아먹을것만 다 뽑아먹으면······!”
저렇게 멘탈 강한 놈이 트레이드 소식에 흔들렸던 것 보면 아직 애긴 애다. 다운은 그런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부디 뼛속까지 싹싹 뽑아먹어라 응? 제발.”
“6개월만에 싹 다 뽑아먹어서 내년에는 제가 유격수 1위가 될 수 있도록 할게요 흐흐흐!”
연장계약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다음 차례는 로드리고와 블랜튼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은 로드리고였다.
“어서와 제수스. 앉아.”
로드리고는 직감적으로 자신들이 트레이드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하긴, 밝은 표정으로 나간 드레이크를 보면 드레이크는 그 대상이 아니었다는걸 알테고, 자신이 그 대상일 확률이 높다는걸 알아차렸을거다.
“트레이든가요?”
드레이크가 했던 것과 같은 말.
하지만 다운의 대답은 그때와 같지 않았다.
“그렇게 될 것 같다.”
“상대는 소문처럼 양키스입니까?”
“어.”
원래부터 양키스를 가고싶어했다는 소문이 돌던 로드리고는 아쉽긴 하지만 양키스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팀한테는 어제 미리 이야기해뒀는데 말 안해줬나보네?”
“단장님이 부를테니 직접 들으라고 하더라고요. 팀이 뭐 이상한 이야기는 안했죠?”
“네가 지난 겨울 가장 가고 싶어했던 팀이 양키스란 말은 안했으니까 걱정 마.”
“빌어먹을 팀.”
“원래 그 자식이 좀 짜증나긴 해.”
피식 웃은 다운은 로드리고에게 손을 내밀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번 달 말에 트레이드 될거야. 그동안 고마웠다 제수스.”
“저야말로, 증명할 기회를 줘서 고마웠어요 다운.’
“혹시나 양키스랑 연장계약 틀어지면 연락하고.”
“그건 팀이랑 이야기하세요.”
로드리고는 윙크와 함께 단장실을 나갔다.
로드리고가 조금은 들뜬 기분이었다면 블랜튼은 완벽히 반대였다.
“트레이듭니까?”
레이스에만 있었던 블랜튼은 어두운 얼굴이었다. 그에 따라 다운도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운은 이런 이들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운은 블랜튼의 옆으로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렸다.
“조. 우리가 널 보내는건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어. 수많은 프런트의 사람들, 코칭스태프들 까지도 모두 네가 잘될거라고 믿고 있어. 하지만 우리 팀에서는 당장 자리가 없어. 브라이언은 연장계약을 맺었고, 이미 각 포지션은 모두 주전이 있지. 네가 도저히 성장할 수가 없는 곳이 바로 레이스란 말이야. 그에 비해 양키스는 달라. 양키스에서는 네가 뛰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뛰게해줄거야. 대런 그 놈에게 널 보내는건 정말 엿같은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네가 꾸준히 기회를 받으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기도 해.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널 보내는 선택을 했어. 아니, 정확히는 대런이 로렌 대신에 널 택한거지.”
“로렌 대신에 저를요······?”
“그래. 대런도 네가 더 잠재력이 있다고 본거야.”
물론 사실은 달랐다. 하지만 립서비스를 하는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혹시 아나? 정말로 블랜튼이 엄청나게 터질지? 그리고 앤더슨이 은퇴할 때쯤 되어서 레이스로 적당한 가격에 돌아와줄지 말이다.
“로렌을 제안했지만, 대런은 네가 아니면 안된다고 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널 보내는거야. 부디 가서 좋은 활약을 하고 엄청나게 성장하길 기도할게.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다시 같은 팀에서 다시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크흡!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단장님······.”
다운은 기어코 울음을 터트린 블랜튼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미안하다 대런.’
어쩌면 몇 년 뒤에 또 한 명이 넘어올지도 모르겠다.
< 241화 - 미안하다 대런 > 끝